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영적 긴장감을 잃지 말라, 미 2:6-13, 미가서 시리즈 설교(4)

by tat tvam asi 2024. 7. 25.
반응형

영적 긴장감을 잃지 말라

 2:6-13

 

● 잘못된 믿음

 

세상에 싫은 소리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선지서의 거의 모든 내용들을 보면 칭찬과 격려보다는 책망과 훈계의 말씀이 주를 이룹니다.

 

 2:6-7 / 그들이 말하기를 너희는 예언하지 말라 이것은 예언할 것이 아니거늘 욕하는 말을 그치지 아니한다 하는도다

너희 야곱의 족속아 어찌 이르기를 여호와의 영이 성급하시다 하겠느냐 그의 행위가 이러하시다 하겠느냐 나의 말이 정직하게 행하는 자에게 유익하지 아니하냐

 

이 구절이 쉬운 성경에는 이렇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말한다. 우리에게 예언하지 마라. 그런 듣기 싫은 말은 하지 마라. 그런 일은 우리에게 닥치지 않는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미가에게 예언하지 말라고 합니다. 미가의 예언을 “욕”이라고 합니다. “듣기 싫은 말”이라고 합니다. 앞에서 미가는 이스라엘 전체를 향하여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들개같이 애곡하고 타조같이 애곡할 것을 말씀합니다. 이와 같은 미가 선지자의 예언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성급한 분이 아니시다. 그런 일로 그렇게 쉽게 우리를 멸망시키고, 심판 할 분이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타락상

 

이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이스라엘이 얼마나 타락했는지 미가 선지자는 말씀합니다.

 

 2:8-9 / 근래에 내 백성이 원수 같이 일어나서 전쟁을 피하여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기며

내 백성의 부녀들을 그들의 즐거운 집에서 쫓아내고 그들의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빼앗는도다

 

▪ ‘평안히 지나가는 자들의 의복에서 겉옷을 벗깁니다.

 

강탈하는 모습입니다. 강도 같이 달려 들어서 겉옷을 빼앗습니다. 그런데 율법에는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라(22:26)고 합니다. 왜냐하면 낮과 밤의 기온차가 심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저녁에는 겉옷을 이불 삼아 덥고 자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한 자의 겉옷을 강탈합니다.

 

▪ 거기에 ‘부녀들을 즐거운 집에서 쫓아냅니다.

 

가정의 파괴입니다. 집은 안식과 평안을 누려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집에서 좇아냅니다. 이것은 가정의 파괴입니다.

 

▪ 심지여 ‘어린 자녀에게서 나의 영광을 영원히 뺏았는다.’고 말씀합니다.

 

율법에는 특별히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과부와 어린아이”를 꼽습니다(22:22-24). 바로 율법으로 특별히 보호 받아야 할 사람들을 미가는 “나의 영광 곧 하나님의 영광”이란 표현을 썼습니다. 그런 특별히 보호 받아야 할 어린아이들조차 내팽개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 그런데도 그들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그런 분이 아니다이런 일로 쉽게 화를 내는 분이 아니다.”라고 하며 미가의 하나님의 심판의 예언을 부정합니다그런 이스라엘을 향하여 미가는 말씀합니다.

 2:10-11 / 이것은 너희가 쉴 곳이 아니니 일어나 떠날지어다 이는 그것이 이미 더러워졌음이니라 그런즉 반드시 멸하리니 그 멸망이 크리라

사람이 만일 허망하게 행하며 거짓말로 이르기를 내가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네게 예언하리라 할 것 같으면 그 사람이 이 백성의 선지자가 되리로다

 

가나안 땅은 “너희가 쉴 곳이 아니라”고 합니다. “일어나 떠나라”고 합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입니다. 축복의 땅입니다. 안식의 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가 쉴 곳이 아니니 떠나라”고 말씀할 정도로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 범죄합니다. 그리고 미가와 같이 쓴소리를 하고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분별하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포도주와 독주에 대하여 예언하는 자를 너희의 선지자로 삼으라”고 합니다. “포도주와 독주”의 의미는 “부와 번영”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보고도 지적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부와 번영”만을 예언하는 아첨꾼이 있으면 그를 선지자로 믿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께 대해서는 둔감하고, 세상에 대해서는 민감했기 때문입니다.

 

 2:12-13 / 야곱아 내가 반드시 너희 무리를 다 모으며 내가 반드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으고 그들을 한 처소에 두기를 보스라의 양 떼 같이 하며 초장의 양 떼 같이 하리니 사람들이 크게 떠들 것이며

길을 여는 자가 그들 앞에 올라가고 그들은 길을 열어 성문에 이르러서는 그리로 나갈 것이며 그들의 왕이 앞서 가며 여호와께서는 선두로 가시리라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고 나서 야곱의 남은 자를 모으시는데, 하나님께서 친히 모으시고, 왕이 되셔서 선두로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더 이상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는 무리들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결국 그들이 배척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친히 목자가 되시고, 왕이 되셔서 자기 백성들을 다 찾아내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영광은 그 아들을 통하여 받으시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 상수(常數)와 변수(變數)

부모님과 회사(세상 일) 어느 것이 더 중요합니까? 당연 부모님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실상은 부모님 보다 회사를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부모님은 언제든 뵙고 싶으면 뵐 수 있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변하지 않는 분입니다. 늘 그 자리에 계십니다. 상수(常數)와 같은 분입니다. 그런데 회사는 무엇입니까? 변수(變數)입니다. 시시각각으로 변합니다. 내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고, 주변에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늘 삶 가운데 변수(變數)로 등장하기 때문에 긴장합니다. 그래서 말은 “부모님이 중요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실상은 회사(세상 일)가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왜요? 회사는 변수(變數)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은 늘 뵐 수 있는 분, 변함이 없는 분, 내가 찾고 싶으면 만날 수 있는 분, 나를 배신하지 않을 분으로 생각합니다. 언제나 계시는 상수(常數)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변수(變數)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가 빨리 적응해야 하고, 내가 빨리 대처해야 합니다. 그래서 늘 긴장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세상은 변수입니까? 너무나 빨리 변합니까?

 

※ 우리가 정말로 긴장하고 따라가야 할 분은 하나님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상수(常數)입니다. 항상 계신 분입니다. 나를 배신하지 않을 분입니다. 내가 뵙고자 하면 언제든지 만나 주시는 분이고, 내가 잘 되기를 바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오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언제나 계신 분이시기 때문에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분입니다.

 

살전 5:16-18 /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그런데 이렇게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 무엇인가? 그 다음의 말씀에 나타납니다.

 

살전 5:19-22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예언을 멸시하지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

 

무엇 하라는 겁니까? 한 마디로 영적 긴장감을 잃지 말라는 겁니다. 영적 긴장감을 늦추지 않기 위해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범사에 믿음을 취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며, 무엇보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 앞에서 긴장감을 갖고 살 수 있는 것이고, 그렇게 살 때 세상이 어떻게 변모해 가든 세상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따라 살 수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미가 선지자가 말씀하신 것처럼 영적 긴장감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반응하고 순종해 가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