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와 새로운 삶
요 8:1-11
1. 정죄하는 사람들
어느 날 나사렛 출신의 30대 젊은이인 예수라는 사람이 나타나서 굶주린 백성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며 하나님 나라를 가르쳤습니다.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당시 종교와 정치 권력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인기와 권력, 이익을 빼앗아 갈 만한 사람의 싹이 트기 전에 제거하려합니다. 그래서 명분을 만듭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은 예수님에게서 도덕적 흠을 찾아 대중에게 알려 대중의 인기를 지워버리는 전략을 사용하려 합니다.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 올무를 사용합니다. 예수님에게 올가미를 씌우기 위해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을 잡아 왔습니다. 우연히 잡아 온 것이 아닙니다. 때가 언제입니까?
❚ 요 8:1-2 / 예수는 감람 산으로 가시니라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그들을 가르치시더니
아침입니다. 예수님은 감람산에서 저녁에 기도하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성전으로 오실 때, 마치 경찰과 기자들을 동원하여 지키고 있다가 현장에서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과 예수님이 만나게 한 것이지요.
❚ 요 8:3 /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음행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사회 공의를 지키고자 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녀의 죄를 문제 삼고자 한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고 그녀를 돕고자 한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녀를 미끼 삼아 예수님을 제거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여인의 범죄가 재판 요건으로 성립되기 위해서는 남편을 제외한 두 사람 이상의 증인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간음한 남자나 증인은 없습니다. 돈 없고 힘이 없는 여인만 끌고 온 것입니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것으로 예수님을 올무에 걸리게 하려는 것입니다.
❚ 요 8:4-5 /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그런데 성경은 상대의 잘못이 드러나면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지요?
❚ 갈 6:1 /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온유한 심령으로 바로잡으라고 합니다. 그것을 정죄 거리로, 그것을 드러내 놓고 상대를 매장하기 위해 사용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올무로 엮기 위해 '율법에 정통한 자'로 치켜세우는 전략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에게 모세의 법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서기관이고 바리새인들은 법을 집행하는 자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굳이 예수님에게 묻지 않고 자신이 법을 집행하면 되는데도 말입니다. 아침 일찍 수많은 백성을 가르치고 있는 예수님 앞에 와서 모세의 법 운운할 필요가 없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한 여인의 죄를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최대한 이용하려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이중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들의 질문은 교활합니다. 겉으로는 율법에 열심이고 공의를 세우려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은 정적을 제거하기 위한 음흉한 마음이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지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이 법대로 돌로 치라고 하면 그들은 예수님을 사랑이 없는 사람, 위선자로 매도할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예수님이 세리의 친구가 될 수 있느냐고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라(요3:17)"라고 가르쳤는데 그 말씀에 배치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고 한다는 예수님의 모든 말씀은 거짓이라 이야기 할 것입니다.
또한 용서하라 말씀하시면, 예수님은 모세의 법을 깨뜨리는 파괴자라는 공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마5:17)고 하신 말씀이 거짓이라 비난할 것입니다.
2. 용서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에게 어떻게 하십니까? 죄를 이용하여 정죄하며 자신의 목적을 교활한 방법으로 성취하는 정죄자들과는 전혀 다른 방법을 취합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무엇인가 쓰시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다그치듯이 계속 물어 봅니다.
❚ 요 8:6-7 / 그들이 이렇게 말함은 고발할 조건을 얻고자 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이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이때 예수님은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여인이 죄가 있다 없다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용서하라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모세의 율법이 틀렸다고 말씀하신 것도 아닙니다. 그 율법을 통하여 남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를 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통해서 율법의 본질을 말씀하십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볼 줄 알았으나, 자기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알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올무 삼아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릴 생각만 하였던 것입니다.
❚ 요 8:8-9 / 다시 몸을 굽혀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껴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죄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결국 들킨 죄인과 들키지 않은 죄인이 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들키지 않은 권력자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방패로 자신의 죄를 숨기며 위선을 떨고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자리를 피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 요 8:10 /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예수님께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지라고 했다 해서, 간음죄에 대하여 무조건 면죄부를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간음한 여인을 죄인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을 "여자여"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호칭은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에게 사용했던 정중한 호칭입니다(요2:4).
3. 새로운 삶을 살게 하시는 예수님
❚ 요 8:11 /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너를 정죄한 사람이 어디 있느냐"라고 묻자, 그녀는 "주여 없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정죄하지 아니하고 용서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무엇이라고 말씀하시지요?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과거를 정죄하고 고소하는 현장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자유와 해방을 주겠다는 말씀입니다. 과거를 돌아보지 말고 가서 마음껏 신나고 멋진 인생을 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모두에게 제 2의 인생을 살 기회를 주십니다.
❚ 고후 5:17 /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해 주십니다. 지난 날은 어렵고 힘들고 실수하고 어둠 속에 있고 실패하였다 해도 이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다 용서해 주셨을 뿐 아니라, 이미 우리 안에 영으로 다시 오신 예수의 영, 성령으로 함께하고 계시기에, 또한 우리를 이미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히셨기에, 그 선물을 온전히 깨닫고 매순간마다의 삶을 기뻐하고 감사하며 평안 가운데 누리며 살라고 하십니다.
❚ 엡 2:4-6 /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아름다운 삶이 도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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