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진리를 지키라
갈 2: 1-5
오늘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과 사도직분을 변호하기 위해 간증을 시작합니다. 간증을 통해 복음과 자신의 사명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말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이 갈라디아 교회에 문제가 되었던 다른 복음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다른 복음에 대하여 어떻게 대응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갈 2:1 / 십사 년 후에 내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갔나니
바울은 예루살렘과 떨어져서 구체적으로는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십사 년 후에 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교회를 방문한 것이 다섯 번 정도 됩니다.
1. 회심한 지3년 후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을 만나기 위함이었습니다
(행 9:26, AD 32년 경).
2. 안디옥교회에서 모금한 구제헌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행 11:29-30, AD 46년 경).
3. ‘예루살렘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 방문합니다(행 15장, AD 49년 경).
4. 2차 전도여행 말미에 방문합니다(행 18:22, AD 52년 경).
5. 3차 전도여행을 마친 후 방문합니다(행 21:17, AD 57년 경).
그런데 십사 년 후에 예루살렘 방문 이유를 학자들마다 조금씩 다르게 해석하는데,
첫째는 사도행전 11장에 나오는 구제를 위한 방문으로 보는 견해입니다.
큰 흉년으로 인해 유대에 있는 교회가 어려움을 겪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보내서 그들을 구제합니다. 이때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둘째 사도행전 15장에 나오는 예루살렘 공의회 방문입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여서 토론하고 이방인도 모세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을 바로 잡는 일을 합니다. 이때 예루살렘을 방문하였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에 나오는 바울의 두 번째 예루살렘 방문이 사도행전 11장의 큰 흉년에서 구제하기 위한 방문이었는지 아니면 사도행전 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에 참석한 방문이었는지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본문에 의하면 바울은 ‘바나바와 함께 디도를 데리고’ 예루살렘을 방문합니다.
바나바에 대하여 성경은 그에 대하여 이렇게 평가합니다.
행 11:24 / 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그리고 디도는 헬라인으로, 바울로부터 복음을 듣고 바울의 제자가 된 ‘이방인 성도’였습니다. 바울이 이방인 성도인 디도를 예루살렘에 데리고 간 이유는 ‘할례를 받지 않은 이방인도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증명하는 증인으로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바울이 바나바와 디도를 대동하여 예루살렘을 방문한 이유는 자신의 사도직을 인정받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더불어 다른 복음을 전하는 거짓 형제들인 율법주의자들을 교회에서 몰아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2절을 보면 예루살렘 방문의 성격이 “사사로이” 한 것이라 말합니다.
갈 2:2 / 계시를 따라 올라가 내가 이방 가운데서 전파하는 복음을 그들에게 제시하되 유력한 자들에게 사사로이 한 것은 내가 달음질하는 것이나 달음질한 것이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자신이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한 이유를 이렇게 말합니다.
“계시를 따라 올라가”...
바울은 하나님 뜻에 따라 예루살렘을 방문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예루살렘 방문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이지 자기 뜻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예루살렘을 다시 방문해서 유력한 자들에게 자신이 이방인들에게 전파하고 있는 복음을 제시합니다.
바울은 이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사도들에게 복음을 사사로이 제시합니다. 쉽게 말하면 공개적으로 하지 않고 개인적으로 했다는 것입니다. 만약 공개적인 자리에서 복음을 제시하고 사람들이 다른 의견을 말한다면 유대인과 이방인의 분열을 가져올 수 있기에 바울은 조심스럽게 이 일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수고와 앞으로의 사역에 걸림이 되지 않도록 지혜로운 방법을 택한 것입니다. 이 복음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토론이 되고 결정된 일은 후에 바울이 아니라 예루살렘 사도들의 의해 진행되었다는 것을 사도행전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동행한 사람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나바와 디도와 함께 예루살렘에 방문합니다. 특별히 디도를 언급하는데 3절에서 언급됩니다.
갈 2:3 / 그러나 나와 함께 있는 헬라인 디도까지도 억지로 할례를 받게 하지 아니하였으니
사실, 바울이 자신의 제자인 디도에게 할례를 받게 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할례를 받으라고 하면 디도는 주저하지 않고 할례를 받았을 것입니다. 더욱이 바울이 디도에게 할례를 행했다면, 당시 안디옥 교회에 들어와서 이방인들도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받는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과의 마찰을 피함으로써 교회를 소란하게 하는 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음의 본질’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입니다.
갈 2:4-5 / 이는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들 때문이라 그들이 가만히 들어온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그들에게 우리가 한시도 복종하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복음의 진리가 항상 너희 가운데 있게 하려 함이라
바울이 거짓 형제들인 율법주의자들과 격렬한 말다툼을 하면서까지 끝까지 디도의 할례를 거부한 이유는 이방인이었던 디도에게 할례를 행하게 한다면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를 믿는 것과 동시에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율법주의자들의 주장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성도들은 율법을 억지로라도 지켜야 되고, 이는 곧 예수께서 오시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무가치한 것으로 만들려는 사탄의 계략에 넘어가는 것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만큼 디도의 할례 문제는 큰 문제였고, 그래서 바울은 필사적으로 디도의 할례를 반대하게 된 것입니다.
4절에 ‘가만히 들어온,’ ‘도둑처럼 훔치려고 몰래 들어온’이라는 말은 그들이 교회에 몰래 들어온 이유는 도둑처럼 훔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 그들은 무엇을 훔치려고 들어온 것입니까? 이어지는 말씀에 그 답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가 가진 자유를 엿보고 우리를 종으로 삼고자 함이로되”
성도들이 누리고 있는 죄로부터 자유를 훔쳐서 성도들을 다시 죄의 종이 되게 하려는데 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도들을 예수 믿기 이전의 상태로 되돌리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인생 여정의 중심에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열어가는 열쇠가 됩니다.
우리가 잘 깨닫고 우리가 전해야 할 가장 기쁜 소식이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 안에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오늘도 주님과 함께하는 가운데 늘 승리하는 주님의 백성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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