이사야 40장 31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요? 일대일로 싸우면 호랑이기가 이기지만, 사자는 군집동물이라서 혼자 다니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동물의 왕을 사자 또는 호랑이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새 중의 왕은 독수리임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독수리는 강하고 빠르며 민첩한 동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수리의 독은 대머리라는 의미입니다. 서울의 ‘독(禿)산동’도 대머리 민둥산 지역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수리’과 중에서 머리카락이 없는 수리를 ‘독수리’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인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란 표현은 독수리 날개의 강한 힘을 연상시켜 줍니다. 그러나 실제로 독수리를 잘 관찰해 보면, 날갯짓으로 조금 올라가서는 기류를 타고 날아 다닙니다. 독수리는 자기 힘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상승기류를 타고 나는 것입니다.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에서 올라감이라는 단어를 ‘비상’한다는 뜻입니다. 독수리가 하늘 높이 오늘 수 있는 것은 날개 짓 때문이 아니라, 공기의 흐름을 타고 납니다.
30절과 31절은 대조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 40:30-31 /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소년과 장정은 힘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힘이 넘처 나는 사람도 넘어질 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에 비하여 힘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곤비하지도 피곤하지 아니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앙망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앙망이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맡기는 것입니다. 사람은 맡긴 만큼 강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삶의 여정을 불꽃과 같은 눈동자로 살피시고 보호하시는 인도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바로 그 사람이 새 힘을 얻습니다. 그런데 새 힘은 세상이 주는 힘이 아닙니다. 새 힘은 영적인 힘입니다. 새 힘은 자신의 힘이 아니고, 하나님의 힘입니다. 새 힘은 땅의 힘이 아니고, 하늘의 힘입니다.
오늘 성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바벨론에서 포로생활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초기부터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왜요? 그래도 자신들은 하나님이 선택한 백성인데 어째 이방백성들에게 처참하리만큼 망하고 포로로 잡혀와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이냐 항변합니다.
그리고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잃어버렸던 순수함과 거룩함을 회복하기 간절히 원하시고 계셨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사야선지자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포로된 상황에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이 가져야할 태도를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이 포로 생활을 끝내고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이사야선지자는 포로된 백성들에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라’는 말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잖아요”
그렇다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 힘은 무엇입니까?
“새 힘을 얻으리니”에서 새 힘이란 움트는 것입니다. 아주 이른 봄날 아직도 모든 산야의 나무와 풀의 색깔이 마치 죽은 것처럼 회색빛깔을 띠고 있을 때 연한 새싹은 가장 약한 아기풀이지만 꽁꽁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잖아요. 이게 새 힘이라는 겁니다.
모세의 기도를 볼까요.
시 90:5 / 주께서 그들을 홍수처럼 쓸어가시나이다 그들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는 풀 같으니이다
자신에게 끊이지 않고 계속될 새 힘을 소망하면서 바로 움트는 싹을 이야기 한 겁니다. 그렇습니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들에게는 움이 솟는 싹처럼 얼어붙은 땅도 뚫고 나올 힘이 솟아나게 하시겠다는 거지요.
그리고 분명히 알아야할 것은 새싹이 움터 솟아오르기까지 기나긴 겨울을 보내야만 했듯이 하나님을 의지한다고 당장 힘이 솟아나는 것이 아니라는 거지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그 찬 기운에 솟아올라야 할 땅덩이는 꽁꽁 얼은 얼음처럼 견고하기만 합니다. 도무지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이 여전히 계속되면서 암울하고 고통스런 환경이 변할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서 배우는 것이 있잖아요. 우리의 연약함을 처절하게 느끼지요. 그러면서 더 기도하게 되고 그래도 변하지 않는 환경에서 낙심했다가도 또 기도로 나아가게 되고. 이렇게 하다 보니 오직 주님과 친밀한 시간들을 보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가장 연약한 풀 같음을 기도하지요. 그러나 풀 같은 연약한 인생이었어도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내 맡길 때 하나님으로부터 새 힘을 얻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 준 장본인이잖아요. 홍해 앞에서 백성을 향한 모세의 외침이 뭐였습니까?
출 14:13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30절에 어찌 되었나요?
출 14:30 / 그 날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스라엘을 애굽 사람의 손에서 구원하시매 이스라엘이 바닷가에서 애굽 사람들이 죽어 있는 것을 보았더라
그리고 오늘 본문의 이사야 선지자가 말하는 하나님께로부터 새 힘은 어떤 힘이라고 말씀하지요. “독수리가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이 말씀을 직역하게 되면 “그들은 독수리들처럼 날개로 올라갈 것이다”입니다. 여기서 히브리어 ‘에베르’를 ‘날개를 치며’라고 번역하고 있지만 ‘에베르’는 그냥 ‘날개’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뭡니까?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 힘은 지금 지상에서 파닥파닥 날개 짓을 하면서 힘들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미 하늘을 날고 있는 독수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더 높이 날아오르는 모습이라는 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 힘은 더 높은 곳에서 더 온전하게 더 차원 높게 복되고 영광스러운 삶으로 나아가게 하는 거지요.
독수리의 몸무게는 5~8킬로그램이고, 날개는 약 2~3.5미터 된다합니다. 그런데 독수리가 날개 짓을 통해서 높이 멀리 날기 보다는 바람의 힘을 의지하여 기류를 타고 난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우리 힘으로가 아니지요 성령 바람을 타고 더 높이 더 멀리 날아올라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로 가까이 나아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날개를 펴서 하나님 주시는 은혜의 바람을 타면 감사하면서 감당치 못할 것도 감당하게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새 힘은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뭡니까? 신앙을 가진 믿음의 사람들에게도 때로는 달려갈 만큼 분주하고 힘든 삶이 있다는 거잖아요 그렇다면 그런 삶에서 인생 곤비함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런 삶에서도 곤비하지 않을 것이라는 거지요 누가요? 여호와를 앙망하는 신앙인들이라는 거지요
그러나 여호와를 앙망하지 않는 자는 30절에 어떻답니까?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소년과 장정이라면 인생에 있어서 최고의 빠름과 힘이 최고조에 달하는 절정기가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힘에는 뭡니까? 한계가 있다는 거지요 아무리 빠르고 힘이 세도 잠에는 장사가 없고 질병에도 장사가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현미경으로나 봐야 움직임을 포착할 수 있는 작은 바이러스에도 사람들이 넘어집니다.
아무리 힘센 장사라도 질병에 걸리면 힘 쓸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강한 것 같지만 한없이 약하기만 존재입니다.
이런 인간에게 필요한 것이 뭐라고요? 새 힘입니다. 그런데 이 힘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힘으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에게 주시는데 이 새 힘을 받게 되면 독수리 같이 기류를 타고 더 높이 날아오른다는 거고 소년도 장정도 피곤하고 곤비하고 넘어지고 자빠지지만 분주함과 계속 걷는 인생 여정에 피곤치도 곤비치도 쓰러지지도 넘어지지도 아니하게 하신다는 겁니다.
왜 하필 독수리를 예로 들었을까요? 단지 높이 나는 것 때문일까요 새들 중 왕이어서 일까요? 독수리와 관련된 전설이 하나 있어요. 전설이라 함은 사실과는 거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독수리와 관련되 전설은 독수리가 나이가 먹으면 날카로웠던 발톱이 안으로 굽어져 들어가 굳어진답니다. 그러니 무슨 사냥을 합니까? 거기다가 먹이를 물어서 뜯어야 할 부리는 가슴 쪽으로 점점 휘어져 들어간다는 거예요 날개는 갑옷처럼 무거워지고 깃털들은 두꺼워져 간다는 거지요 그러니 몸에 비해 턱없이 큰 날개로 날아다니는 것이 곤욕이요 고통입니다.
그래서 이런 시기가 오면 두 가지래요. 하나는 짐승에게 잡혀 죽음을 당하든지 아니면 다섯 달 동안 절벽 아주 높은 곳에 둥지를 틀고 들어앉아서 절벽에 자신의 부리를 계속해서 부딪쳐서 지금의 부리가 깨어져 나가고 새부리가 생기기를 기다린다는 거지요.
그래서 새 부리가 난 다음엔 새로운 부리로 발톱을 쪼아서 뽑아버린다는 거지요 그러면 새로운 날카로운 발톱이 다시 생긴다는 겁니다. 새로운 발톱이 나게 되면 자신의 두꺼워진 무거운 깃털을 뽑아냅니다. 이렇게 다섯 달이 지나면 예전에 젊었을 때 창공을 높이 날던 새 힘을 가진 독수리로 재탄생이 된다는 겁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능력 있게 새로운 삶으로 살아간다는 거지요.
그렇습니다. 독수리의 부리가 새로 나기까지 옛 부리가 깨어져 나가는 아픔을 겪는 과정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몸과 환경의 아픔을 통해서 우리로 새 힘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발톱을 뽑아내버리는 독수리의 아픈 과정이 오히려 단단한 발톱으로 재탄생해서 새롭게 살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로 아픔을 겪어나가면서 오히려 더 단단하게 새 힘을 가진 자로 세우시는 것이지요. 힘에 겨운 묶은 깃털을 뽑아 내버리는 아픔이 새 날개로 갈아타는 시간이 되는 것을 기억하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그렇습니다.
예수그리스도만이 소망입니다. 우리가 예수 믿음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위치의 변화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의 변화 더럽고 추했던 마음이 거룩하고 신실한 마음으로 심령의 변화 썩고 부패해질 소망이 아니라 썩지 않은 새소망으로의 변화 내 힘 가지고 살았지만 이제는 주님주시는 새 힘으로 사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새 힘은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의 몫인 것을 기억하면서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로 사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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