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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마태의 부르심, 마 9:9, 금요 심야 기도회 설교, 매달 첫째 주 예술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묵상하다...(3)

by tat tvam asi 2024. 10.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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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의 부르심

마 9:9

 

카라바조는 1571년 밀라노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부모님을 여의고, 21세 때 혈혈단신으로 로마로 왔습니다. 로마에 온 카라바조에게 신의 도시 로마는 비정한 세상이었습니다. 1517년에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로마 교황청은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됩니다. 로마 카돌릭은 종교개혁에 대항하기 위하여 1545년부터 무련 18년간 트리엔트 공의회를 개최하면서 내부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교회와 성직자들의 권위를 강화했고, 수많은 예술 작품을 통해 종교적 장엄함을 세워나갔습니다.

 

카라바조가 경험한 로마는 웅장하고, 성스러운 모습은 있었지만, 성스러운 능력은 없는 곳이었습니다. 성직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을 죄인으로 낙인찍고, 사회변방으로 몰아냈습니다. 그런데 카라바조가 본 성경에서는 달랐습니다. 예수께서는 세리와 창녀들을 친구로 부르셨고, 심지어 그의 제자로 삼으셨습니다.

 

카라바조에게 진정한 종교란 웅장한 예술품으로 가득 찬 화려한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약자들에게도 동일한 시선을 보내는 그런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카라바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거지, 집시, 유태인, 고아, 노름꾼과 창녀들, 오로지 그들만이 나의 스승이며 나의 원천이다." 그런 카라바조였기에, 마태는 누구보다도 그에게 영감을 주는 인물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카라바조는 마태와 관련된 그림을 많이 그렸는데, 그 중에 성(聖)마태의 소명이라는 작품을 보면 예수님이 마태를 부르시는 장면입니다. 이 그림은 마태복음 9 9절 '나를 따르라. 그랬더니 일어서서 따라갔다'라는 아주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을 담고 있습니다.

 

 9:9 / 예수께서 그 곳을 떠나 지나가시다가 마태라 하는 사람이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일어나 따르니라

 

즉 다른 세무직원과 함께 그날 거둔 세금을 계산하고 있는 세리 마태를, 예수 그리스도가 베드로와 함께 아무런 예고 없이 찾아온 장면입니다.

 

1. 성 마태의 소명

 

다른 동료들과 앉아 있는 마태는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그리스도와 베드로를 목격합니다.

낡은 집에 앉아있는 마태를 발견한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가리키며 "따라오라(Follow Me)"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동전이 놓여있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마태와 동료들은 세속적인 모습을 보이는 반면, 그리소드와 베드로는 아주 근엄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큰 대조를 이룹니다. 장식이 많이 달린 옷을 입고 멋을 부리고 있는 사람들과 달리 맨발로 들어오는 그리스도와 베드로의 모습 역시 대조를 이룹니다.

카라바조는 예수로부터 나오는 영광의 빛을 설명하기 위해서 창문을 그렸지만창문을 통하여 빛이 들어오지 않습니다.

 

2. 마태를 부르심

 

예수와 베드로는 2천 년 전 복장을 하고 있지만, 그런데 탁자 주변의 인물들은 이 사건이 일어난 2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살던 로마제국시대의 복장이 아니라, 카라바조가 살던 16세기 이탈리아 사람들의 옷을 입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지금도 언제 어디서든지 누구에게나 갑자기 찾아올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바로 도박판입니다.카라바조는 예수가 마태를 부른 장소를 도박판으로 그린 것입니다. 예수의 등장에 두 사람은 고개를 돌려서 쳐다보고 있고, 뒤의 두 사람은 잃은 돈에 여념이 없어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맞는 인물들은 각자 다른 표정을 짓고 있습니다. 마태는 다소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자기를 찾아왔느냐는 듯 왼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막 일어서려고 합니다. 하지만 오른손은 아직도 조금 전에 세다가 만 동전에 가있습니다. (보기에 따라 이 그림에서 그가 마태인지 애매모호하기도 합니다. 왼쪽 끝에서 오로지 돈을 세는 일에만 몰두하는 젊은이가 마태일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를 가리키셨고, 마태는 놀란 눈으로 예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한 마태는 옆 사람을 향하여 손가락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영광의 빛으로 나타난 예수께서 설마 도박판에 있는 자신을 부르시는 것일까 하는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도박판 한가운데 있는 마태를 부르고 계십니다. 도박판에 있는 사람들을 로마교회는 죄인으로 규정하였고, 세리 마태를 유대 종교는 죄인으로 구별하였습니다. 그런 죄인을 예수께서 친히 찾아오셨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3. 예수를 가린 베드로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서 있지만, 그의 몸은 예수를 다 가리고 있습니다. 로마 교황청에서 성 베드로 성당을 건립하기 위해서 면죄부를 발행했고, 트리엔트 공의회를 거쳐서 베드로가 교회의 진정한 머리라는 것을 결정한 것에 대하여 카라바조는 이렇게 비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4. 마태를 향한 예수님의 손

 

카라바조의 이 그림은 빛의 사용이 아주 잘 담겨 있는데, 그리스도의 머리 위로 펼쳐지는 사선의 빛은 방 안에 있는 창문을 지나 세속적인 세금쟁이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앞으로 바로 들어옵니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이 불빛은 마태와 동료들의 얼굴을 환하게 비춥니다. 이 빛은 그리스도의 소명이 피할수 없는 절대적인 운명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을 받은 세리 마태가 새 사람으로 변화되기 직전의 그 빛은 은총의 빛이며구원의 빛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5. 미켈란젤로의 천지 창조

마태를 가리키는 예수 그리스도의 손이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천지창조>에서 아담에게 생명력을 불어넣는 창조주 하나님의 손과 놀랄만큼 흡사하는 것을 알 것입니다. 카라바조가 예수의 손을 그릴 때 그가 미켈란젤로의 아담의 창조를 참고해서 그렸던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아담의 손은 인간이 철저하게 하나님의 의존적인 존재라는 것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6. 예수님의 손

 

이것을 모를 리 없었던 카라바조는 의도적으로 예수의 손을 아담의 손으로 그렸습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를 부르신 것은 단순히 동정의 차원이 아니라, 아담이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듯이 예수께서는 마태가 나오기를 절박하게 부르고 계신다는 이것을 이렇게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마태를 부르시는 것은 마태가 불쌍해서 부르신 연민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은 마태를 어떻게 평가할지 모르지만, 예수께서는 마태가 나아올 때 비로서 그것이 영광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이러한 영광스러운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이 손 모양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7. 나를 부르심

 

이처럼 마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인데, 하나님은 마태를 하나님의 선물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바로 지금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십니까?

 

자신을 무기력하고 부족한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분 계신가요?

 

오늘 카라바조는 마태를 통하여 우리는 누군가에게 선물과도 같은 존재라 말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가치 있는 존재라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이 시간,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기도를 함께  하겠습니다.

 

 

앞에 놓인 종이와 볼펜을 하나씩 가져다가, 위의 그림처럼 손을 그려주세요. 그리고 각 손가락마다 쓰여 있는 다섯 가지 기도 제목을 쓰고, 그에 따른 자신의 기도 내용을 기록해 봅시다. 시간을 충분히 드릴 터이니, 손가락마다 쓰여 있는 기도제목 옆에 자신이 하나님께 올려드리고 싶은 기도 내용을 기록하세요.

 ......

 

다 기록하셨지요? 

 

이제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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