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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빛이 되시는 예수님, 요 8:12-19, 요한복음 시리즈 설교(42)

by tat tvam asi 2025. 3.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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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되시는 예수님

요 8:12-19

 

오늘 우리 시대, 지구촌 곳곳에 희망을 잃어버리고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요 8:12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얼마나 복되고 희망 찬 말씀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리켜서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창 1:1-2 /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느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혼돈하다는 것은 무질서하다는 것이요,

공허하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텅텅 비었다는 것이요,

흑암이 깊다는 것은 빛이 없으므로 캄캄하다는 말씀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빛으로 말미암아 혼돈하던 곳에 질서가 있게 되었고,

공허하던 곳에 생명이 넘치기 시작하였고, 흑암 속에 밝음이 찾아왔습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오셔서, 우리 자신이 겉거죽의 육신이 아니라 '영혼' 자체이며, 영으로서 사는 것만이 진정한 삶임을 말해주셨습니다.  

별과 별을 운행하며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는 예수님의 신성한 손길이, 우리의 삶과 우리의 몸 속에까지도 속속들이 스며들어 쓸고 다듬고 달래면서 운행하고 있다는 것을 선연하게 느끼게 되면, 여러분은 세상사의 온갖 시름과 번뇌는 저절로 뒷걸음치게 될 것입니다. 

 

빛은 수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내장되어 있는 빛이신 예수, 그 신성과 하나가 되는 것만이 삶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소한 다툼과 분쟁을 일거에 잠재울 수 있는 길입니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곤 하는 마음의 갈등을 종식시킬 수 있는 지름길은 어디 머나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이미 내장된 신성을 알아차리고, 그 신성으로 하여금 발언을 하게 하고, 그 신성으로 하여금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자기 자신을 꽃피우도록 허용하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부터 여러 가지 능력을 받기를 원하고, 드물게는 성령의 임하심으로 인해 예언과 방언의 말을 하면서도, 일상 속으로 돌아와서는 그것과는 거의 무관한 듯이 세상사의 욕망과 부질없는 감정들에 휩쓸여 지내기 일쑤입니다. 그러다가도 몸과 마음이 아프거나 여러 가지 형태의 곤경이 닥쳐 살림살이가 위태로워지면, 다시 성령을, 하나님을, 그리스도를 부르고 탄원하면서, 거기에서 위안을 구합니다. 우리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을 어딘가 낯설고 먼 곳에 모셔놓고는, 가깝게 끌어당겼다가 멀리 밀쳐놓는 일을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생명의 길로 갈 수 있습니까?

 

 8:12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따르다' 동사의 문자적인 의미는 '같은 길에 서다'입니다. 당시 이 동사는 3가지의 경우에 사용하곤 했습니다. 군인이 자신의 지휘관을 따르는 경우와 노예가 주인의 뒤를 따르는 경우, 그리고 제자가 스승을 따를 때입니다. 

 

만군의 주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영원한 지휘관이시고, 죄로부터 우리를 영원히 해방시켜 주신 구원의 주인이시며, 그 어떤 스승과도 비길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의 스승이십니다.

 

살아 있는 모든 것 안에는, 의식의 환경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바깥이 아닌 내면에 말입니다. 내면에서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만을 보고, 하나님을 느끼고 하나님을 이해하십시오. 

 

날마다 일상의 세세한 일들 속에서, 하나님이 나의 안에 함께하고 계시다는 진실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은 실패할 수 없는 분이라는 확신 속에서 사십시오. 모든 그림자 뒤에 가려진 실재이신 하나님을 보십시오. 바깥으로 나아갈 때에는, 두려움을 떨쳐버리십시오.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바로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걷는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요소들 안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고 계시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자신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영의 법칙을 아셨습니다. 모든 필요를 충족시킬 만한 모든 것이, 여러분 안에 그리고 저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 지상에서, 참된 영적 존재가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바로 지금도 여러분과 저는 현재의 국면 안에서 우리 자신을 표현해 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이 작동하고 있는 여러분은 더욱 더 고도로 자신 안에서 하나님의 영이 운행하실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협력해야 하고, 여러분과 저는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고(사 35:10),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다시는 주리지 않을(계 7:16) 영적 왕국의 법칙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사 35:10 /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계 7:16-17 /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

 

그러나 당시 바리새인들은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요 8:13 / 바리새인들이 이르되 네가 너를 위하여 증언하니 네 증언은 참되지 아니하도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자기 선언, '나는 세상의 빛이다'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즉 "나를 따르는 사람은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이 빛을 얻으리라"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갈릴리 나사렛 출신의 배운 것 없는 목수가 무슨 근거로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를 함부로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을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메시아를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분이 갈릴리 나사렛의 천한 목수의 아들이자 목수로 오시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리새인을 비롯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못 믿은 것이 아니라 안 믿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서 이미 '나사렛 예수는 결코 그리스도 일 수가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자신의 증거가 옳음을 주장하십니다.

 

 8:14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여도 내 증언이 참되니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은 자신이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를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8:15-16 /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이 예수님과 함께 계심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8:17-18 / 너희 율법에도 두 사람의 증언이 참되다 기록되었으니

내가 나를 위하여 증언하는 자가 되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느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과 사람들은 "그렇다면 당신의 아버지가 도대체 어디에 계시오?"라고 비아냥거리며 물었습니다.

 

 8:19 / 이에 그들이 묻되 네 아버지가 어디 있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이 질문은 "당신은 하나님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팔아 당신의 주장을 정당화하지 마시오"라는 의미이기도 하고, "당신의 아버지(목수 요셉)는 이미 죽지 않았소" 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질문의 의미가 무엇이든지 간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영적으로 생명의 빛 속을 거닐고 있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에 대해서 아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실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주의 날이 가까이에 있고, 지금 여기에 있습니다. 진실로 주 그리스도께서는 큰 영광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징조들이 땅과 하늘에 있습니다. 고개를 들어보십시오, 영광의 왕께서 오셨습니다(시 24). 

 

시 24:1 /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

시 24:2 / 여호와께서 그 터를 바다 위에 세우심이여 강들 위에 건설하셨도다

시 24:3 / 여호와의 산에 오를 자가 누구며 그의 거룩한 곳에 설 자가 누구인가

시 24:4 / 곧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며 뜻을 허탄한 데에 두지 아니하며 거짓 맹세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시 24:5 / 그는 여호와께 복을 받고 구원의 하나님께 의를 얻으리니

시 24:6 / 이는 여호와를 찾는 족속이요 야곱의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자로다 (셀라)

시 24:7 /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8 /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강하고 능한 여호와시요 전쟁에 능한 여호와시로다

시 24:9 / 문들아 너희 머리를 들지어다 영원한 문들아 들릴지어다 영광의 왕이 들어가시리로다

시 24:10 /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만군의 여호와께서 곧 영광의 왕이시로다 (셀라)

 

이것이 새로운 탄생의 신비이고, 고요 속의 경이로움입니다.

 

지고한 인간 그리스도께서 왕좌에 앉으셨고, 어두움이 그 발 아래에 있습니다.

 

시 18:9 / 그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의 발 아래는 어두캄캄하도다

 

하나님께서는 이 복된 비밀의 소식을 가장 내밀한 곳에 거하는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가장 면 곳까지 파동을 실어나를 수 있도록 말입니다. 주 우리 하나님은 유일한 주님이시고, 그리스도이시기도 합니다. 

 

우리의 참 의식은, 하나님만이 온 천지에 가득하다는것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 고요하게 생각해 보면, 우리는 이러한 앎 안에, 그리고 계속적인 깨달음 속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기에 상응하지 않는 것들은 모두 다 기각되어 버릴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은 바로 그 죄와 무지를 순금으로, 인생의 부요함으로 변형시킬 것입니다. 이것이 본래의 '큰 자아'에 의한 '작은 자아'의 치유이고, 용서이며, 내주하시는 주에 의한, 여러분의 그리스도를 통한 온전한 구원입니다. 여러분과 제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은 만물 안에 있고, 만물을 통하여 있으며, 모든 공간 안에 계십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이, 온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이 말들을 마음에 새기고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모든 만물 안에 깃든 '큰 자아'를 이해할 수 있을 때, 두려움을 쫓아낼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과 저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나 두려움은 제거되어야 마땅합니다. 

 

요일 4:18 /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두려워할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내주하시는 그리스도는 지고의 주님이십니다.

 

여러분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계속적으로 상기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빛이 있는 곳에서 어둠은 힘을 쓸 수 없습니다. 빛 안에서 살면서, 이 법칙이 작동하는 것을 지켜보십시오. '나'를 다스리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전능하신 그리스도 주 하나님이십니다. 

 

두려움 같은 것들은 즉시 제거하십시오.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 안에 함께하고 계시다는 확신을 갖고, 삶을 직면하십시오. 여러분의 처지를 직면하십시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작은 당신'을 잊도록 하십시오. 모든 거짓과 그림자 같은 것들은 잊어버리십시오. 영원히 던져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오직 '사랑'이십니다. 여러분은 '사랑'의 생각으로 마음 전체를 채울 수 있습니다. 성장을 좋게 하려면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 무엇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안에 있고, 하나님은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과 인간은 하나입니다. 믿고 맡기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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