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 좋게 하랴
갈 1:10
만약 내가 삶의 바람직한 목표와 방향과 관계없이 사람들에 의해 움직인다면 내 삶은 이리저리 휘둘리고 중심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질문이 오늘의 제목입니다.
갈 1:10 /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누구에게 좋게 하랴” 이 질문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이 둘 중에 하나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런 고민을 안고 사는 우리에게 오늘 말씀은 중요한 원리를 가르쳐줍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사람이냐 하나님이냐’라는 선택에 대해서 “누구에게 좋게 하랴” 라는 질문에 대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할 수 있도록 중요한 사실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교훈을 마음에 새김으로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서 고민할 때마다 하나님을 선택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 지난 본문을 잠깐 생각해보면 바울은 다른 복음을 받아들인 갈라디아 교회를 책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떠나 거짓을 따르는 자에 대해서 저주를 선포합니다. 엄하게 꾸짖은 다음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가 오해하지 않도록 자기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바울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만약 바울이 사람에게서 기쁨을 얻고 사람의 주목을 받으려고 했다면 갈라디아 교회에게 이런 책망의 편지를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를 책망할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 자신의 책망이 다른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님을 이야기합니다.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편지를 쓰고 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른 누군가로부터 안 좋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의 잘못이나 실수를 지적받을 때, 혹은 책망을 들을 때, 그것이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니까, 안 좋은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에게 ‘왜 나한데 저런 말을 하는 거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책망한 것은 사람에게 잘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그런 의도가 없음을 말합니다. 바울은 당당하게 지금까지 자신이 한 일에 대해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다 고민이 되고 유혹이 되고 또 어려워하는 문제를 두고 바울은 어떻게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요? 오늘 본문에서 바울이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알면, 우리도 그 원리를 따라 사람을 의식하고 사람의 인정을 받고 싶을 때, 사람이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일 때, 그럴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지금까지 한 일에 대해서 그 동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갈라디아 교회가 이 편지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도록 바울 자신이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쓰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혹은 사람의 눈치를 보는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그의 삶의 동기와 목적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사람의 기쁨을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사는 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의 삶의 방향과 목적은 항상 하나님이 우선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어떻게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는 걸까요? 사도 바울이니까!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고 쉬웠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바울 역시도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고 싶은 유혹과 사람에게서 오는 압박이나 어려움들이 많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가 사람을 위해 살지 않고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알 때 그에 따른 내 삶의 목표와 방향이 분명해지게 됩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빠 · 엄마 그리고 학생이다’ 라고 했을 때 내가 아빠 · 엄마 학생이라는 사실을 알고 아빠 · 엄마 학생이라는 신분을 바르게 이해한다면 아빠 · 엄마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들이 분명해집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하여 ‘나는 믿는 사람이다’ 라고 했을 때는 어떨까요?
나는 믿는 아빠, 엄마이고, 나는 믿는 학생이라고 말할 때, 내가 누구인지 바르게 이해한다면 자연스럽게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것들 중에 상당 부분이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면 말씀에서 바울은 자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갈 1:10 /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였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바울은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갈림길에서 만약 자신이 사람을 선택했다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꾸어 말하면 자신은 “그리스도의 종”이기에 하나님을 택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바울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쁨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어떤 사람입니까? 자신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이것은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그 선택에 있어서 올바른 방향으로 인도하는 중요한 지침이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래서 종은 주인의 명령을 따릅니다. 종에게 가장 중요하고 우선되는 것은 주인입니다. 주인의 인정이 우선이고 주인의 기쁨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합니다. 그의 모든 관심은 주인을 기쁘시게 하는 데 있고 그것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사람을 무시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일은 무조건 책망 받을 잘못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려고 혹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하나님 말씀을 왜곡시키거나 하나님을 우선순위에서 뒤로 미루거나 사람을 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입니다.
바울의 이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이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누구에게 좋게 하랴” 는 질문으로 자신을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해서, 나의 삶의 목표와 방향과 하는 일에 대해서 ‘사람이냐, 하나님이냐’ 스스로 점검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점검한 결과가 ‘하나님’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은 우리 삶에 있어서 가장 우선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의 만족과 기쁨을 위해서,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서 우리 삶에서 주님의 자리를 없애버리거나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 삶에 최우선 순위에 제일 앞자리에 계셔야 합니다.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내가 진정으로 섬기고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말입니다. 나는 정말 마음으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나를 바라보는 사람들을 섬기고 있습니까? 나는 지금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나는 지금 누구의 종인지, 누구에게 관심을 두며, 누구를 따르고 있는지, 누구의 칭찬을 바라고 있는지, 누구의 주목을 받으려고 하는지, 정말 나의 마음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당부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람들을 배려하고 사람들을 섬기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가장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칭찬과 인정을 바라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은혜를 나누십시오. 하지만 사람들에게서 기쁨을 구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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