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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남자답게 강건하라, 고전 16:13, 남선교회 헌신 예배 설교문

by tat tvam asi 2024.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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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답게 강건하라

고전 16:13

 

신약 성경에 보면 20개 정도의 교회가 등장합니다. 그 가운데서 특별히 우리의 관심을 끄는 교회가 있는데, 바로 고린도교회입니다. 고린도교회가 관심을 끄는 이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강점과 약점을 가진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교회는 은사 면에서 탁월했고, 열심과 열정에서 누구에게도 뒤떨어지지 않을 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상하리 만큼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어 교회를 개척한 사도 바울의 마음에 늘 근심을 안겨다주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서신을 보면 바울이 고린도 교회가 가진 문제점을 하나하나 지적하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보면 마지막 인사를 다 마치고 돌아서려는 순간에 미진한 것이 생각나 마지막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전 16:13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그런데 이 말씀을 새번역으로 보면 “깨어 있으십시오. 믿음에 굳게 서 있으십시오. 용감하십시오. 힘을 내십시오.” 라고 네 문장으로 풀어 설명하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를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준비하시고,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완성하여 나가시기 원하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오늘도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를 주님의 거룩한 자녀로 삼기기 원하십니다. 이를 오늘 말씀은 "리에게 남자답게 강건하라"말씀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남자다운 것입니까?

고린도전서의 말씀을 따라가다 보면 무엇이 남자다운 것인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고린도전서 1장을 보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 파당을 만들고 있습니다. 서로 편이 갈려 비판하고, 상대방을 미워하면서 싸웠습니다. 이것은 영적으로 약해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파당을 지어 상대방을 헐뜯고 싸우는 것은 영적으로 약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가진 자, 상대방의 허물과 약함을 덮어줄 수 있는 자, 누구나 각자 자기 의견을 가질 수 있고 서로 다른 의견을 주장할 수 있음을 인정하는 큰 마음을 가진 자가 바로 강한 사람이요, 남자다운 사람이라고 말씀합니다.

 

둘째, 남자다운 신앙은 고린도전서 2장에 보면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는 신앙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의 신앙이 남자답게 강건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 있다면 성령님과 동행하는 것입니다.

 

셋째 고전 5장에 보면 음란의 죄악에 넘어지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거룩성을 잘 지켜나가는 것이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 교회는 성적으로 타락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워낙 고린도라는 도시가 성적으로 부패해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물들어 있던 사람들이 예수 믿고 갑자기 거룩한 생활을 한다는 것은 하루 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옛날 습관으로 돌아가 성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면 남자답게 강건한 것이 무엇입니까? 죄를 거부할 줄 아는 힘을 가진 사람, 한 번은 죄를 범하더라고 회개하고 나서는 두 번 다시 그 죄와 손을 잡지 않는 내면의 거룩한 힘을 가진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죄를 짓고 나서 회개하고는 또 다시 울고 불고, 회개하는 모습은 약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약해도 너무 약하였기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었습니다.

 

넷째, 고전 6장에 보면 교회의 문제를 세상의 법정에 가지 않고 교회 안에서 해결해가는 것을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개인적인 문제들을 당사자들끼리 의논하고 합의하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법정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이 어떻게 되든지 자신의 자존심만 내세우는 것도 약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섯째, 고전 8장을 보면 음식을 먹는 문제에 대하여 이는 만일 비본질적 것이라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것이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고린도전서 15장을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와 특히 부활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교회에 이단이 들어와서 성도들을 부추겼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했다는 말은 다 거짓말이다. 그것은 바울의 이야기일 뿐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나느냐?" 그러자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믿음이 흔들리면서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남자답게 강건하다는 것은 내가 한번 진리라고 믿었으면, 누가 무슨 말을 해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결론적으로 고린도전서에서 말씀하는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이란 고린도교회와 같이 어린 신앙이 아니라 좀 더 성숙된 신앙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남자답다' 는 이 말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옛날에는 남자다워야 한다는 말을 오해하여, 약한 사람들을 구타하고, 술먹고, 여러 여자를  거느리고, 이것이 남성다운 것으로 착각하였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여성화가 되어서 남자답다는 말이 부드러운 것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남자' 하면 부드럽고 섬세하고 자상한 이미지로 점점 변해갑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말씀 즉 남자답게 강건하라는 말씀은 사람의 겉 모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하신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우리는 두 세계에 살고 있습니다. 하나는 겉모습의 세계, 다른 하나는 마음의 세계입니다. 겉모습은 그 사람의 조건을 말합니다. 어느 학교, 어느 집안, 직장은 어디, 재산은 얼마, 등등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또 마음은 그 사람이 품고 있는 생각을 말합니다. 그런데 겉 모습은 잘 보이지만, 그 마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모든 사람은 이와 같이 두 세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겉모습의 세계와 마음의 세계...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보고 "남자답게 강건하라"고 명령하는 세계는 어느 세계입니까? 바로 마음의 세계입니다. 이 마음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속사람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속사람이 사랑으로 행하기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16장에 보면, 이새의 아들 7명이 서서 사무엘 앞에 선을 보고 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왕을 뽑으려고 하는데, 7아들 중 누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인지 찾는 것입니다. 사무엘은 외모가 아주 매력적이고 건장한 장자를 보자 '바로 이 사람이구나.' 하고 마음이 뺏겼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삼상 16:7 /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 곧 우리의 영혼, 속 사람을 보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속 사람, 내면 세계는 하나님의 눈이 떠나지 않으시는 거룩한 지성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고전 16:13-14 /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

 

“너의 속 사람이, 내면의 세계가 남자처럼 강건하라. 그리고 모든 일마다 사랑으로 행하라.” 왜냐하면 진정으로 나를 받쳐 줄 수 있는 받침대는 문 밖에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의 속사람에 있기 때문입니다. 건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잘 짓고 튼튼한 건물은 내부의 보이지 않는 골조가 얼마만큼 튼튼하게 잘 설계되었느냐에 따라 좌우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격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겉으로 멀쩡하게 잘생기고 건강하고 남자다워 보여도 별볼일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에게 정말 중요한 것은 보이지 않는 마음이, 속 사람이, 얼마나 강하냐입니다.

사무엘상 28장에 가면 사울 왕이 등장합니다. 사울 왕은 블레셋과 여러 번 전투를 해본 아주 노련한 지휘관입니다. 그런데 전투를 앞두고 있는 마당에서 블레셋 군대를 보자마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자기도 모르게 자꾸 떨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그 마음이 크게 떨렸다고 나옵니다.

 

삼상 28:5 / 사울이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보고 두려워서 그의 마음이 크게 떨린지라

 

사울은 외관상 신장이 크고 건장한 사나이입니다. 게다가 왕으로서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그것이 두려움 마음을 묶어 둘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는 수만 명의 군대가 있었지만 떨림으로부터 자기를 막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해 보았지만 이미 사울을 떠난 뒤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하시지 않자, 그는 너무나 불안하여 무당에게 찾아가 점을 치려고 했습니다. 그만큼 약해져 버린 사울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는 그 다음날 전사하고 맙니다.

 

우리의 마음의 세계가 흔들리면 우리의 전 인격이 흔들리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속 사람이 강건하라고 말씀합니다. 똑같이 전쟁하는 마당이었지만 다윗은 달랐습니다.

 

 18:1 /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다윗은 사울처럼 그렇게 건장한 사나이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조금도 두려워 하거나 요동하지 않고 적군을 향해서 달려갔습니다. 그는 속사람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분명하게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속사람은 얼마나 단단하게 무장이 되어 있습니까? 여러분의 영혼은 얼마만큼 힘을 갖고 있습니까? 어떤 압력을 받아도 붕괴되지 않을 만큼 여러분의 심령은 강하게 무장이 되어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내면의 세계를 남자답게 강건하게 하려면 두 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첫째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것과 기도하는 것은 서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 졸고 있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26:41 /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그러므로 깨어 있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잠들지 않으려면 기도해야 됩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로 나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은 적들의 공격에 쉽게 당황하고, 방황하고, 시험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럼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의 뜻을 늘 분별하기를 원합니다.

 

둘째는, 믿음에 굳게 서라 말씀하십니다.

 

믿음에 굳게 선다는 것은 우리 믿음이 나의 감정이나 상황을 따라서 흔들리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어려운 상황을 맞이할 때 믿음에 우리가 서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불안에 붙들려 있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결국 남자다운 강건한 믿음이라 흔들림 없이 오직 주님을 바라보는 신앙입니다.

 

우리가 남자다운 강건한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 우리에게 힘을 주는 하나님말씀을 항상 붙들고 살아야합니다.

 

딤후 1:7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

 

남자다운 신앙을 가지기 위해서 무엇보다 우리 속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더 강건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고 날마다 기도와 믿음으로 승리하는 주님의 용사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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