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셨으니 ...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라
눅 4:18-19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며, 어떠한 사역을 펼쳐가실지 오늘 말씀을 통하여 설명하여 주시고 있습니다.
□ 성령의 권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소문과 칭송이 자자하였습니다.
❚ 눅 4:14-15 / 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
먼저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기적과 권능이 나타났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세 있는 가르침과 사역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맛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소문이 온 갈릴리에 퍼진 것입니다. 소문뿐만 아니라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이처럼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고 공생애를 시작하신 예수님께서 이제 자기 고향 나사렛이라는 마을에 오셨습니다. 고향을 방문하신 예수님은 안식일에 규례를 따라 회당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회당에 들어가셔서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 눅 4:18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는 사도행전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행 1: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기 전 성령을 주심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즉 성령을 주신 이유는 오늘 내가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사 보냄을 받으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①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짓게 되면 반드시 제사를 통해서 죄를 해결해야 합니다.
제사를 드릴 때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소를 가지고 번제를 드리고, 소를 드릴만큼 재정이 되지 않으면 양으로 번제로 드리며, 그마저 돈이 안 되면 비둘기로, 그것조차도 여의치 않으면 곡식으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누가복음에서 가난한 자란, 그 한줌의 곡식마저도 없어서 죄를 지었지만 제사를 드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줌의 곡식이 없어서 예배드리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할 때가 있지요... 그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마음이 갈급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가난한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 중에,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심령이 상했다란 표현이 나옵니다.
❚ 시 51:17,19a /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사모함이 없으면 지금도 복음이 기쁨의 소식으로 느껴지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오직 예수로 충만하다'고 고백하는 가난한 심령에게 부어집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해 하는 것처럼 날마다 주님을 사모하는 자들에게 복음의 역사는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사역을 감당하라고 기름을 부어주신다는 것입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당시 구약의 세 가지 사역에 있어서의 공식 인정절차였습니다. 즉 왕이 될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 그 직임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 전파하기 위해서 기름을 부으셨다는 말은 왕이 되게 하셨다는 것이다. 왕의 권위를 회복시켜 주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위는 왕권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온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의 몸으로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부여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왕 같은 권세가 교회에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가난한 자에게 복음 전파하기 위해서 기름을 부으셨다는 말은, 제사장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반목되었던 관계를 회복시키는 것이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름부으심으로 우리를 제사장되게 하셔서 우리를 통하여 어떤 영혼이라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시는 권능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지자로 삼기 위하여 기름을 부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와 성도에게 이 말씀의 권위가 사라지고 있지는 않았는지요...
교회와 성도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권위를 다시금 회복하여, 하나님과 이웃을 아름답게 섬겨야 할 것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기 위하여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셨다는 것을 마음에 새기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교회와 성도를 향하여, "내가 너희에게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사역을 감당할 권능을 주었다!"는 말씀에 깊이 침잠하시기 바랍니다.
❚ 벧전 2:9 /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② 둘째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기 위함입니다.
포로된 것은 얽매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흐트러질 때 바로 찾아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 롬 1:28 /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면 죄악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죄로부터 벗어나고자 한다면, 우리의 마음이 늘 하나님의 영(靈)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의식이 온전히 하나님께 집중되어 있는 것이 자유함의 비결이라는 것입다. 하나님께 우리의 온맘이 집중되어 있지 않으면, 어둠의 권세가 이끄는 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죄로부터의 해방을 말씀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한다는 말씀은, 눈으로 볼 수 없는 것을 보게 하신다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많은 이들이, 보이는 것만이 인생의 전부라고 말하지요. 보이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 고후 4:18 /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보이지 않는 것이 진짜 소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만드는 능력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영적인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창조성을 이양 받은 우리들도,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만드는 자입니다. 진정한 하나님의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게 하는 사람입니다.
눌린 자에게 자유를, 눌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의 염려, 세상 근심, 세상의 먹고 사는 문제에 눌려 사는 것입니다. 그런데 눌린자를 자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로부터 자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자유하지 못할까요? 우리가 누구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에 우리의 마음을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靈)이 우리 안에 함께하고 계심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분리되어 있는 한, 하나님의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더라도 먼저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만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명확한 목적이 없으면 일을 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곧바로 연결된다면 하나로 집중되어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하나님의 힘에 의하여 일이 조화롭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 자신을 조화롭게 하려면 인간 본래의 실재이신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맞추어 재조정해야만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주고 있는 가르침 중 이보다 더 큰 가르침은 없을 것입니다.
"나를 믿으면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을 너도 할 것이고, 그보다 큰일도 할 수 있다" (요 14:12)
③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 눅 4:19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주의 은혜의 해란, '희년'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정확하게 번역하면 '주의 은혜의 해'란 '예수님께서 가장 좋아하는 해' 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해" 는 하늘의 태양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일 년, 이 년, 삼 년 이라고 하는 햇수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해'가 어느 '해'일까요?
여러분의 인생가운데 가장 행복한 시간은 언제 였습니까?
저는 태어난 자녀들을 품에 안았을 때였습니다. 그 때의 감격은 말로 다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은혜의 해는, 구약에 나오는 '희년'을 말합니다.
희년이란 7년마다 지키는 안식년을 7번 지낸 다음의 해, 그러니까 50년 째가 되는 해를 말합니다. 이 50년 째가 되면 가난 때문에 남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던 자들이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가난으로 남의 손에 들어간 땅도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희년이 되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가난 때문에 종으로 팔려갔던 아들이 돌아오는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처럼 주의 은혜의 해는 가난한 자, 포로된 자, 눈먼자, 억눌린 자가 땅을 되찾고, 끌려 갔던 곳에서 벗어나, 다시 회복되어 기쁨이 가득한 그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회복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권능을 더하여 회복의 역사를 펼칠 수 있게 하시기 위하여 부르셨습니다.
❚ 마 10:1 /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2025년을 맞이하여, 모든 성도님과 교회에 성령의 권능으로 인한 기쁨과 감사와 평안이 날마다 흘러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그리하여 2025년 회복의 역사가 가득하기를 축원합니다.
❚ 눅 4:21 / 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 말씀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이 일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미 은혜의 해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말미암아 지금 우리는 은혜의 해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제 2025년을 맞이하는 저와 여러분을 통하여 2025년 부흥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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