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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일하시는 하나님, 요 5:10-18, 요한복음 시리즈 설교(27)

by tat tvam asi 2024.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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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시는 하나님

요 5:10-18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38년 된 환자를 고쳐주신 날이 바로 '일을 해서는 안된다' 는 유대인의 안식일이었습니다. 구약의 상징은 안식일을 지키는 것으로 대표됩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예수님이 병을 고치신 날이 안식일이었습니다. 따라서 유대인들은 이 문제를 그냥 넘어가지 않고 꼬투리를 잡아 예수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요 15:10-11 /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하니

 

전혀 소망이 없는 병자가 고침 받아 건강하게 되었다면,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을 드려 마땅한 일인데도 불구하고, 당시 유대인들은 험악한 눈초리로 바라봅니다. 그리고 고침 받은 사람이 자기 침상을 메고 길로 걸어 나가자, 이를 바라보던 유대인들이 비난을 합니다.

 

요 15:12-13 / 그들이 묻되 너에게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고침을 받은 사람은 그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유대인들은 38년 된 병자에게, "너를 고쳐준 자가 누구냐"하며 따져 물었습니다. 고침 받은 사람은 처음에는 고쳐주신 분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였으나, 후에 자기를 고쳐주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을 알고는 자기를 고쳐 준 사람이 예수님이심을 선포합니다.

이 환자는 38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으니 얼마나 집이 간절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이 사람은 집으로 곧바로 가지 않고 성전을 사모하며 교회로 나아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에, 그리운 집보다 교회를 먼저 찾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향하여 "나의 질병을 고쳐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다"라고 자신 있게 전했습니다.

 

 5:14-15 /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이 환자를 보면 은혜가 넘쳐 기쁨으로 가득하고, 그로 인해 발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지요!

마치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고 난 뒤에, 영원한 생명의 생수를 깨닫고 난 뒤에, 물동이를 버려두고 정신없이 동네로 뛰어 들어가 "내가 메시아를 만났다" 간증하며 다녔던 것처럼, 38년 된 이 병자도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여 주셨음을 선언합니다.

그러자 이 일로 인해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하고 병을 고쳤다는 이유로 핍박한 게 아니었습니다.

종교적인 계율, 형식, 율법, 자기들의 권위, 기득권을 깨뜨려 버렸기 때문에 용서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요 5:16 /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게 된지라

 

안식일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요 5:17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여기에 대해 예수님께서 답을 주셨는데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입니다. 즉 하나님은 안식일에 일하시는 분입니다. 아버지가 태초로부터 이제까지 일하시니 예수님도 일하신다는 뜻은, 안식일에 쉬는 것만 있는 게 아니고 일하는 것도 있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에 두 가지 요소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이 천지창조를 완성하시고,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가지는 일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 · 쾌락을 위한 일이 아니고, 이웃을 살리기 위해 구원의 사역은 계속 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지금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끊임없이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랍비들은 안식일에는 옷에 바늘을 하나 달고 가도 그는 죄를 범하고 있는 것이라고 엄숙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러니 병 고침을 받은 사람이 자기 침상을 메고 가는 것은 율법을 정면으로 범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하였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은 안식일에 대한 것을 규정으로 정하였습니다. 구체적으로 39가지 유형(類型)으로 나누어 이것은 되고, 저것은 안된다는 법칙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짐을 운반하는 일도 만들어 졌습니다.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제 7일에 안식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창조'하시는 일에서 쉬셨습니다.

그런데 자비와 긍휼과 사랑과 같은 일은 계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가 안식하신 것은 오직 '창조'만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은 안식일에도 베풀고 계신다. 그래서 나도 일한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이지, 결코 정지(停止)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과 자비에는 정지가 없습니다. 오히려 구원의 역사(役事)가 더 강하게, 더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役事), 구원의 역사에는 정지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성수 주일즉 안식일을 지킨다는 말은 세상에서 하던 일을 잠간 멈추고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고성도들 간에 교제를 나누며불우한 이웃들을 돌봄으로서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役事)를 이루며나아가서는 영혼을 소생(蘇生)케 하는 것입니다그런데 안식일을 이해하지 못하였던 유대인들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분노를 감추지 못했던 것입니다.

요 5:18 / 유대인들이 이로 말미암아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더욱 분노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을 자기의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하게 여기기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율법에 정통한 유대인이라고 하지만 정작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분이 바로 예수님임을 몰랐던 것입니다.

 

마 12:7-8 /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니라

 

유대인들은 안식일의 주인되신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생명 주시길 원하시는 예수님을 알지 못했습니다. 

 

안식일에, 38년 된 병자는 예수님을 만나서 새 생명을 얻고 참된 안식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참 안식은 끊임없는 역사를 만듭니다. 새 힘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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