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려하시는 예수님
요 21:12~14
우리의 삶은 문제풀이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참 다양한 문제들이 삶 속에서 발생하는 것 같습니다. 한 고비를 넘어갔다 생각하였는데, 또 다른 고비가 찾아오는 것을 보면서 문제가 문제를 불러온다는 말을 실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살아가면서 오감으로 느끼는 것이 다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즉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입으로 먹고 피부로 느끼는 오감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 고 하셨습니다.
요 18:36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우리가 믿음의 깊은 세계로 들어가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다면, 문제를 내려다볼 수 있도록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문제들 속에 파묻혀 있으면 자기 그릇을 넘어 갈 수 없게 됩니다.
몇 년 전에 청년부 여름 수련회 가이드 북을 보니 허그권이라는 상품권이 있어서, 전도사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이 허그권이라는 상품권은 무엇입니까?" 그랬더니 이 허그권은, 수련회 기간 중 실수 하였을 때 허그권을 사용하면 서로 어깨동무하며 "무조건 용서, 무조건 감사"라고 말하는 것이라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청년부가 수련회를 출발하는 날 전도사님이 집에서 나올 때 휴대폰을 두고 와서 출발하기 전 자신의 집을 들려서 가야하겠다고 말하자, 청년들이 "에이"라고 야유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러자 전도사님이 허그권을 사용하겠다고 하면서 허그 쪽지를 내어 놓자, 청년들이 함께 어께동무하며 “무조건 용서, 무조건 감사” 라고 말하며 출발하였던 생각이 납니다.
바람 잘 날 없는 세상 안에 있으면서도 문제에 매이지 않고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삶은 없을까요? 오감에 묶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 안에 함께하시며 우리에게 무한한 공급원이 되시는 온 우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에게 안겨, 그 안에서 집을 짓는 것입니다.
고전 3:16 /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우리는 그동안 성령님이 우리 안에 함께하고 계셨지만, 그분께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살았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과 동행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죄, 질병, 빈곤, 관계의 삐걱거림, 감정의 상함 등등 문제 가운데 길을 찾지 못하고 늘 흔들리 수 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첫 번째로 하는 것은, 절망하고 포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치열하게 싸우려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한국교회에서 이런 방법들을 사용하였던 건 아닌가요?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 안에 계시는 성령님의 능력과 역사를 믿고, 성령의 열매를 맺어가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사회적인 변동에 출렁거리지 않고, 안정적이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있을까요? 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내 안에 있는 두려움, 내 안에 있는 절망감을 내가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내가 옳다고 주장하던 것들이 성령님의 뜻과는 거리가 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기 시작할 때 비로서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고전 2:12 /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들의 인생 여정의 중심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열어가는 열쇠가 됩니다. 우리가 잘 깨닫고 우리가 전해야 할 가장 기쁜 소식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는 왜, 사람은 왜,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고 있다는데, 저 모습 밖에는 안될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을 하나님의 영이 거하는 자로 여기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자신의 삶의 기반을 두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결핍되어 있는 자신, 무언가 부족하고, 형편 없는 자신, 무언가 계속 채워 넣지 않으면 다른 이들에게 무시 당할 것 같은 초라한 자신, 한스럽게 살아와서 후회와 미련과 아쉬움과 죄책감과 수치심과 분노에 어쩔 줄 모르는 작은 자신의 모습에 계속 주의를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삶은 축제일 수 있습니다. 죄, 질병, 빈곤 같은 것에 질질 끌려 다니지 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행복과 평화 속에서 이 삶의 강을 건널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우리들 외부의 어딘가로 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가, 나와 세계를 바라보는 우리 자신의 인식, 즉 우리가 주변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서 가지는, 그것이 진리라고 여기는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우리의 삶을 영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에 집중하는 것이야말로, 삶에 참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진정한 길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초라하게 느끼는 자신에게서 눈을 돌려, 우리의 생각, 행동, 선택, 삶의 방향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우리 자신의 마음을 집중할 때, 영적 의식이 바르게 자라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르게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머릿속에 계속 떠오르는 생각대로, 마음을 주장하는 감정대로, 자기를 놓아두지 말고, 성령님이 내 안에서 운행하고 계시다는 영적 의식을 얻으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 영적 의식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보면 세 가지 장면으로 볼 수 있어요. 먼저 실의에 빠진 제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요 21:1-2 /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호수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은 이러하니라
시몬 베드로와 디두모라 하는 도마와 갈릴리 가나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다른 제자 둘이 함께 있더니
디베랴 바닷가는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많은 추억이 있는 곳입니다. 갈릴리 바다에 폭풍이 몰아치면서 배가 뒤집힐 것 같은 위기 상황에서 예수님께서 바다 위를 걸어오셔서 제자들을 구해주신 일도 있습니다. 그리고 갈릴리 주변에서 사람들에게 천국을 가르치시고 병자들을 고치시며 많은 기적을 행하신 곳입니다.
그런데 디베랴 바닷가에 최소한 일곱 명의 제자들이 등장합니다. 베드로, 도마, 나다나엘, 세베대의 아들들(야고보와 요한) 그리고 다른 제자 둘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주요 제자들이 망라돼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디베랴 바닷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습니까?
요 21:3 /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하니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그 날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누구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도 그리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도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과 동행하였던 분들입니다. 제자들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은혜를 다 잃어 버리고 순식간에 옛날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모습으로 돌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3년 동안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양육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마지막 순간 주님을 떠나 다시 옛 생활로 돌아 간 것입니다.
둘째로 지도자의 역할의 중요성입니다.
열두 제자들의 리더 격인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간다며 나서자, 다른 제자들도 너나없이 따라나선 것입니다. 지도자가 중요합니다. 리더의 말과 행동은 다른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미치게 됩니다.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면 부정적인 이야기가 빨리 전달되기에 리더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셋째로 주님과 동행함이 없는 인간의 수고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3절 마지막 부분에서 "나는 물고기 잡으러 가노라. 그러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물고기를 잡으로 나갔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일생동안 무엇을 잡으려고 발버둥치며 살아갑니다. 돈을 모으려고, 권력을 잡으려고, 명예를 얻으려고 애를 씁니다. 일시적으로는 붙잡는 것 같으나 결국은 다 놓쳐버리고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납니다. 사람이 평생을 통하여 잡아도 남는 것은 노쇠와 허무와 죽음 밖에 없습니다. "잡은 것은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 고백은 인생의 현실이요 실존입니다. 헤밍웨이의 노벨 문학상 수상작 "노인과 바다"를 아시지요?
쿠바 해안에 살면서 낚시질로 살아가던 한 노인이 3개월이 가깝도록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다가 어느날 '말린'이라고 하는 큰 물고기 한 마리를 잡게 됩니다. 삼 일간의 사투 끝에 말린을 몰고 항구에 들어오기는 하였으나 잡은 고기는 상어떼들에게 뜯겨 뼈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겁니다. 무엇을 잡으려고 발버둥쳐도 잡히는 것은 순간적이고 남은 것은 앙상한 뼈다귀와 가시뿐이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나 봅니다. 사람들은 큰소리쳐 보지만 언제나 빈 그릇입니다.
그러나 빈 그릇은 우리가 실망하고 절망해야 할 상황이 아니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육체적으로 약해질 때도 있고 세상살이에 실패할 때도 있고 넘어질 때가 있지요. 그러나 그때가 예수님을 만날 때입니다. 나의 믿음이, 나의 실재가 되는 시간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보았습니다. 그런데 성령과 함께 하지 못하자 어려움이 찾아올 때 맥을 추지 못하고 다 넘어지고 맙니다.
이제, 디베랴 바다에서 두 번째 장면으로 바뀝니다.
곧 제자들이 밤새도록 그물을 던졌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해 낙망하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희망을 주시는 장면입니다.
요 21:4-5 / 날이 새어갈 때에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셨으나 제자들이 예수이신 줄 알지 못하는지라.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대답하되 없나이다
우리는 몇 가지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 때는 날이 새어갈 무렵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제자들은 예수님이 옆에 계셨지만 알아보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가까이 계시지만 실의와 슬픔에 빠져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셋째, 실패한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을 걸어오신다는 것입니다.
고기잡이에 실패한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얘들아, 고기를 많이 잡았니?"하고 말을 건네십니다. 오늘날 예수님께서 끝임 없이 우리에게 ‘너, 괜찮니? 아프진 않니? 살만하니?’라고 말을 걸어오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불안과 염려, 그리고 절망과 낙심으로 말미암아 그 음성을 듣지 못합니다.
넷째, 예수님의 말씀에 귀기울이면 기적이 시작됩니다.
기적이 언제 일어납니까? 예수님의 음성을 듣기 시작할 때입니다.
요 21:6 / 이르시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잡으리라 하시니 이에 던졌더니 물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다섯째는, 영의 눈이 열리자 예수님을 비로서 보게 됩니다.
요한은 즉시 베드로에게 예수님이시다 사실을 알려주자 베드로의 눈이 열립니다.
요 21:7 /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
여기서 세 번째 장면으로 전환됩니다. 곧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 그 위에 생선과 떡을 올려놓고 제자들을 부르시며 환영하시는 장면입니다.
요 21:9 / 육지에 올라보니 숯불이 있는데 그 위에 생선이 놓였고 떡도 있더라
예수님께서 숯불을 피워 그 위에 생선과 떡을 굽어 춥고 배고픈 제자들에게 몸을 녹여 주시고, 배고픔을 해결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닷가에서 제자들에게 조반을 베푸신 것은 우리에게도 그런 기쁨과 축복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요 21:10 / 예수께서 이르시되 지금 잡은 생선을 좀 가져오라 하시니
예수님께서 숯불 위에 생선과 떡을 준비하시고 제자들이 잡은 생선도 더해서 와서 먹으라고 초청하십니다. 어떻게 우리는 오감의 세계를 넘어설 수 있겠습니까? 이제는 자신을 초라하게 느끼는 것에서 눈을 돌리는 것입니다. 즉 머리 속에 흘러가는 생각대로, 감정이 흐르는 대로 놓아두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생각, 행동, 선택, 삶의 방향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우리 마음을 집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만찬에 함께 참여 하는 기쁨의 자리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만찬에 나의 잡은 것을 함께 올려 참여하는 것입니다.
요 21:12-14 /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님이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그들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예수님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예수님께서 떡과 생선을 떼서 제자들에게 권하십니다. 여기서 우리의 내면을 뒤집어 보면, 말을 하지 않을 뿐이지 부끄러운 구석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모든 사실을 알고 계시지만 모르시는 척 해 주시는 겁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찾아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나를 배신했지만 난 너를 이미 용서했다.”
그리고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참 기쁨이 예수님에게 있음을 깨닫고 고백합니다.
“나 주님의 기쁨이 되기 원합니다.”
오늘 주님의 역사하심이 저와 여러분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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