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서리라
출 17:8-9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은 마라를 지나고, 엘림을 지나고, 신 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도착했지요. 출애굽기 17장 1-7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을 구하지 못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르비딤에서 물이 없어서 하나님께서 '네 지팡이로 돌을 치면 물이 나온다'고 모세에게 말씀하시고, 그대로 됩니다. 그리고서 그 곳 이름을 므리바라 불렀는데, 그 이유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며 하나님을 시험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불평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르비딤[=므리바] 반석에서 물이 솟아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전에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출 17:8 / 그 때에 아말렉이 와서 이스라엘과 르비딤에서 싸우니라
아말렉은 사막의 오아시스를 찾아 거주하는 민족입니다. 아말렉 사람들은 므리바의 반석에서 샘물이 솟아났다는 소문을 듣고 이 오아시스를 빼앗고자 지친 이스라엘을 공격합니다. 현재 이스라엘 백성은 계속되는 행군으로 지칠대로 지쳐 있습니다.
아말렉은 전쟁에 능한 민족입니다. 이에 비하여 이스라엘을 오합지졸에 불과합니다.
처음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실 때 모세의 자존감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라 말씀을 주시지만, 모세는 여전히 자신의 연약함만 바라보며 연민에 빠져 있습니다.
출 4:1 / 모세가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나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내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네게 나타나지 아니하셨다 하리이다
이처럼 모세는 자신의 연약함만 바라보며 ‘나는 못 해, 나는 할 수 없어’라고 포기하려고만 하였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승천하신 후에 보내주신 보혜사 성령님을 통해 지금도 늘 나와 함께 하시는데, 나는 이를 믿지 않고 '나는 할 수 없다'고 연민에 빠져 지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성공과 행복은 다른 외부의 세계에서부터 오는 것이라 여기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성공과 행복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미 맑고 시원한 생수의 강이 내 안에 있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 7:37-39 /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생수의 강이 우리 속에 있어서, 아무리 퍼서 쓰고 또 쓴다 할지라도 마르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생수의 강이 우리 안에 흐르기에, 다시말해 성령께서 내 안에 임재해 계시기에 우리는 행복을 우리 안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 안에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신 일을 우리도 할 것이요, 그보다 더 큰 일도 할 수 있기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고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네 이웃을 사랑하되 네 자신을 사랑하듯 사랑하라" 하셨습니다.
나를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나의 이웃도 사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마 22:37-39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로렌스 크레인’이라는 작가가 쓴 <자기 사랑> 이라는 책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에 대하여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성공한 사업가요 물리학자인 레스터 레븐슨이란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42세에 궤양, 편두통, 황달, 신장결석에 두 번째 심장마비가 와서 2-3주 밖에는 살 수 없다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았습니다. 얼마나 인생이 억울합니까? 성공의 정점에서 건강이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그는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고 자신을 뒤돌아봅니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보니 인생의 성공과 행복을 추구하며, 앞만 보고 달려온 인생이었습니다. 그는 늘 다른 외부적인 환경과 상황에만 집착을 합니다. 예를 들자면, 나의 업적, 나의 공로, 돈, 명예가 자신을 행복하게 할 것이 여기며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시한부 인생이 되니 이 모든 것이 부질없다는 생각이 든 것입니다.진정한 성공과 아름다움을 내 안에 하나님이 이미 주셨음을 시한부 인생이 되어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자신이 행복한 일을 시작합니다. 과거의 일들을 되짚어보면서 자신이 사랑하지 못했던 누군가가 생각나면, 그 사람을 찾아가 사과를 하든지 아니면 찾아갈 수 없는 사람이 미워하였던 마음을 내려놓고 긍휼한 마음으로 자기 마음을 바꾸어 나가기 시작하였습니다. 사랑의 마음을 흘려보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을 하면서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였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 것입니다.어떤 일이 일어나면 먼저 자기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보면 우리도 작은 일만 생겨도 스스로 자책할 때가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운전을 하다가 한 블록 더 가서 좌회전하여 한참 동안 돌아 나아가야 할 때, '참 내가 바보같다'고 스스로 자책하지요. 과거의 일을 떠올리며 그때 내가 잘못 선택해서 지금 이 모양 이 꼴이라 생각할 때도 많이 있어요.
사실 우리도 잘 알고 있잖아요. 스스로 자책을 한다고 우리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음에도 우리는 습관적으로 자책하는데 익숙합니다.
의사들의 말을 따르면 우리 몸에 찾아오는 많은 통증의 원인은 자기도 모르게 늘 자신을 자책하고 자신을 탓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은, 마치 야구방망이를 들고 매일 거의 하루 종일 자신의 머리를 내려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그럼으로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스스로를 자학하는 부정적인 괴롭힘을 멈추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끔 삶의 전환점을 만들고 싶어질 때가 있지요? 최고의 기쁨을 느끼고 싶으시다구요? 내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자책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실수로 커피를 엎질러도, '뭐 그럴 수도 있지 괜찮아' 생각하고 자신을 사랑하세요.
감기와 같은 작은 질병에 걸렸을 때도, 그리고 큰 질병에 걸렸다 할지라도, '아 하나님의 잠시 쉬었다 가라고 하시는구나' 생각하며 자신의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세요.
그리고 하나님께 쉴 수 있도록 인도하심을 감사드리고 자신을 사랑하세요.
시험을 망쳤을 때도, 사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할지라도, 카드 청구서가 날아왔을 때에도, 은행 잔고가 비었다 할지라도, 물질이 메말라 간다 할지라도, 지갑을 잃어 버렸다 할지라도, 자신을 사랑하세요. 스스로를 책망하거나 자기 비난을 하지 마시구요!
성령님께서 내 안에 임재해 계십니다. 그러기에 실수가 없으신 주님이 나를 통하여 가장 좋은 길로 역사하여 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거기에서부터 참된 자기 사랑이 시작됩니다. 온전한 행복을 선택하고 싶으시다구요? 자기 자신을 깊이 사랑하여 주세요.
몇 일 전 싸고 맛있는 뷔페집이 있다고 하여서 식구들과 과천에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내비게이션을 잘못 보는 바람이 한 블록을 더 가게 되었습니다. 늦게 출발하여 배가 많이 고픈 상태였는데, 길까지 잘못 찾아가게 되니 마음에서 짜증이 확 올라오더라구요. '나는 참 바보 같아! 왜 맨날 내비를 잘못 보는지 모르겠어... '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자책의 소리가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자 옆에 앉아 있던 딸이 "아빠, 괜찮아! 그 덕에 새로운 길을 알게 되었잖아!"라고 말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 소리를 들으니 아름다운 길과 거리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실수하여 갔던 길이지만, 그 길목에서 발견한 부다페스트 찻집에 들어가 빵과 차를 마시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자가 바로 '나'이기에, 주님의 능력이 내 안에 있음을 믿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모세의 믿음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니다.
히 11:24-26 / 믿음으로 모세는 장성하여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 받기를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이전에는 '나는 할 수 없다'는 패배의식에 빠져 있던 모세가,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비결이 있다면 '나를 사랑하사 나에게 날마다 능력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본 까닭 아니겠습니까?
오늘 모세가 아말렉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이 무엇입니까? 나를 통하여 역사하시는 주님을 믿고 자기를 신뢰하며 나아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기도의 손을 들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묘사된 이 전쟁은 이상하게도 모세가 손을 올리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이스라엘이 패배하는 식으로 전쟁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출 17:11 /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더니
그런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야말로 손을 들어 기도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기도의 필요성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기도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만 보더라도 위대한 모세조차 피곤하여 손이 내려 왔다는 것은 기도가 힘을 잃었다는 것이겠지요.
출 17:12 / 모세의 팔이 피곤하매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아래에 놓아 그가 그 위에 앉게 하고 아론과 훌이 한 사람은 이쪽에서, 한 사람은 저쪽에서 모세의 손을 붙들어 올렸더니 그 손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아니한지라
우리도 기도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독려해 주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필요합니다. 함께 모여 기도하면 좀 더 효율적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모세의 행복은 기도의 동역자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론과 훌, 이들 두 사람이 손을 들고 있었던 모세의 양쪽 팔을 붙들어 올리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서울남연회 여선교회 집회에서 참 아름다운 모습을 제가 보았습니다. 여선교회 회원 중에 여든이 훌쩍 넘으신 이금자 권사님과 아흔이 되신 박정숙 권사님이 함께하였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박정숙 권사님의 사시는 곳이 수원이라 먼 곳인데, 이금자 권사님께서 같이 가자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니 함께 가시게 되었다고 말씀하시더라구요. 이처럼 우리에게 함께 손을 들고 기도하는 동역자가 중요합니다.
내가 어려움을 만났을 때, 아픔이 생겼을 때 즉각적으로 그것을 알리기만 하면 함께 기도해 줄 수 있는 기도의 네트워크가 필요합니다. 모세에게 있어, 아론은 모세의 형이고, 훌은 모세의 누이 미리암의 남편입니다. 이처럼 가족이 먼저 기도의 힘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가족이기에 성도 중에 힘들어 하고, 아파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손이 올리지 못하고 있을 때 서로를 위하여 함께 기도하여 승리하는 주님의 자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은 모세가 손을 들었더니 승리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본문을 보다 자세히 보면, 모세가 손만 든 것이 아닙니다. 그 손에 지팡이를 잡고 있었습니다.
출 17:9 /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이르되 우리를 위하여 사람들을 택하여 나가서 아말렉과 싸우라 내일 내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산 꼭대기에 서리라
모세는 전쟁터에 나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이 산꼭대기에 설 때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고 서리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모세는 손만 들어올린 것이 아니라 그 손에 지팡이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왜 이 힘든 순간에 지팡이를 잡았을까요? 도대체 이 지팡이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한 마디로 말하면 그 지팡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4장에 보면 하나님이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고자 할 때 모세는 자신의 처지를 보면서 완강하게 거부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모세는 지팡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지팡이를 잡고 바로에게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지팡이가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임재의 상징으로써 하나님의 손에 잡힌 지팡이가 된 것입니다.
출 4:20 /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여기서 보면, 모세가 지팡이를 잡았습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는 보통 지팡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팡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산 위에서 금속 지팡이를 높이 들면 태양 빛으로 인하여 금속이 반짝 반짝 빛을 발합니다. 그러니까 모세가 산꼭대기에서 쇠조각이 붙어 있는 자기 지팡이를 흔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때 산 아래 골짜기에서 싸우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지팡이가 빛을 내는 모습을 보면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번쩍이는 지팡이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진지하게 기도하기 시작하면 그저 단순히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집중하고, 그분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짖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을 주목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집중하여 주목할 때 그때부터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행복, 건강, 부 그리고 마음의 평화가 한 사람의 사랑하는 능력에 따라 결정된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자신이 찾아낸 자기 사랑의 비밀을 다른 사람들도 발견하도록 도우며 42년을 더 살았다고 합니다. 의사에게 2-3주밖에 살 날이 남지 않았다는 진단을 받았었는데 말입니다.
이번 한 주간, '주님이 나에게 능력 주심을 깊이 체험하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음을 선언하며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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