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요 3:16-21
여러분, 밤중에 애써 예수님을 찾아 온 찾아온 니고데모의 심정으로 이 말씀을 대하시기 바랍니다.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산헤드린의 공회원이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국회의원입니다. 부족함이 없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영생에 대한 갈증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밤에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후에 니고데모의 모습이 변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할 때 니고데모는 그것을 반박합니다.
요 7:50-51 / 그 중의 한 사람 곧 전에 예수께 왔던 니고데모가 그들에게 말하되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심판하느냐
또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니고데모는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찾아옵니다
요 19:39-40 /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이에 예수의 시체를 가져다가 유대인의 장례 법대로 그 향품과 함께 세마포로 쌌더라
이것을 보면 니고데모는 예수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니고데모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지 않은 것을 아쉬워하는 분도 있지만, 예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이 생업에 종사하며 섬기는 삶도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세상과 특히 우리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일관되고 궁극적인 관심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입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오늘 본문 속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요 3:16-17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신구약 성경 전체를 통털어서 가장 유명한 말씀일 본문 첫 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를 주셨다 함은 그 선물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있어서 가장 귀한 것, 즉 당신의 유일한 사랑하는 아들을 내놓으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선물은 없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이 우리에게 최상의 선물이 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창 1:1-2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창조가 있은 후 세상은 변합니다. 혼돈은 질서로, 공허함은 아름다운 의미와 아름다운 가치로 그리고 깊은 어두움(악과 절망)은 빛(선과 소망)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하나님의 영’이란 하나님의 성령을 말하는 것으로, 창조란 하나님이 피조물에 하나님의 성령을 불어 넣는 작업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시기 위하여, 인간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 닮은 존재로 만드시기 위하여 혼신을 다 쏟아 부으십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름다운 세상이 인간의 타락과 함께 파괴됩니다.
롬 5:12 /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하나님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시기에 잃어버린 것을 되찾고, 그것이 멸망으로 끝나지 않도록 애절한 마음으로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결국 자신의 독생자를 죽음으로 내어 주더라도, 되찾고 싶은 사랑의 마음이 하나님이 우리를 향한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 죽으심의 댓가는 무엇입니까?
▶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16절 하)
▶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7절 하)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세 가지 비유의 말씀이 등장합니다.
① 백마리 양중에 한 마리 잃어버린 양이야기
② 어떤 한 여인은 전 재산이라고 할 수 있는 열 드라크마를 가지고 있다가,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이야기
③ 셋째 탕자 이야기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모두 사랑하는 것을 잃어버림으로 말미암아 오는 안타까움과 슬픔입니다.
양을 잃어버린 목자, 한 드라크마를 잃어버린 한 여인, 작은 아들을 잃어버린 아버지의 아픔은 그들에게 실로 ‘멸망’과도 같은 큰 슬픔입니다.
물론 잃어버렸다고 하지만, 다르게 표현하면 떠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싫다고 떠나버린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겠다고 세상으로 떠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잃어버린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다시 하나님의 품으로 데려 오기를 원하셔서,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낸 것입니다.
이제 나를 잃어버리고 슬픔에 잠겨 있는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영생이요 구원입니다.
요 3:18 /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여러분, 여기에 나오는 ‘심판’이라는 단어는 바른지 그른지 결정하여 어떤 선택을 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사람들이 쇼핑을 갑니다. 많은 물건들이 쌓여 있습니다. 만져보고, 마음에 드는 것을 선택하여 바구니에 담습니다. 선별하는 것이죠. 이것이 ‘심판’ 뜻이라는 것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을 믿는 자는 결국 예수님의 선택을 받는 것입니다. 즉 지금 내가 믿음의 길로 나가고 있다는 것은 곧 예수님이 나를 선택하셨다는 보증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예수님의 따르지 못하다면 이는 사망의 길에 있는 것입니다.
요 3:19-20 /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우리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에고가 얼마나 두려움과 불안이 많은지, 우리의 내면에 얼마나 모순이 많은지… 그렇기 때문에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은 나에게 가장 큰 은혜요, 선물입니다.
요 3:21 / 진리를 따르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에게 있어서 나의 생명을 다 줄만큼 나의 전부다.
그러면 너에게 있어서 나 예수는 도대체 누구냐?”
그러면 나에게 있어 예수님은 누구이십니까?
주님은 내 생명, 나의 전부가 되십니다.
그리고 나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곳에 날마다 있기를 원합니다.
날마다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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