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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기적을 이루는 삶, 요 5:1-9, 요한복음 시리즈 설교(26)

by tat tvam asi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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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이루는 삶

요 5:1-9

 

오늘 본문 말씀을 보면, 예수님께서 베데스다라는 연못에 가셨을 때 일입니다. 이 연목은 다섯 개의 행각이 있었는데, 이 행각에는 늘 온갖 병자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많은 병자가 그 곳에 있는 데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 5:1-3 /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그 안에 많은 병자맹인다리 저는 사람혈기 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의 움직임을 기다리니

 

그것은 천사가 가끔 연못에 내려와 물을 휘저어서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무슨 병을 가졌든지 낫는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었습니다.

 

요 5:4-5 /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는데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

 

그런데 문제는, 언제 천사가 나타나 물을 휘저을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섯 행각을 가득 채운 병자들과 맹인과 절뚝발이와 중풍병자와 손발이 마른 사람들이 각자 자기 자리 위에 누워서 천사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에 38년 동안 누워있는 병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38년된 병자는 그의 생애 전부 질병으로 말미암아 고통 당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병자를 기적의 연못가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38년 동안 한번도 1등으로 연못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이곳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병자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병자가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한 것을 아시고 그에게 묻습니다.

 

❚ 요 5:6 /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래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예수님께서는 38년된 병자에게 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질문을 하셨을까요?

병에 들린 사람 중에서 낫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예수님의 질문은 너무나 당연한 질문 같지만, 훨씬 더 깊은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는 늘 두 마음이 있습니다.

 

하나는 '속히 회복하여 그리운 집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소망의 마음',

다른 하나는 '나는 그런 일을 경험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의 마음'이 있다는 것이지요.

 

예수님의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라는 질문은, "당신은 새로운 삶을 살 준비가 되었습니까?" 라는 의미가가 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절망에 익숙한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의 질문에 "네 낫기를 원합니다"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빙빙 둘러서 이야기합니다.

 

❚ 요 5:7 /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이 말에서 38년 된 병자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① 무능의 마음입니다. 

38년된 병자는 자신을 무능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내가 가는 동안에,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으로 들어갑니다." 자기 스스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상태라고 말합니다.

 

② 다른 사람을 탓하는 마음입니다.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한 38년 된 병자는,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선생님!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들어서 못에다가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자신의 현실을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③ 미움의 마음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늘 다른 사람이 먼저 물에 들어가버리자, 먼저 물에 들어가는 사람에 대한 미움의 마음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오늘 38년 된 병자에게 있어 가장 큰 문제는, 육체의 질병이 아니라 오히려 그 마음이 문제가 됩니다. 비록 육체는 약과 수술을 통해 고침 받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미움으로 가득 찬 마음은 약으로도 의술로도 치료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병을 치유 받을 수 있다는 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자신은 고침 받지 못할 것이라 확신하며 헛되이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는 것입니다. 38년 된 중풍병자는 희망을 가지고 그곳에 있는 것이 아니고 체념한 상태로 있었던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 "낫기를 원하느냐"라고 질문하셨을 때,  "네, 낫고 싶습니다"라는 속 시원한 대답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기적은 언제 일어날까요?

 

나의 삶 속에 기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먼저 생각을 바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말씀하십니다.

 

❚ 요 5:8 /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예수님은 그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조금 이상하지 않으신가요? 이 중풍병자가 걸을 수 있었다면 연못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람은 걸을 수 없는 사람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다른 사람이 돕지 않아도 일어설 수 있다"는 새로운 생각을 심어 주신 것입니다.  

 

언제 기적이 일어납니까?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각의 방식을 내려놓기 시작해야 합니다. 이제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가기 시작합니다.

 

❚ 요 5:9 /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결국 기적은 주님의 말씀을 신뢰하며 생각을 바꿀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생각을 바꾸어 말씀을 따라가는 순간, 그를 묶고 있었던 모든 굴레가 벗겨지고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난 것처럼,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작은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힘 차게 나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기적은 일어납니다. 

 

☞ 제가 몇 년 전에 읽었던 책의 내용을 소개해 드려볼게요. ≪머니룰≫이라는 책인데요. 거기에 나온 이야기를 몇 부분 발췌해서 말씀드립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창조해내는 창조자이다. 우리가 알고 있든 모르고 있든 관계없이, 우리는 언제나 삶의 경험들을 창조해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의도적으로 창조할 수도 있다. 

물질 세상에 있는 모든 것들이 존재하기 전에 먼저 생각이 있었다. 그런 다음 그 위에 생각이 더해지기 시작했고, 그 생각에 충분히 오래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을 때 마침내 형상화되기 시작해서 형체를 갖추게 되었던 것이다.

생각 전환이 필요하다. 우리의 물리적 환경이 매우 단단하고 영구적이고 불변적이고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겠으나, 우리가 사실이라고 말하는 모든 것들은 변화하고 있는 진동일 뿐이다. 우리는 그 진동들을 자신의 지각을 통해 해석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은 단지 진동의 해석일 뿐이다. 귀를 통해 듣는 것, 코로 냄새를 맡는 것, 혀로 맛을 보는 것, 손끝의 촉각을 통해 느끼는 것, 아 모든 것들이 진동에 대한 해석이다. 우리는 아주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고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들에 대해서 합의를 하였기 때문에, 자신이 처해 있는 현실을 불변의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이 현실은 실상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그것들은 물질계에 존재하는 우리가 허용하는 그만큼씩만 바뀌어가고, 되어가고 있으며, 변해가는 것이다. 

우리가 이 물질세계를 근원의 눈을 통해서 볼 수 있게 된다면, 이 지구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 이를테면 우리 자신도 하고  싶지 않고 자식들에게도 말조차 하고 싶지 않은 그 모든 일들로부터 주의를 거두어들이고, 그 대신에 자신의 진동 속에 포함시키고 싶은 일, 즉 우리의 삶에 끌어당기고 싶고 초대하고 싶은 일쪽으로 여러분의 주의를 돌리게 될 것이다. 

근원은 항상 우리 내면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근원과 분리될 수 없다. 우리가 근원과 어느 정도 멀어질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 내면의 근원은 항상 우리 내면에 존재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자신이 근원을 얼마나 허용하고 있는지를, 느낌을 통해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 사랑을 느끼고 있다면, 그때 우리는 내면의 근원과 완전한 진동의 일치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기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서 증오나 미움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는 근원의 진동 근처에도 가지 못한 것이다

우리가 자신에게 허용한 진동과 '진정한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진동, 그 두 진동의 차이는 우리에게 감정의 형태로 나타나게 된다. 기분 나쁜 부정적인 감정들은, 그것이 얼마나 기분 나쁜지 그 정도에 관계 없이 우리가 '진정한-나'에게서 자신을 얼마나 멀리 떼놓고 있는지, 그 멀어진 정도를 알려주고 있다.

사랑, 열의, 확신, 유연성, 생명력 등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삶에 대해 기쁨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진정한 나'인 것이다. 그러나 좌절감, 실망, 분노, 미움,두려움, 암담함 등과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다면, 우리는 '진정한 자신'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진짜 바라는 것에 대해서, 자신이 진짜로 살고 싶은 삶에 대해서 이야기하자! 지금 당장 돈이 충분하지 않은가?  불편한 관계에 있거나 아픈가? 바로 지금 근원과 일치를 이루도록 하자! 근원과 일치를 이루도록 자신을 허용하자! 만일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는 중이라면, 근원에서 멀어져 있는 것이다. 

인생은 마땅히 기분 좋아야 한다!!!

진정한 자신과 일치를 이루었을 때, 우리는 삶이 얼마나 경이로운 것인지 알게 된다. 

기억하자! 우리가 살고 있는 모습이 우리가 진동으로 무엇을 내보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표지판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편안한 느낌'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분 좋은 느낌'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진동을 활성회시킬 수 있는 유일한 순간에, 우리의 삶속에 자신이 바라고 원하는 이야기를 계속 하자! 안 되면 어쩌지 하는 생각이 아니다. 바라는 그 일이 이루어진 기분 좋은 이야기를 계속 해 나가는 것이다. 여태껏 우리의 삶속에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은 것들이 있는가? 있다면 그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말자. 그리고 바라는 이야기를 하자!

바라는 것이 돈인가?  그렇다면 돈의 결핍으로부터 주의를 돌려 돈이 충분한 느낌을 자신의 내면에 활성화시키자! 그렇게 하고 싶어도 잘 되지 않고 자신의 상황이 비관적으로 느껴지는가? 우리는 희망적인 느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다. 

지금 당장 돈이 이미 와 있는 것처럼 가정함으로써, 돈을 마음속으로 맘껏 사용해 봄으로써, 그것을 갖게 된 것이 얼마나감사한지를 상상함으로써, 편안한 느낌을 즐김으로써, 쪼들리는 현실에 대한 불안함에서 벗어나 기분 좋게 만드는 생각들을 더 많이 찾는 것을 통해서, 실제로 우리는 진정한 풍요를 자신에게 오게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이야기에 생각의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의지력을 발휘해야만 한다. 생각의 연습, 감정의 연습을 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바라는 것은, 우리 자신이 창조하는 방법을 터득해서 알아가고 그 과정을 즐기는 유쾌한 창조자가 되라는 것이다. 우리의 소원대로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도록 말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이 책 속에서 저자가 말하는 '근원'을, 바로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으로 바꾸어서 읽었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깁니다.

 

더 기분 좋은 생각을 찾으세요!
그리고 그 생각을 자신이 바라는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세요!
새로운 구현이 일어나는 것을 느껴보세요!
유쾌한 창조자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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