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리라
행 2:14-17
오늘 말씀은 마가 다락방의 오순절 성령강림 후에,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베드로 사도가 전한 첫 번째 설교입니다.
❚ 행 2:14-16 /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이 말씀을 보면 교회가 어떤 곳인지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 같지요? 교회는 젊은이나, 늙은이나, 가난한 이나, 부자나, 건강한 자나, 병든 자나, 찾아오는 모두에게 꿈을 주고 희망을 주는 곳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사람들에게 꿈을 나누어주는 곳입니다. 우리 사당중앙교회 성도들도 예배를 드릴 때에 꿈을 얻는 아름다운 역사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 행 2:17 /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런데 베드로 사도의 이 말씀은, 구약성서의 선지자 요엘이 예언한 말씀을 다시 인용한 것입니다.
요엘이 살던 상황은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입니다. 강대국의 침공 위협으로 시달리는 데다가 국내적으로는 메뚜기 재앙과 가뭄과 기근으로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너무 지치고 곤고한 때였습니다. 희망과 의욕을 잃어버린 시대였습니다. 예언이 멈추고 환상이 보이지 않고 꿈을 잃어버린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브두엘의 아들 요엘이 희망을 선언한 것이었습니다.
❚ 욜 2:28 /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하나님께서 요엘에게 말씀하십니다!
"자녀들은 예언할것이요,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어른들은 꿈을 꾸리라"
그런데 예언과 환상과 꿈, 이 세 가지는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언, 환상, 꿈, 모두 지금 있는 일은 아니고 미래지향적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미래에 이루어지길 원하는 일이 있다면, 바로 오늘 그 일이 이루어진 것처럼 살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진리의 영입니다. 우리가 영과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해 열린 우리 영혼의 간구를 들으십니다. 내면 깊은 곳에서 아버지와 은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은 자신의 모든 소망을 이루는 힘이 자신을 통하여 흘러넘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 은밀한 것에 거하시는 아버지를 보게 될 때,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는 하나님께 맡기고, 단지 구하는 순간 이미 얻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원하는 것을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아버지께서 하실 일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완전하심,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부요하심에 생각을 고정할 때, 구한 대로 이미 이루어졌음을 믿고 이루어진 일에 대해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역사하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마음의 소원이 이루어지고, 좋은 것만을 구했기에 좋은 것만을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영혼 깊은 곳에서 은밀하게 아뢴 모든 것이 영혼 중심의 바람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물론이고, 우리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것까지 아낌없이 부어주실 것입니다. 그분은 오늘도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하늘 문을 열어 쌓을 곳이 없도록 너희에게 복을 쏟아 붓나 붓지 않나 나를 시험해보아라"
예수 안에서 아버지와 우리가 하나임을 깨닫고 나면,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온전히 알기만 하면, 우리가 구하는 소원이 우리 영혼의 토양 속에 씨앗으로 심겨져서 생기를 부여하는 아버지의 생명에 의해 싹이 터서 현실로 활짝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로 모든 사람의 유익을 구하는 우리의 소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을 보면 나사로가 병들어 위독하게 되었을 때, 나사로의 누이들이 예수님이 머물고 계신 곳에 사람을 보내어 오시라고 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틀 더 지체하시는 동안에 나사로는 죽고 말았습니다. 나사로가 죽고 나서 예수님이 오시자, 마르다는 예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 요 11:21 /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마르다가 말합니다. 예수님이 몇 일만 더 일찍 오셨다면, 오라비 나사로가 죽지 않았을 것이라고요. '만약....했더라면' 의 말은 과거형 자신의 인생스타일이요 생각의 습관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 매달려 사는 인생은 현재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얻지 못 합니다
'내가 만일 그때 그 사람의 꾀임에 넘어가지만 않았다면, 나는 지금 큰 부자가 되었을텐데...'
'내가 그때 그 실수만 안했더라면, 나는 지금 편안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
언뜻 보면 맞는 말인 것도 같겠지만, 함정이 있습니다. 내가 과거에 사로잡혀 있다면 오늘 내가 누릴 기쁨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마르다의 과거형 질문에, 현재형으로 대답하십니다.
❚ 요 11:26 /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언제나 현재를 누리며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네 믿음대로 되리라!"
사람이 습관적으로 과거에 자꾸 얽매이다 보면 예수님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 나에게 주시는 은혜를 누리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는 우리가 오늘의 은혜 안에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가시길 기원합니다.
그렇다면 언제 나의 인생에 하늘의 꿈을 담아 갈 수 있을지 말씀드릴까요? 만나는 모든 일마다 감사할 때, 온 우주에서 하늘 열매를 배달해 줍니다.
하늘의 꿈을 마음에 담기 원한다면 먼저 감사함으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 잠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꿈을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려면, 마음을 지키십시오. 전지전능하신 주께서 우리 안에서 권능으로 역사하실 것을 행할 것을 믿으십시오!
주께서 행할 것을 믿기에, 지금 막막해 보이는 사건이 있을지라도, 주님 앞에 모두 내어맡기고, 온전히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을 기뻐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주의 영이 임한 자마다, 주의 영이 계신 곳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참 자유가 있습니다.
❚ 고후 3:17 /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오늘 본문으로 돌아와서,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의 자녀들이 예언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언'이라고 하면, 흔히 앞으로 일어날 일을 미리 말하는 것으로만 알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령이 임하실 때 우리의 자녀들이 예언을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뜻을 전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달리 표현하면 자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과 계획을 말하고, 그것을 세상에 전달하는 일들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집사님의 가정에 교회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병이 들고, 아버지는 하는 일이 어렵게 되었어요. 모두가 낙심에 빠져 있었지요. 그런데 아이가 하는 말이 "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이 다 들어주신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은 모든 병을 다 고치실 수 있잖아요." 라고 말하는 것이 예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 말을 통해 역사하셨습니다. 그 집사님은 아이의 말을 통해서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힘을 얻어 하나님께 기도하고 나음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온 집안이 다시 일어서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성령으로 충만할 때 이런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경 말씀이 자녀들의 마음에 새겨지고, 그 말씀이 자녀들의 입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흘러 나오고, 그 말이 하나님의 비전으로 현실에서 나타나는 것이 예언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말의 힘'에 대해 알고 계시지요?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그 사람의 '말'은 그 사람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자녀들이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려면 먼저 말이 바뀌어야 합니다. 언제 우리의 말이 바뀔 수 있을까요? 성령께서 임하실 때 그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의 가정에 성령이 임하심으로 자녀들의 말이 바뀌는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면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게 하십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 '환상'이란 현실적인 기초나 가능성이 없는 헛된 생각이나 공상을 지칭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청년이 지금 환상을 본다는 것은 현실적 삶의 기초하여 본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 너머의 세계를 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환상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환상'이라는 말을 영어로 번역하면 '비전(vision)'이라는 말입니다.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계시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상상력과 직감을 통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면 청년들이 환상으로 보던 그 일들이 실제가 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 가실 일, 인생의 스케줄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다니엘이 등장하지 않고 그의 세 친구에 관한 기사만 기록되어 있는데,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가 왕에게 절하지 아니하고 여호와만을 섬기다가 풀무불에 던져졌다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살아나게 되었다는 장면이 소개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두라 평지에 높이 60규빗(약 30m)나 되는 큰 금 신상을 세우고 그 앞에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절을 하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만약 그 금 신상에 엎드려 절하지 아니하면 풀무불에 던져 넣겠다는 엄한 명령이었습니다.
삶과 죽음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어려운 신앙적 선택의 순간이 수없이 많이 다가옵니다. 그럴 때 여러분의 선택의 기준은 무엇입니까?
성령의 임재 안에 있는 여러분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위치를 지키며, 축복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을 위해 기도할 때 가장 먼저 "환상을 보게 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노인들은 꿈을 꾸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꿈이라는 말은 '앞을 본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연세가 많은 노인들이 앞을 본다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그것은 영원한 미래의 세계, 하나님의 통치가 있는 영원한 천국을 바라본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노인들이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 때 영원하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사람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최근 우리 사회의 주요 당면 과제 중 하나가 고령화 문제입니다. 우리나라는 이제 고령화 사회를 넘어 초고령 사회가 되었습니다. 물론 고령화 사회가 되면 경제 침체 등의 사회문제가 예상되지만, 꿈을 품으면 위기를 재도약의 기회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이 주신 꿈을 품고 430년 동안 종살이한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출애굽하였습니다. 갈렙은 85세에 꿈을 품고 헤브론으로 가서 적군을 물리치고 그곳을 점령했습니다. 우리는 나이와 상관없이 꿈을 먹고 살아갑니다. 나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 마음에 꿈이 있으면 나이가 많을지라도 실질적으로는 청년입니다.
전문가들에 의하면 은퇴한 사람의 40%가 우울증을 겪는데, 특별히 꿈이 없는 사람이 무기력증에 빠진다고 합니다. 특히 구원의 확신이 없고 죽음에 대한 준비가 안 된 사람일수록 그 불안은 더 심해집니다.
어떻게 이 어려운 노령의 시기를 이겨 나갈 수 있습니까?
희망과 꿈을 품는 자만이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은 속도를 내는 일 보다도 방향을 잡는 일이 훨씬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꿈을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이 갖고 있는 꿈을 높이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함께, 거룩한 꿈을 꾸십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꿈을 통해, 하나님과 통하는 비밀 통로로 통행하십시다. 은밀한 꿈을 꾸고 있는 사람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어느 시간이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모세도 요셉도 다니엘도 그 험난한 적지 한 가운데서, 그 황량하기 짝이 없는 모래벌판에서 꿈을 통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며 모든 어려움을 다 헤쳐나갔습니다.
지금 황량한 벌판에 서 있다는 느낌이 있으십니까?
성령이 여러분 안에 함께하고 계심을 믿고 내면에서 은밀한 중에 말씀하시는 그분의 음성에 귀기울이십시오. 가물어 마른 땅 같은 마음이었더라도 성령의 단비로 생명이 살아나고 소성케 될 것입니다!
권능의 성령님이 멀리 그 어디에 계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여러분 안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오늘 하나님의 영으로 지음 받은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영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그분이 주시는 거룩한 꿈을 가지고 힘 차게 행진하는 하루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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