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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심는 그대로 거두리라, 갈 6:6-10, 갈라디아서 시리즈 설교(27)

by tat tvam asi 2024. 10.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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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는 그대로 거두리라

갈 6:6-10

 

먼저 바울은 가르침을 받는 자와 가르치는 자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6:6 / 가르침을 받는 자는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모든 좋은 것을 함께 하라

 

본문에서 가르침을 받는 자들은 복음을 듣는 자들, 말씀의 가르침을 받는 자들, 즉 교회의 성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르치는 자는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하나님의 사역자들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향해 복음 사역과 말씀 사역을 감당하는 사역자들과 좋은 것을 함께 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본문의 '좋은 것을 함께 하라'에서 '함께 하라'의 의미는, '나누다', '동참자가 되다'입니다.

 

그리고 '좋은 것'이란 음식, 주거지, 돈 등 물질적인 것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성도들은 자신에게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자와 물질을 함께 나누라는 말이 되겠지요.

 

바울은 성도들에게 물질을 사역자와 나누는 것으로 하나님의 복음 사역을 위해 동참하고 씨를 뿌리는 것이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본문 7절을 통해 성도들에게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는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갈 6:7 /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여기서 '속이다'라는 말은, 육체의 열매만 맺고 있으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열매를 맺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기 쉽습니다.

 

자기 자신만의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하여 쌓아 올리는 부와 명예와 영광을 마치 하나님을 위한 것인 양 포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그대로 이양 받은 자로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소원을 가지고 나의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이타심까지 가지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헷갈리는 것이 있지요? '나의 모든 마음의 소원이 욕망이란 말인가? 그러면 나는 무엇을 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인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겠지요. 우리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하나님의 성전이기에,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안에서 실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아느냐구요?

 

권능의 성령님이 우리 안에 늘 함께하고 계시기에, 우리가 우리의 내면으로 들어가 세미한 성령의 음성에 귀기울이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고자 할 때, 마음속에 평안과 기쁨과 감사와 사랑이 흐르는지, 아니면 불안이나 불편한 느낌들이 자신의 진동을 흐리게 하는지를 관찰하면 됩니다.

 

우리 안에 나 자신의 모든 것을 지켜보고 목격하는 관찰자, 목격자, 의식하는 자가 나의 의식 배후에 있기에, 그 의식 속에 직관이 작용하기도 하고 느낌이 배어나기도 하자 않습니까?

 

이것에 대해서는 따로 여러분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8절을 통해 이렇게 선언하고 있습니다.

 

갈 6:8 /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영국 격언에 "자연은 속이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나라 속담으로로 치면,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것이지요. 자신의 육체를 위해 심은 것이 있다면, 당연히 그 심은 것을 거두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다'라는 뜻이 무엇일까요?

 

이 말은 자신의 삶을 영위해 나갈 때에, 우리 영의 배경에서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양심에 새겨놓으신 하나님의 법대로 자신 속에 있는 마음의 소원을 진행해 나간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그 열매로 자신을 드러내듯이, 우리 모두는 성령의 열매로  자신이 누구인지를 나타냅니다.  성령의 열매를 거두기 위하여 성령의 인도하심에 늘 주의를 집중하게 됩니다.

 

롬 8:14 /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 받는 사람은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에 연연하며 그것 때문에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세상 삶을 힘들어하는 성령의 사람들을 이렇게 위로합니다.

 

 6:9 /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초대 교회의 사람들은 승천하신 예수님이 곧 오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종말이 임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금방 오실 것만 같았던 예수님이 시간이 지나도 오시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지연되었습니다. 

 

본문의 구절은 마지막 추수의 때가 지연된다는 것을 염두에 둔 표현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종말이 임박했다면, 지금 자신이 하고 있는 것들을 다 그만두고, 가진 것도 다 팔고, 모든 시간을 주님 오시는 데에만 집중하겠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이 다시 이 땅에 오시는 시간이 '지연'되자 스스로 실망하고 마음의 힘듦이 삶에 이어지게 됩니다.

 

바울은 이런 상황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려는 자들에게 선을 행함을, 성령을 위하여 심는 것을 끝까지 포기하지 말 것을 강력하게 권하고 있습니다. 

 

'반드시 때가 이른다', '그때가 이르면 사람은 심은 대로 거두게 된다'...

 

오늘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도 이 진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심는 대로 거둔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성령과 더불어 집중적으로 해야 할 일을 가르칩니다.

 

 6:10 /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는, 앞에 기술된 사실들을 결론적으로 다시 반복하여 강조하고자 할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라는 말이 되겠지요.

 

6절부터 시작해서 9절까지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나누어라, 스스로 속이지 마라, 무엇이든지 심는 대로 거둘 것이다,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아라, 등등의 이야기를 쭉 해왔었지요!

이제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린다면……. 10절의 말씀처럼 하라는 것입니다.

먼저 누가 해야 할까요? '우리는'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기회 있는 대로'라고 전합니다. '할 수 있을 때', '기회가 주어졌을 때' 하라는 말이겠지요.

 

그리고 누구에게 해야 하느냐 하면, '모든 이에게'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람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래요, 맞습니다. 바로 '착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착한 일'은 관계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지요. 즉 하나님이 늘 우리에게 원하시듯, '이웃 사랑', 바로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징요.

 

이웃과의 좋은 관계, 착한 관계를 나타내는 말입니다. 이것이 성령을 위하여 심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일이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삶이 때론 어렵고 힘들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웃을 위해 베풀지 못할 이유는 아니겠지요.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에서 조금씩 조금씩, 하나씩 하나씩 해나가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의 말미에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더욱'이라는 말은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최고로', '특히'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어요.

 

특별히 믿음의 가정들에게 착한 일을 더 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무리들은 신앙 공동체로 불가분리적인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 모든 성도들을 하나의 가족 단위로 보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을 '이웃보다 친밀한 관계인 '형제 & 자매'라 부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주 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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