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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황금률, 마 7:11-12,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수요 예배 설교

by tat tvam asi 2024. 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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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률 

 

 7:11-12

 

11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할렐루야! 언제 날씨가 따뜻해지나 했는데 어느덧 봄이 되었습니다. 봄이 얼마만큼 왔는지 가늠하는 저만의 방법이 하나 있는데요, 바로 교회 맞은 편의 개나리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얼마 전부터 슬금슬금 필 준비를 하다가 이제는 활짝 만개한 꽃들을 보니 시간이 흐르고 완연히 봄이 된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참 놀랍죠? 올해 2023년이 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년 중 4분의 1인 한 분기가 지나고 4월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날이 추울 적에는 황량하게 서있던 나무들이 하나둘씩 예쁘게 옷을 입으면 거리에도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따뜻한 바람을 타고 들어온 설렘에 사람들도 덩달아 예쁘게 옷을 입고 나들이를 갑니다. 지난 주일 날씨가 하도 좋아서 예배 후 교회 청년부원들과 함께 한강에 갔는데, 글쎄 서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한강에 있더라구요.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에 설레는 것은 어른뿐만 아니죠. 아이들이 더 신났습니다. 만약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느끼기에 꽃보다 더 강력한 것을 보고 싶은 분들이 계시다면 초등학교 운동장이나 놀이터에 가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놀이터는 그야말로 에너지의 집합체입니다. 뛰어노는 아이들 옆에 있기만 해도 그 강력한 에너지의 일원이 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어요. 집 근처에 공원이 있어서 자주 산책하곤 하는데 시간이 맞으면 수업이 끝난 아이들이 공원 놀이터에서 노는 것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한 3월 초만 해도 좀 서먹한 공기가 없지 않아 있었는데 지금은 너도나도 절친입니다. 뭐 야 여기와 이거 봐봐 친구야 뭐 하자!어찌나 활기가 넘치는지 놀이터 안에 걸어 다니는 아이가 하나도 없습니다. 다 뛰느라!😊💖💕

 

그런데 겉보기에는 아이들이 마구잡이로 뛰어다니는 것 같지만 그 안에도 다 규칙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술래잡기를 할 때 놀이기구 위에서만 뛰어다닐 수 있다던지, 땅에서는 뛸 때는 깽깽이걸음으로 가야 한다던지 같은 소소한 규칙들이 있습니다. 서로 합의하에 규칙을 만들고 지키고, 만약 지키기 어려운 위험한 순간이 오면 타임을 외쳐서 게임을 잠시 중단하고, 그러다 다시 놀고. 그렇게 여러 차례 반복하다 보면 아이들 사이에는 관계가 형성됩니다. 처음에는 서먹해도 집에 갈 때쯤에는 다음에 또 보자라고 말할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져 있습니다. 심지어는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놀다 보면 무엇인가 그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입니다. 성별과 나이 환경을 뛰어넘어 친구가 되게 하는 것은 놀이터의 마법입니다.

 

제가 이 모습을 보며 크게 깨달았습니다. 작년 유초등부 전도사가 되어 사랑하는 아이들을 맡게 되었을 때 이렇게 결심을 했었습니다. 내가 사당중앙교회 유초등부를 복음 안에서 바르게 자라나는 아이들로 교육해야지 다짐했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게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성장은 제 노력과 열정으로 되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제가 아무리 강단 앞에 서서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말해도 아이들에게는 크게 와닿지 않습니다. 실감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함께 뛰어놀고 맛있는 것을 먹고,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때 아이들은 교회에서 사랑을 배우고 또 교회에 오고 싶어 합니다.말로만 전하는 복음은 효력이 없습니다. 아이들에게 사랑과 섬김을 알려주고 싶다면 내가 먼저 그렇게 행동하면 된다는 것을 배워나가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태복음 5장부터 7장에 이르는 예수님의 산상수훈 중 한 부분입니다예수님은 사람들에게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 주십니다무엇을 해야 되고 또 하면 안 되는지 자세히 설명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 말씀하십니다오늘 본문을 한번 더 함께 봉독 하시겠습니다..

11 /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12 /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지금 읽은 본문 마태복음 7 12절에는 '황금률'이라는 이름이 붙어있습니다. 이 별명은 한 일화에서 시작되었는데요... 로마의 24대 황제 알렉산더 세베루스가 이 말씀을 자신의 궁에 황금으로 써서 벽에 붙일 정도로 귀중히 여겼다는 전설적인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정말 황금으로 써서 각인할 정도로 오늘 말씀은 깊이가 있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과 함께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가장 대표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입니다. 

 

간혹 구약을 율법과 계명의 말씀으로만 바라보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남에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하시면서 이것이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성경이 가르치는 핵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마태복음 5 17절에 등장하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구절과 일맥상통합니다. 율법과 계명은 곧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거나는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사랑이라는 거대한 줄기에서 나온 세부적인 사항입니다.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신구약을 관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줍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의 가르침만 우리에게 남겨 주셨다면 이 말씀이 지금처럼 와닿지는 않았을 것 같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원자로, 인도자로 고백하며 그 가르침을 따르는 이유는 예수님이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함께 마태복음 11 19절을 봉독 하도록 하겠습니다.

 

 11:19 /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말하기를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지혜는 그 행한 일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당시 예수님의 별명은 '먹보'요, '술꾼'이었습니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해 볼까요? '식충이 술고래, 끼리끼리 논다'입니다...  방금까지 멋지게 많은 무리들 앞에서 선포하시던 예수님께 붙이기에는 좀 불명예스러운 별명이지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의 행위가 그저 기행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나누며 예수님이 자신의 삶에 일부분이 되신 것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그 모든 순간이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천국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잘 가르치는 사람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더 많이 행동하는 사람임을 아셨습니다. 삶과 하나 되는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향해 사람들은 말합니다. 마태복음 7 28절로 29절의 말씀입니다.

 

 7:28-29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 일러라

 

예수님은 내 삶을 이해하십니다예수님께는 비판이 아닌 헤아림이 있었습니다율법의 실천여부로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던 율법학자들의 차가운 눈과는 달리 예수님의 눈에는 죄에 가려진 내가 보입니다원래 비판의 목적은 사물의 옳고 그름을 밝혀내어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지만사실 비판이 그 원 목적대로 사용된 적은 매우 적죠

 

우리는 비판을 상대를 때리기 위한 공격의 도구로 사용할 때가 훨씬 많습니다예수님께서 비판하지 말라하신 이유는 사람의 마음속에 도사리는 이러한 이분법적 편가름을 경고하신 것입니다나와 다른 모든 것을 부정으로 결론짓는 인간의 약함을 아시기 때문입니다그렇기에 예수님은 오히려 잘 판단하라고 말씀하십니다예수님의 헤아림은 아무것도 따지지 않는 무분별한 사랑이 아닌나와의 만남을 통해 나를 직접 알아가고 다양한 방법으로 나를 측량하는 말하자면 고급 기술입니다다른 사람이 볼 때는 나병환자세리창기에 불과하던 인물들이 예수님의 헤아림을 통해 제자로친구로식구로 새롭게 소개됩니다비판을 통해서는 변화가 일아날 수 없습니다사람들의 인식 속에 넌 이런 사람이야라고 한번 찍히게 된 낙인은 계속 고정되기 때문입니다그러나 헤아림은 나를 상대를 그리고 우리를 돌아보게 합니다잘못을 실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죄와 사람을 구분해 내는 지혜를 얻게 됩니다.

잠시 우리 교회에 찾아온 어여쁜 공주님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가 한비입니다. 한비를 아시는 분들은 이미 입가에 미소를 띠고 계시네요. 지금까지 살면서 생일축하를 딱 한 번 받아봤을 정도로 나이가 어린 아가 한비는 식사를 할 때도 잘 때도 앉아있을 때도 보호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만 보면 한비가 사람들에게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냐면 한비가 한번 웃으면 거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웃거든요. 교회에 한비가 찾아오는 날에는 잔치가 열립니다. 근엄하게 앉아있던 어른들도 최대한 귀엽고 깜찍한 목소리로 한비를 부릅니다. 그러다 아기가 웃으면 함께 즐거워합니다. 혹시 아기가 운다고 해도 아기를 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오히려 아기가 무엇이 필요한지 살피지요. 아기는 있는 그대로 인정받습니다. 모든 표정과 몸짓이 다 포용됩니다. 어린 아기를 재단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처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을 온전히 겪은 아기들은 커서 규칙을 배우고 따르고, 심지어는 직접 규칙을 만드는 어린이로 성장하게 됩니다.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에게 하라는 말씀은 사당중앙교회에 온 아기 공주님을 보는 사랑의 마음과도 같습니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다른 사람의 눈 안에 담긴 나를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는 예수님이 계시고 또 서로의 존재가 담겨있습니다. 아기와 놀아주며 웃긴 표정과 목소리를 낸다고 그 사람을 멍청하게 보는 사람은 없죠. 오히려 아기에게 맞추어 자기를 낮추는 그 모습에 덩달아 행복한 감정을 느낍니다. 그렇게 아기를 웃겨주다 보면 어느새 주변 어른들이 더 많이 웃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껏 교회는 세상의 더러움으로부터 멀어지려고 노력해 왔습니다.인간의 욕구와 욕망을 금하는 것이야 말로 참된 신앙의 길이라 생각해 왔습니다.그러나 몸소 낮은 자리에 오신 예수님은 먹보와 술꾼이라는 별명을 자처하시며 죄인과 함께 하셨습니다. 꾸짖음이나 일방적인 설교가 아닌 즐겁게 식탁을 나누며 친구가 되어주셨습니다. 어떻게든 더러움을 피하는 것으로 정결함을 유지하려고 하던 종교인들과는 달리, 예수님은 기꺼이 스스로를 내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거기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람들이 나아와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며 주님의 길을 걷기를 바란 것입니다.

 

지금은 사순절 기간입니다담대히 죄인이 되신 예수님이 결국 죄와 죽음과 세상으로부터 최후 승리를 거두시고 그 부활의 기쁨에 우리를 초대하신 감격을 누리는 시간입니다내가 예수님의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을 대할 수 있는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그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저는 이 복된 사순절 사랑하는 성도님들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묵상하기 위해 집에 계시지 마시고밖으로 봄 나들이를 나가시기를 적극적으로 추천드립니다햇살 속에서 행복하게 웃는 사람들의 표정에 같이 미소 지으시고,떠들썩하게 뛰어노는 아이들에게 사랑을 느끼시기 바랍니다그리고 집에 돌아오며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원합니다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주님 감사합니다. 이 사순의 기간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 사랑을 감격하여 주님께 나아갑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나를 그리고 남을 사랑하게 도와주세요. 이 봄에 따스한 햇살로, 활짝 핀 꽃으로, 사람들의 웃음소리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깨달아 세상 곳곳에서 주님을 발견하는 주의 자녀 되길 원합니다. 받은 사랑을 세상에 흘려보내어 이 땅에서 주님의 나라 이룰 수 있도록 제 몸과 마음을 지켜주세요. 항상 함께하시며 인도하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딸, 감신 동문(😊💖💕) 전도사의 설교문이다! 항상 딸의 설교에 큰 은혜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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