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행 3:11-16
오늘 말씀은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치고 난 뒤에 있었던 사건에 관한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 앉은뱅이를 고치신 분은 자신이 아닌, 예수님이시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을 촘촘히 들여다 보기로 합시다.
❚ 행 3:11 /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으니 모든 백성이 크게 놀라며 달려 나아가 솔로몬의 행각이라 불리우는 행각에 모이거늘
여기서 '붙잡다'라는 말은 '어깨에 매달리다'라는 뜻입니다.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의 뒤로 가서 이들의 어깨에 매달렸습니다. 이 사람은 베드로와 요한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예 매달린 것입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빠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고 아빠의 어깨에 꼭 매달려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즉 여기에 나오는 '붙잡다'라는 단어는, 그냥 대충 잡았다는 말이 아니라, 놓치지 않으려고 꽉 잡았다는 뜻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기 전에는 무엇을 붙잡았을까요? 은과 금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았습니다. 바로 베드로와 요한이 믿는 예수님을 붙잡은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대림절을 지내고 있습니다.
오늘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를 바라보는 시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함께하고 계심을 깊이 묵상하시기를 원합니다.
다시 본문으로 갑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광경을 지켜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건입니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앉은뱅이였는데, 지금은 저렇게 걷고, 뛰고 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일어나 걸으라"했더니, 이 사람이 걷고, 뛰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이 베드로를 주목합니다. 그때 베드로가 말합니다.
❚ 행 3:12 / 베드로가 이것을 보고 백성에게 말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놀랍게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
베드로는 이 말씀에서 두 가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우리의 능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이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러므로 '우리를 주목하지 말고 예수님을 주목하라'는 것입니다.
'주목'이라는 단어는 '뚫어지게 쳐다보다, 집중하다'라는 뜻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주목 받기 원하지요. 하지만 베드로와 요한은, 자신들을 주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기적은 자기들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행 3:13-15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 곧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그의 종 예수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너희가 그를 넘겨주고 빌라도가 놓아 주기로 결의한 것을 너희가 그 앞에서 거부하였으니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이를 거부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 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그를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라.
오히려 베드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합니다.
오직 우리가 주목 할 분은 오직 예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벤 카슨이라는 의사는 세계 최초로 1987년에, 머리 뒤쪽과 목 부분이 붙어서 태어난 쌍둥이를 분리하는 수술에 성공했습니다. 이를 샴쌍둥이 분리 수술이라고 합니다. 스물 몇 시간 걸렸다고 합니다. 그러자 의학계에서는 그의 손을 '기적의 손' 이라고 하였습니다. 몇 년 후입니다. 벤 카슨이 자서전을 낸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가 책을 내면 책 제목은 틀림없이 '기적의 손이라고 정할 것이다'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예상이 빗나갔습니다. 책 제목은 <선물 받은 손>이었습니다.
제목에 대한 카슨의 설명입니다. '나에게 무엇이 있기 때문에 기적의 손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기적의 손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기적의 손이 된 것입니다.'
어떤 의미지요? '기적의 손을 가진 나를 주목하지 말고, 기적의 손을 주신 하나님을 주목하십시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주목하고 있습니까?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나를 생명으로 인도하심에 감사하며, 주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 다음 본문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 행 3:16 / 그 이름을 믿으므로 그 이름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나니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이 사람이 어떻게 낫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예수님이 너희가 보고 아는 이 사람을 성하게 하였다.
둘째, 예수님으로부터 난 믿음이 이 사람을 완전히 낫게 하였다.
믿음에는 두 종류의 믿음이 있습니다. 일반적인 믿음과 신앙적인 믿음입니다.
1. 일반적인 믿음이란, 믿음의 출처가 '나 자신'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면 보통 어떤 다짐을 합니까?
2. 신앙적인 믿음이란, 믿음의 출처가 내가 아닌, 예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에 내가 믿는 것입니다.
소설가 임옥인 (林玉仁, 1915-1995년) 이란 분이 계셨습니다. 신앙이 좋은 권사님입니다. 이분이 60세 때 과로로 쓰러졌습니다. 뇌졸중입니다. 전신이 마비되었습니다. 몇 차례 수술을 받았는데도, 차도가 없습니다. 그래서 퇴원하여 집에 누워 있게 되었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이 말입니다.
어느 날 신유의 은사가 있는 친구 권사님이 병문안을 왔습니다. 그분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잠시 기도하더니, "옥인아, 일어나"라고 친구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임옥인 권사님은 대단히 불쾌했다고 합니다. "아니 내가 일어날 수 있으면, 이렇게 꼼짝없이 누워 있겠어." 그런데 그 순간 하나님은 임 권사님에게 사도행전 3장의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셨습니다.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되었던 사람도 일어났는데...' 그래서 임옥인 권사님은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리라." 그리고는 오른손을 흔들어보았습니다. 그러자 손이 움직입니다. 이번에는 왼팔을 들어보았습니다. 팔이 들립니다.
그러자 친구 권사님이 다시 말합니다. "옥인아, 일어나. " 그러자 임 권사님이 벽을 잡고 일어섰습니다. 친구 권사님이 말합니다. "이제 벽에서 손을 떼." 그 말을 듣고 임권사님은 손을 뗐습니다. 드디어 서게 되었습니다. 걷게 되었습니다. 기적의 역사입니다.
며칠이 지난 후, 임옥인 권사님이 친구 권사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날 어떻게 나보고 일어나라고 했니?"
친구 권사님의 대답입니다. "내가 네 방에 들어서는 순간, 환상을 보았어. 네가 일어나는 거야. '아하, 예수님께서 너를 일어나게 하시려는구나.' 생각했지! 그래서 믿음으로 너에게 말했던 거야. 일어나라고 말이다.” 이 믿음이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온 믿음입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그 믿음은 주님이 내 안에 주시는 확신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주님, 큰 믿음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온전히 우리의 주의를 집중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주목해야 할 것이 무엇인가요?
우리를 완전히 낫게 하시는 분이 누구이십니까? 바로 참 좋으신 우리의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참 어려운 때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예수님께 우리의 온 마음을 집중하고 우리의 주의를 모두 내어드리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병 들었어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완전히 낫게 하실 것이요, 마음에 무거운 짐이 있어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짊어질 힘과 능력을 주실 것입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만났어도 부요하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며 우리가 지닌 문제들을 풀어주시고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모든 권한을 위임하셨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 마 28:18-20 /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우리 존재에 생명이요 지혜요 활동이요 공급원이신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 영으로 함께하고 계십니다!
치유란 세상의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그 무엇과 내적 친교를 맺는 일입니다. 이 세상과 우주의 질서를 떠받치는 거룩한 힘이 내 안에도 작용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의식함으로써, 내면의 평화, 내면의 빛을 찾고, 그 안에서 자기 자신을 회복하는 일입니다. 이 거룩한 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평화 속에서 쉴 때, 몸은 정상적인 기능을 다시 찾지만, 그것은 우리 자신의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온전히 쉴 때, 몸은 완전한 건강을, 젊음을, 활력을, 주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재능을 펼쳐 보여주기 시작합니다.
내 안에 함께하시는 예수의 영, 성령께 여러분의 온 마음을 집중하시며 기쁨과 평안 가운데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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