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

말, 앎, 삶 / 디모데후서 3장 16-17절, 은헤로운 전도사님의 수요 예배 설교문

by tat tvam asi 2025. 2. 6.
반응형

 

삶 / 디모데후서 3장 16-17

 

16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할렐루야! 2월을 기점으로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영하의 날씨에도 불구하고 예배를 위해 교회에 오신 모든 성도님들을 환영합니다. 지금 한창 특별새벽기도가 진행 중에 있지요? 2025년을 맞이하여 다시 마음을 모아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기쁨의 자리입니다. 이른 새벽 성도님들께서 한분 두 분 활짝 웃으며 예배당에 들어오시는 것을 보면 강추위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원래대로라면 1월에 이미 끝났어야 할 신년 특별새벽기도가 설이 다 지난 지금, 2월로 미뤄지게 된 것에는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외할머니가 갑작스레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함께 웃고 음식과 안부를 나누었었기에 할머니의 중환자실 입원 소식이 더 갑작스럽고 당혹스럽게 느껴졌습니다. 평소와 같이 흘러가던 요양원에서의 하루 중, 간식시간에 나온 고구마를 드시다 쓰러지신 할머니는 지금까지도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이 소식이 저에게도 무척 충격으로 다가왔지만, 가장 놀랐던 것은 아마 저희 엄마, 곧 할머니의 딸로 혼수상태의 어머니를 고스란히 지켜볼 수밖에 없는 김희선 사모님이실 것입니다. 여전히 할머니는 의식 불명으로 산소 호흡기에 의존하여 병실에 누워계시는 가운데서, 하루에도 몇 번씩 수많은 생각과 걱정이 제 머릿속을 지나쳐갑니다. 이번 설에 할머니가 계신 병원에 방문하게 되었는데, 의식 없이 그저 가만히 병실에 누워만 있는 수많은 환자들과 그 중 하나인 할머니의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러한 아픔 속에서 우리 성도님들께서 이를 위해 많이 기도해주시고 위로와 격려로 함께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참으로 놀랐던 것이 이와 같은 상황 곧, 사랑하는 사람의 병환과 고통을 이미 많은 분들이 겪으셨거나 혹은 당장 겪고 계시는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불시에 찾아오는 고난들이 있습니다.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의 순간 속에서 때로 그 어떤 노력도 통하지 않는 무력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에겐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 누군가에게는 질병의 문제가, 경제적인 어려움이, 관계의 틀어짐과 보이지 않는 미래가 그럴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은 고통은 한꺼번에 찾아올 때도 있지요. 삶과 죽음의 문제를 앞에 두고 아주 진솔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할머니의 사고 이후로 참 여러 가지 생각들이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습니다. 의식을 잃고 입원해 계시는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다가도, 시시각각 불어나는 엄청난 값의 병원비와 만일 할머니께서 의식을 차리신다면 그때부터 느끼실 신체의 고통, 그리고 시간과 노력, 비용을 들여 그 괴로운 시간을 도맡아야 하는 간병의 책임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로 인해 마냥 회복만을 원하지 못하는 제 스스로가 맙게 느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무거운 양가적인 마음을 교회 성도님들과 나누는 중에 얼마나 많은 성도님들께서 얼마나 많이 이러한 일들을 계속적으로 통과 중이신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도 자신의 일을 꺼내 서로를 위로해주시는 모습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여러 갈래로 조각나 불안했던 마음을 잠재운 것은 사랑의 말, 기도의 말이었습니다.

이처럼 내 힘으로 어떻게 처리 할 수 없는 괴로운 상황 속에서 어떤 결정이 옳은 것인지, 내 마음이 어디로 향하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 바로 그 상황 속에서 입 밖으로 꺼내는 그 말이 나 스스로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이번 기회를 통해 더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으면 우리는 쉽게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말을 떠오르는 대로 내버려두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기보다 나의 습관과 욕심대로 방향을 틀 때가 많지요.  그리고 말하기를 “내 기도가 응답되지 않았으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무슨 소용인가.”하며 더 간절히 주님을 구하기보다 그저 내가 편한 데로 성급히 결론지으려 합니다.

 

이 귀중한 말씀 시간에 서두부터 죽음, 고통, 인생의 문제들과 같은 이야기로 시작하게 되어 마음을 무겁게 해드린 것 같아서 죄송하네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삶과 죽음,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사망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습니다. 모든 믿는 자를 영생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 성령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은 거리를 두고 멀찍이 떨어져 지켜보시는 하나님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찾아오사 문을 두드리는 하나님이십니다. 모두가 겪을 수밖에 없는 삶의 고난과 죽음에 대하여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지극히 단순한 해결책이 주어졌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제가 봉독하겠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바로 성경입니다. 저는 오늘 죽음을 초월한 영원한 생명과 이를 깨닫게 하는 성경에 관해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디모데후서 3 16절로 17절은 너무나도 유명하여 이 구절만 단독으로도 많이 암송되거나 인용이 되지요. 그런데 본문이 너무 유명하다보니 이 문구만 독자적으로 사용되어 가끔은 이 안에 담긴 내용의 깊이가 잘 드러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이 말씀은 참으로 담대하고 어떠한 두려움이 없이 확신 있는 상태, 그러니까 마치 모든 것이 형통하며 계획대로 되는 순간에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성경을 읽었더니 이렇게 유익하고 온전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고백하는 신앙의 성공담 같이 여겨지기도 하거든요. 그렇다면 이 본문의 저자 사도바울을 통해 이 말씀이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왜 고백되었는지를 함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디모데후서는 신약성경의 바울 서신 중 하나로, 사도 바울이 그의 영적 아들인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입니다. 이 서신은 바울의 마지막 서신으로 여겨지며, 바울이 로마에서 감옥에 갇혀 순교를 앞둔 상황에서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말하자면 사도 바울의 유언장과도 같은 서신이라 할 수 있겠네요. 이 서신을 작성하는 바울이 결코 지금 편하고 유복한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겠습니다.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의 사역을 충실히 감당하도록 격려하며, 복음을 지키고 전파하는 일에 대한 권면과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이전에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일어난 거짓 교사들로 인한 소동을 잠재우기 위해 디모데를 파견하였고, 디모데전서를 통해 에베소 교회를 위한 지침을 전하고 또 교회와 교회의 주인 되시는 예수님에 관해 이야기합니다.

 

이후 두 번째 서신을 작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의 형편이 더 악화되었음을 디모데후서 첫 장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서신의 서두에서 느껴지는 정서와 분위기는 사뭇 무겁고 담담합니다.

딤후1:3-4 /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이때는 로마 황제의 극심한 핍박 가운데 바울과 함께하던 많은 동역자들이 믿음을 끝까지 지키지 못하고 하나둘씩 바울 곁을 떠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심지어 바울은 잦은 투옥으로 인해 사도로서의 소명을 의심받는 오명을 쓰고,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범죄자 혐의를 받는 바울을 부끄러워하며 그를 버리고 떠나기도 하였습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자신의 사랑하는 동역자에게 그의 진심을 말합니다.

 

딤후1:7-8 /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담담하게 지금 처한 환경을 서술하는 디모데후서 1장과 더불어 맨 마지막 4장의 말미는 그의 개인적인 감정과 사사로운 부탁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대목입니다. 그가 디모데에게 겨울이 되기 전에 속히 올 것과 자신의 겉옷과 가죽 종이에 쓴 책을 가지고 올 것을 부탁하는 것을 보아 참으로 감옥에서의 생활이 혹독함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 가운데 오늘 본문이 작성되었습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디모데에게 소명을 다할 것을 간구합니다. 에베소 교회에 있는 모든 거짓 가르침을 치리하며 오직 성경을 통해 모든 일을 행하라 명합니다.

 

바울이 진단한 이 시대는 이러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절로 5의 말씀입니다.

 

1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오직 나의 유익과 이득을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고리타분한 고서입니다. 유대인에게, 헬라인에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세상을 따라 욕망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성경은 미련하고 거리끼는 것입니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진지한 삶의 고민 앞에 하나님의 말씀과 마주하기 보다 다른 곳에서 해결책을 찾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지부진하게 느껴지는 기도와 묵상이 아닌 쉽고 빠르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고 마음의 위안을 받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가장 어둡고 비참한 순간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다양한 시대와 환경 속에 살던 성경 저자들을 통해 자신의 백성을 끊임없이 교육하십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전에는 알지 못했던 것을 배우고, 행함이 없이 입으로만 떠드는 우리의 연약함을 깨닫고, 성경에 비추어 우리의 흐트러진 말과 생각과 행동이 올바른 방향을 찾아 새로운 사람으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참된 인간, 곧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질서로 다스리고, 생명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 사람이 되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감,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은 과거에 있었던 일을 기술한 역사책도, 율법과 규칙을 알려주는 신학 사전도, 멋진 문구들이 적힌 명언집도 아닙니다. 성경은 바로 지금 나의 삶 속에서 현실적인 문제를 앞두고 있을 때 나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게 하시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시고, 하나님의 인도하심 안에서 살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에게 말하는 것, 아는 것, 사는 것은 믿음이라는 줄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 처해있는 환경으로 인해 불안하고 불편한 마음이 있으시다면 하나님의 영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일을 말하고,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을 알고, 성령의 사람으로 거듭나 새 사람이 되어 모든 선한 일을 행하시기 바랍니다. 왜 하나님을 믿는 내가 이렇게 괴롭고 힘들지? 믿으면 다 해결되는 거 아니야?라는 질문이 터져 나오고, 삶과 신앙의 괴리에 괴로워하는 순간이 있다면 더더욱 교회에 나와 예배 드리고 말씀을 들음으로 하나님의 형상이자 성전인 나를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예수님께로 이르는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바울이 찬양할 수 없는 환경에서 주님을 찬양하고, 고난 가운데서 은혜를 깨닫고, 언제나 복음의 전도자로 살았던 것처럼 말씀 안에서 저와 우리 성도님들 모두 그와 같은 믿음의 분량까지 성장하기 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보낸 서신인 디모데전후서는 내용이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합쳐서 10장 분량밖에는 되지 않는데, 그 가운데 많은 현실적 고민과 눈물의 가르침과 믿음의 고백이 있으니 꼭 읽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이번 2025년의 모든 예배를 통해 말씀 안에서 우리의 말과 앎과 삶이 하나 되길 소망합니다. 신년 특별새벽기도를 통해, 그리고 수요기도회를 통해, 우리 성도님들의 삶이 말씀과 신앙과 은혜로 더 풍성해지는 한 해 되길 기도합니다.


 

오늘 말씀을 기억하며 함께 기도할까요? 

 

먼저 기도를 시작하기 전에 찬양 한 곡을 부르기 원하는데선한 능력으로라는 이름의 곡입니다함께 찬양하시겠습니다.

-------------------------------------------

 

함께 부른 이 곡 '선한 능력으로'는 감옥에서 죽음을 앞두고 있던 본 회퍼가 1944년 성탄절을 맞이해 약혼자에게 마지막으로 쓴 글입니다. 이 안에는 "목숨을 잃을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의 선한 능력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믿음으로 기대한다"라는 내용을 담겨 있습니다.

 

이 편지를 작성한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는 독일 루터교회 목사이자, 신학자이며, 반 나치운동가입니다.

 

본회퍼 목사는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할 교회가 히틀러를 그리스도라 하며 따르고 있는 현실을 한탄하여 라디오 방송을 통해 히틀러를 숭배하는 독일교회에 강력한 메시지를 전하였습니다. 그는 나치의 탄압에도 굴복하지 않고, 자신이 발표한 원고를 신문에 넣기도 하였는데, 이때부터 나치의 미움을 받기 시작하여 결국 1943 4월에 체포되어 2년 간 수용소를 전전하는 중에 히틀러 암살 음모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사형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본회퍼 목사가 옥 중에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족과 약혼녀 마리아에게 보낸 시가 '선한 능력으로'입니다. 그의 유언에는 "죽음은 끝이 아니라, 영원한 삶의 시작"이라고 적혔고, 묘비에는 '디트리히 본회퍼, 그의 형제들 가운데 서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라는 문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선한 능력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빛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나기를 소망하며 그의 시를 낭독할 때에 우리 성도님들께서는 눈을 감고 침묵가운데 기도하시면서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잠시 5분 동안 완전한 침묵과 어둠 속에서 고요히 기도하기 원합니다. 기도를 통해 어둔 밤이 지나고 떠오르는 밝은 태양이 되시는 하나님을 만나기 바랍니다.

 

선한 능력으로


선한 능력에 언제나 고요하게 둘러싸여서
보호받고 위로받는 이 놀라움 속에
여러분과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그리고 여러분들과 함께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기 원합니다.
 
옛것은 여전히 우리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어두운 날들의 무거운 짐은
여전히 우리를 누를지라도
주여, 간절하게 구하는 영혼에 이미 예비하신 구원을 주소서
 
쓰라리고 무거운 고통의 잔을
가득 채워 주실지라도
당신의 선하신 사랑의 손에서
두려움 없이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그럼에도 주님께서는 저희에게
이 세상에서 기쁨과 빛나는 햇빛을
주기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저희는 지나간 일들을 회상하며
저희의 생명을 온전히 주님께 맡깁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어두움을 밝히신 촛불은
오늘도 밝고 따뜻하게 타오르게 해 주십시오.
우리가 다시 하나 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압니다.
당신의 빛이 밤을 비추고 있음을.
 
이제 저희 주변 깊은 곳에 고요가 편만할 때
저희 주변을 보이지 않게 에워싼 세상에
온전히 울려 퍼지는 소리를
저희들로 하여금 듣게 하옵소서.
주님의 모든 자녀들이
소리 높여 부르는 찬양을.
주님의 강한 팔에 안겨 있는 놀라운 평화여!
그 선한 능력에 우리는 보호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 함께 하십니다.
 
- 1944.12 디트리히 본 회퍼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설교를 들으며, 엄마인 나를 비롯하여 수요 예배에 참석한 모든 성도님들이 깊은 은혜를 받았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