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입
역대상 21장 1-8절
1 /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 /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3 /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4 /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5 / 요압이 백성의 수효를 다윗에게 보고하니 이스라엘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백십만 명이요 유다 중에 칼을 뺄 만한 자가 사십칠만 명이라
6 / 요압이 왕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아니하였더라
7 /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 /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할렐루야! 분주한만큼 즐거웠던 새생명전도축제를 은혜 가운데 잘 마무리하고, 함께 힘써주셨던 성도님들의 얼굴을 뵈니 참 든든한 동지애가 생겨납니다. 교회가 새 영혼을 전도하기 위한 하나의 거룩한 사명을 갖고 준비하는 모든 과정에서 감사로 마음이 벅차오르더라구요. 기나긴 코로나 기간 동안 많은 행사들이 없는 듯이 조용히 지나갔었는데, 이렇게 다시금 새가족들을 초대할 수 있는 축제를 가능케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또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신 사당중앙교회 성도님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 새생명전도축제 때 교회에 처음 나오신 새신자분들도 계셨고, 또 굉장히 오랜 만에 다시 오신 분들도 계셨어요. 그중 저와 함께 어린시절을 보냈던 청년들도 있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니 어찌나 반갑던지 저도 모르게 입이 떡 벌어져서, "이게 얼마만이야!"라는 말만 반복하게 되더라구요. 우리 성도님들께서도 오랜 만에 나오신 분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칭찬과 따뜻한 환대로 맞아주시니 정말 잔칫집 분위기가 났습니다. 칭찬, 환영, 나를 기억하는 사람들과의 따뜻한 만남. 사랑의 분위기. 새생명전도축제를 지나며 교회가 세상 속에서 서야하는 자리가 어디인지 다시금 발견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리 오랜 만에 만나도 나를 반겨주는 사람에게는 마음이 열리기 마련이죠.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다른 이들에게 인정 받고, 좋게 기억되고 싶다는 욕망이 있습니다. 인생에 회의감이 찾아오는 많은 순간을 보면, 대체로 인간관계에 관련돼있을 때가 많지요. 사람은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 안정감을 느끼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충족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생에서 얻기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나이가 어리고 경험이 적을수록 물질이나 소유에 관한 답이 나옵니다. 장난감, 맛있는 음식, 놀이공원 티켓, 100점짜리 시험지... 그러다가 나이가 들수록 그 규모가 커지죠. 최신형 전자기기, 부동산, 로또당첨, 주식. 그런데 결국 그 이면을 따라가 보면 인정욕구에서 기인하였음을 알게 됩니다. 내가 이런 비싸고, 멋지고, 사람들이 다 갖고 싶어하는 무언가를 소유하였으니 나도 이런 값어치 있는 사람처럼 보일거야.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소유하면서 진짜 바라는 것이 그 물건자체일 때도 있지만, 그보다 다른 사람들의 이목을 기대할 때가 더 많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을 겪은 사람들은 인생에서 얻기 원하는 것에 대한 대답을 물질에서 찾기보다 누군가의 관계 혹은 어떤 깨달음의 과정에서 찾습니다.
사람의 존재는 소유에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때로 불안을 느낍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다 가지면 마치 신과 같은 존재가 되어 아무 걱정이나 염려 없이 평생 충만한 상태로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성경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첫 사람 아담을 보면 그 사실이 매우 명백하게 드러나죠. 선악을 분별하여 하나님 같이 되고자 선악과를 먹었지만 결국 아담과 하와에게 돌아온 것은 자신들이 벗고 있다는 수치와 두려움이었습니다. 그 안이 채워지지 않은 사람은 외적으로 아무리 많은 것을 소유할 지라도 오히려 자신이 비어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밖에는 지나지 않기에 더 지치고 불안하게 됩니다. 지난 수요 설교에서 언급하였듯이 계속해서 과거의 영광이나 실패를 곱씹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자기에게 자신이 없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이나 소유한 물질에 의존하는 것입니다.
유명 유적지나 관광지, 혹은 자연에 낙서를 하는 것이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습니다. 깨끗하게 보호 받아야 하는 장소가 일부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남긴 기록들로 인해 훼손되는 것에 많이들 분개하셨는데요, 어떤 소설가가 그렇게 행동하는 사람들의 심리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사랑도 자아도 불안정하니까 안정되어 보이는 곳에 새긴 것이 아닐까”라고요. 맞습니다. 불안정할수록 그런 나를 채울 수 있는 무언가에 이름을 새긴 뒤 확인하고, 잠시 안심하고 이런 행위를 반복하는 것이 인간이 안정을 취하는 방식일 때가 많습니다.
아마 다윗 왕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확인받고 싶은 불안과 욕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오늘 본문 역대상 21장 1-2절 말씀 다시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1 /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2 / 다윗이 요압과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까지 이스라엘을 계수하고 돌아와 내게 보고하여 그 수효를 알게 하라 하니
다윗이 요압에게 명령한 것은 이스라엘의 인구조사입니다. 고대로부터 인구조사의 주된 목적은 세금징수와 전쟁에 나갈 군인의 숫자를 파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조치는 왕권을 강력하게 만드는 장치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세금과 군대, 당연히 명령자에게 많은 권력을 쥐어주는 중요한 무기가 되겠죠. 그런데 이스라엘의 경우, 다른 고대 왕국들과 다른 차이점이 여기서 발생합니다. 인구조사를 명령한 주체가 왕이 아닌 하나님이셨다는 것입니다. 출애굽 후, 40년 간의 광야생활을 거쳐 이제 하나님이 명령하신 땅으로 들어가기 전, 그리고 가나안 정복전쟁 이후 땅을 배분하기 위해 하나님이 인구조사를 실시하셨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인구조사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방금 읽은 본문에서는 인구조사를 시킨 주체가 누구였나요? 놀랍게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라 칭함 받던 다윗입니다. 심지어 좌충우돌하며 때로 다윗에게 근심을 안겨주기도 하였던 신하 요압장군마저도 그 명령을 적극적으로 말렸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이 일을 강행하였습니다. 역대상 21장 3절과 4절의 말씀입니다.
3 / 요압이 아뢰되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하시기를 원하나이다 내 주 왕이여 이 백성이 다 내 주의 종이 아니니이까 내 주께서 어찌하여 이 일을 명령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시나이까 하나
4 / 왕의 명령이 요압을 재촉한지라 드디어 요압이 떠나 이스라엘 땅에 두루 다닌 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다윗이 인구조사를 하려 했던 때는 이미 전쟁이 끝나고 그를 헤하려 하던 적들이 패한 상황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의 바로 전 상황이 어떠하였는지 보겠습니다. 역대상 20장 8절입니다.
대상 20:8 / 가드의 키 큰 자의 소생이라도 다윗의 손과 그 신하의 손에 다 죽었더라
가드는 블레셋의 5개 중요도시 중의 하나로 기골이 장대한 사람들, 태어나기를 장군으로 태어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골리앗의 고향이었으니 얼마나 그들이 크고 강하였을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 않겠죠?
하나님이 소년 다윗을 골리앗의 손에서 구원하사 승리를 거두게 하셨던 것처럼 그가 왕이 된 이후로도 다윗을 도우셨습니다. 그렇게 이스라엘을 가장 괴롭게 하던 블레셋과의 전쟁이 끝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 민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전역을 차지하면서 나라에 평화가 찾아왔지만 다윗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지칠 줄 모르는 욕심은 현 상황에 만족하거나 감사하기보다 곧 더 많은 무언가를 소유해야한다는 생각을 낳았습니다. 그가 명령한 인구조사의 이면에는 단지 세금을 거두고 군사를 모집해 왕권을 강화하겠다는 표면적 이유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도전하는 죄악이 분명히 나타나있던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 아닌, 다윗 왕국의 백성이라는 선전포고이기도 하였습니다.
어떻게 다윗이 감히 이런 죄악을 저지르게 되었을까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을 모욕하는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에게 분노하던 어린 다윗은 어디로 간 것일까요? 저는 다윗이 완성되고 나면 사라 없어질 목표에 삶의 목적을 두었기에 이 불상사가 일어났다고 진단합니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로 그의 목표는 이스라엘의 안보와 부강이었습니다. 이 목표가 달성된 후로 그에게는 일시적인 만족이 찾아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초기의 목표가 완성되어 사라지자 공허해진 그의 마음은 또 다른 목표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 뜻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하나님이 주신 땅을 모두 차지했지만 또 전쟁을 일으켜 더 많은 땅을 차지하자! 혹은 이스라엘이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덕이지. 나라의 부강함을 널리 드러내고 왕권을 더 강화시켜야겠어...' 둘 중 어느 이유 때문인지는 몰라도 확실한 것은 인구조사를 명령할 때 다윗의 마음 속에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그리고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던 마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행위를 어떻게 판단하셨나요? 본문 역대상 21장 7절로 8절 말씀입니다.
7 / 하나님이 이 일을 악하게 여기사 이스라엘을 치시매
8 / 다윗이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이제 간구하옵나니 종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나이다 하니라
다윗의 죄악으로 인해 큰 전염병이 일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떠나 무언가를 이루려고 하는 다윗, 인구조사를 명령하면서도 이를 잘못이라 인지하지 못하는 다윗에게 강하게 개입하사 그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국방을 강화하기 위해 세금을 거두고 군사를 모집하려는 의도 뒤에 자신의 속마음을 숨긴 다윗을 아신 하나님은 그것이 얼마나 악하고 약한 마음인지 직접 회개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다윗의 약함은 우리의 모습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멋진 표면적인 이유로 나의 욕심을 포장할 때가 비일비재합니다. 문제는 그것이 죄악인지 모른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비어있음을 아직 깨닫지 못했을 때 상황은 더 악화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깨닫게 하기 위해 많은 방법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불안한 인간은 끊임없이 채우고 싶어합니다. 무언가를 갖거나 이룸으로써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인정받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비워진 상태로 추구하는 인간의 상태는 끊을 수 없는 죄악만을 낳곤 합니다. 만족하지 못하고 억제하지도 못하는 중독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중독의 삶이 아닌 몰입의 삶을 살기 원하십니다. 해롭고 의미 없이 사라질 것에 중독되어 허둥지둥하는 삶이 아닌, 유쾌한 창조성을 펼쳐나가는 몰입의 삶 말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에게 하나님은 명령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7절로 28절의 말씀입니다.
창 1:27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8 /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미 권세를 주시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그 사실을 계속 잊는 우리에게, 아담과 다윗에게 하나님은 때로는 상으로 때로는 벌로 혹은 수많은 방법으로 깨닫게 하십니다.
사랑하는 사당중앙교회 성도님들! 이번 새생명전도축제를 지나고 아마 다양한 감정이 있을 것 같아요. 큰 행사를 끝냈다는 후련함, 과연 새신자 중에서 몆 명이나 올지 걱정 반 설렘 반 등등... 그런데 그 모든 고민과 생각들이 걱정과 불안 가운데서 행하지 않을 것은 교회는 내 힘과 노력으로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으로 세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안에 심어 놓으신 유쾌한 창조력을 갖고 하나님께 몰입하다보면 과정과 결과는 하나님께서 채워주시리라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들의 삶이, 그리고 사랑하는 우리 교회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기쁨과 만족으로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우리를 이 자리로 부르사 하나님께 예배드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분주한 삶을 이어가다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떤 존재로 창조하셨는지, 어떻게 불러내셨는지 잊을 때가 있습니다. 늘 함께 하시는 주님, 우리의 눈이 주님을 향하길 원합니다. 주의 은혜를 충만히 채워 주소서. 언제나 지키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딸, 감신 동문(😊💖💕) 전도사의 설교문이다! 항상 딸의 설교에 큰 은혜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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