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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막 4:2-9, 금요 심야 기도회 설교, 매달 첫째 주 예술 속에 나타난 하나님을 묵상하다...(2)

by tat tvam asi 2024. 9.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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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부터 매주 첫 번째 금요 심야 기도회는 명화와 함께 기도하는 '명화 기도회' 시간을 갖도록 하였지요! 오늘은 장 프랑수아 밀레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을 보려고 합니다. 먼저 말씀을 보겠습니다. 

씨뿌리는 자의 비유

막 4:2-9

 

마가복음 4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 말씀이 있습니다.

 

막 4:2-9 / 이에 예수께서 여러 가지를 비유로 가르치시니 그 가르치시는 중에 그들에게 이르시되

들으라 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더러는 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더러는 가시떨기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 기운을 막으므로 결실하지 못하였고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이 비유의 말씀을 보면 농부가 길가, 자갈밭, 가시덤불, 옥토에 씨를 뿌린다는 내용입니다. 사람들은 이 비유를 들으면서 언제나 네 가지 땅을 구분합니다. 바로 이 지점부터 우리의 오해가 시작됩니다.

 

농부는 지금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였기에, 수확은 먼 미래의 일입니다. 때가 되면 농부가 알아서 거두어 들입니다. 그런데 결산의 때도 아닌데, 땅들이 서로 자신이 옥토라고 하며 다른 토양을 구별하고 차별합니다. 그런데 이 비유를 씨앗 뿌리는 농부에게 초점을 맞춰 읽어 봅시다. 예수님은 농부가 씨를 뿌리러 나간다는 말하십니다. 농부는 가만히 앉아 소출을 기다리지 않습니다. 씨앗을 들고 땅으로 걸어 나갑니다. 거기서 옥토만 골라 씨를 뿌리지 않는데, 이 대목이 매우 중요합니다.

 

이 비유를 생각할 때마다 두 명의 화가가 떠오릅니다. 농민 화가로 유명한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와 또 한 사람은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입니다. 밀레도고흐도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제목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농민들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던 밀레의 그림 가운데에는 <만종>, <이삭 줍기> 등 우리에게도 익숙한 그림이 많이 있습니다.

밀레의 <만종>

 

밀레의 <이삭 줍기>

 

 그런데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은 제작 당시 귀족들에게 비난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프랑스 상황과 깊이 관련되어 있습니다.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

 

이 작품이 완성된 것이 1850년인데, 그 얼마 전인 1848 2월 프랑스에서는 혁명이 일어나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이 들어섰습니다. 하지만 정치 불안은 쉽게 잦아들지 않았고, 귀족들은 농민과 노동자들이 언제라도 혁명에 뛰어들 수 있을 것이라 여겨 두려워하고 있었던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이 등장하자, 귀족들은 밀레가 혁명의 씨를 뿌리라고 사람들을 선동한다고 비난했던 것입니다.

 

이 사건은 씨를 뿌리는 것이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에피소드라 할 것입니다.

 

그런데 빛의 화가로 알려진 고흐는 목사가 되려고 신학을 공부하였지만, 1878, 25세의 반 고흐는 신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벨기에의 남서부지역에 있는 한 가난한 광산촌인 보리나주에서 평신도 설교자로 생활하게 됩니다. 광산촌에서 설교를 하면서 당시 착취를 받던 광업 종사자들의 피폐한 현실을 알게 되고 이에 대한 근심으로 가득한 시간을 보냅니다.

<목탄화- 씨 뿌리는 사람>이 바로 그때 그린 작품입니다. 이 그림은 밀레의 <씨 뿌리는 사람>의 모방한 작품으로, 목탄으로 그린 것입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목탄화 / 밀레의 작품을 모방한 것

 

목탄화의 그림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시의 고흐의 피폐했던 현실을 여과없이 비추는 것 같습니다. 고흐가 교회를 떠났던 배경을 보면, 당시 시대적인 상황 가운데 고흐는 교회 안에서 사랑과 희망을  발견하지 못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큰 실망 가운데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고흐가 교회를 떠나 화가의 길로 접어들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하나님의 신비로 가득 차 있는 곳이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일상적인 행위에서, 그는 성스러움을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그림은 씨를 뿌리는 행위가 얼마나 거룩한 행위일 수 있는지를 넌지시 보여줍니다.

 

그런데 참 역설적이게도 고흐의 그림에는 사랑과 희망을 상징하는 노란색과 파란색이 참 많이 쓰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밤의 카페테라스>, <까마귀가 나는 밀밭>, <해바라기> 같은 작품을 찾아보면 얼마나 강렬하게 두 가지 색 즉 노란색과 파란색이 사용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아쉽게도<별이 빛나는 밤>과 <까마귀가 나는 밀밭>은 용량이 커서 티스토리 블로그에 업로드가 되지 않네요...😢😰😭

빈센트 반 고흐의 <밤의 카페테라스>
빈센트 반 고흐의 <해바라기>

 

비록 고흐는 제도권 교회 안에서 사랑과 희망을 보지 못하였지만, 그의 작품 곳곳엔 여전히 거룩한 사랑과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음을 보여 주기 것입니다.  

 

밀레가 농민들의 애환이나 여려움 등의 주제를 직접적으로 드러냈다면, 고흐는 1880년대 비교적 안정된 시기였기에 작품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신앙을 바탕으로 작품에 희망적인 이야기를 담아 나갔습니다. 그리고 고흐는 자신이 존경하는 고갱을 만나게 될 날을기대하며 <씨 뿌리는 사람>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고흐는  <씨 뿌리는 사람>의 그림을 여러 편 그렸습니다.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 1888년 작품

 

빈센트 반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 / 1889년 작품

 

고흐를 인상주의 화가라고 말합니다. 인상주의란 빛과 함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움직임과 색채의 변화 속에서 자연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즉 빛으로 인하여 순간 순간 색체나 색조가 변하는 것을 눈을 이용해서 세계를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하여 인상주의 화가들은 화실 밖으로 나가 그림을 그렸습니다. 고흐의 <씨 뿌리는 사람>은 임파스토 기법으로 그렸는데, 이는 물감을 붓, 나이프, 손을 이용하여 두텁게 그리는 양식으로 중요한 부위를 강조하는 사용되었습니다.

 

고흐는 쟁기질 되어 있는 밭의 모습을 묘사하기 위해 고심하였습니다. 노란색 뒷배경과 색상의 대비를 이루는 보색인 남색과 보라색을 황토색과 적절히 섞고 임파스토 기법을 거칠게 사용하여 밭의 거침을 묘사합니다.

고흐<씨 뿌리는 사람> 속에는 화가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인생철학과 함께, 전도사로 일하였던 열렬한 신앙관을 그림을 통해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뒤편의 풍성한 밀밭을 배경으로 새롭게 씨를 뿌려나가는 농부는 고된 노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희망에 찬 힘찬 모습입니다.(1888년 작품 참고)

 

2. 손도 발걸음도 마치 군인처럼 위풍당당하게 표현되고 있습니다.(1889년 작품 참고)

3. 아무것도 없는 보라색 빛 농토 위에 농부는 희망을 가지고 감사한 마음으로 다시 씨를 뿌립니다내일도 태양은 뜰 것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1888년 작품 참고)

 

4. 노랗게 빛을 내는 태양도 유일게 어떤 움직이나 흔들림 없이 동그랗고 반듯하게 그렸습니다바로 자신과 만물을 살게 하는 원천이신 하나님 이시기 때문입니다. (1888년 작품 참고)

 

5. 우리가 매일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힘도 하나님께서 언제나 계시고우리를 돌보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빈 들에서 힘들어 하시는 분 계십니까? 오늘 하나님 나라의 씨앗을 심기 위해 애쓰지만 결실이 없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혹 이런 것을 당연하게 여기거나 혹은 의심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면 이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우리는 작품 속 농부처럼 다시 희망과 감사한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하루를 승리하시기를 기도합니다.

 

우리의 일,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씨를 심는 것입니다.

이 거룩한 일에 동참하는 기쁨을 한껏 누리며 사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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