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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2025. 특별 새벽 기도회 설교문 ②, 나의 존재, 엡 1:3-6,

by tat tvam asi 2025.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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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존재

엡 1:3-6

 

교회에 나오기는 하면서도, 해갈되지 않는 갈증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때가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감도 사라지고, 자기가 원하는 데로 살아가는 것 같기는 한데, 마음에 불편함과 두려움과 불안과 원망과 분노가 가득 차 있어, 삶속에서 에너지를 팡팡 낼 수 없을 때입니다. 

 

어제 우리가 말씀을 본 것처럼,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부여 받은 자, 하나님의 통치권을 위임 받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다 하실 만큼, 여러분과 저를 지으시고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함께 계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우리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잠잠히 사랑하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말씀을 읽으며 확인해볼까요?

 

창 1:27-28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습 3:17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을까요...

 

엡 2:1-3 /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의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아버지를 떠난 탕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탕자는 돼지 밥도 얻어먹을 수 없게 된 비참한 자리에서, 아버지께로 돌아갈 결심을 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다음과 같은 질문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과연 아버지가 나를 받아 주실까? 용서해 주실까?' 이 스스로를 향한 질문에 탕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버지가 나를 종으로 받으주셔서 그저 밥이나 먹으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러나 탕자는 아버지를 몰랐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을 몰랐습니다.

 

아버지는 탕자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날부터 자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림은 사랑이고, 사랑은 용서였습니다. 아들이 아버지께로 돌아오자, 종의 신분이 아닌 아들의 신분으로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에 '포기'란 없습니다. 사랑의 결정체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사랑을 받을 때는 모릅니다. 사랑해보면 그 때야 알게 됩니다. 

 

하나님아버지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에게 하신 말씀, "네가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때도 너는 내 아들이다. 기가 막힌 실수를 하고, 텅빈 바구니만 들고 있고, 치명적인 죄를 짓었다 할지라도 너는 분명 내 아들이란다. 나는 너를 한 순간도 포기한 적도, 잊은 적도 없단다..." 바로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바울이 로마의 차가운 감옥 바닥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깨닫고 에베소 교인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첫 마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1:3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찬송하리로다" 이 말은, "하나님이여, 이렇게 좋은 복을 우리에게 주시다니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바울이 깨달은 아버지의 마음은 무엇일까요?

 

1. 나의 존재는 하늘의 신령한 복덩어리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를 향한 하나님아버지의 사랑의 마음을 알고, 이 놀라운 축복을 에베소 교인들에게 전하고자 편지를 써내려 갑니다.

 

이런 이야기 들어보셨나요?

조각가들은 조각하기 전에 이미 마음 속으로 완성된 작품을 구상한다는 이야기요...

코끼리를 만들다가 코가 부러졌다고, 돼지로 바꾸지 않습니다. 기린을 만들려다 다리가 부러졌다고, 사슴으로 만들지 않습니다. 

작가들이 자신의 청사진을 가지고 작품을 만들듯, 하나님도 인간을 창조하실 때 분명한 청사진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나를 만드신 원(原) 설계도면은 무엇입니까?

나를 복 그 자체, 복덩어리로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을 얻기 위하여 목마른 자로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나를 하나님의 친구 삼기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엡 1:4 /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셨다는 말씀은, 선택의 기준이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 말씀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선택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목적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로 사랑 안에서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 '흠이 없다'는 말은, 제사드릴 때 사용된 제물과 관련된 용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목적이, 우리가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인데, 이런 사람을 예수님은 "친구"라고 부르십니다.

 

요 15:14 /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

 

하나님은 나를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친구가 되게 하시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랑 친구가 되자...너는 나의 친구야...."

 

3. 하나님은 우리를 예수님만큼 존귀한 자로 삼기 원하셨습니다.

 

엡 1:5 /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우리가 허물 많고 연약하나, 예수님의 피로 나를 구원하시기 원할 정도로, 나는 예수님만큼의 가치 있는 존재입니다. 리의 참된 모습은 예수님만큼 존귀한 자라는 것입니다.

 

4. 나를 창조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시기 위함이라 말씀하십니다.

 

엡 1:6 /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그렇다면 우리가 찬송해야 할 하나님의 영광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찬양할 하나님의 영광은 바로 나를 구원하시고 나와 항상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나라 국립수목원에서 2007년에 3,300년 전 고대 이집트 피라미드 속에서 출토된 완두콩 종자를 싹 틔워 완두콩을 대량으로 증식하는데 성공한 적이 있었습니다. 결국 모든 씨앗들은 환경과 조건만 일치하면 반드시 열매는 맺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 우리도 흔들리는 세상 속에 별 볼일 없는 존재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내 속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담겨 있어 내가 아버지의 마음으로 나아가면 반드시 열매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감옥 바닥에서 이 사실을 깨닫고 "찬송하리로다"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나'의 존재를 알았기에 오늘이라는 우리의 상황과 환경 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로 나아가시는 주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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