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라 부름 받은 아브라함
창 18:16-19
우리의 어린시절, 한바탕 여름성경학교 교가를 부르고는 “까르르르~” 웃으며 여름성경학교가 시작되었던 것을 기억하시지요! 교회를 다니고 안 다니고를 떠나 온 동네 어린이들은 무더운 여름이 되면, 선생님과 함께 노래, 율동, 만들기, 그리고 영화와 맛있는 간식, 선물까지 받을 수 있는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아마도 어린 시절 여름성경학교에 대한 추억들이 많이들 있으실 것입니다.
🎶🎉💖🎈🎵“흰 구름 뭉개뭉개 피는 하늘에 아침 해 명랑하게 솟아오른다. 손에 손을 마주잡은 우리 어린이 발걸음 가벼웁게 찾아가는 길. 즐거운 여름학교 하나님의 집, 아∼ 진리의 성경 말씀 배우러 가자.”
그런데 아쉽게도 이제는 여름성경학교 교가를 잘 부르지 않습니다. 게다가 여름성경학교 형식도 많이 변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교회 전도사님과 선생님 그리고 모든 성도님들이 함께 후원과 기도를 통해 여름성경학교를 잘 진행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영적인 성장의 기회를 갖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됩니다.
교육부 여름성경학교는 지난 주로 다 마치고, 이제 장년부 여름성경학교가 8월 18일과 25일에 있습니다. 이번 장년부 여름성경학교를 맞이하여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다시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이 가득 넘치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 가르치라 부름 받은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완성된 자로 선택되고 부름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처음에는 아주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부름 받을 당시 아브라함은 내놓을 만한 이력이 별로 없었다. 나이도 75세의 노년이었습니다. 자식마저 없는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창 12:4 /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이처럼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을 때 그는 단지 가능성의 인물일 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시련을 겪으면서 성숙한 인물로 성장합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에게 있었던 가능성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근거는 무엇일까에 대한 답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라 하시자 아브라함은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고향을 떠나 가나안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으로 이주는 단순한 생활 터전의 변경이 아닙니다. 그것은 과감한 결단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순종하자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복을 주십니다.
창 12:2 /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큰 민족'은 단일 이스라엘 민족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여러 민족이 포함된 거대한 국가개념입니다. 이 약속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이루겠다'는 선언입니다.
이는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과 그에 따른 보장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 아브라함은 가나안에 들어와 지내면서 하나님 앞에 제단 쌓는 일을 즐겨합니다.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께 드리는 삶과 예배를 의미합니다.
창 12:7 /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 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로 응답하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이 후에도 그는 옮겨가는 곳마다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여기서 단을 쌓는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경건한 삶과 예배를 의미합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지속적으로 유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인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서 겪은 최초의 시련은 기근 문제였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동안 살아왔던 고향 땅 우르나 잠시 머물렀던 하란은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 유역으로 물이 풍부한 지역이며 최고의 문명과 문화를 꽃피었던 세계의 중심지였습니다.
그에 비하여 가나안 땅은 동쪽과 남쪽으로 사막을 접하고 있는 문명의 외곽지역이었습니다. 주변의 사막기후로 인한 영향으로 가나안은 정기적으로 기근이 찾아오는 물 부족 지역이었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기근을 만난 아브라함은 문제 해결을 위하여 또 다른 문명의 중심지인 이집트로 이주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이와 같은 노력은 더욱 상황을 악화 시킬 따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집트로 내려가면서 이집트에서 당할지도 모를 위험을 미리 걱정하였다. 그것은 외모가 빼어난 사라를 이집트 사람들이 빼앗아 가면 어떻게 하나라는 두려움이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사라를 아내가 아닌 누이로 속입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일대 위기가 닥쳤습니다. 왜냐하면 바로왕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를 아내로 맞이하기 위하여 빼앗아 갔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바로의 집안에 재앙을 내리심으로, 바로가 사라를 다시 아브라함에게 돌려 보냅니다. 아브라함의 선택은 매우 어리석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사건을 통하여 천지를 창조하시고 역사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느 날 자기 장막 앞에 앉아 있던 아브라함은 문득 자기 맞은쪽에 세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고는 황급히 달려가 땅에 엎드려 절하며 그 낯선 이들을 맞아들였습니다.
창 18:3 / 이르되 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시옵고
그는 물을 가져오라고 할 테니 발을 좀 씻고, 나무 그늘 아래서 쉬고 계시면 잡수실 것을 마련해 오겠다고 말합니다.
창 18:5 /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상쾌하게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당신들이 종에게 오셨음이니이다 그들이 이르되 네 말대로 그리하라
그들은 아브라함의 초대를 기꺼이 받아들였고 사라가 준비한 음식을 기쁘게 먹었습니다. 마음이 상쾌해진 그들은 길을 떠나기 전에 다음 해 이맘 때에 사라가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등지고 서 있던 장막 어귀에 서서 이 말을 들은 사라는 그들의 말을 그저 유쾌한 덕담이라고 받아들이며 웃었습니다. 믿기 어려운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라의 웃음은 나중에 태어날 이삭의 이름 뜻인 ‘그가 웃다’를 연상시킵니다.
아브라함은 그들을 바래다 주려고 함께 얼마 걸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창 18:16-17 / 그 사람들이 거기서 일어나서 소돔으로 향하고 아브라함은 그들을 전송하러 함께 나가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하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 숨기겠느냐
그리고는 아브라함이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루고,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까닭을 밝힙니다. 우리는 흔히 아브라함이 택함 받은 이유를 그가 믿음의 조상이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창 15:6 /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조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창 18:18-19 / 아브라함은 강대한 나라가 되고 천하 만민은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 아니냐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처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선택하신 이유는, 결국 자손들을 잘 가르치게 하시기 위함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가르쳐야 합니까?
모든 일마다 하나님이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가르치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학교 교육의 목표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일로 상정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즉 다른 이들과의 경쟁에서 승리하고, 많은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것이 교육의 목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유대교 학교의 교육 목표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리들의 학교는 일반 학교들이 성취하지 못한 일들을 해야만 한다. 학생에게 살아 있는 존재의 신비와 놀라움을 느끼게 해주는 일, 자신이 무한하게 값진 존재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빚으로 얻은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하고, 시간 속의 성(聖)을 깨달으며, 축제의 능력을 기르고, 하느님과 인간을 동시에 함께 생각하는 능력을 지니도록 해주는 일이 그것이다.”
즉 유대인들은 교육 과제를 사람다운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본 것입니다.
우울증이 늘어나고 있고, 경쟁의식에 함몰된 이들의 마음이 거칠어지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 해독제는 다른 것 없습니다. 살아 있는 존재의 신비와 놀라움을 느끼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남들과 비교하며 턱없는 우월의식을 느끼는 이들이나 열등감을 느끼는 이들에게 삶의 형편이 어떠하든 우리 삶이 무한하게 값지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야 합니다.
• 장년부 성경학교를 진행하며
그렇다면 2024년 장년부 성경학교를 통해서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로마 감옥에 갇힌 바울이 순교하기 직전에 영적인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가 디모도 후서의 말씀입니다. 당시 디모데가 목회를 하던 곳은 에베소라는 지역으로 헬라의 종교와 철학이 발전하였고, 항구도시로 해로가 발달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목회하던 디모데에게 편지를 통하여 권면합니다.
딤후 3:10-11 /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1. 고난 속에서 절망감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라 말씀하십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선교하기 어려운 지역이 있는데, 전통이 강한 마을, 해안가 마을 그리고 섬 지역이 선교하기가 어려운 지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목회하기 어려운 곳에서 목회하는 디모데에게 위로와 힘을 전하기 위하여 말씀을 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 지역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는 디모데가 비록 나이가 많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많은 어려움들을 어떻게 이겨 나갈 수 있었습니까? 디모데는 믿음의 아버지 바울이 어떻게 살아가는지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의 삶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갈라디아의 세 도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를 언급하는데, 이 3도시는 바울이 많은 고난을 당한 곳이었는데, 아마도 디모데는 고난당하는 바울을 직접 목격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바울의 모습을 보고 디모데에게 많은 도전이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은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라는 말씀을 통하여 디모데에게 어려움이 찾아 올 때마다 바울처럼 절망감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배우라 말씀하십니다.
이번 장년부 성경학교를 통하여 모든 일마다 주께서 행하심을 바라보며,
어떤 상황에도 주님의 행하심을 믿고 나아가는 것을 배우는 시간되기를 기도합니다.
2. 오늘 주님의 은혜에 붙들려 살면, 좋은 일들이 시작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딤후 3:14-15 /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명하십니다.
여기서 거하라는 말을 계속의 의미입니다. 계속 머물러 그 자리를 지키라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할 일은 과거의 일로 실망하고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걱정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주어진 삶 속에서 주님의 은혜에 붙들려 사는 주님의 자녀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 순간 하나님의 능력이 시작됩니다.
딤후 3:16-17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자손들을 잘 가르쳐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칠 자이기 때문이라 하신 것처럼, 오늘 장년부 성경학교를 통하여 주님의 능력에 붙들려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또한 배우고 익힌 것을 자녀들에게 가르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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