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87살 되신 권사님이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기초생활 수급을 받고 계신 권사님이시기에 돌봐드리는 가족이 없으셔서, 담임목사인 남편을 찾으신 것이다.
기초생활수급자 : 국민 기초 생활보장법에 의한 빈곤층으로, 소득인정액이 중위소득 30~50% 이하로 최저생활비 이하의 소득이 발생하고 부양가족이 없어 정부의 지원을 받아야 하는 계층을 이르는 말이다.
집주인이라는 분이 119를 불렀다고 하시며, 남편에게 어서 빨리 오라고 전화를 하셨단다.
남편이 부랴부랴 권사님댁으로 달려 갔다.
이미 119는 권사님을 싣고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갔고, 남편은 차를 운전하여 권사님을 뒤따랐다.
나에게는 연락병 역할을 부여하며, 권사님이 어떤 혜택을 받으실 수 있는지를 알아보라고 했다.
사당동의 '통장'을 맡고 계신 지인분께 전화를 드렸다.
기초생활수급자는 병원비가 무료라고 하셨다.
관리해 주는 요양사를 연결해준다고도 하셨다.
참으로 고맙고 감사했다.
이른 아침에 나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피 검사, CT 촬영, MRI 검사를 모두 받으셨는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병원비와 약값을 모두 합쳐 48,000원 정도 나왔단다. 정말 많은 액수를 절감해 준다는 말과 함께...
오후 1시가 다 되어 퇴원 수속을 밟고 있으니, 함께 댁으로 모시고 가자고 남편이 제안했다.
남편이 권사님의 귀에 내 목소리를 들려 주었다.
괜찮으시냐고 여쭈었더니, 아주 좋으시다며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셨다.
"무얼 드시고 싶으세요?" 했더니, 갈비탕이 드리고 싶으시단다.
우선 집에 있는 두유를 챙겼다. 포도즙도 통째로 다 담았다.
그리고 사당동에서 가장 갈비탕이 맛있다는 '백제갈비'에 전화를 걸어 갈비탕을 포장해다 놓고, 권사님을 기다렸다.
그때까지도 권사님이 어떤 상태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다.
여러 검사 결과 이상이 없다고 하였고, 권사님 목소리가 밝고 경쾌해서 정말 아무런 이상이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함께 차를 타고 권사님 댁에 도착하여 4층 옥탑방을 올라가면서, 권사님의 다리에 큰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차에서 대문까지, 남편과 내가 양쪽에서 부축하여 걸으시게 하는데, 그나마 평지는 다리를 질질 끌고 간신히 한발한발 힘 없이 발걸음을 조금씩 옮기실 수 있었다.
문제는 경사진 옥탑방 층계를 올라가셔야 하는데, 한 개 층까지는 발걸음을 떼시더니 그다음부터는 움직이지를 못하셨다.
홑겹 얇은 병원복 바지에 맨발이신 권사님, 차가운 층계에 주저 앉으셔서 일어나지를 못하셨다.
누군가의 도움을 요청하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서 빨리 권사님을 집안에다가 모셔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그럴 때 112에 전화를 하여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내려가지도 올라가지도 못하는 권사님을 양쪽에서 있는 힘을 다해 붙들고 있는 상태라, 부축하며 꽉 붙들고 있는 우리의 손을 권사님에게서 뗄 수조차 없었다.
마음속으로 기도가 저절로 나왔고, 입으로는 "권사님! 잘하셨어요~ 조금만 힘내서 집안으로 들어가요, 우리!" 하면서 권사님을 응원하며 양팔에 힘을 주고 숨을 들이마시며 배에 에너지를 넣고 권사님 겨드랑이를 층계 위에서 있는 힘껏 붙들어올렸다.
어찌어찌하여 정말이지 남편과 내가 죽을 힘을 다해 간신히 권사님을 양쪽에서 들다시피하여 집안으로 모셔다 놓았다.
남편과 나, 둘다 요령이 없는 탓인지 힘은 힘대로 쓰면서도 권사님을 부축하는 것이 어려워, 차에서 4층 옥탑방까지 올라가는데에 거의 30~40분이 걸린 것 같았다.
옥탑방을 가려면 집주인의 문을 통과해야 하는데, 문이 잠겨 있었다. 집주인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권사님이 전화로 부탁을 하셨다.
맨발로 그 차가운 계단에서 많은 시간을 몸부림을 치다시피 올라왔는데, 문까지 잠겨 있고... 얼마나 힘드셨으랴...
' 이럴 때 잘 케어해 드리려면 요양보호사 공부를 해두었어야 했나...' 자책까지 들었다.
들어오자 마자 잠시 누우시게 한 뒤, 어제부터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하셨다는 권사님께 갈비탕을 데워 진지상을 차려 드렸다.
권사님의 상태를 지켜보고 남편에게 전화를 주셨던 집주인이, 아들과 함께 올라와서 이렇게 걷지도 못하는 양반을 집으로 데려왔다며 호통을 치셨다. 그러고는 이제는 방을 빼달라는 것이다. 자신이 너무 놀라기도 했고, 돌봐드릴 수도 없으니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방을 빼라는 것이다. 방세는 계좌번화를 알려주면 통장에 넣어주겠다며...
집주인의 마음도 이해는 되었다. 그만큼 놀랐으리라...
늦은 밤에 권사님이 자꾸 앞으로 고꾸라지셨다며, 자기 집에서 어려운 일이 발생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시겠다고 하셨다. 아주 많이 완강한 태도로...
정말 이렇게 갑자기 하반신 마비가 되셨을 줄, 권사님도 남편도 전혀 몰랐다고 한다.
앞으로 고꾸라지면서 얼굴을 살짝 부딪치기는 했지만 정신은 또렷했기에 다리가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을 줄은 모르셨다는 것이다. 119로 병원에 가실 때조차도 말이다.
바로 이틀 전에 교회에 오셔서 아주 좋은 모습으로 오후 예배까지 드리시고 가셨기에, 그리고 병원에서 검사를 받을 때도 의식이 또렷하고 말씀도 잘하시고 괜찮다고 하셨기에, 병원에서 자세한 검사들을 했을 때도 뇌경색이나 뇌출혈의 소견이 전혀 없이 아주 좋은 결과가 나왔기에, 걷지 못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추호도 하지 못했다고 남편이 이야기 다.
그런데 권사님이 다리를 전혀 쓰지 못하시는 것이다.
누웠다가 일어나 앉는 것도 어려워지신 것이다.
권사님을 담당하시는 요양보호사님에게 전화로 도움을 요청했고, 요양보호사님은 주민센터에 연락을 해주셨다.
한참을 기다렸다.
그런 와중에, 집주인이 계속 방을 빼달라는 이야기를 하러 올라왔다. 무조건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한다는 것이다.
권사님이 다리를 전혀 쓸 수 없는 상태인지라, 나와 남편도 권사님을 제대로 치료하고 케어할 병원에 모셔야 한다는 판단이 섰다.
요양보호사님이 계속해서 주민센터에 전화를 하셨으나, 한동안 연락이 오지 않았다. 화장실을 가시겠다는 권사님을 남편과 나, 그리고 권사님을 뵈러 오신 여선교회 회장님 셋이서 거의 낑낑대다시피 하여 화장실 모셔다 놓고 용변을 보시게 했다.
화장실을 가시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면 요양병원에 모시는 것이 맞다... 다시 주민센터에 긴급히 입원 요청을 했다.
장애등급을 받지 않으셨고 서류와 여러 절차가 필요하기에, 오늘은 병원에 모실 수 없고 내일 오후에나 올 수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플래너라고 하는 분이, 권사님께 직접 물으셨다. 요양병원으로 가고 싶으신지를...
권사님이 요양병원에서 다리가 나을 때까지 케어 받기를 원하신다고 하자, 그렇다면 생계급여와 의료급여가 요양병원의 치료비로 전향된다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 말씀을 들으시는 권사님이 OK하셨다.
권사님과 둘이 앉아 입원 준비를 하였다.
면도기와 드시던 약들, 칫솔과 치약, 그리고 지갑...
지갑에 오만원권을 두둑하게 넣고 다니신단다.
홀로 살아가는 사람은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르니, 그때 돈이 필요할 경우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시기 때문이란다.
병원에 들어가서도 돈이 필요할 경우가 있으니, 입원하시면 그 지갑을 간호사실에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렇게 하시겠다고 하셨다.
치료를 받으시면 받으시 나오시겠다고 하셨다. 당신 집안은 장수 집안'이라시며 다시 기거하시는 곳으로 오실 것이라고 하셨다.
마음과 생각이 50대셨다. 아니 청춘이셨다.
5시 즈음에 요양 보호사님 두 분이 방문하시어, 내일 빠른 시간에 모시고 갈 병원을 찾고 있다고 하셨다.
남편은 얼른 기저귀를 사다가 권사님께 채워드렸다.
어제 밤새도록 잠을 주무시지 못한 권사님께 요양보호사님들이 이불을 펴드렸다.
편히 누우시는 권사님 모습을 보며, 오늘 밤은 권사님 옆에 있어야할 것 같다는 말을 남편에게 남기고 집으로 달려 왔다.
우선 남편이 돌아오면 먹을 김치찌개를 앉히고, 나는 김치 하나에 찬밥을 물에 말아 급히 먹었다.
죽을 쑤어다 드리려고 준비하려는 찰나, '내일 일찍 모든 검사를 해야 하기에 금식을 하시도록 하라'는 연락을 받았다며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권사님 기저귀를 다시 확인하고 올 테니, 나는 집에 있는 것이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남편은 권사님과 한동안 시간을 보내고 늦은 저녁에 들어왔다. 우리나라의 정치와 경제를 함께 걱정하며 기도하는 시간도 가지셨단다. 왜 결혼을 하지 않으셨냐는 질문도 드렸단다. 영문학을 전공하시고 고등학교 영어교사와 기숙사 사감을 맡아 오랜동안 근무하셨는데, 철학에 심취해서 결혼 생각이 없으셨단다. 하지만 몸이 아프니 결혼하지 않은 것이 후회된다는 말씀도 하셨다고...
집에 돌아온 남편은 저녁 식사도 하는둥 마는둥 하고, 교회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께, 그리고 편찮으신 권사님의 조카에게 경위를 설명해드리는 전화를 드렸다. 방을 빼고 계좌를 알려주면 집세를 넣겠다는 집주인의 얘기도, 돈이 든 권사님의 지갑을 챙겨야 한다는 얘기도...
멀리 여수에 사는 권사님의 조카가, 서울에 사는 자신의 누이에게 연락을 하여 내일 아침에 권사님을 뵈러 오시겠단다.
내일 아침, 권사님을 요양병원으로 모시기 위해 주민센터와 요양병원 관계자분들이 오신단다.
남편은 다시 한번 권사님댁에 간다며 나섰다. 기저귀를 한 번 더 갈아드려야 한다며...
권사님이 한잠 푹 주무셨다며 남편을 반기셨단다. 용변을 보지 않으셨다며 어서 가서 쉬라 하셨단다...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어간다...
잠시 눈을 붙이고 아침이 되면 권사님 뵈러 다녀와야지...
남편도 나처럼 어제 온 힘을 다 쓰며 권사님을 집안에 모셔드렸는데, 나만 팔과 허리가 아픈건가...
아침 8시 30분에, 남편만 권사님을 살펴드리러 가게 되었다.
의식이 분명하시고 의지가 강하신 권사님이, 기저귀에 용변을 보지 않으셨단다.
내가 함께 있을 동안 드시게 한 두유와 포도즙을 빼고는 아무것도 드시지 않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병원에 가서 편하게 자신을 내어맡길 수 있을 때 용변을 보고 싶으신 게다...
힘든 상황에서도 다른 이에게 불편함을 주기를 원치 않으신 권사님...
10시가 되니, 병원과 주민센터에서 관계자들이 오셨다.
들것에 모셔서 이동할 줄 알았는데, 의지 강하신 권사님이 관계자 두 분의 부축을 받으며 일반구급차를 타셨다.
웃으시면서 차에 타셨다...
정말 대단하신 우리 권사님...
건강하신 모습으로 조만간에 뵙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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