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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광야의 길, 눅 4:1-13,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설교문

by tat tvam asi 2025. 2.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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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길

눅 4:1-13 

1 /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마귀가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이 되게 하라

4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된 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 / 이르되 이 모든 권위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내가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된 바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내리라

10 / 기록되었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 또한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13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니라

 

할렐루야! 매일의 삶 속에서 정결한 마음으로 예배를 준비하는 모든 성도님들을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가장 분주하고 또 피곤하기 쉬운 이 새벽 시간에 깨어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르겠습니다.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이 되풀이 되는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기 위해 익숙하고 편한 잠자리보다 깨어있기를 택한 믿음의 성도님들 위에 하나님께서 힘과 능력으로 보답하시리라 확신합니다.

 

시간이 얼마나 빠르게 흐르는지 정신없이 살다보면 어느 새 일주일이, 한 달이, 그리고 일 년이 지나가 있습니다. 주어진 시간 속에서 세월을 아끼지 않고 펑펑 살다가도 문득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제정비하기 위해 제동이 걸리는 순간들이 있지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는 예배가 그런 역할을 하겠습니만, 보편적으로는 새 해, 혹은 어떤 커다란 이벤트를 마주하고 있을 때, 또는 예상치 못한 일이 생겼을 때 등등이 그러합니다. 저 역시 이번에 할머니를 떠나보내고 난 뒤, 세월이 유한하지 않음을, 그러니 더 많이 사랑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것을 다짐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한 일이 없으면 하루하루가 똑같은 어른들과는 달리 매일이 새로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파릇파릇 새싹 같은 우리 어린이들인데요, 이번 할머니 장례식 때도 깜짝 놀란 것이 분명 저번에 보았을 때만해도 요만하던 동생들이 갑자기 대문짝만 하더라고요. 오랜만에 보게 된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할 때도 어른들은 큰 변화가 없는 반면 아이들은 해가 다르게 성장해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맞아요. 매일을 신나게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변화는 무척이나 뚜렷하고 그렇기에 무척 소중합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우리 교회 아이들만 봐도 폭풍성장이라는 단어를 체감할 수 있어요. 이번 2025년을 맞이하면서 유초등부에는 큰 변화가 생겼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7세 유치부 언니오빠들이었던 원빈이, 상훈이, 상현이가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인데요, 올 초까지만 해도 아직 그 사실이 실감이 나지 않더니 이제 3월 새 학기를 앞둔 시간이 다가오자 다들 떨리는가봅니다. 아마 시영이도 떨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을 기다리고 있을 것 같아요. 3 4일이 초등학교 입학이라고 하니 이제 막 학교에 들어가게 된 초보 1학년들이 새로운 환경에 잘 적응하도록 우리 성도님들께 기도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앞두고 아이들에게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아이들이 본격적으로 학업을 시작하기 앞서 예습을 위해 학원에 들어가게 되었고 아마 거기서 개인의 수준을 확인하는 레벨 테스트를 보게 된 모양입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는 인생 첫 번째 시험일 수도 있겠습니다. 어머니 아버지들께 그 과정을 들어보니 당연히 아이들이 시험 내내 많이 떨었고 부담을 느꼈다고 하더군요.

 

시험, 이 단어를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요?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피하고 싶고 어렵게 느껴집니다. 내 자신의 능력에 대해 평가받아야 하는 과정은 사람에게 있어 불편함과 두려움을 안겨주지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은 늘 떨리기 마련이지만 그 시작에 앞서 내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면 그 긴장감은 배가 되겠지요.

 

그렇기에 성경에 나오는 수많은 주제 중에서도 유독 시험에 관하여 사람들의 마음이 무겁게 되고 의문을 일으키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시험하신다니 왠지 모를 거리감이 느껴지죠. 선악과, 아브라함의 번제, 욥의 이야기 등등 하나님께서 인간을 시험하신 일들을 성경은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도 시험에 관한 유명한 본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신 사건이지요. 예수님을 시험한 주체가 마귀니, 하나님의 시험과는 거리가 멀어보이지만 1 2절을 자세히 읽어보면 광야로 가게 한 것과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한 것이 성령의 일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1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 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오늘 본문은 유명한만큼 성도님들께서 이미 잘 알고 계시는 말씀이니, 내용에 관한 이야기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가끔 성경을 읽다보면 하나님이 좀 가혹하시다는 인상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게 보이지요. 굶주림으로 인해 가장 약해져 있는 상태에서 마귀가 시험하도록 허락하시다니, 마치 우리 믿음을 의심하여 끊임없이 증명하도록 하는 기분이 듭니다. 왜 하나님은 인간을 시험하실까요? 도대체 왜 인간에게는 시험이 필요할까요? 왜 성경이 반복적으로 시험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지 한번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성경은 태초의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하나님의 동반자로 창조된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세상을 다스릴 권세와 함께 한 가지 명령을 얻게 되었습니다. 한 나무의 열매만큼은 먹지 말라는 것이었죠. 이는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다스릴지에 관한 시험이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맡은 그들의 신실함을 보기 위해 하나님은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는지 시험하셨습니다.

이건 사실 기회였어요. 위대한 왕의 가장 가까이서 그가 만들어가는 아름다운 세계에 동참할 수 있는 감사한 제안이었죠.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이 사이를 시기하는 누군가의 계략으로 함정이 발동하게 됩니다. 함정은 너무 매력적이어서 왕의 후계자마저도 뒤흔들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왕의 유산을 이어가기를 거절하고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정답을 만들기 시작하였습니다. 시기하는 자의 함정은 사람을 위한 것 같았으나, 결코 그에게 유익을 가져다주지 않았습니다. 오직 왕의 시험을 통해 하나님의 사람들은 성장하고 변화되는 중요한 기회를 얻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지혜를 따라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해 하나님은 하나님의 지혜를 선택하도록 시험하시고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말입니다.

 

그러나 반역자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 귀중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나를 변화하고 성장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시험을 불합리하고, 불필요한 것으로 치부합니다. 그리고 시험에 실패한 혹은 시험을 박차고 나간 사람들이 스스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도록 유도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그분의 동반자로 태어난 사람은 점차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람은 거듭된 하나님의 시험을 나를 향한 부르심이 아닌 거북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인식하게 되었고 그렇게 하나님의 형상, 곧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와 자기 자신 스스로를 파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오랜 시간 애굽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기억하시나요? 하나님은 그들을 자유민으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백성 삼으셨으나 광야 생활에 지친 이들은 하나님을 신뢰하기보다 차라리 과거 노예의 삶으로 돌아가겠다고 소리쳤습니다. 성경은 다양한 사람과 다양한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포기하지 않는 손길과 더불어 인간의 수없는 실패들을 기록합니다. 하지만 이야기는 거기서 끝내지 않았습니다. 성경은 오늘 본문으로 이어집니다.

 

예수님은 성령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가셔서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셨습니다. 다시 한 번 광야입니다. 아무도 없는 그 광야에서 예수님은 하나님과 교제하고 그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와 동일한 육체를 갖고 태어나신 예수님도  40일간의 굶주림은 결코 견디기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몹시 지치고 주린 예수님께 마귀가 찾아와 시험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는지 없는지 평가하는 것이 시험의 목표일까요? 인간의 넘어짐은 여기서 발생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주문에 갇혀서 그렇지 못한 상황이 오면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됨을 의심하고, 또는 하나님의 아버지 됨을 의심합니다. 중요한 것은 능력 그 자체가 아닙니다. 이 시험에서 얼마나 많은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느냐, 얼마나 큰 바위를 떡으로 만들 수 있느냐는 결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 마음의 중심이 어디에 서있는지가 시험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런 마귀의 계략을 간파하셨습니다.  

 

마귀의 함정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이고 근본적인 욕망을 자극하는 것으로 예수님 전에는 그 누구도 그 함정을 피해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축복하기 원하시며 하나님의 생명이 넘치는 놀라운 창조세계로 초대하시기 위해 인간과 수없이 언약의 관계를 맺었으나 인간의 일방적인 불의로 인해 번번히 약속은 깨지고 말았습니다. 구약은 끊임없는 반복되는 인간의 계약파기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증거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이 오랜 굴레를 벗어날 새로운 언약을 보내주셨으니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예수님은 다른 능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함으로 마귀의 모든 유혹을 깨트리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도 역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붙듦으로 마귀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다는 확신과 위로를 주셨습니다.

 

마귀는 시험을 통해 예수님을,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를 넘어뜨리려 합니다. 첫 번째 시험 이후에도 마귀는 포기하지 않고 예수님을 유혹합니다. 예수님을 성전 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무려 성경의 말씀, 시편 91 11-12절 말씀을 이용하여 '천사가 구해줄 것이니 걱정하지 말고 뛰어내리라'라 명하거나, 지극히 높은 산으로 예수님을 데리고 올라가서 '나를 경배하면 천하 만국의 영광을 얻게 될 것'이라고 유혹합니다. 아무 속임수도 통하지 않자 결국 최초의 아담에게 건넸던 그 유혹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그 유혹은 하나님이 아닌 바로 나 자신의 지혜로 선과 악을 판단하고 세상을 다스리라는 유혹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시험에서도 신명기 6 13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만을 섬길 것'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강한 능력이 있는지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든 일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하고, 자기보다 다른 이들을 더 사랑하시며 선으로 악에 맞서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가 직접 선택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시험은 결코 쉽지 않으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따르는 자들에게 힘과 용기와 능력을 주사 능히 승리하도록 하십니다. 광야의 길을 걷는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 날마다 하나님의 양식을, 그분의 지혜를 구하시기를 간구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지혜의 주님을 찬양합니다나의 뜻을 의지하여 살아가던 지난 날들을 내려놓고왕이신 주님께로 나아갑니다매일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선택하여 세상을나라를사회를가정을나 자신을 아름답게 변화시키도록 도와주세요늘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동행하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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