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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너희 안에 계신 이, 요일 4:4, 2024. 8. 25. 주일 설교

by tat tvam asi 2024. 8.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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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안에 계신 이

요일 4:4 /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지금 한국교회와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부흥'입니다. 부흥의 의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부흥이란 '쇠잔하던 것이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즉 '다시 살아나는 것'입니다. 쇠잔하던 것, 죽었던 것이 다시 살아나는 것! 쇠잔하던 인생이 다시 일어나고, 쇠잔하던 가정이 다시 살아나고, 쇠잔하던 교회, 쇠잔하던 나라, 쇠잔하던 우리의 다음세대가 다시 일어나고 살아나는 것, 그것이 바로 부흥입니다.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부흥을 전하시는 열정과 사랑,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새바람으로 생기가 불어와야 하는 한국교회, 마른 뼈와 같은 다음 세대에 부흥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교회사를 보면 부흥은 언제나 시대적으로 가장 어두운 암흑기에 시작되었습니다. 잘 먹고 잘 살 때는 내가 영적으로 어떤 진보를 이루어나가야할지를 제대로 깨닫기 어렵습니다. 건강하고 부족함이 없을 때에는 내 내면에 대한 성장에 마음이 덜 쓰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말 그대로 잘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언제 자신의 실재에 대한 깨달음에 목마름을 느끼게 될까요?

 

잘 살던 사람이 갑자기 잘 살지 못하게 되었을 때, 안정적으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안정적이지 못한 상태가 되었을 때, 부족함이 없던 사람이 갑자기 부족함이 있는 사람이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이 영적으로 갈급한 상태라는 사실을 느끼게 되고, 그 때 비로소 영적인 부흥을 갈망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에서 우상 숭배하며 잘 살고 있을 때는 자신들이 얼마나 영적으로 메마른 상태인지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신들의 영적인 상태를 언제 알게 되었습니까? 그들의 나라가 망하고, 70년 동안 바벨론의 포로로 살아가게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들의 죽어 있는 영적인 상태를 자각하게 되었고, 비로소 부흥의 토양이 준비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귀신들린 아이를 치유하지 못한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질문합니다.

 

 9:28 /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귀신들린 이 '소년'은 쇠잔해 있는 오늘날 이 땅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귀신들린 소년을 치유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지만 실패합니다. 이런 제자들의 모습은 마치 영권을 잃어버린 한국 교회의 모습과 같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9:29 /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제자들이 실패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제자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지금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9:14 /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제자들이 실패했던 이유는 문제의 본질을 분별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제자들은 그저 자신들의 의견을 변론하는 자리에 섰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침투하여 그 마음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성령의 권능'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을 구하고 그것을 위해서 기도하기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오늘 우리의 삶을 영위하는 영적인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을 온전하게 영위하기 위해서는 만유의 주재자이신 권능의 주재자이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셔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이 있을 때, 우리는 마음의 허다한 두려움을 내어쫓을 수 있고 참다운 사랑의 실천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타고 가는 배가 큰 파도를 만나서 풍랑에 뒤집힐 것 같은 위기가 닥쳤을 때, 제자들은 ‘이제 빠져 죽겠구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곤히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웠습니다.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물에 빠져 죽게 되었으니 주님이 일어나셔서 우리를 살려 주십시오." 간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시어 바람과 바다에 명령하십니다. 그러자, 자연도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물결이 잔잔해집니다. 바람도 잠잠해집니다.

 

 4:39 / 예수께서 깨어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그런데 예수님께서 "바다더러 이르시되 잠잠하라 고요하라" 말씀하신 이유는 바람의 배후에 마귀가 있다는 것을 알기에 마귀를 향하여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풍랑과 바람의 배후에 있던 마귀가 더 이상 흔들지 못하고 곧바로 평안이 찾아오기 시작합니다.

 

기드온의 300용사가 미디안 군대와 싸워 이길 때, 처음 기드온의 나팔소리를 듣고 32,000명의 군인이 기드온 앞에 나옵니다.

 

 7:1 /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기드온의 32,000명의 군대가 진을 친 곳이 하롯 샘인데, 하롯은 '떨림'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지명을 통해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이 당시 미디안 군 앞에서 떨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만일 전쟁하러 나왔는데 두려워 벌벌 떨며 “우리 군대 수가 적은데 이제 다 죽겠다” 라고 부정적으로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두려움은 동료의 사기마저 빼앗아 갑니다. 두려움은 전이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집으로 돌려보내라 말씀하십니다.

 

 7:2 /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주님이 행하심을 믿는 300용사를 통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역사는 펼쳐졌습니다.  

 

 7:22 /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결국 우리 인생 승리 비결은 우리 인생의 배후에 있는 영의 역사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받고 말하기를 시작할 때 새로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2.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야 마귀가 들어오는 통로를 차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마귀의 세력을 깊게 생각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내가 예수님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마귀의 미혹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사랑해도 마귀의 미혹과 시험에 걸릴 수 있습니다. 

 

시몬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고 고백하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를 알게 하신 분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고 말씀하시며 베드로를 칭찬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자신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장로들과 수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일들로 고난을 당하고 죽임을 당하며 셋째 날 다시 부활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잡고 예수님을 꾸짖기 시작하며 "주여그럴 수 없나이다이 일이 결코 주께 임하지 아니하리이다라고 말합니다물론 이렇게 말하는 베드로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베드로는 이것이 최선의 방법이라 생각하였을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16:23 /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우리는 여기서 마귀가 베드로의 마음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볼 수 있습니다.  

"사탄아, 너는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

→ 이 말씀은 말씀 그대로 사탄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 이 말씀은 베드로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마귀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틈타는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할 때 사탄이 틈타고 있음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하여서는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십시다. 하나님의 일을 생각할 때 마귀가 들어오는 통로를 차단하는 것입니다.

 

3. 영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신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때, 예수님은 다 하실 수 있다고 믿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4 4절을 다 같이 한번 읽어 보십시다.

 

요일 4:4 / 자녀들아 너희는 하나님께 속하였고 또 그들을 이기었나니 이는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에, '힘들다. 안 된다. 할 수 없다...'는 파괴적인 생각이 마음에 들어올 때마다 “너희 안에 계신 이가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심이라” 말씀주신 주님을 믿고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마음의 짐들, 우리를 정죄하는 모든 정죄감, 우리를 고소하는 고소장, 우리를 괴롭히는 원수들, 버거운 상황들, 모든 무거운 짐을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다 속량하셨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속량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짊어질 모든 무겁고 버거운 짐들이 예수 안에서 녹아지고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2:14-15 /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성도 여러분! 우리 마음에 '힘들다안 된다할 수 없다...' 같은 부정적인 생각이 들어올 때마다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주 예수여! 나를 긍흉히 여겨주옵소서!"의 예수 기도를 읊조리십시오. "아바 아버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나를 사랑하시니, 감사합니다!"라고 외치십시오! 예수님에게는 참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 그 이름 안에 비밀이 있습니다. 예수 이름의 권세와 능력을 믿는 자마다, 그 권세와 능력에 머물게 되고 그 권능을 우리 삶에 실현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나흘 동안 제가 몹시 고통스러운 적이 있었습니다. 갈비뼈에 금이 간 것처럼 통증이 심하여, 앉았다 일어섰다가 어렵고, 구부릴 수가 없을 정도로 고통이 아주 심하였습니다. 무거운 것을 들라치면, “아!” 소리를 낼 정도였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우려 해도 너무 아파서 누울 수가 없고, 간신히 누워 잠을 잤는데 새벽에 일어나려고 하면, 통증이 밀려와 간신히 새벽기도를 다녀 올 정도였습니다.///

 

바로 이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반드시 낫는다고 굳게 믿고, 치유된 모습을 상상하며,

"예수님의 사랑으로인해, 나는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다시 태어났다!" 반복하여 글로 쓰고,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나의 무의식에까지 큰 영향을 주어 예수님의 치유하심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치유하심으로 '반드시 낫는다'는 믿음은, 그 자체로 강력한 치유 에너지입니다. 믿음은 두려움을 밀어내고,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줍니다. 예수님에게 생명 있음을 느끼며 나아갈 때, 치유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기도할까요?

◦ 먼저, 조용한 장소에서 편안한 자세로 앉거나 누워서 눈을 감습니다.

◦ 천천히 숨을 내쉬면서 자신의 호흡에 집중합니다.

  그리고 숨을 들이마시며 ‘주님이’, 숨을 내쉬며 ‘내 안에’ 를 속으로 읊조립니다.

◦ 예수님의 영이 내 안에서 나와 함께함을 느끼며,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시는

  주님께께 사랑의 감정을 생생히 느끼는 것입니다.

◦ 그리고 천천히 눈을 뜨고, 가장 멋지게 보이는 거울 앞에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 대한 격려와 축복의 말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늘의 신령한 복덩이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존귀한 친구입니다."

 

어느 성도님에게 고등학교 3학년과 초등하교 2학년인 2명의 딸이 있다고 합니다. 

늦둥이 둘째 딸이 학교 수업이 2~3시쯤 마치면 "아빠 어디에서 놀다 올께요"라고 하고는 그때부터 물 만난 고기처럼 신나게 아파트 주위에서 친구들과 신나게 논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자 아이라 가끔씩 놀다 보면 남자 아이들이 심기를 건드리나 봅니다.

 

그러면딸이 아빠에게 바로 전화를 합니다.

"아빠 OO이가 나에게 바보라고 놀렸어"

"아빠 OO이가 나를 발로 찼어"

 

이런 전화를 받으면 이분은 옆에 있는 아이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스피커폰으로 전환하라 딸에게 말하고 큰 소리로 말한다고 합니다.

"그럼 아빠가 지금 바로 그쪽으로 간다고 말해라."

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늦둥이 딸이 아이들에게 고함치는 소리가 들립니다.

"너희들 그 자리에 가만히 있어. 우리 아빠가 지금 오고 있다구"

그러면 그 아이들은 늦둥이 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멀리 도망가 버리고 만답니다.

 

비록 늦둥이 둘째 딸이 또래보다 체력도 약하고 키도 좀 작지만,

절대 기가 죽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이럴진데, 하늘 아버지의 우릴 향하신 사랑이 얼마나 더 크십니까?

 

오늘 아직도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이때, 나를 붙드시고 새 능력으로 인도하는 기도하는 자리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가정과 교회 그리고 나의 삶의 모든 영역마다 성령이 이끄시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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