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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갈 6:1-5, 갈라디아서 시리즈 설교(26)

by tat tvam asi 202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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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갈 6:1-5

           

"잘 되면 내 탓, 못 되면 조상 탓"이란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잘 된 일의 공은 자기가 한 것이라 말하고, 잘못된 일은 다른 사람의 탓을 합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 1-2절을 통하여, 신앙공동체 안에서 존재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져야 할 짐이 무엇이며, 또한 3-5절에서는  '내'가 혼자 져야 할 짐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 바울은 신앙공동체 안에서 내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져야 할 짐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나요?

 

갈 6:1 /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바울은 본문에서 믿음의 가족이 죄를 범하면, 교회 공동체가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야 할까를 질문합니다. 바울은 '신령한 너희는' 이라고 부르며 그 다음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령한 너희'는 과연 누구인가요?

 

우리가 5장에서 교회 안에서도 성령에 따라 행하는 성숙한 이들이 있고, 여전히 육체를 따라 행하는 미숙한 이들이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금 바울이 부르고 있는 '신령한 너희는'에 속하는 사람들은 성령을 따라,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숙한 믿음의 사람들을 지칭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야기하려는 것은, 일단 교회 속에서 죄를 범한 것이 드러난 형제 · 자매가 있으면, 판단하고 정죄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성령에 따라 행하는 신령한 이들에게 그 문제를 다루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 신령한 자들을 향해 '온유한 심령'으로 바라볼 것을 당부합니다. '온유'는 겸손함과 온순함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비록 범죄한 형제·자매라 할지라도 그들을 대할 때, 겸손함으로 온순하게 대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잘못에 대해 야단치고 꾸짖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러한 자를 바로잡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말입니다. 죄를 지은 자들이 다시는 같은 죄의 길어 서지 않고, 죄를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밝히는 것이지요. 이것이 범죄한 형제, 자매를 치리하는 진짜 목적입니다.

 

그러면서 바울은 이런 상황, 즉 믿음의 형제·자매들이 범죄하고 타락하는 상황을 방지하고 최소화하기 위하여 한 가지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6:2 /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는 말씀은 '그 사람이 무슨 범죄한 일이 있을 때' 일방적으로 그 사람을 몰아붙이고 비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사람의 허물을 곧 나의 허물처럼 여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짐을 서로 지는" 본을 먼저 보이신 분이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지심으로 우리를 자유하게 하셨듯이, 우리도 짐을 함께 나눌 때, 형제의 허물도 무거운 짐도 가볍게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고 말씀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법'이 무엇입니까?

 

 5:13 /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그리스도의 법'이란 '함께하는 마음이요 함께하는 행위'입니다. 신앙공동체에 속한 성도들 간에 책망과 책망의 아픔까지도 나누면서 함께 짐을 지라는 것입니다.

 

둘째, 바울은 개인이 질 짐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6:3 / 만일 누가 아무 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본문에서 말하는 '아무 것도 되지 못한 것'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바울은 5장에서 성령의 열매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육체와 함께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그리스도인은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본문에서 아무 것도 되지 못했다는 것은, 아무런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한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마치 무슨 열매라도 맺은 것처럼 거들먹거리고 있으면,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것이라고 바울은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삶 속에서 드러나야 하는 진짜 중요한 것은, 성령과 함께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삶을 살도록 기도하며 성령 안에 머물러야 겠지요. 그리고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며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모든 믿는 자들에게, 자기의 일을 살피라고 당부합니다.

 

 6:4 /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성령의 열매가 나에게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이고, 성령과 함께하는 삶이라면 당연히 드러나야 할 성령의 열매가 나에게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라는 말입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삶을 성찰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이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끄심임을 알기에, 내가 자랑할 것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성령의 열매도 성령께서 함께하심으로 맺어진 것이기에, 내가 자랑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6:5 /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이 말씀은, 우리들이 하나님 앞에  설 때 결산하는 의미로 해석하기에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는 종국에, 하나님의 앞에서 각자 자기의 짐에 의한 자신의 삶을 책임질 날이 있다는 의미라고 해석해보고 싶습니다. 자기 짐이 무엇인지도 살펴보아야겠네요. 내가 삶을 영위하며 그 속에서 드러난 결실들, 열매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성령의 이끄심대로 살았다면 그 짐은 성령의 열매로 가득할 것입니다. 하지만, 입으로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육체의 정육을 따르기 바빴다면, 썩어 없어질 세상 열매로 가득할 뿐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두 가지 내용의 짐에 대해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짐은 믿음의 형제, 자매가 죄를 범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버거워했던 삶의 짐이었습니다. 이 짐에 대해서는 교회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짐은 내 삶을 통해 맺게 되는 결실들, 열매들입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 앞으로 짊어지고 가서, 펼쳐 보여드려야 하는 내 삶의 내용이라고 저는 해석해 보았습니다.

그 짐에 세상의 열매, 육체의 열매만이 가득하다면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 서게 되겠지요.

하지만 성령의 열매가 가득하다면, 또한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 공동체의 일원으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가져야 할 올바른 태도는, 내가 섬김을 받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상대를 섬기려는 자세여야겠지요.

우리는 사랑 그 자체가 되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현하고, 우리의 삶을 감사로 아름답게 물들이고, 하나님께서 이루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모습을 존귀하 여기며 그들 모두의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찬미하는 삶을 살아야해요. 그래야 참 행복을 하늘로부터 선물 받습니다.

 

4천 년 전에 중국인들은 '크다'는 뜻의 글자를 만들려고 고민하였습니다. '재물이 많으면 큰 사람인가? 권력이 강하면 큰 사람인가? 아들이 많으면 큰 사람인가?' 의논을 거듭하던 끝에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 크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사람의 등에 가로로 짐()을 올려놓고 이를 '크다()'는 뜻이라고 칭하였다고 합니다.

여러분! 그거 아시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려고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짐을 자기 몸에 지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오늘 나의 짐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지고, 다른 사람의 허물의 짐을 나누어지는 아름다운 믿음의 백성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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