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셨으니 ...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라
눅 4:18-19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가리켜 '제자의 길을 걷는다'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제자의 길을 걷는 중에, 벼랑끝에 서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거기에서 우리는 선택을 하게 됩니다. '문제에 집중할 것인가? 아니면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볼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는 것이지요.
성령이 우리 안에 계신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이제는 문제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저와 여러분도 문제보다 크신 주님의 능력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권능의 성령께서 역사하심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벼랑 끝에 서게 될 때, 바로 그곳에서 오직 전지전능하신 예수의 영, 성령님을 의지하고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들이 겪는 수많은 어려움도, 결국 우리로 하여금 성령의 역사하심을 바라보게 하는 자리로 이끌기 위하심임을 알 때, 우리는 담대함으로 능히 이겨내어 승전보를 울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현실은 우리가 집중하는 곳에서 나타납니다. 도전과 어려움에만 집중하며 살다 보면 인생이 제시하는 축복과 가능성을 알아차리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에 하나님의 에너지를 흩뿌려 놓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선택하느냐, 어떤 감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우리에게서 퍼져나가는 에너지가 달라집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과 공명하며 언제든지 이 에너지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창조력을 우리에게 이양하셨습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에 말입니다.
우리의 현실이 우리가 집중하는 에너지에 직접적인 반영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면 무언가 엄청난 일이 일어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상황의 희생자가 아닌 그것을 창조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한번 생각해보세요. 얼마나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의 부정적인 말이 우리의 하루 내내 기분을 좌우하게 만들었나요? 교통, 상황, 날씨, 뉴스 등이 우리의 생각과 감정의 에너지를 좌우하게 만들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나요? 하지만 여기 강력한 진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외부 세계에 의존하는 것을 바라시지 않고 우리의 마음에 집중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에너지는 외부 세계에 의존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순간 내리는 의식적인 선택입니다.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성령께서 저와 여러분 안에 함께하고 계십니다. 이 어마어마한 사실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잠 4:23 /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 요 14:16-18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주의 성령이 우리에게 임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도행전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을 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 행 1: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은 우리를 세상에 보내시기 전 성령을 주심으로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즉 성령을 주신 이유는 오늘 내가 보냄을 받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보냄 받은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성령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이 고향을 방문하신 후에 안식일에 규례를 따라 회당에 들어가 전하신 말씀입니다.
❚ 눅 4:18 /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①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일컫는 가난한 자란, 죄를 지은 자가 한 줌의 곡식마저 없어 제사를 드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줌의 곡식이 없어서 속죄의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복음을 전파하신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도 은혜를 받지 못할 때가 있지요? 마음이 갈급하지 않을 때 그렇습니다. 가난한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자신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 예수의 영, 성령님께만 온 마음을 집중하는 가난한 심령을 통하여 역사하십니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해 하는 것처럼 날마다 주님의 영에 온 마음을 두는 자들에게 복음의 역사는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기름을 부었다는 것입니다.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구약시대 때 세 가지 사역에 있어서 공식 인정절차였습니다. 즉 왕이 될 사람에게, 제사장에게, 선지자에게 기름을 부어 그 직임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즉 기름을 부었다는 것은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 전파하기 위해서 기름 부음을 받아,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할 권능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② 예수님은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기 위하여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이스라엘이 포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죄로 말미암음이었습니다. 우리가 포로에서 자유를 얻으려면,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에 집중해야 합니다.
❚ 롬 1:28 /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면 우리는 자신의 존재가 누구인지를 잊고 연약함 가운데서 죄 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의 마음이 늘 하나님으로 채워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참된 나의 본질이 하나님의 영임을 명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예수께서 하나님과 하나이셨듯이 우리도 하나님과 하나임을 보이시며,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영, 곧 성령님께 집중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세상은 눈에 보이는 것만을 좇아가는 것만 같습니다. 그것을 잃으면 전부를 잃는 것이라 말하기도 하지요. 보이지 않고 잡히지 않으면 인정하지 않으려 듭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뭐라고 말씀하시지요?
❚ 고후 4:18 /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눈 먼 자를 다시 보게 만드는 능력을 베푸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영적인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만드신다는 것이지요.
눌린 자에게 자유를,
우리를 누르는 것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세상의 염려와 근심, 우리에게 두려움을 주는 것에는 건강의 문제, 관계의 문제, 먹고 사는 경제의 문제 같은 것들이 있지요. 풀리지 않은 해결해야 할 문제들, 낫지 않는 육체적 고통과 아픔들, 수많은 관계의 어려움, 극복해야 할 가난과 결핍...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로부터 자유케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유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신다는 믿음보다, 스스로 고아처럼 해결해야 한다는 중압감 때문입니다. 주님이 내 삶의 전적인 주관자이심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심은, 우리 마음을 우리 안에 함께 계시는 권능의 성령님께 집중하여,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성령의 권능은 일체의 원자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충만해 있는 전지전능하신 힘입니다. 권능의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함께 계심을 깨달을 때,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게 되고 우리 자신은 그 힘과 하나가 됩니다. 모든 인간에게 그러한 가능성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있다'라는 것을 깨달으면 그분의 권능과 하나가 됩니다!!!
성령님과 나는 분리되어 있을 수 없습니다. 내 안에 성령님이 계시고 성령님은 거대한 권세와 능력을 가지고 계십니다
③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시기 위해서 보냄을 받으셨습니다.
❚ 눅 4:19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여기서 말하는 주의 은혜의 해는, 구약에 나오는 희년을 말합니다. 희년이란 7년마다 지키는 안식년을 7번 지낸 다음의 해인, 그러니까 50년 째가 되는 해를 말합니다. 이 50년 째가 되면 가난 때문에 남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던 자들이 해방되어 집으로 돌아옵니다. 가난으로 남의 손에 들어간 땅도 본래의 주인에게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희년이 되면 잃어버린 것을 되찾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가난 때문에 종으로 팔려갔던 아들이 돌아오는데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이처럼 예수님은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시기 위하여, 즉 기쁨의 소식을 전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 포로 된 자, 눈 먼 자, 억눌린 자가 땅을 되찾고, 끌려갔던 곳에서 벗어나, 다시 회복되어 기쁨이 가득하게 하시기 위하여 부름 받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보여 주시는 메시지가 있다면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이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로 오셔서 반드시 이 일을 이루시겠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미 은혜의 해가 시작되어, 회복과 부흥의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권능의 성령님께서 우리 안에 오심으로 인하여, 성령님의 능력이 우리 안에서 활동하게 되고 우리 자신은 그 힘과 하나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게 그러한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의 약속을 마음에 담아 회복과 부흥의 역사를 감당하시는 주님의 자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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