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학 2:19, 2024. 5. 12. 주일 예배 설교

by tat tvam asi 2024. 5. 24.
반응형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2:19 /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오늘 본문 19절에 보면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오늘’이란 말이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되는 일이 없고 환란과 재난이 많았습니다.

 

 1:6 / 너희가 많이 뿌릴지라도 수확이 적으며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며 마실지라도 흡족하지 못하며 입어도 따뜻하지 못하며 일꾼이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

 

옛날 시골에서 우물물을 긷는 두레박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보통은 값싼 양철로 두레박을 만들어 사용했습니다. 처음에는 물을 잘 길을 수 있지만 오래 쓰다보면 양철로 만든 두레박은 우물 벽 여기저기에 부딪혀서 찌그러집니다. 그리고 두레박 밑은 녹이 슬어 구멍도 생깁니다. 이런 구멍 뚫린 두레박을 가지고 물을 길으면 어떻게 됩니까? 처음에는 물이 가득 담겼지만, 올라오면서 다 새 버리고 올려보면 물이 밑바닥에 조금만 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황무한 삶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구멍 뚫린 전대와 같습니다. 구멍 뚫어진 두레박과 같습니다. 만복의 근원되신 하나님이 복을 주셔야 합니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지 아니하시면 인간이 아무리 노력한들 소용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학개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이 이토록 복받지 못한 삶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삶의 우선순위를 세우지 못하고 성전 건축을 포기하였기 때문입니다.

 

 1:2 /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여 이르노라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하느니라

 

지하철 안에서 물건을 팔던 1990년대에 물건을 판매하는 아저씨가 신도림역에 큰 가방을 메고 탔답니다. 아저씨는 가방 속에서 칫솔을 커내 들고 칫솔 선전을 하였답니다. "칫솔 한 셋트에 다섯 개 묶어 천 원입니다." 큰 소리로 말하고, 아저씨는 칫솔을 사람들에게 돌렸답니다. 그리고, 승객들에게 물었답니다. "자 여러분, 여기서 제가 몇 개나 팔 수 있을까요?" "여러분도 궁금하시죠? 저도 궁금합니다. 결과는 잠시 후에 알려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승객들에게 물건을 파는 것이었습니다. 차 안에 있던 사람들도 몇 개나 파는가 궁금하여 흥미를 가지고 구경했다고 합니다.

 

잠시 후, 돌린 칫솔과 돈을 다 거둬들인 아저씨가 말을 이어갔답니다. "자 여러분, 칫솔 4개 팔았습니다. 얼마 벌었을까요?" " 4천원 벌었니다." "제가 실망했을까요? 안 했을까요?" ". ~망했니다." "그렇다구 제가 여기서 포기하겠니까?" "아닙니다. 저는 다음 칸 가서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말하고는 다음 칸으로 건너 가더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살다보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쉽게 포기해 버립니다.

 

사람들이 쉽게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이유는, 자신감이 사라지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포기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둘째는, 장애물이 너무 크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목표에 대한 기대감이 없을 때 쉽게 포기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포기할 경우 그 이유를 자신에게서 찾지 않고 다른 사람을 탓하기 쉽습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해야 한다는 사실 자체를 부인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 건축의 필요성을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아직 여호와의 전을 건축한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그 책임을 자신에게 찾지 않고 다른 상황을 탓하며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데 아직 때가 않았다는 것은 표면적 이유이고, 성전 건축을 미루는 실질적인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1:3-4 /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학개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이 성전이 황폐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주하는 것이 옳으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고 핑계를 대고 있지만, 지금 이스라엘은 지금 “판벽한 집에” 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판벽이라는 말은 널빤지로 벽을 둘렀다는 뜻입니다. 즉 집을 건축하고 인테리어를 잘 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성전은 지금 덩그러니 터만 있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그들은 자기들의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않았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성전을 황무한 채로 내버려두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그들이 아무리 노력하여도 얻지 못하는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오늘부터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복을 얻는 전환점은 어디서부터 시작됩니까?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질문을 통하여 우리의 전환점을 삼아 주십니다.

 

첫 번째 질문은 무엇입니까?

 

 2:12 / 사람이 옷자락에 거룩한 고기를 쌌는데 그 옷자락이 만일 떡에나 국에나 포도주에나 기름에나 다른 음식물에 닿았으면 그것이 성물이 되겠느냐 하라 학개가 물으매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니라 하는지라

 

첫 번째 질문을 통해 당시 백성들은 제사만 드리면 신앙적 의무를 다 한 것으로 착각한 것에 대한 깨닫게 하십니다. 이는 마치 오늘날 성도 중에 주일날 교회 와서 예배만 드리면 성도의 의무를 다 한 것으로 착각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백성들이 드리는 제물이 결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제사의식이 아니라, 제사를 드리는 마음과 태도입니다. 잘못된 태도를 가진 채 예배들 드린다고 이것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깨닫게 하여 주십니다.

 

두 번째 질문을 통해 부정한 것은 닿으면 그 부정이 옮겨 간다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2:13 / 학개가 이르되 시체를 만져서 부정하여진 자가 만일 그것들 가운데 하나를 만지면 그것이 부정하겠느냐 하니 제사장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부정하리라 하더라

 

이는 마치 우리의 건강과도 비슷합니다. 한 집에 사는 두 형제가 있습니다. 큰 아들은 건강합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은 전염병에 걸렸습니다. 큰 아들이 건강하다고 작은 아들도 따라서 건강해 집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건강한 것은 옮겨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작은 아들의 전염병은 큰 아들에게 옮겨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두 가지 질문을 통해서 그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부정하게 살아왔는지를 보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뿐만 아니라 몸도 거룩해야 합니다. 더러운 그릇에는 귀한 것을 담을 수 없듯이 몸과 마음이 더러우면 하나님의 귀한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전 벽돌을 쌓기 시작한 9 24일 이전과 이후의 삶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풍성한 복을 주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2:18-19 / 너희는 오늘 이전을 기억하라 아홉째 달 이십사일 곧 여호와의 성전 지대를 쌓던 날부터 기억하여 보라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언제부터 주님의 축복이 임하기 시작합니까“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하셨는데 오늘이라는 날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시작한 날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기 시작한 그 시간부터 두 가지 축복이 임하기 시작합니다.

 

첫째는 열방이 주께로 돌아옵니다.

 

 2:22 /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주님의 약속을 신뢰하며 순종하는 그 순간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열국의 보좌를 엎을 것”, “열방의 세력을 멸할 것”, “병거들과 탄 자를 엎드러뜨릴 것”, “말과 탄 자가 서로를 죽일 것”을 행하시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열방을 엎어버리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에 하나님의 복이 임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열방을 다스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할 때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 음성에 귀 기울일 때 하나님의 복이 임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사랑의 언약에 순종할 때만이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열방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잘 기억하고, 주님의 임재 안으로 들어가는 주님의 복된 자녀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둘째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약속이 성취됩니다.

 

 2:23 /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스알디엘의 아들 내 종 스룹바벨아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두 번째 주어진 말씀은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하나님 자신의 인(印), 즉 도장으로 삼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인이란 왕의 도장, 즉 옥새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의 도장은 끈을 달아 휴대하기도 했지만, 오른손에 반지모양으로 끼기도 했습니다. 

 

성경에는 왕의 도장이 ‘인장반지’, 즉 반지처럼 손에 끼는 도장인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에게 두 번째 말씀을 통해서 그를 자신의 인으로, 도장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만을 생각해 보면 그 뜻을 유추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이 부분의 말씀은 예레미야 본문의 내용을 읽으면 이해가 됩니다.

 

 22:24-27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유다 왕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가 나의 오른손의 인장반지라 할지라도 내가 빼어 네 생명을 찾는 자의 손과 네가 두려워하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왕 느부갓네살의 손과 갈대아인의 손에 줄 것이라

내가 너와 너를 낳은 어머니를 너희가 나지 아니한 다른 지방으로 쫓아내리니 너희가 거기에서 죽으리라

그들이 그들의 마음에 돌아오기를 사모하는 땅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왜 하나님께서 스룹바벨을 향해 “내가 너를 내 인으로 삼겠다” 하셨는지 예레미야를 보면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하나님께서 예레미야서에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을 향하여“네가 내 인장반지라 할지라도내가 빼어서 바벨론에게 줘 버릴 것이다!

반지는 성경에서도 그랬고, 그래서 교회 역사 속에서도 항상 ‘언약’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반지는 상호 간에 언약을 맺을 때 그것을 확인하고 인치는 도구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 왕에게 하신 말씀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렸기 때문에 하나님도 그 언약의 징표인 반지를 빼서 버리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예레미야의 말씀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간에 언약이 부서져 버렸고, 따라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언약으로 맺어진 아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방에게로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왜 하필 스룹바벨에게 다시 인장 반지를 주실까요? 스룹바벨은 여호야긴의 ‘손자’입니다. 하나님은 스룹바벨의 할아버지 여호야긴에게는 “네가 내 인장반지라도 빼서 버려 버리겠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손자 스룹바벨에게 다시 인장반지로 삼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 오늘 본문의 정황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스룹바벨을 통해 다시 이 나라를 세우시겠다는 약속입니다. 할아버지 대에서 깨어졌던 언약을 다시 수복하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일이 일어납니까?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순간 여호와께서 거기에 계실 것이고, 반지를 빼서 열방에 던지셨던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맞아 들이실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학개에게 주신 말씀을 다시 한번 붙들기를 원합니다.

 

 5:16 /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오늘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가운데, 오늘부터 복을 주리라 한 약속과 같이 열방이 주께로 돌아올 뿐만 아니라, 약속이 성취되는 역사가 나타나기를 기도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