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요 5:19-29
요한복음 5장 말씀을 보면 예수님은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왜 안식일에 일하느냐"며 따져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는데, 내가 어떻게 일 안 할 수 있냐"며 반박합니다. 다시 말하면, 창조 사역은 완성되었지만, 하나님의 구원 사역은 계속 되어야 함을 정확하게 말씀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니다.
❚ 요 5:19 /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유대인들의 고소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이 이어집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아버지와 아들의 직업이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목수의 아들이다"라는 말은 '그의 직업은 목수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관계 속에서 아들이 아버지의 행동을 보고 그대로 따라하게 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고, 아버지의 아들이기에 아버지께 순종하는 자라는 것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 요 5:20 /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가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놀랍게 여기게 하시리라
이어 예수님은 하나님과 온전한 하나 됨의 아주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를 맺고 계시기에, 하나님은 예수님께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들을 보여 주시고, 이를 본 다른 사람들은 더욱 놀라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말씀을 읽으면서 이런 생각 들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과의 이런 친밀하고 특별한 관계는 예수님만 가능하신 걸까?'
저는 하나님과의 이런 친밀한 관계가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음을 이 시간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첫 열매이십니다.
❚ 고전 15:20-24 /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첫 열매를 통해 우리가 모든 것을 다 드리지 않아도 마치 다 받으신 것처럼 인정해주십니다. 예수님이 첫 열매로서 아버지하나님과 온전히 하나 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 부활의 능력과 생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하나 됨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부활&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보내주셨다고 하셨지요? 성령님은 영(靈)으로 오신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성령 안에서 우리 모두는 하나님과 온전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기에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거하심을 믿고 그 믿음 안에서 모든 일을 행할 때, 예수께서 하신 일을 우리도 할 수 있고, 그보다 큰 일도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 요14:12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 요 5:21 /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가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이어지는 예수님의 말씀은 이제 안식일 논쟁을 넘어서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것입니다. 아들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대로 할 수 있는데, 죽은 자들도 살리실 수 있습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인데, 예수님이 죽은 자를 살리는 것은 결국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요 5:22 /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아버지의 권한이 아들에게 위임되는 것을 말합니다. 바로 그것은 '심판의 권한'입니다. 구약성경의 전통에서 보면 '심판의 권한'은 당연히 하나님께만 있는데,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에 예수님은 심판자가 되십니다.
❚ 요 5:23 /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하나님께서 아들에게 심판을 맡기신 중요한 목적은 사람들이 아들을 하나님과 똑같이 공경하도록 하기 위함 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하지만, 아들이신 예수님에 대하여는 안식일을 범하고 신성모독으로 인해 죽어 마땅한 죄인으로 여겼습니다. 이에 대해 예수님은 아들을 공경하는 것과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은 절대 분리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님께서 보이신 사랑과 순종의 연합을 기억하며 예수님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따르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온전히 순종 할 수 있어야겠습니다.
❚요 5:24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땅에서 이미 영생을 얻었고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하셨습니다.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옮겼느니라'는 사망에서 벗어나 생명으로 완전히 바뀌는 것을 뜻합니다.
❚ 요 5:25-27 /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자들은 살아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아들의 '음성'은 생명과 심판의 권한을 지닌 말씀을 의미합니다. '듣다'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등장하면서 '살다'와 연결됩니다. 아들 안에 생명이 있기 때문에 그 음성을 듣는 자는 반드시 살아나게 됩니다. 이처럼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음성이 생명이고 소망이 됩니다.
우리의 지성과 감성의 커튼 뒤에는 우리의 에고가 있습니다. 에고의 목소리는 우리가 세월과 함께 서서히 만들어낸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숨어 있는 가면이라고 할 수 있지요. 진짜 우리의 모습도, 성령님의 음성도 아닙니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 우리의 참 모습이 아니기에, 두려움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의 에고는 인정 받기를 원하고 항상 우리를 통제하려 드는 우리 스스로가 만든 감옥이고, 권능의 성령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기울이지 않을 때 항상 우리를 가둬두려고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서 불편함이 느껴질 때마다 우리의 에고, 즉 하나님을 변두리로 몰아냄'이 우리의 내적 자아를 덮어씌우고 있는 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두려움, 의심, 걱정, 근심 따위는 우리의 에고와 연결된 에너지들입니다. 그런 에너지들을 소멸시키려면, 우리에게 자유를 선포하신 성령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 고후3:17 /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우리가 하는 모든 결정은 불만과 기적 사이의 선택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불만이야말로 영에 그늘을 드리우는 에고의 멜로드라마이므로, 불만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기적을 선택하게 됩니다. 모든 불만과 판단, 분함을 내려놓을 때 우리는 진실로 자유로워져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예수의 영, 성령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영(靈)은 창조와 이해, 평화, 조화, 웃음, 그리고 모든 가능성들의 원천입니다.
에고의 세계는 시간에 묶여 있습니다. 일시적이고 부분적이고 두려움에 차 있고 개별적이고 자기 중심적이고 자기한테 몰입하고 자기가 아는 것에만 집착합니다. 그것은 쾌락에 매달리고 고통에 진저리칩니다.
영(靈)의 세계에는 시간이란 관념이 없습니다. 그것은 영원하고 전체적이고 과거와 미래로부터 자유롭고 기쁨에 차 있고 열려 있고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영의 세계는 어울림, 통찰,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세계입니다. 이 세계가, 나뉘지 않고 흔들리지 않고 역동적이고 창조적이고 만족하고 힘 있고 모든 한계와 기대와 집착에서 자유로운 진짜 세계입니다.
영의 세계가 모든 힘의 근원입니다. 새로 창조하는 힘, 변형시키는 힘, 사랑하는 힘, 치유하는 힘, 자유롭게 해주는 힘이 진정한 힘입니다. 우리의 가장 깊은 자아, 참으로 존재하는 우리 영(靈)의 소재이신 성령님과의 연결에서 이 힘이 나옵니다.
❚ 요 5:28-29 /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무덤 속에 있는 자"는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언제입니까?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입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가 우주에 울려 퍼질 때 예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간 사람들을 먼저 부활시켜서 천군천사들과 함께 우리를 맞으러 오실 것입니다. 그런데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은 두 가지의 부활로 나타납니다.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나타납니다. 반면에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타납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죽기에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갈라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부활체는 어떤 특징을 갖고 있을까요?
첫째로, 부활체는 현재의 몸과 똑같은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요20:27) 하셨습니다.
둘째로, 부활체를 입은 우리의 삶은 육신적인 삶을 그대로 살지는 않습니다.
하루는 부활이 없다 하는 사두개인들이 어느 날 예수님께 와서 물었습니다. "일곱 형제와 결혼한 여인이 죽으면, 부활 때에 그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마22:30)고 대답하셨습니다.
셋째로, 부활체는 의식이 있습니다.
음부에서 고통을 받고 있던 부자가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안겨있는 나사로를 보고 말합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눅16:24). 즉 오늘 우리들이 갖고 있는 모든 의식이 부활체에도 다 있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그런데 몸의 모양은 똑같지만 부활체는 질적으로 달라집니다.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라"(고전15:51) 하였습니다.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주님께서 먼저 간 성도들과 함께 오실 때 이 땅에 살아있던 사람들은 눈 깜짝할 사이에 그 몸이 달라질 것입니다. 현재의 몸은 늙고 쇠약해지고 죽을 몸입니다. 그러나 주님 오시는 순간이 되면 우리의 몸은 변하여 부활의 몸, 영원한 몸, 영적인 몸, 하늘의 몸, 죽지 않고 썩지 않는 ‘영광스러운 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부터 영원까지 잇대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 안에는 두 길이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의 음성에 민감하게 순종하는 길과 작은 자신의 에고에 갇혀 하나님을 변두리에 몰아내고 두려움, 의심, 걱정, 근심 따위에 들러싸여 사는 불순종의 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삶을 영위하는 날 동안,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 왕좌를 내어드리고 그 안에서 참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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