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참여하는 우주에 살고 있다"
관찰자의 의식은 거시세계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가?
현대과학의 발견에 대한 영감어린 통찰과 심오한 문답
☆우리는 누구인가? 왜 여기에 존재하는가?
☆우주는 왜 이처럼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가?
☆시간은 어디에서 왔으며, 현실은 결국 마음의 산물인가?
☆양자 세계는 일상생활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가?
☆우리는 졍말 의식을 가진 우주에 살고 있는가?
인류 역사상 두 가지 위대한 세계관인 '과학'과 '영성'
최종 목적은 모두 정말로 '진짜'인 것을 찾는 것
이 우주는 존망 그 자체가 인간 존재에 달려 있는
'참여우주participating universe'임을 입증하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다.
요즘 우주론자들은
"살아 있으면서, 의식하며, 스스로 진화하는",
완전히 새로운 우주 이론을 개발하고 있다.
이런 우주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어떤 표준 모델에도 맞지 않는다.
창세기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의 작품으로 묘사된 우주는 물론, 양자물리학의 우주도 아니다.
'의식이 있는 우주consciousness universe'란,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방식에 반응하는 우주다.
이 우주는 자신의 모양, 색깔, 소리, 감촉을 우리에게서 얻는다.
"인간적 우주human universe", 이것이 진짜 우주이며, 우리의 유일한 우주다.
우리의 인식perception은 세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인식
▶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인식
▶ 때로는 바꿀 수 있고 때로는 그럴 수 없는, 경계에 있는 인식
현실에는 이 세 가지가 한데 섞여 있다. 만약 입고 있는 셔츠가 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당신은 이를 바꿀 수 있다(변경 가능한 인식).
당신이 벽을 통과할 수 없다면 이는 변경 불가한 인식에 속한다. 각 범주에 속하는 수백 가지의 예를 계속 들 수도 있다. 삶의 맛은 우리가 바꿀 수 있는 인식들에서 온다.
안정적인 삶은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인식에서 온다. 만약 당신이 월요일에는 중력의 법칙을 따르지 않기로 결정할 수 있다면, 당신의 몸이 원자의 안개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걸 시작으로, 혼돈의 세상이 일어나게 된다.
하지만 정말로 매력적인 것은 세 번째 범주, 즉 때로는 바꿀 수 있고 때로은 그럴 수 없는 인식이다. 이곳에서는 양자이론이 우리의 자연 참여를 더욱 곤혹스럽고 동시에 유혹적으로 만든다. 이것은 입자와 사람 둘 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그림자 지대를 만들었다.
참여하지 않고 수동적으로 있는 것은 더 이상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모든 인식은 현실에 참여하는 행위다. 우리의 행동은 매일 진화의 최첨단, 즉 마음이 신중함과 호기심 사이에 낀 지점에 존재한다. 가장 명백한 예가 기적이다.
어떤 인간이 한때 물 위를 걸었고, 하룻밤 사이에 암을 치료할 수 있고, 죽은 자들이 살아 있는 자들과 소통한다고 믿고 싶지 않은 사람이 정말 있겠는가? 하지만 , 기적에 대한 진짜 논란은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가 없는가가 아니라, 이들이 어떤 범주에 속하는 가다.
기적은 세 번째 범주, 즉 때로는 일어나고 때로는 일어나지 않는 범주에 들어맞을 때만 가능하다.
물론 당신은 완전한 배제(무신론자와 회의론자의 고정된 태도) 또는 완전한 포용(종교적으로 독실한 이들의 고정된 태도)을 실천할 수 있다.
당신의 태도가 고정되지 않았다면, 당신은 선견지명이 있는 양자이론의 선구자인 볼프강 파울리의 부류에 속한다.
그는 "이건 제 개인적 의견인데 미래의 과학에서 현실은 '정신적인psychic' 것도 '물질적인physical' 것도 아니라, 둘 다이면서 둘 다가 아닌 무언가가 될 겁니다"라고 말했다.
과학이 피하는 단어, '정신적인'을 사용함으로써 파울리는 어떤 종류의 궁극적인 미스터리를 가리키고 있었다.
우리가 우주라고 부르는 방대한 물질적 메커니즘은 이중통제를 받는다. 즉 자연의 법칙에 복종하면서 동시에 생각에 복종한다. 이것이 우리가 현재 불확실한 우주에 살고 있는 근본 이유다. 하지만 파울리가 마음과 물질이 혼합된 현실을 '물질과 마음 둘 다이면서 동시에 둘 다가 아닌 것'이라고 예측하면서 한 가지 해결책에 이르는 방향을 보여줬다. 그의 설명은 다소 역설처럼 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왜 파울리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단순히 언급만 하는가를 밝히기 위해 이 미스터리를 풀 것이다.
퀄리아 : 현실은 드러날 준비가 되어 있다
이 논의를 개인적 수준까지 가져가 보자. 오로지 마음만 이용해서 우리 자신의 어떤 부분을 실제로 바꿀 수 있을까? 그러려면 우리의 배낭 속에 새로운 용어가 필요하다. 바로 '퀄리아qualia'다. 보통 사람은 들어본 적이 없겠지만 이 개념은 엄청나게 중요하다. 퀄리아를 통해 우리는 인식을 바꿀 수 있다. 퀄리아를 통해 우리는 현실을 바꿀 수 있다. 퀄리아는 우리가 이를 어떻게 측정하는가보다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경혐하는가와 관련 있다.
퀄리아는 라틴어로 '질質'을 뜻하는데 양자물리학만큼이나 광범위한 세상을 가리키는 이름표다. 하지만 물질적 대상에서 멀어져 주관적 경험으로 향하는 반대 방향을 가리킨다.
양자가 에너지의 '꾸러미packet'라면 퀄리아는 존재의 일상적인 속성(빛, 소리, 색, 모양, 감촉)인데, 이 속성들의 혁명적인 의미는 우리가 이미 설명하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는 세상을 퀄리아로 경험한다. 이것은 오감을 함께 묶어주는 접착제다. 장미의 향기는 퀄리아다(단수와 복수 모두 퀄리아). 꽃잎의 비단결, 색깔과 색조, 실루엣과 주름도 마찬가지다. 정신과 의사이자 신경이론가인 대니얼 시겔은 뇌의 지각을 통한 일상적 경험에 기초하여, 개인이 느끼는 현실을 "SIFT[sensation(감각), image(외형), feeling(느낌), thought(생각)]"로 요약했다.
바로 지금 이 순간 당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든, 당신의 뇌는 감각(덥다, 건조하다, 침대 시트가 부드럽다)이나, 이미지(석양이 눈부시다, 마음의 눈으로 할머니를 본다, 열쇠는 부엌 탁자 위에 있다)나, 느낌(행복하다, 직장을 잃어서 걱정이다, 아이들을 사랑한다), 또는 사고(휴가를 계획하고 있다, 흥미로운 기사를 하나 읽었다, 저녁이 뭔지 궁금하다)를 인식하고 있다.
퀄리아는 어느 곳에나 있다. 이들 없이는 어떤 것도 일어날 수 없다. 이는 당신이 인간의 뇌를 사용하여 현실에 참여한다면, 당신의 세상은 퀄리아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인지하는 것 바깥에 존재하는 현실이 있다면, 그것은 문자 그대로 '상상할 수 없는 것'이다. 당신이 감각할 수 있거나, 상상할 수 있거나, 느낄 수 있거나,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빼버린다면, 이무것도 남지 않는다.
여기에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이 있다. 퀄리아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이들은 현대 과학의 객관성을 곧장 공격한다. 더욱이, 경험은 의미를 갖는 것이기에, 퀄리아는 무작위의 무의미한 자연 모델을 공격한다. 그렇지만 더 많은 것들이 위태롭다.
퀄리아 과학은 주관적 경험만이 믿을 수 있다는 가장 혁명적인 선언을 한다. 언뜻 이 표현은, 특히 과학자에게, 터무니없는 것으로 보인다. 주관성은 믿을 수 없기로 악명이 높다. 식당에서 음식의 모양새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손님처럼 "난 중력이 싫어, 가져가버려"라고 말할 권리가 있는가? 없다. 우리가 보았듯이, 바란다고 해서 뚝딱 바뀔 수 없는 것들이 있다. 하지만 주관성을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당신의 기준이 측정일 때만 타당한 주장이다. 어떤 사람이 방향을 물었을 때 A라는 사람은 서쪽으로 1km 가라하고, B라는 사람은 동쪽으로 2km 가라고 한다면, 누가 옳은지는 지도가 결정한다.
하지만 측정은 혼란을 유발한다.
퀄리아는 현실의 진정한 구성요소다. 우리는 과학적 측정 없이도 전 생애를 살아갈 수 있지만, 과학자는 보기, 듣기, 만지기, 맛보기, 냄새 맡기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만약 당신이 데친 양배추의 냄새를 좋아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이를 싫어한다고 해보자. 이것은 '주관성은 믿을 수 없다'는 걸 증명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퀄리아의 놀이터 안에서 무한한 창조적 자유를 누린다는 걸 증명한다.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우주의 축소판이다.
따라서 인간의 본질이 우주에 대한 단서가 된다.
- 데이비드 봄 -
인간적인 우주는 우리가 물질적 세상에 사로잡히고 세상의 규칙에 갇혀 있다고 느끼는 곳이지만, 우리의 현재 능력 너머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강력한 진화의 힘은 인간의 피질을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비할 데 없이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고등한 뇌의 진화는 3만~4만 년 사이에 이루어졌다. 이는 진화의 시간에서 아주 짧은 순간이다.
진화의 해일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알아내려면, 지금까지 다른 어떤 생명체와도 공유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 가장 놀라운 인간의 속성들 중 하나만 탐구하면 된다. 자신이 알아차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차린다.
다음 지평선은 우리 내부에 있다는 게 밝혀졌고, 만약 우리가 진화 과정 중에 다시 한번 도약을 하고 싶다면, 유일한 지도는 우리 자신의 의식 속에 우리가 우리 자신에 대해 만드는 지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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