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아가는 자
갈 4:8-11
바울이 떠난 후 갈라디아 교회를 방문한 유대인 크리스천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의 믿음을 흔들어 놓았습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고 또한 성령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인들의 믿음이 아직은 성숙한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 율법주의자들이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그들이 온전히 구원받기 위해서는 그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 이외에 할례를 받아야 하고, 또한 기본적인 율법을 지켜 행하여야 한다고 선동합니다. 그러자 대다수의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무엇이 문제가 됩니까? 잘못된 신앙의 이해와 행위가 문제입니다.
갈 4:8 /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그 때에는”이라고 함은 아직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 바울이 전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갖기 전의 상태를 말합니다. 그 때에 갈라디아 교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자들로서 이스라엘 밖에 있었으며, 약속의 언약을 들은 적도 없었고, 따라서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가운데 살아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엡 2:12 참고).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라는 것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숭배한 신들이 다만 우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태양이나 달을 숭배한다든지, 불을 숭배한다든지, 산이나 나무를 숭배하든지, 아니면 사람이 만들어낸 신들을 숭배하여 왔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이 아닌 우상들은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기에 사람들에게 "나를 믿으라"고 한 바가 없습니다. 다만 인간 스스로 그 존재들을 믿고자 한 것이며, 사람들 스스로가 이러한 우상들의 종노릇 하기를 자청하였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의 상태에 관심을 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지난 과거요 아직 참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의 염려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듣고 이제 하나님을 알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본질에서 떠나 있다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갈 4:9 /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 아니라 더욱이 하나님이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박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그들에게 종 노릇 하려 하느냐
여기서 “이제는”이란, 바울을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해 듣고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아신 바 된 때를 가리킵니다. “이제는” 이라고 함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믿음이 온 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였기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아신 바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라고 안타깝게 질문하고 있습니다.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 은 갈라디아 교인들이 과거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때에 섬기던 그런 우상 숭배는 아닙니다. 그들은 지금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이 본질을 떠나 비본질적인 것에 관한 추구하는 모습을 보고 바울은 “약하고 천한 초등학문”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방 교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신 바가 없고, 유대인들의 식사규례를 요구하신 적이 없고, 또한 10절에 열거된 유대인들을 위해 정하여 주신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키라고 명하신 바가 없는 데도 이방인들은 스스로 이러한 율법적 의무 아래 그들을 둠으로써 종노릇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갈 4:10 /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여기서 “날”은 안식일과 금식일 등을 가리킵니다.
“달”은 월삭(사 66:23) 등을 중요하게 지켰습니다.
“절기”는 유대인의 절기인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 맥추절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 이 있습니다.
“해”는 매 7년마다 지키는 안식년(출 23:11; 레 25:2-7)과 매 50년마다 맞이하는 희년(레 25:8-55; 27:17-24)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주시고 후대에 이르기까지 이를 기념하고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대인들은 그들의 구속의 역사 가운데 함께 하신 하나님과 그의 능력을 늘 기억하며 그를 의지하는 삶을 살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날과 달과 절기와 해의 지킴은 유대인들에게는 중요한 일이지만,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면서 지키고자 하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는 불필요한 일일 따름입니다. 더욱 더 큰 문제는 갈라디아 교인들이 이러한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믿음입니다.
갈 4:11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무엇이 문제입니까? 믿음의 본질이 무엇이며 그 능력이 어디에 있는지 늘 생각하는 교인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기 위하여 기도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 성경은 율법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고 아신 바 된 하나님의 귀한 말씀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갈라디아서를 포함한 그의 서신들에서 바울의 관심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 아니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전도의 대상이지 아직 가르침의 대상은 아닙니다. 바울은 그의 서신들에서 이왕에 세상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믿겠다고 작정한 사람이라면 바른 믿음의 소유자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가 전도하고 개척한 교회의 성도들이 전부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하고 하나님의 인정함과 구원함에 이르는 성도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중세의 카톨릭 교회의 타락이 바로 믿음 이외에 비본질적인 요소들에 대한 강조와 강요에 있었습니다. 종교개혁의 슬로건들이 "오직 믿음으로", "오직 성경으로",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였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에게 허락되어진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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