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증인
누가복음 24장 44-48절
44 / 또 이르시되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 하시고
45 / 이에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46 /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것과
47 /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에서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48 /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할렐루야!
지난 주 주보에 주일 오후 예배 설교와 수요 예배 설교에 다 제 이름이 올라간 것을 보신 한 성도님께서 저에게 "서현 전도사, 설교 복 터졌네!"하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이 나서 수요 말씀을 준비하는 동안 계속 웃으며 작성했던 것이 기억에 납니다. 맞아요. 우리 귀한 성도님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다니 저는 참 복이 많은 것 같습니다. 특별히 사순절 기간,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 그리고 구원의 기쁨을 묵상하는 이 소중한 시간에 감사한 마음을 담아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은 누가복음의 가장 마지막 장, 마지막 장면에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모든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최후 승리를 거두신 후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내용이에요. 성격상 부활절에 어울릴 주제이지만 그럼에도 오늘 이 본문을 나누고자 하는 이유는 우리가 이미 부활의 영광을 보고 그 안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르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기에 사순절 기간 동안에도 기쁨과 확신으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나가길 원하는 마음에서 말씀을 준비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행적, 말씀들을 기록한 복음서 중 오늘 배경이 되는 누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는 달리 독특한 방식으로 시작합니다. 누가복음 1장 1절로 4절의 말씀입니다.
1:1 /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1:2 /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내력을 저술하려고 붓을 든 사람이 많은지라
1:3 / 그 모든 일을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1:4 / 이는 각하가 알고 있는 바를 더 확실하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는 복음서의 첫 시작과 마무리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중요한 임무를 소개합니다. 바로 증언의 임무입니다. 복음서의 서두를 통해 누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중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목격자가 전하여 준 그대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 부활을 모두 경험한 목격자들의 증언들을 따라 이를 근원부터 자세히 살핀 누가는 예수님에 대해 증언하기 위해 글을 작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온 세상에 구주되시며 교회와 믿는 자들은 이 사실을 널리 증언해야 하는 사명을 갖고 있음을 확신하며 복음서를 기록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는 다양한 수식어를 안고 활동합니다. 그리스도인, 제자, 자녀, 교회 성도, 그런데 그중 크게 부각되지 않았던 단어가 있었어요. 바로 증인입니다. 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24장 48절 곧 복음서의 거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누가는 성경을 읽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이 사실을 강조합니다.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증인!!! 증인은 있는 사실 · 사안에 대해서 그것을 증명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증인이 자기가 경험한 바를 그대로 진술하는 것은 증언이라고 하지요. 증인이라는 용어를 마주하였을 때 가장 먼저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것은 법정 혹은 이단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처럼 증인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그 느낌이 무겁고 딱딱하여서 우리 같이 일반적인 상황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크게 상관이 없는 말처럼 느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증언의 행위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모든 사람에게 매순간 있는 굉장히 일상적인 행동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실을 증명하거나 증명하기 위한 말을 함으로 자신이 보고 경험하고 이해한 것을 다른 사람과 공유합니다. 증언은 지극히 작고 일상적인 순간에서도 이루어지는데, 예를 들면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어떤 식당으로 갈지 결정을 내리기 위한 대화 속에서도 증언을 발견할 수 있어요.
"오늘 점심에 길 건너편에 새로 생긴 백반집 갈까?"
"어, 아니야... 거기 말고 다른데 가자. 내가 가봤는데 거기 양이 적어서 별로더라고..."
그 날의 식사메뉴를 정하는 아주 사소한 선택이라 할지라도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남들에게 증명함으로 자신의 입장을 드러내고, 결정을 공유합니다.
자신이 보고 겪은 바를 나누고 싶은 것은 모든 인간의 특징인 것 같아요. 심지어 그 특징은 어린 아이들에게도, 아니 어쩌면 어린 아이들에게 더 잘 드러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유초등부 전도사로 있다 보면 아이들에게서 온갖 정보를 들을 수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있었던 모든 신나고 재밌는 이야기들을 전해주거든요. 아이들은 자신이 새로 배우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을 마치 제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알려줍니다. 심지어는 한글로 자기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에 대해서도 저에게 알려줘요. 자신의 모든 경험을 신나게 전하는 아이들은, 때로 매서운 증인이 될 때도 있습니다. "어제 우리 엄마랑 아빠랑 싸웠다요! 돈 없다고 싸웠대요! 아빠가 나 데리고 놀이공원 가기로 했는데 자느라 못 갔어요..." 😁
사랑하는 성도님들! 어린이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많이 보고 느끼고 알고 있으니, 항상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아무튼 자신이 가진 정보를 바탕으로 남들과 소통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 스스로가 옳다는 확신을 얻고 싶은 이 증인의 마음과 증언의 행동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당연한 삶의 방식입니다.
그렇지요!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가장 아름다운 것들을 허락하사 그것들을 보고 듣고 찬양하게 하셨는 걸요. 하나님과 인간은 서로에게 있어 사랑과 생명, 창조의 목격자요 증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토록 중요한 관계에 있었건만 인간은 자신들이 경험한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불의로 왜곡하고, 거짓 증언에 귀를 기울이는 비극에 빠지게 됩니다. 창세기 3장 1절로 6절의 말씀입니다.(새번역)
뱀은, 주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들짐승 가운데서 가장 간교하였다. 뱀이 여자에게 물었다. "하나님이 정말로 너희에게, 동산 안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말씀하셨느냐?"
여자가 뱀에게 대답하였다. "우리는 동산 안에 있는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동산 한가운데 있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다. 어기면 우리가 죽는다고 하셨다."
뱀이 여자에게 말하였다. "너희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여자가 그 나무의 열매를 보니,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람을 슬기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여자가 그 열매를 따서 먹고,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그것을 먹었다.
하나님은 생명의 증인으로 인간을 창조하셨으나 인간은 그 범죄함으로 인해 스스로 사망의 증인이 되길 자처하였습니다. 그 후 인간의 역사는 부패와 폭력으로 가득하게 되었고, 생명이 가득한 세상을 죄악으로 다스리기 시작했습니다. 이 변화는 예견된 일이었습니다. 목격한 자만이 증인이 될 수 있는데, 이제 사람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아닌 죄악된 세상이 먼저 들어오게 되었으니 하나님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짧은 인생을 살며 유한한 것에 목숨을 걸고 증명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며 하나님은 그 삶을 불쌍히 여기사 한 민족을 택하셨습니다.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지요. 하나님은 당신의 신실하신 뜻과 능력을 이스라엘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들이 경험한 것을 다른 모든 민족에게 증언하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열방을 여호와께 이끄는 제사장 나라로 선언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9장 4절로 6절 말씀입니다.
출 19:4 / 내가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출 19:5 /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출 19:6 /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
하지만 우리가 본 바와 같이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좋은 증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목격한 중요하고 놀라운 일들을 행하시는 하나님을 증언하기보다 순간의 감정과 욕망에 자신을 저버리기 시작했고, 곧 우상숭배와 불의를 행함으로 스스로 증인의 자격을 박탈하였습니다. 순간마다 상황에 따라 증언이 바뀌는 증인의 말이 무슨 효력이 있겠습니까?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아끼신 만큼 하나님은 그들의 배신으로 크게 슬퍼하셨습니다. 번번히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괴하는 이스라엘을, 아니 우리 인간을 보며 하나님은 결국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요? 놀랍게도 하나님은 더 큰 사랑을 보내주셨습니다. 누가복음 4장 17절로 19절의 말씀입니다.
눅 4:17 /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눅 4:18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눅 4:19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하나님께서는,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눈 먼 자들의 눈을 열어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를 증언할 수 있는 증인의 자리로 초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한 궁극의 증인이십니다. 바로 이 놀라운 사실이 우리에겐 복음입니다. 아무 효력도 능력도 가치도 없는 자격이 박탈된 증인을 다시 불러 세워주신 사건이 복된 기쁨의 소식입니다. 궁극의 증인이신 예수님은 우리가 증언해야 할 것을 다시 보게 하시고 좋은 증인이란 어떻게 행동하는지 알려 주셨습니다. 누가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곧 돌아온 탕자의 비유를 통해 죄악된 우리의 모습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바라보게 하시는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은 이제 한평생 아버지의 것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께 매인 몸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전 타락과 방종으로 가득했던 죄악 된 삶을 살았을 때 느끼지 못했던 자유와 해방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가 매인 것은 의무와 속박이 아닌 아버지의 사랑에 붙들렸기 때문입니다. 아마 탕자는 삶을 마치는 순간까지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리며 그 터져 나오는 감격에 스스로를 가누지 못한 채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아버지의 은혜를 말 할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지 아셨습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심정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로 증인의 자리에 서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계획과 의견, 왜곡된 시야로 말하기를 시작한 사람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심으로 보고 경험하고 이해하게 하셨습니다.
엠마오로 향하던 두 제자를 기억하시나요? 이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에 고향 엠마오로 돌아가는 중 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 날 아침에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에 다녀와서 알린 믿지 못할 소식과 그 후 베드로가 무덤을 다시 찾았으나 예수님의 시신은 발견하지 못하고 다녀온 이야기를 나누며 고향으로 향했습니다.
무덤을 찾은 여인들이 예수님이 살아나심을 보고, 예수님의 가르침 곧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겨져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는 생전의 말씀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였지만 아직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고 그 시신을 도난당했다고 생각하며 슬퍼하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그만큼 제자들에게 큰 절망감을 안겨주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로마에 의해 고통 받고 있는 조국 이스라엘에 정치적인 해방을 가져다 주리라 예상했지만 그들의 메시아는 허무한 죽음으로 끝을 내었고 이 사실은 그들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3년 동안 동거동락하던 위대한 스승을 잃은 채 제자들은 예수님을 알기 전으로 돌아가는 것만이 가장 나은 방법이라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던 일은 이제 먼 과거처럼 여겨집니다.
길을 가던 도중 두 사람은 이상한 동행을 얻게 됩니다. 그 동행자는 요상하리만큼 천연덕스럽습니다.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도 메시아인 줄 알았던 예수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로마 권력자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한 그 유명한 사건을 혼자만 모르고 있습니다. 두 제자는 아직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 한 상태로 그 동행자에게 그간 있었던 모든 일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사건을 증언하면서도 그 마음이 혼란하였고 답답하였고 뭐가 뭔지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 증언을 듣던 동행자는 말합니다. 누가복음 24장 25절로 27절의 말씀입니다.
눅 24:25 / 이르시되 미련하고 선지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눅 24:26 /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눅 24:27 / 이에 모세와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동행자의 증언은 두 제자의 증언과 다르게 생생하며 살아있고 혼란하던 마음을 뜨거운 성령의 불로 타오르게 합니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이야기를 듣던 그들은 곧 고향 엠마오에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두 제자는 더 길을 가려는 동행자를 초청하여 자기들과 함께 집에 머물기를 강권하였고, 그를 위해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마침내 그가 빵을 집어 축복하시고 떼어 그들에게 주시자 그들을 깨달았습니다. 그 동행자는 바로 다시 사신 예수님이십니다.
눈이 뜨인 그들은 서로 말하기를, “주님께서 길에서 우리와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 기록들을 열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하고는 바로 그 시각에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에게 자신들이 보고 들은 바를 증언하였습니다.
불변하고 영원한 진리의 증인이 되신 예수님은 몸소 그 증표가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믿지 못한 제자들의 눈을 뜨게 하사 그들로 하여금 진정한 하나님 나라의 증인으로 세워주셨습니다. 목격자들의 증언은 온 사방에 퍼지게 되었고 이 증언에 확신을 가지게 된 누가는 자신도 증인이 되기 위하여 예수님의 삶과 행적, 죽음과 부활을 증언하였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이루어진 사도들의 사역에 대해 상세히 기록합니다.
사순절을 지나며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할 때, 두 제자의 고백과도 같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구원, 성령의 역사하심이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 때 우리의 입술 또한 열릴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 속에서 날마다 증인의 사명을 감당하시길 기도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오늘도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 주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구원을 찬양합니다. 언제나 한결같으신 신실하심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사 주의 은혜를 보게 하셨습니다.
이 사순의 기간, 예수님의 십자가를 마음에 새기며 약한 나로 강하게, 가난한 날 부하게 눈먼 날 볼 수 있게 바로 내게 그 기적을 행하신 주님을 따라갑니다. 한없는 기쁨을 마음에 안고 입을 열어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참된 증인의 자리로 나를 세워주세요. 항상 지키시고 인도하시고 동행하실 것을 믿으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교회에서 함께 사역하는 딸, 감신 동문(😊💖💕) 전도사의 설교문이다! 항상 딸의 설교에 큰 은혜를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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