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한 음성으로 말씀하시는 성령님
❚ 왕상 19:11-12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가서 여호와 앞에서 산에 서라 하시더니 여호와께서 지나가시는데 여호와 앞에 크고 강한 바람이 산을 가르고 바위를 부수나 바람 가운데에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바람 후에 지진이 있으나 지진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며
또 지진 후에 불이 있으나 불 가운데에도 여호와께서 계시지 아니하더니 불 후에 세미한 소리가 있는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님이 여러분 내면 안에서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의 숨은 재능을 발견하게 되고, 삶속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서 의미를 찾게 되며, 인생의 위대한 목적을 이루도록 온 마음이 북돋워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내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꼭 찾고야 말겠다'고 마음먹는 일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다구요!!! 좋습니다.
자기 삶의 목적을 생각하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직관(intuition)에 마음을 열고, 성령께서 마음에 일러주시는 대로 세상을 보게 됩니다. 예전에는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었다면,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게 될 때 '어떤 노력을 해서든 이 삶이 내게 원하는 일은 무엇일까? 이 삶이 나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라고 스스로에게 묻는 일은 많아질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삶은 하나님 사랑의 에너지와 연결되어야 하며 사랑의 에너지를 갖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구성 요소는 바로 즐거움입니다. 하나님 사랑의 에너지가 가지고 있는 대단히 중요한 구성 요소는 바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살다 보면 무엇을 어떻게 바꿔야 좋을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성령님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일 때, 자신이 해내는 일에 오롯이 전념해야 할 필요성이 확실하게 느껴지고, 그럴 때 새로운 가능성을 활짝 열리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글을 쓰는 작가도, 작곡을 하는 음악가도, 그림을 그리는 화가도 자신의 작품 속에 신(神)이 내려주는 영감을 표현하기 위해 수많은 사념의 시간을 가질 것입니다.
복음서를 쓴 성경의 기자들도 마찬가지겠지요. 복음서에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의 사복음서가 있습니다. 사복음서의 기본적인 공통점은 예수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의 공생애(삶)에 대한 기본적인 줄거리는 모든 복음서가 같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제자들을 모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선포하고 죄인들을 불러 모으고, 적대자들과 논쟁하고, 유월절에 유대 지도자들에 의해 체포되어,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재판 받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은 사복음서에 담겨 있는 기본적인 줄거리의 공통점입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 보면 관점도 다르고, 세부적인 내용도 다릅니다.
먼저 관점에서 차이가 나타납니다.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인 예수가 약속된 그리스도라는 점에 초점을 맞추고 왕의 족보로 시작합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유대인의 왕이시며, 메시아임을 설명하기 위해 구약을 많이 인용합니다.
❚ 마 1:1 /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에 대해, 종으로 오신 예수님의 생애를 보여줍니다. 로마인을 대상으로 기록하였으므로 구약이나 예수님의 교훈보다 병을 고치시고, 행하신 이적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 막 1:1 /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
누가복음은 인간의 역사 가운데 일하신 분에 대해서 헬라인을 대상으로 기록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애 를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그리스도의 구원이 보편적·세계적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다른 세 복음서보다도 영혼의 중대성과 영혼의 진리를 드러낸 말씀이 특별히 많습니다. 성령의 사역을 강조했고, 등장인물들의 질병 상태가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이는 누가의 직업이 의사였기 때문입니다. ...
❚ 눅 1:1 /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요한복음은 태초라는 영원, 시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예수가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말씀으로 시작하여 도마가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요20:28)이라고 고백함으로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의 아들이요, 역사 가운데 일하신 분이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 요 1:1 /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리고 내용적인 면에서 서로 일치하지 않는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마태복음에는 나귀가 두 마리라고 기록되어 있고, 마가 · 누가 · 요한복음에는 한 마리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 마 21:6-7 / 제자들이 가서 예수께서 명하신 대로 하여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으매 예수께서 그 위에 타시니
❚ 막 11:7 /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 눅 19:34-35 / 대답하되 주께서 쓰시겠다 하고
그것을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쳐 놓고 예수를 태우니
❚ 요 12:14 /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보고 타시니
이 구절 이외에도 차이점이 나타난 곳이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까요?
서양 미술사를 보면 '마태와 천사'라는 그림이 있습니다.
그림 속에는, 마태복음의 저자인 마태가 등장합니다. 그리고 마태에게 영감을 주는 혹은 성경을 기록하게 해주는 천사도 등장합니다. 그런데 아주 대비되는 두 그림이 있어요.
하나는 카라바조의 '마태와 천사'라는 그림입니다.
1. 카라바조의 마태와 천사
이 그림을 보면 마태가 성경을 쓰고 있고, 천사가 위에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마태는 위에서 말해주고 있는 천사의 말씀을 받아 의식하고 쳐다보면서 마태복음을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개신교 화가인 렘브란트는 마태와 천사를 그리면서 다르게 그림을 그립니다.
2. 렘브란트의 마태와 천사
카라바조는 수직구조로 그리는 반면, 렘브란트는 수평구조로 그림을 그립니다. 즉 마태는 앉아 있고, 뒤에 천사가 있습니다. 마태는 천사를 의식하지 못합니다. 골몰히 생각해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얼마나 고심하는지 이마가 반짝입니다. 이는 골몰히 생각하는 부분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카라바조의 성서관으로는 사복음서가 서로 차이를 보인다는 것이 납득될 수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천사가 다 이야기하여 준 것을 성경기자는 단순히 기록만 한 것이라면, 복음서마다 왜 차이가 나겠습니까?
하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을 보면 우리는 납득이 됩니다. 렘브란트 그림 속의 마태는, 자신의 모든 지적인 노력을 다하여 기록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 뒤에 하나님의 영감의 손길이 미치고 있는 것이 보여집니다. 이는 렘브란트의 탁월한 통찰력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렘브란트의 '마태와 천사'를 처음 보았을때, 이 그림은 그저 두 남자가 있는 평범한 그림일 뿐이었습니다. 통찰력 있는 저자의 설명을 통해, 렘브란트가 성경의 저자를 표현하되 성령의 인도를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빛과 그림자의 대가 렘브란트는 생각에 잠긴 나이든 남자의 얼굴과 수염을 쓰다듬고 있는 왼손, 펜을 잡고 있는 오른손에 밝은 빛을 집중하여 그가 깊은 사색에 잠겨 책을 쓰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3. 렘브란트의 마태와 천사
그리고 가장 밝게 빛나는 빛은 오래되어 보이고 많은 작업을 거친 듯 닳아있는, 펼쳐진 책에서 정점에 이릅니다. 마치 모든 사색과 고뇌와 통찰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습니다.
4. 렘브란트의 마태와 천사
그림 속의 나이 든 남자, 마태는 머리에 띠를 띠고 깊은 생각에 잠겨 있습니다.
그의 주름 잡힌 얼굴, 생각에 잠긴 깊은 눈매, 길게 자란 수염, 손의 힘줄이 두드러져 보이는 긴 세월을 보여주는 손은 그의 삶의 깊이와 사고의 넓이와 지금 글 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5. 렘브란트의 마태와 천사
그런데 그 왼쪽에 얼굴만 빛이 나는 젊은이의 모습이 마태의 뒤에 보입니다.
젊은이는 손을 마태의 어깨에 얹고 있는데, 마태는 젊은이가 뒤에 있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듯, 앞만 보고 있습니다. 격려하는 듯, 인도하는 듯 마태의 어깨에 살짝 놓인 젊은이의 손끝만 밝게 화면 위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젊은이는 눈을 내려깔고 은근하게 작은 목소리로 말하고 있습니다.
들릴 듯, 말 듯.
속삭임이 소근 소근 소근........
마태는 귀에 들리는 이야기를 알아차리지 못합니다.
렘브란트는 이 그림에서 우리에게 직접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태가 성경을 쓰며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처럼, 우리의 삶 속에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천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다고 말입니다.
6. 두 그림의 대조
두 그림을 비교해 보니, 렘브란트와 카라바조의 성경관이 눈에 보이시지요!
성도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깊은 묵상을 통해, 성령의 세미한 음성에 귀 기울이고 계신가요?
우리는 기도를 할 때, 내 마음의 소원 혹은 나의 지금 상황 속에서 꼭 있어야 할 것들을 기도제목으로 놓고, 우리의 바람을 아뢰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하지만 오늘은 성령님이 내게 하고 싶은 말씀이 무엇인지 귀 기울여봅시다! 성령님이 나를 통해 하시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분의 세미한 음성에 우리의 모든 주의를 집중해 봅시다.
오늘 기도회는 나의 마음의 소원을 아뢰는 기도이기 보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먼저 묵상하고 그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뜻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우리의 내면에서 세미하게 말씀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길 소망합니다.
자, 이 앞에 성경이 여러 권 놓여 있습니다. 한 권씩 가져가셔서, 자신이 평소에 좋아하는 구절을 깊이 묵상하든지, 아니면 성경을 펴자마자 놓여진 구절을 여러 번 읽으십시오, 그리고 나서 그 말씀 속에서 성령님이 내게 들려주고 싶으신 것이 무엇인지 침묵하며 그분의 음성에 귀기울이시기 바랍니다. 배경음악도 잠잠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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