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라고 말씀하시는데, 왜 툭하면 '지옥이 따로 없다'는 기분이 드는 것일까? 평화가 아닌 것만 잔뜩 쌓인 진창을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진창 탓에 내면의 평화로 가는 여행은 몹시 힘들어 보이다 못해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나님께서, 평화와 행복, 기쁨, 사랑, 성공적인 삶으로의 길을 본래부터 우리 인간의 영혼 안에 주셨는데, 분노, 슬픔, 절망감, 허영심, 질투, 불안, 두려움, 걱정, 염려, 사소한 일상의 판단이 우리 내면의 정적을 깨트리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일까? 진창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있으면서도 감정적인 어려움으로 순간순간 혼란을 겪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어떤 거리낌도 없이 기쁨의 춤을 출 수 있는 방법이 있을 까? 살아 있는 존재들을 모두 사랑할 수 있는 방법은? 위대함을 한껏 떨치고 잠재력을 활짝 펼치며 살아갈 방법이 있을까?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아름다움의 통로가 될 방법이 있을까?
있다! 바로 '놓아버림', '내려놓음'을 통해서이다~
일생을 살아가며 수많은 사람들과 삶을 나눠가며 한 단계 한 단계 과정을 밟아나가며 점점 분명하게 알게 되는 것은, 모든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길을 하나님이 친히 제시하여 주고 계신다는 것이다.
벧전 3: 9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친절과 사랑으로 대할 때 오히려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부당하게 대우하는 사람들을 볼 때도 있다. 그 때 바로 베드로전서의 이 말씀으로 자신을 다잡기도 한다. 하지만 마음속에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애착과 걸림돌이 있을 수 있다. 내가 원치 않는데도 눈만 뜨면 퍼뜩 마음에 파고 드는 불편한 감정들이 솟구칠 때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나 생각은 감정이 몰아가는 것이다. 개개의 감정은 다시 겹겹이 쌓인 수많은 생각에서 나온다. 사람들 대부분은 감정을 억압하고 억제하거나 회피하려 애쓰면서 살아간다. 이로 인해 억제된 에너지는 마음의 병, 육체적 고통, 신체장애, 정서질환, 대인관계 상의 이상 행동 등으로 나타난다. 축적된 감정은 영적 성장과 일상적인 삶을 여러모로 가로막는다.
지금 모든 마음의 짐을 벗고 싶은가? 시간이 많이 걸려야 마음의 짐이 벗어진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바로 지금 즉시 자신을 꽉 붙들고 있는 무거운 마음, 답답한 감정들을 놓아버리고, 내려놓으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마음으로 항복하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의지하여 '놓아버리고 내려놓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께 항복하는 훈련을 통해 하나님이 허락하신 평안을 받을 수 있는 그릇으로 깨끗하게 비어질 수 있다.
항복 훈련, 내려놓는 훈련, 놓아버리는 훈련은 시간이 걸리는 것도 아니고 어려운 것도 아니고 방법을 설명할 필요도 없다.
놓아버림이란,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듯 마음속 압박을 지금 즉시 갑작스럽게 끝내는 것이다. 놓아버리면 마음이 놓이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한결 기쁘고 홀가분해진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와 의견 차이로 심하게 말다툼을 하면 마음이 언짢아지고 화가 나고 치밀어 오르게 된다. 그럴 때 불현 듯 '놓아버리자' 하고 생각하면서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듯 마음의 분노를 갑작스레 끝내면 자신의 상황이 우스꽝스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터무니 없는 일로 괜실히 마음만 힘들었다는 마음이 들기도 하면서 압박이 풀이고 웃음이 나기도 한다. 화나고 겁나고 손해 본다 싶다가 문득 기쁘고 홀가분해지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에서든 우리가 몇 번이든 마음먹고 의식적으로 이렇게 놓아버리면, 내가 어떻게 느낄지는 나한테 달린 일이고 더 이상 세상에 휘둘리지 않게 된다.
물론 우리는 우리가 어린 시절 우리가 백지 상태일 때 부모나 우리를 양육하는 사람, 우리와 관계 맺는 사람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받고 이로 인해 큰 상처를 입기도 하고 트라우마가 생기고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는 고통 속에서 오랜 시간을 헤매고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대할 때나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자신도 모르게 죄책감, 창피함, 원한, 비통함, 우울, 자존심, 무력감, 배신감, 거부감, 질투심 등이 생기고 이것들 때문에 화가 난다.
특별히 쉽게 분노하는 성향을 가지기도 하는데, 분노하는 3대 주요 원인은 다음과 같다.
① 필요를 채움 받지 못할 때 오는 상처 (상처를 받으면 분노를 느낀다)
② 기대가 꺾일 때 오는 좌절 (무산된 기대 - 희망이 꺾이면 대번에 분노가 따라온다)
③ 자존심을 위협받을 때 오는 불안 (분노로 불안감을 덮을 수 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이런 감정들이 해결되지 않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참으로 많다.
우리는 부정적 감정과 불안한 마음가짐, 부정적인 신념 등을 어마어마하게 쌓아 둔 저장소를 지고 다닌다. 여기에 누군가가, 혹은 어떤 일이 조금만 압력을 가하면 괴롭기 그지없고 병이 나고 잦은 문제가 생긴다. 그래도 ‘사람 사는 일’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사람도 있고, 그 압박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치며 여러 방법들을 동원하기도 한다. 마음속 두려움에 갈팡질팡하지 않고 심한 괴로움에 겁먹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인생을 보내기도 한다. 이로 인해 다들 마음 안팎으로 전전긍긍하며 자신의 긍지를 위협 받기도 한다.
사실 면밀히 살펴보면 사람들은 본디 자기 마음속에서 겁내거나 기대하는 바를 투사해 다른 사람이나 세상에 덮어씌우고는 거기서 벗어나려고 긴 시간 애쓰며 일생을 보낸다. 이런 마음속 두려움에서 잠시 벗어나 신이 났던 때도 있지만, 여전히 마음 한 구석에는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마음속 감정을 겁내게 된 까닭은, 감정에는 엄청난 양의 부정성이 들어 있어서 자칫 깊이 들어갔다가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감정 마주하기를 겁내기 때문에 감정은 계속 쌓이기만 하고, 마침내는 죽음이 모든 괴로움을 끝내주길 은근히 고대하기까지 한다. 생각이나 일 때문에 괴로운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감정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생각 자체로는 괴로움을 유발하지 않는다. 그 밑에 깔려 있는 감정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지금 자신의 생각을 관찰해보면, 어린 시절 해결되지 않고 풀리지 않은 어떤 부정적인 감정이 자기 내면으로 들어가 그것이 계속 쌓이고 쌓여 그 압력으로 인해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심리학자들은 말한다.
바로 지금 어렸을 적에 괴로웠던 기억이나 끔찍하게 후회스러워 내내 감추었던 일 하나를 떠올려 보면, 그 하나의 사건과 관련 있는 세월들과 그로 인해 그동안 일어난 생각들이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바로 그 생각들 밑에 깔려 있는 괴로운 느낌을 지금 여기서 즉시 놓아버리자는 것이다. 자기도 모르게 눈만 뜨면 자신의 머릿속에 바로 튀어 오르는 그 생각들과 그 생각들이 빚어내는 온갖 잡동사니 감정들을 즉시 놓아버리자는 것이다. 성령님을 의지하여 예수 십자가 앞에 그 생각들을 내려놓고 완전히 항복하자는 것이다. 하나님께 항복할 수만 있다면 나를 끊임없이 괴롭히는 생각과 그에 따른 감정들이 점차 와해되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자, 하나님께 항복하며 쓰디 쓴 감정들을 즉시즉시 놓아버리는 훈련을 시작하자!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불평하며 원망하며 저항하는 일을 계속해 왔다면 바로 지금 여기에서 무거운 돌을 아래로 놓아버리는 느낌으로 모든 무거운 감정들을 놓아버리라! 자기 안에서 갈등하느라,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느라, 미래에 닥칠 여러 일들을 생각하며 그에 따르는 두려움으로 벌벌 떨고 있었다면 지금 여기에서 십자가 앞에 몽땅 내려놓으라!
'감정은 억제하고 억압하는 것이 상책이다'라는 교육을 받아서 그동안 무조건 억누르고 살았다면, 지금 이 시간 자기 자신의 등을 스스로 토닥토닥해주며, 자기 자신에게 "참 많이 애썼어! 자기 이름을 부르며 ○○야! 사랑해~ 아주 미안해. 나 자신을 혹사시킨 것 용서해줘! 감사해!"라고 말해주라!
이렇게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챙기면, 가볍고 기분 좋은 느낌만 남기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마음속 느낌과 마주하기가 너무 무서워서 마음속 느낌에서 달아나고 벗어나려고 하는, 즉 회피하려고 해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현대인들의 거의 모두가 과거 어느 때보다도 스트레스에 약하다고 하는데, 스트레스의 핵심 원인은 무엇일까? 누구누구 때문일까? 이런 일 저런 일 때문일까? 아니다. 바깥에 원인이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스트레스는 앞서 이야기한 투사, 즉 인정하고 싶지 않은 자신의 감정이나 욕망 등을 남에게 돌려 버림으로써 자신을 정당화하는 무의식적 마음 작용의 본보기일 뿐이다. 보통, 누구누구가 이러저러한 일들이 스트레스의 범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스트레스라고 느끼는 것은 사실 억압된 감정이 자기 스스로에게 주는 마음속 압력이 새어나오는 것이다. 억압된 감정으로 인해 외부 스트레스에 약해진 것이다.
진정한 스트레스의 원인을 우리 안에, 우리 내면에 있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많은 분들도 그렇고 스트레스의 원인이 자신이 아니라 밖에 있다고 믿고 싶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겁이 얼마나 나는지는, 안에 이미 차 있는 두려움의 양에 달렸다. 외부 자극은 그 두려움을 촉발시킬 뿐이다. 안에 두려움이 많을수록 세상을 보는 눈도 앞일을 겁내고 조심하는 쪽으로 바뀐다. 겁먹은 사람에게 세상은 섬뜩한 곳이다. 화난 사람에게 세상은 불만스럽고 짜증나는 일투성이인 곳이다. 죄책감에 빠진 사람이 보는 세상은 유혹과 죄로 가득하다. 안에 품고 있는 대로 세상이 보인다.
혹시 지금 어떤 사건이, 어떤 사람이 나의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킨 원인이라고 탓하면서 스스로를 그런 외부 원인에 당한 무력하고 불쌍한 희생자로 보고 있다면,,,
"걔들 때문에 화가 나.", "그 인간 때문에 속상해.", "그 일 때문에 두려워.", "세상 일 때문에 불안해."라고 마음속에서 외치고 있다면 사실은 정확히 그 반대다. 억제되고 억압된 감정이 발산할 수단을 찾다가 외부 사건이나 다른 사람을 빌미로 그것을 핑계 삼으면서 터져 나오는 것이다. 사람들은 기회만 생기면 증기를 내뿜으려는 압력솥 같다고 하겠다. 이런 저런 일들이 나를 화내게 만드는 것은 내가 원래 화가 나 있기 때문임을 알 필요가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항복하는 것이다. 나의 모든 감정들을 놓아버리는 것이다. 순간순간 몰려오는 부정적 감정들과 안 좋은 느낌들을 무거운 돌을 그냥 내던지듯 내려놓는 것이다.
하나님이 만드신 우주의 만물은 진동을 방출한다. 진동수가 높을수록 힘이 강력하다. 감정 또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진동을 방출한다. 감정의 진동은 몸의 에너지 장에 영향을 주어, 보고 느끼고 측정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는다.
초심리학자인 델마 모스 박사 등이 키를리안 사진술로 찍은 동영상을 보면, 감정이 바뀜에 따라 에너지 장의 색깔과 크기도 급격한 변동을 거듭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에너지 장은 예로부터 '오라'라고 부르는 것으로, 오라에 따라 색깔과 크기가 바뀐다. 우리 몸의 근육도 감정 변화에 따라 에너지 변화를 일으키는데, 그것은 우리 몸의 근육이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자극에 즉각 반응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우리의 기본 감정 상태는 우주로 송출되는 것이다.
감정은 진동하는 에너지 장을 방출하기 때문에 우리가 살아가며 만나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우리가 어떤 사람을 만나게 될지 결정한다.
지금 노여움이 마음속에 꽉 들어 차 있는가? 즉시 하나님께 항복하여 노여움을 놓아버리라! 왜냐하면 노여운 감정은 계속해서 노여운 생각을 하게 되고 노여워할 일들을 삶에 자꾸 끌어다놓기 때문이다. 그러니 기분 나쁜 일로 끙끙대고 있다면 어서 놓아버려라! 기분 나쁜 느낌에 젖어 있으면서 좋은 일들을 삶에 초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향하신 그분의 뜻을 보이셨다. "항상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항상 기쁜 일들을 삶에 초대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사랑의 표현인 것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스스로는 할 수 없으니,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권능의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함께하시며 나와 협업하시겠다는 것이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모든 일에 감사할 때 우주의 기본 법칙인 같은 주파수가 공명하기에 감사할 일들이 더욱 많아진다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더욱 활성화 시키고, 기쁨은 기쁨을 더욱 배가시킨다.
자, 놓아버리자! 먼저 내 안에 어떤 감정이 일어나는지 관찰해서 나의 감정을 알아차려 보자! 그리고 그 감정이 일어나도록 억누르지 말고 놓아둬 보자! 그리고 그 감정과 함께 있어줘 보자!
감정을 바꾸려고 애쓰지도 말고 감정을 어떻게 해보려는 바람 없이 감정 스스로 제 갈 길을 가도록 놓아버리자! 즉 감정은 있는 그대로 놓아둔 채 단지 감정 이면의 에너지를 방출시키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다.
그 첫 단계는 감정을 지니고만 있을 뿐 감정에 저항하거나 감정을 분출하거나 겁내거나 비난하지 않고, 감정에 대한 판단도 멈추고 감정은 감정일 뿐임을 알아보는 것이다. 이 방법은 감정을 그저 생생히 느끼기만 하면서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노력을 모두 놓아버리는 것이다. 감정에 저항하고 싶은 바람을 놓아버려라! 저항 때문에 감정이 지속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저항하거나 감정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면 감정이 달라지면서 강도가 약해진다. 감정에 저항하지 않으면 감정 이면의 에너지가 빠지면서 감정이 없어진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감정을 갖는 것을 두렵고 죄스럽게 여기고 있다. 즉 감정 전반에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감정이 일어나도록 놓아두기 위해서는 먼저 감정에 대한 반응부터 놓아버리면 쉽다. 쉬운 예로 우리는 두려운 감정 자체를 두려워한다. 그러니 감정에 대한 두려움이나 죄책감부터 놓아버린 다음, 감정 자체에 접근한다.
놓아버릴 때는 모든 생각을 무시한다. 감정에만 초점을 맞추고 생각에는 신경을 끈다.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며 스스로 강해져 다른 생각을 더 많이 일으킬 뿐이다. 생각이란 감정이 생긴 까닭을 설명하려는 마음의 합리화에 불과하다. 감정이 생기는 진짜 원인은 감정 이면에 쌓여 있는 압력이 감정을 밀어붙여 특점 시점에 올라오게 하는 데 있다. 생각이나 마음 밖 사건은 마음이 지어낸 변명일 뿐, 감정의 원인이 아니다.
하나님께 항복하고 감정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어떤 일에 대해 격한 감정이 없음을 뜻한다. 그런 일이 생겨도 괜찮고, 생기지 않아도 괜찮다. 자유로워지면 애착을 놓아버린다. 사람이나 사물에게 점점 덜 의존하게 된다.
어떤 감정을 놓아버렸는데도 그 감정이 다시 돌아오거나 계속 이어질 때가 있다. 항복하고 놓아버릴 것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평생토록 감정을 꽉꽉 억누르고 살아왔기 때문에 눌러 놓은 에너지가 많을 수 있다. 이것이 올라오게 놔두고 올라올 때마다 그 존재를 인정해주면서 다시 놓아버려야 한다.
우리는 계속 놓아버림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에 머물 수 있다. 감정은 오고 가지만 나의 감정이 곧 나는 아니다. 진짜 ‘나’는 하나님 안에서 그 감정을 지켜보는 자임을 깨닫기에 이를 것이다. 더 이상 자신을 감정과 동일시하지 않는다. 일어나는 일을 관찰하고 자각하는 ‘나’는 늘 똑같다. 변치 않는 목격자가 존재함을 더욱더 자각하면서, 자신이 그런 의식 수준에 들어섰음을 알아간다. 갈수록 현상의 경험자가 되기보다는 현상의 목격자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를수록 그동안 감정에 속았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전에는 내가 감정 때문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감정은 나의 참 모습이 아님을 안다. 감정은 에고가 창조한 것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 생존에 필요한 것으로 마음이 잘못 믿었던 프로그램들을 모아놓은 것일 뿐이다.
놓아버림은 신속하고 절묘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효과 역시 강력할 것이다. 이미 놓아버리고도 아직 놓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많다. 이럴 때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변화를 깨닫는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어떤 것을 완전히 놓아버리면 그것이 의식에서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그 일이 전혀 생각나지 않기에 사라진 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출판사 서평
지금까지 끊임없이 노력해 왔다면, 이제 놓아 버려라!
의식 탐구 이론을 완결 짓는 호킨스 박사의 마지막 역작
놓아 버리기 위한 감정 들여다보기
인생의 벼랑 끝에 서 있다고 느낄 때가 있다. 한계 상황에서는 누군가의 위로는커녕 나아지리라는 희망도 전혀 없으며 의지 또한 생겨나지 않는다. 자괴감과 자책감이 내면을 끊임없이 흔든다. 이러한 부정적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가장 치밀하면서도 가장 단순한 기법이 호킨스 박사가 주장하는 ‘놓아 버림 기법’, ‘항복 기제’다. 호킨스 박사는 무의욕과 암울함, 비탄, 공포, 분노 등 우리를 지배하는 부정적 감정을 비롯해 ‘받아들임’, ‘사랑’, ‘평화’ 등 상위 수준의 긍정적인 감정까지 모든 감정을 전체적으로 조명한다. 이어서 각각의 감정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놓아 버리거나 항복할 수 있는지 친절하게 알려 준다.
놓아 버림은 무거운 물건을 떨어뜨리듯 마음속 압박을 갑작스레 끝내는 일이다. 놓아 버리면 마음이 놓이고 가벼워지는 느낌이 들면서 한결 기쁘고 홀가분해진다. ... 놓아버림은 타고난 능력이다. 새롭거나 생소한 방법도 아니다. 비밀리에 전수되는 가르침도 아니고, 누군가가 주창한 사상이나 신념 체계도 아니다. 더욱 자유롭고 행복해지기 위해 우리 내면의 본성을 활용하는 일일 뿐이다. - 본문 중에서
일상에서 적용 가능한 기술
호킨스 박사의 그간의 저서가 진보한 자각 상태와 깨달음에 중점을 두고 의식 세계를 탐구하고 분석해 오는 작업이었다면, [놓아 버림]은 우리의 일상적인 경험이나 상황, 감정과 더욱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누군가와 갈등이 일어났을 때, 예기치 않은 사고가 벌어졌을 때, 이별과 죽음을 맞닥뜨렸을 때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보편적인 경우를 다루면서 이때 밀어닥치는 부정적 감정 상태를 극복하고 진정으로 만족스러운 삶으로 나아가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일목요연한 지도가 되어 줄 것이다. 아울러 이 책은 정신 건강이나 심리학, 의학, 자조 집단, 중독 회복, 영적 계발 분야에서 종사하는 모든 전문가에게 매우 유용하면서도 소중한 자원으로 다가갈 것이다.
손쉽게 성공을 거머쥐고, 원망에서 자유로워지고,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일에 감사하고, 기발한 영감을 떠올리고, 사랑을 나누고, 기쁨을 누리고, 모두가 이기는 해결책을 찾아내고, 행복을 만끽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는 새로운 삶을 상상할 용의가 있는가? 호킨스 박사는 행복으로 가는 길의 가장 큰 걸림돌은 행복을 얻을 수 없다는 믿음이라고 말한다. - 본문 중에서
놓아 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는 효과
깨달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놓아 버리고 부정적 감정에서 벗어나기 위한 간단하고도 효과적인 방도인 ‘놓아 버림’은 수십 년 동안 정신과 의사로 일한 데이비드 호킨스 박사의 목표이기도 했다. 박사야말로 살면서 여러 육체적·정신적 질병을 앓아 왔고, 따라서 인간이 겪는 수많은 형태의 고통 전부를 덜어 줄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일이 그의 평생의 과제이자 염원이었다. 마침내 ‘놓아 버림 기법’과 ‘항복 기제’를 발견한 호킨스 박사는 이것이 가진 현실적 혜택이 무한하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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