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행하심
행 26:29 / 바울이 이르되 말이 적으나 많으나 당신뿐만 아니라 오늘 내 말을 듣는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 하니라
할렐루야! 8월 중순, 여전히 계속되는 무더위 속에서도 이렇게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모든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원래 여름은 더운 것이 당연하지만 올해는 정말 해도해도 너무한 것 같습니다. 밖을 돌아다니면 마치 제가 음식이 된 기분이 들어요.😂 습도가 높은 날에는 찜기 안의 만두🥟가 된 것 같고, 기온이 높은 날에는 오븐 안의 빵🍞이 된 것 같은 느낌이더라구요. 이렇게 더운 것은 우리 성도님들께서도 마찬가지이신지, 예배를 위해 본당에서 냉방기를 켜고 성도님들을 기다리고 있으면 곧이어 한분씩 들어오시면서, "와! 여기가 천국이네~'하고 말씀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더위에는 등골을 서늘하게 할 무서운 이야기가 제격이죠? 제가 이 더위를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오싹하고 섬뜩한 이야기를 하나 해드리겠습니다.
여러분! 올 여름이 앞으로 다가올 모든 여름 중에 가장 시원한 여름이라고 합니다. 어우~😁 그 어떤 공포일화보다 더 무섭게 다가옵니다. 앞으로 찾아올 극심한 더위, 추위가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이유는 날씨에 관해서 우리에게 아무 통제권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내가 잠시 머무는 작은 공간의 온도는 조절할 수 있을지언정, 햇살의 뜨거움과 갑자기 쏟아지는 폭우에 관해서는 어떠한 권한도 없기에 앞으로 찾아올 극단적인 기후변화가 두렵기만 한 것입니다.
더운 날씨가 더 덥게 느껴지는 까닭은 이처럼 앞으로의 기후가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보다는 지금보다 더 안 좋은 상태로 악화될 것을 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 사실은 우리를 무력하고 답답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처럼 더위같이 밖으로 드러나는 고통이 있는가하면 또 삶의 내밀한 부분을 파고드는 개인적인 문제의 고통도 있습니다. 내 바람대로 통제되지 않고, 앞으로 좋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없어서 더위가 더 극심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내 삶의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이 마치 무더위처럼 내 몸에 들러붙어서 나를 결박합니다. 부족한 돈, 나빠진 건강, 복잡한 인간관계, 불안한 심리상태 그리고 그밖에 여러 고민들은 우리를 감당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결박된 상태로 만들 때가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손가락 하나를 움직이는 것조차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몸과 마음의 무더위를 뚫고 오늘 예배의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을 환영합니다. 불완전 해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서 가만히 있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길 선택하신 우리 성도님들을 축복합니다. 한 번 무더위 속에 갇히게 되면 자칫 몸과 마음의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마련이죠. 그러나 냉방기를 켜둔 2층 본당이 시원하게 우리 성도님들을 맞이하듯이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여 나온 우리 성도님들을 사랑의 하나님이 맞이하시며 그 인생을 시원하게 하시리라 소망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인생에 어떻게 역사하시는지, 주저앉은 우리의 발걸음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 그 구원의 여정을 함께 떠나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이 되는 배경은 사도행전입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그들이 행한 놀라운 일을 알리기 위해 글을 작성하였습니다. 그런데 저자가 글 가운데 사도행전보다 더 강조한 것은 예수님과 성령의 행전입니다.
저자 누가는 먼저 책의 목적을 서두에 나타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1-5절의 말씀입니다.
"데오빌로님, 나는 첫 번째 책에서 예수께서 행하시고 가르치신 모든 일을 다루었습니다. 거기에 나는, 예수께서 활동을 시작하신 때로부터 그가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을 통하여 지시를 내리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날까지 하신, 모든 일을 기록했습니다.
예수께서 고난을 받으신 뒤에, 자기가 살아 계심을 여러 가지 증거로 드러내셨습니다. 그는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여러 차례 나타나시고,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일들을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잡수실 때에 그들에게 이렇게 분부하셨습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너희는 여러 날이 되지 않아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다."
누가는 첫 번째 책, 누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이 어떻게 하셨는지를 기록하였습니다.
이제 두 번째 책인 사도행전에서는 그 바통을 이어받아 제자들이 어떻게 행하는지를 작성합니다. 좌충우돌하여 실수 많고, 부족하던 제자들이 성령님을 통해 어떻게 사도로 바로 세워지는지 보여주는 책이 바로 사도행전입니다.
이 땅에서의 사역을 마치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특별한 사명을 맡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을 떠나신 두 번째 사건이지요. 처음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제자들과 함께 할 수 없었고 그 때는 모든 제자들이 뿔뿔이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부활 후 제자들을 직접 찾아가셔서 그들과 잠시동안 머물다 승천하셨습니다. 그러나 남은 제자들이 이전과 달리 두려움으로 흩어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 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가 부활하심과 그들에게 성령을 보내심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교회를 두셨고, 교회의 출발은 바로 성령님이 그들 가운데 찾아오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교회에 주신 특별한 사명은 성령의 권능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그의 증인이 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아주 순조롭게 지켜지는 것 같았습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수많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듣게 되었습니다. 오순절을 맞아 전 지역에 흩어져있던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에 예배를 드리러 모였을 때 성령에 사로잡혀 큰 소리로 기도하던 제자들을 통해 예수님을 듣고 믿게 된 사건이죠. 이제 성령님을 통해 성전은 크게 확장되어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각각의 사람이, 그리고 그들의 모임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큰 힘을 주시며 그들이 서로 더 많이 전하고 나누고 베풀고 사랑하게 하셨습니다. 물론 유대의 종교지도자들의 견제는 여전하였습니다. 성장하는 교회의 기세를 보고 그들은 베드로와 요한을 투옥하기도 했으나 결국 아무 혐의가 없어 풀어줄 수밖에 없었고, 교회의 복음전파는 더욱 왕성해졌습니다.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있었으나 교회는 예루살렘 안에서 단단히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던 도중 끔찍한 비극이 벌어지게 됩니다.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던 집사 스데반이 거짓 혐의로 공회에 끌려가게 된 것입니다. 금세 풀려날 수 있었던 이전과는 달리 교회의 성장세를 두려워한 유대의 공회원들은 결국 스데반을 돌로 쳐서 죽이고 말았습니다. 스데반은 예수님을 따르던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은 마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연상시킵니다. 아무 죄도 흠도 없는 이가 사람들의 욕심으로 죽임 당하였습니다. 그는 죽어가면서도 예수님이 가신 길을 따라 걸으며 다른 사람들의 죄를 위해 고통 받으면서도 그들을 용서합니다. 그 눈은 죽는 그 순간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장면을 처음부터 끝까지 목격한 증인이 있었으니 그는 사울입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치는 사람들의 겉옷을 맡음으로 그들의 행위를 지지하였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의 죽음을 마땅히 여기며 더욱 교회를 박해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오묘하셔서 이 처참한 박해 속에 소망의 씨앗을 심어두셨습니다. 바로 이 사람 사울을 통해서 말입니다.
예루살렘 안에서 전반적으로 순조롭게 성장해 나가던 교회에 큰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그 목숨을 위협받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믿는 사람들은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사실 매우 절망적인 일이죠. 이제 막 복음의 불꽃이 타올라 교회가 기틀을 잡아가고 있는 와중에 이런 비극이 벌어지고 사역이 멈추게 되었으니까요.
그러나 사도들은, 그리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이들은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이미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요. 그렇기에 이들은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흩어진 그 곳에서 그들은 각자 복음 사역을 시작하였습니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주셨던 특별한 사명이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6-8절 말씀을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6 /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스데반의 순교 이후 예루살렘에서 박해가 시작되자 교회는 사방으로 흩어지게 되었는데 그중에는 예수님의 12제자 중 하나인 빌립도 있었습니다. 그는 사마리아로 향하였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옛 수도로, 앗수르에 멸망당한 뒤 이 지역에 펼쳐진 혼혈정책으로 인해 유대인들에게는 부정한 지역으로 여겨지게 되었죠. 사실상 유대인과 다른 민족이나 다름없고 오히려 더 멸시하는 사마리아 땅으로 빌립은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갑작스럽게 가로막힌 상황에 당연히 슬픔, 걱정, 불안, 분노가 그 마음속에 있었겠지만 그럼에도 빌립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기억하여 사마리아로 가서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은 그 가운데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가장 암울한 상황 속에서도 생명을 낳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온 땅을 향한 구원을 성취하신 것처럼 스데반의 죽음은 교회가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와 온 유대, 그리고 땅 끝까지 이르는 단초가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의 말씀입니다.
31 /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 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스데반의 순교로 박해는 심해지게 되었고 결국 교회는 더이상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하고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지만 이는 막혔던 이방 선교를 포문을 여는 첫 걸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욕심과 죄악으로 빗어진 비극의 상황 속에서도 구원의 손길을 멈추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행하심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을 통해 이 기적을 함께 이루어가셨습니다. 꽉 가로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하나님은 자신을 찾는 사람들의 믿음의 눈을 여사 가야할 길을 알려주십니다. 이 기적의 역사는 전혀 뜻하지 않던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받아드리고 세례를 받기 시작함으로 번져가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하나님의 놀라운 손길은 박해자 사울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셨습니다.
사울은 당시 율법으로나 혈통으로나 부족함이 없는 유대 종교 지도자로서 성전에 위협이 되는 교회의 움직임을 차단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믿는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었고 이들을 향한 형벌과 모독하는 말을 하며 죽이는 것도 서슴치 않았습니다. 다메섹에 갈 때에도 그는 주의 제자들에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였습니다. 사울은 자신의 행동이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라는데 일말의 의심도 없었습니다.
이랬던 바울이 오늘 본문처럼 “모든 사람도 다 이렇게 결박된 것 외에는 나와 같이 되기를 하나님께 원하나이다”하고 선언하다니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은 그의 열심을 생명을 죽이는 것에서 살리는 것으로 재설정하였습니다.
유대교의 제일가는 석학 중 하나이자 어느 것에나 부족함이 없던 사울은 이스라엘과 이방을 위한 복음의 전도자로 뒤바뀌게 됩니다. 믿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투옥하던 바울이 오히려 예수님을 전하게 된 것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유대 성전 지도자들과 로마 제국에 달갑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믿는 자들의 전하는 바와 새로운 삶의 방식, 곧 부활하신 예수님 안에서 사랑의 나눔으로 하나 되는 것을 그들의 권위에 대한 위협으로 느꼈습니다.
사울은 수년 간 바울이라는 로마식 이름으로 로마제국을 순회하면서 동역자들과 함께 3번의 전도여행을 펼쳤습니다. 어느 도시를 가든 바울은 그 곳의 유대인 회당에 가서 구약이 말하는 메시아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하였습니다. 일부는 이를 믿었지만 일부는 그렇지 않았죠.
예수님의 사랑이 인종, 성별, 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동등하게 주어진다는 가르침은 누군가에게는 해방의 선포였고, 누군가에게는 격렬한 위협으로 다가왔습니다. 바울이 이 복음을 선포하는 도시마다 사람들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성전이 되기를 사모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도 바울의 적극적인 전도 여행을 방해하고자 하였고 이들의 방해는 바울에게 있어 무척이나 괴롭고 고단한 일이었습니다. 세 번의 선교여행을 마친 후 바울에게는 많은 동역자가 생긴 반면 그를 반대하는 무리도 많아졌습니다. 결국 유대 지도자들은 바울을 로마 황제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는 죄목으로 그를 고소합니다.
본문에 나와 있는 바울의 담대한 선포는 그가 결박당한 죄인의 신분으로 자신의 재판권, 더 나아가 생사결정권을 지닌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한 말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복음의 능력, 곧 자신은 죽고 예수님으로 사는 놀라운 새 생명의 삶을 충분히 경험하기에 어떤 상황에 처하던지 소망의 불이 꺼지지 않고 타올랐습니다. 비록 그 자신은 결박된 상황에 있을 지라도 그는 누구보다 자유하고 생명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당당하게 모든 사람들이 다 자기와 같이 그런 새 생명의 삶을 예수님 안에서 누리는 완전히 새롭게 거듭난 삶을 누리기를 원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재판 받는 사람 같지 않습니다. 억울해 하지도 괴로워하지도 분노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재판받는 와중에도 자신을 찾아오신 예수님을 전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합니다. 바울이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조급해하지 않는 것은 이 재판을 통하여 아그립바 왕에게 복음을 증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의 재판 속에서 무죄를 입증하기 위한 자기변호를 하는 죄인의 신분으로 그들 앞에 선 것이 아니라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예수님 증인의 신분으로 나아갔습니다.
바울의 모든 고백을 듣고 난 왕과 총독은 바울의 무죄를 알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사도행전 26장 30절로 32절의 말씀입니다.
30 / 왕과 총독과 버니게와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이 다 일어나서
31 / 물러가 서로 말하되 이 사람은 사형이나 결박을 당할 만한 행위가 없다 하더라
32 / 이에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 하니라
제가 아직 학생일 적에, 교회에서 함께 모여 사도행전 성경통독을 했던 것이 기억이 납니다. 총 28장으로 이루어진 사도행전을 오디오 음성 파일을 따라 통독을 진행했는데, 26장의 마지막 절 “이 사람이 만일 가이사에게 상소하지 아니하였더라면 석방될 수 있을 뻔하였다”라는 구절을 들었을 때 굉장히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받았던 충격이 아직 기억이 납니다. '뭐야... 그럼 사도 바울이 지금까지 한 게 다 그냥 개고생이잖아. 황제가 있는 로마 법정에 상소하지만 않았으면 차라리 일찍 풀려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인간적인 아쉬움과 동정심, 그리고 하나님을 믿는데 이렇게 일이 안 풀리다니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 아니겠어요?
하나님의 행하심을 미처 깨닫지 못한 사람에게는 이 모든 과정이 불편하고 답답하고 성가신 일에 불과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자 누가는 바울의 재판과 투옥의 과정 속에서 예수님을 떠올리게 합니다. 무고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담대히 모든 것을 행하는 그 모습을 기억하게 합니다. 로마로 호송되는 과정 속에서 바울은 폭풍을 만나기도 하고, 죽음의 위기를 넘기기도 하고, 결국 로마에 도착해서는 가택연금을 당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황제가 세상의 왕으로 군림하는 그 로마에서 자기 집에 사람들을 초대하여 세상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합니다. 바울의 발걸음을 통해 로마제국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선포되고 자라게 된 것입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28장 30절 31절의 말씀입니다.
30-31 / 바울은 자기가 얻은 셋집에서 꼭 두 해 동안 지내면서,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하게 하나님 나라를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일들을 가르쳤다.
하나님의 행하심은 우리의 계산과 생각의 한계를 뛰어넘어 역사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혼자 일하시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그분의 자녀로, 백성으로, 성전으로, 동역자로 부르셨습니다. 제자들을 향한 예수님의 특별한 사명을 기억하시나요? 승천하시기 전 주셨던 명령이지요. 사도행전 1장 8절입니다.
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과 성령의 행전은 이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삶으로 살아내는 모든 믿는 자들의 계속되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당장은 극심한 무더위로 인해, 삶의 해결되지 않은 수많은 문제들로 인해, 내 안의 깊은 어둠으로 인해 답답하고 결박당한 것 같지만 믿는 자에게 나아갈 길을 알려주시고 인생을 확장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름으로 그분의 행하심에 동참하는 사당중앙교회 되기를 기도합니다.
능력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스데반의 죽음도, 사도 바울의 투옥도 인간의 눈으로 보기에는 비극에 불과할진데, 주님께서는 슬픔을 기쁨으로, 사망을 생명으로 바꾸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죄의 사슬을 끊으사 우리를 건져내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성령을 주사 하나님의 행하심에 동참하게 하셨으니, 믿는 우리가 세상으로 나아가 그 사랑을, 놀라운 구원의 역사를 흘려보내도록 힘과 능력을 더하여 주세요. 무더위가 계속되는 와중에 고난 받는 이들이 있다면 주께서 함께 하시사 나아갈 길을 알게 하시고, 이번 주부터 시작되는 장년부 여름성경학교를 기억하셔서 여름 가뭄에 주의 마음을 시원케하고,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복된 시간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항상 함께하시고 인도하시고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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