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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이슬 같고 단비 같은 남은 자들, 미 5:2-9, 미가서 시리즈 설교(11)

by tat tvam asi 2024. 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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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 같고 단비 같은 남은 자들

미 5:2-9

 

미가 선지서는 예수님께서 탄생하시기 전, 약 700년 즈음 기록된 책입니다. 그런데 미가 선지자는 오늘 본문을 통하여 예루살렘의 회복을 선언하십니다. 즉 이스라엘을 회복하여 다윗 혈통을 이어갈 새로운 왕이 탄생할 곳으로 베들레헴 에브라다가 선택된다고 말씀하십니다.

 

 5:2 /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

 

‘에브라다’는 베들레헴의 옛날 이름으로 ‘베들레헴’은 ‘빵집’이란 뜻을 가지고 있고, ‘에브라다’란 이름은 ‘열매가 많다’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 모두, 이 도시의 풍요로움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동방박사가 태어나실 왕의 별을 보고 예루살렘에 찾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헤롯 왕은 당대의 성경학자들에게 "메시아가 어디에서 탄생하겠느냐?" 물어보았고, 성경학자들은 미가서 5 2절 말씀을 근거로 ‘베들레헴’에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것이라 이야기했습니다.

 

마 2:4-6 /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 물으니

이르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 바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서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본래 요셉과 마리아는 ‘나사렛’이란 동네에서 살고 있었습니다만, 마리아가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했을 때, 때마침 로마 황제가 인구조사를 실시하여 오늘날로 말하면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 동사무소에 주민 등록하기 위해서 갔다가, 거기에서 예수님을 낳게 된 것이죠. 미가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런데 에브라다는 슬픔의 의미를 간직한 지명입니다, 에브라다는 라헬이 야곱의 막내아들인 베냐민을 낳으면서 죽은 곳으로, 라헬은 죽을 당시 베냐민을 위하여 통곡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에브라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슬픔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 에브라다에서 인류의 구원자 메시야가 나실 것이 예언된 것입니다. 곧 죽음을 슬퍼하던 통곡의 땅 에브라다가 이제 새 생명, 그것도 영원한 생명을 주실 메시야께서 오시는 축복 된 땅이 된 것입니다. 이에 미가는 베들레헴을 그저 베들레헴이라고만 하지 않고 그 옛 이름을 덧붙여 ‘베들레헴 에브라다’라고 표기한 것입니다. 

 

죽음과 슬픔의 장소 에브라다는 메시야가 그곳에서 나심으로 말미암아 생명과 기쁨의 장소인 베들레헴이 된 것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이 세상은 실로 소망을 상실한 절망의 땅이었습니다. 슬픔과 죽음의 그림자만 짙게 드리워져 있었습니다.  

 

미가가 활동하던 B.C 8세기 이후 B.C 721년 북이스라엘이 앗수루에 의해 멸망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B.C 587년에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되어 멸망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고난은 그리스도가 나시기까지 무려 700여 년 이상 계속되었고 그들은 줄곧 이방 나라의 압제 속에 방치되었던 것입니다. 언제까지 방치됩니까?

 

5:3 / 그러므로 여인이 해산하기까지 그들을 붙여 두시겠고 그 후에는 그의 형제 가운데에 남은 자가 이스라엘 자손에게로 돌아오리니

여기서 ‘여인’은 한 특별한 여인을 가리키는 말로써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님이 보내실 그리스도를 잉태할 여인 곧 동정녀 마리아를 가리킵니다( 7:14,  1:21). 비록 지금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를 지어 원수에게 붙잡혀 있으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메시아로 말미암아 남은 자가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이 그곳에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철저하게 회개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의 땅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고통 당하며 살아가던 우리들을 구원하셔서 하나님의 나라 안에서 살아가게 하신 것과 동일합니다.

 

메시아께서 그의 나라를 어떻게 통치하시는지 그 모습을 살펴봅시다.

 

1.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다스리십니다.

 

 5:4 / 그가 여호와의 능력과 그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의 위엄을 의지하고 서서 목축하니 그들이 거주할 것이라 이제 그가 창대하여 땅 끝까지 미치리라

 

이는 그리스도의 통치 방법을 말씀한 것입니다. 세상 나라들의 통치 방법은 수많은 모사와 궤계, 그리고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군대와 공권력을 통해 위엄과 권위를 얻어 백성들을 다스립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여호와의 능력과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백성들을 다스립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그리스도의 통치는 세상의 통치자들과는 달리 흔들리지 않는 평안과 안녕을 가져다줍니다.

 

이스라엘 왕들은 하나님의 대리자였지만 그들은 대부분 여호와의 능력과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다스리지 않고 자기의 능력과 위엄을 의지하여 다스렸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왕들의 통치는 매우 불안정하였습니다. 불안정은 곧 백성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으로 다스리기에 그 통치가 안정적입니다. 아무도 그가 다스리는 나라를 위협하지 못하므로 그 나라의 백성들은 안연히 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는 이렇게 여호와의 능력과 위엄을 의지하여 다스릴 뿐만 아니라 가만히 앉아서가 아니라 '서서' 다스리신다고 말씀합니다.

 

딤후 4:17 /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 나로 말미암아 선포된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모든 이방인이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짐을 받았느니라

여기서 '서 있다'라는 것은 자기 백성의 안위와 번영을 위하여 노심초사하며 부지런히 수고하며 애쓰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의 이러한 수고가 있기에 그의 양 떼인 우리는 그 삼킬 자를 찾아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는 마귀의 위협과 악한 자들의 공격으로부터도 안전하게 거하며 복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은혜이며 축복입니까? 얼마나 감사하며 찬송할 일입니까?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서서 자기 양 떼를 돌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어떤 이들에게는 자기 양 떼를 돌보도록 위임하기도 하셨습니다. 주님은 자신을 배신하고 떠났던 베드로를 향해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럼으로 그리스도의 양 떼를 이끄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리하시는 것처럼 '서서' 자기에게 맡겨진 양 떼들을 성심을 다해 돌봐야 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의 통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의 백성들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2. 평강 주시는 예수님

 

 5:5-6 /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궁들을 밟을 때에는 우리가 일곱 목자와 여덟 군왕을 일으켜 그를 치리니

그들이 칼로 앗수르 땅을 황폐하게 하며 니므롯 땅 어귀를 황폐하게 하리라 앗수르 사람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우리 지경을 밟을 때에는 그가 우리를 그에게서 건져내리라

 

여기서 '이 사람'은 두말할 나위 없이 베들레헴에서 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강이 되시는 것은 그분 자신이 완전한 평강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왕으로 모시는 곳에는 평강이 있습니다. 사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 이 세상은 참 평강이란 찾아볼 수조차 없는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태어나는 날부터 인생 질고에 허덕이며 고통을 당하고 결국 죽음이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할 뿐이었습니다. 이는 바로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것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관계가 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지자, 마음속에 평강과 기쁨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두려움과 불안만이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비극을 자초하고 하나님과 스스로 원수된 인간들, 서로가 서로에 대해 원망과 미움을 갖고 분쟁을 일삼는 인간들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오셨습니다. 그분은 먼저 죄로 나뉘게 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화평을 이루고자 그 스스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로 말미암아 사람은 비로소 하나님과 하나 되는 축복을 회복한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화평을 근거로 용서받은 인간들이 서로 용서하고 하나 됨을 이루도록 그들 모두에게 동일한 영, 곧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는 평강의 왕으로서 그의 통치를 받는 모든 자로 하여금 풍성한 평강을 누리도록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평강을 아직 모르고 여전히 불안과 공포분열과 갈등 속에 사는 이들이 우리 주변에는 많이 있습니다우리는 마땅히 우리의 평강이 되신 그리스도의 복되신 사역을 계승하여 그들 역시도 하나님과 더불어 평강을 누리도록 하는 데 힘써야 하겠습니다이러한 자세야말로 주님의 탄생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

그렇다면 메시아에 의해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5:7 / 야곱의 남은 자는 많은 백성 가운데 있으리니 그들은 여호와께로부터 내리는 이슬 같고 풀 위에 내리는 단비 같아서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할 것이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풀 밭에 내리는 소나기와 이슬처럼 주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따라서 이제 더 이상 주의 백성들은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7절에 ‘사람을 기다리지 아니하며 인생을 기다리지 아니한다’는 말씀이 ‘사람에게 소망을 두지 않는다’는 표현입니다. 주의 백성들을 하나님만을 의지하여 살아갈 뿐, 더 이상 사람을 의지하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메시아를 통해 구원받은 이스라엘은 젊은 사자와 같아서 그의 모든 원수들을 진멸합니다. 이스라엘이 지나가는 곳마다 다 승리합니다.

 

 5:8-9 / 야곱의 남은 자는 여러 나라 가운데와 많은 백성 가운데에 있으리니 그들은 수풀의 짐승들 중의 사자 같고 양 떼 중의 젊은 사자 같아서 만일 그가 지나간즉 밟고 찢으리니 능히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라. 네 손이 네 대적들 위에 들려서 네 모든 원수를 진멸하기를 바라노라

 

이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가는 주의 백성들이 마지막 때에 메시아를 통해 누리게 될 영원한 승리를 가리킵니다. 

 

오늘 주님의 통치 아래서 살아가는 자들은 그분의 보호하심 아래서 살아가고, 그분의 공급하시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오늘 생명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날마다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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