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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말 1:1-5, 말라기 시리즈 설교(1)

by tat tvam asi 2024. 7.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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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1:1-5

 

구약성경의 마지막 책 말라기는 선지자의 이름입니다. 말라기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나의 사자’라는 이름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간 후 세 번의 포로귀환이 있었습니다. 1차 포로 귀환 때는 스룹바벨이 중심이었고, 2차 포로 귀환 때는 에스라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리고 3차 포로 귀환 때는 느헤미야를 통한 성벽 건설이 있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그동안 느헤미야서를 통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말라기가 기록될 당시의 상황은 다음과 같습니다.

3차 포로귀환이 있은 다음, 성전과 성벽이 다 재건된 후에 느헤미야가 다시 페르시아로 돌아가자, 이스라엘은 다시 신앙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유는 포로 귀환 후 성전과 성벽이 다 재건이 되었고, 느헤미야를 통한 신앙의 부흥과 개혁이 있었지만 그들의 상황을 여전히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학개 2장을 보면 성전의 기초가 놓이던 날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축복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성전을 짓기 전에는 곡식 종자가 창고에 있었고,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를 맺지 못했지만 이제 성전의 기초가 놓이던 날 그 날 부터 개인적인 살림살이가 나이질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2:19 /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 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 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

 

또 하나님께서 이방의 모든 세력을 다 무너뜨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학개 2:22-23 / 여러 왕국들의 보좌를 엎을 것이요 여러 나라의 세력을 멸할 것이요 그 병거들과 그 탄 자를 엎드러뜨리리니 말과 그 탄 자가 각각 그의 동료의 칼에 엎드러지리라. ... 그 날에 내가 너를 세우고 너를 인장으로 삼으리니 이는 내가 너를 택하였음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시니라

 

- 그런데 이런 하나님의 약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았고, 그들은 여전히 강대국인 페르시아 총독이 지배하는 한 지방에 불과했습니다.

 

- 이런 상황을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일 먼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했습니다.

 

 1:1-2 / 여호와께서 말라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주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반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여전히 사랑하신다고 하는데 왜 그들은 이와 같이 반문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기준과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는 기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가장 중요한 근거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무조건적인 사랑입니다.

 

1:2b-3a /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에서는 미워하였으며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사랑하신 가장 큰 근거는 야곱을 선택하신 구원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로 야곱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후에도 이스라엘이 계속 범죄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끊임없이 구원의 사랑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그런데 에서의 후예인 에돔은 하나님께서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1:3-5 /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폐하게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이리들에게 넘겼느니라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역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원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

너희는 눈으로 보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지역 밖에서도 크시다 하리라

 

그런데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의 사랑의 기준은 항상 육신적인 삶이 잘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개인적인 형편과 나라의 사정이 좋지 않은 현실을 두고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기준을 단순히 우리의 육신적인 형편이 좋아짐에만 두면 우리들은 언제든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 말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으로만 사랑을 다하신 것이라 말씀하시고, 우리가 땅에서 살아가는 육신적인 삶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은 아니냐,” 라는 오해도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즉 그렇다면 우리가 육신적인 것들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말라는 말입니까? 라고 반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8:32 /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

 

그래서 우리는 자녀문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경제적인 문제, 육신의 모든 형편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이때도 우리가 붙들고 기도해야 할 것이 있다면, 바로 이 사실입니다. 내가 지금 드리는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심으로 아들을 내어주신 이가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분명히 주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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