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바와 아나니아
행 4:36-5:6
오늘 말씀의 본문은 사도행전 4장의 마지막 부분과 5장의 첫 부분입니다.
본문의 배경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교회가 성립되면서, 교회가 계속하여 성장하는 과정 가운데 일어난 사건입니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자신들의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누는 장면이 나오지요.
❚ 행 2:44-45 /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며
이것은 초대교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모습이 일회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되었습니다.
❚ 행 4:32 /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 행 4:33 /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사도행전 4장에 기록된 것처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사실에 '큰 은혜'를 받았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에, 성도들의 신앙이 점점 더 깊어졌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큰 은혜를 받자, 자발적으로 서로 물건을 통용했던 것입니다.
성경에는 그 모습을 더욱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 행 4:34-35 / 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자신이 가진 밭과 집을 팔아, 그 판 값을 사도들 앞에 내어놓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전 재산을 다 내어놓았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위해서였을까요?
그것이 필요한 각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 공동체 속의 형제&자매들을 위해서 내어놓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부활에 큰 은혜를 받아,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예수님의 사랑, 예수님으로 말미암은 은혜를 체험할 때, 그 사랑과 은혜를 바탕으로 나눌 수 있는 믿음의 행동이 따르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약 강제적으로 하려했다면 결코 가능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런 나눔의 삶을 살고 있는 초대교회의 대표적인 인물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 행 4:36-37 /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요셉이라는 사람이 아주 모범적으로 나눔의 삶을 살았습니다. 사도들은 그를 '바나바'라 불렀습니다. 바나바는 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가 참으로 나눔에 대한 모범적인 삶을 보여줬기 때문에 그를 위로의 아들이라고까지 불렀던 것입니다. 바나바의 이런 삶은 결코 가식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나눔은 진실함에 바탕을 두었고, 이런 그의 삶은 변함없이 꾸준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사도행전 13장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13장에는 '안디옥교회'를 거점으로 이방을 향한 전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이때 안디옥 교회에서 담임목사인 바나바와 부담임목사인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을 하게 됩니다. 담임목사인 바나바가 바울과 더불어 선교여행을 떠나게 된 1차 전도여행, 그 여행의 인도자가 요셉이라고 불리는 바나바입니다. 이 사실은 그가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칭찬받고, 변함없이 신뢰를 얻었던 사람임을 알 수 있게 합니다. 무엇보다 그가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사람이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바나바가 사도들 앞에 자신의 밭을 팔아 그 값을 내어놓은 것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해서도 아니고, 잘난 체하기 위해서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저 순수하게 주님의 사랑을 실천한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사람들의 칭찬은 자연스레 따라왔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나바를 신뢰했고, 결국 그에게 이방 선교라는 중책을 맡기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 바나바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5장 1절부터는 바나바와 비슷해 보이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한 쌍의 부부가 등장합니다. 그들이 이름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입니다. 이들도 바나바와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 앞에 내어놓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사람들이 통용하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마음이 순수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 행 5:1-2 /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의 아내 삽비라와 더불어 소유를 팔아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만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자신의 소유를 팔아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를 감추어 두고 나머지를 내어놓은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그들은 얼마를 감추어 두었던 것입니다. 감추어 두었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은밀히 행했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형제, 자매를 돕겠다는데 재산의 일부를 비밀스럽게,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은밀하게 숨겨야 할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아나니아는 앞서 말한 바나바나, 다른 여러 사람들처럼 자신도 자신의 전 재산을 모두 교회에 바치는 것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나바처럼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존경받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하려고 하니, 자신의 전 재산을 다 바치는 것은 좀 아까웠던 것이지요. 그는 명예에 대한 욕심과 재물에 대한 욕심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나니아는 결국 자기 재물의 얼마를 사람들 몰래 숨겨 놓습니다. 그리고서 전 재산을 다 바치는 것처럼 행동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아나니아의 거짓된 행동을 그의 아내인 삽비라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의 행동은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아나니아의 행동이, 사람은 물론 성령을 속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 행 5:3-4 /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사람들이 자신의 재산을 팔아 그 값으로 서로 나누었던 것은, 순수하고 자발적인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자발적인 행동의 원인은, 부활의 증거를 듣고 깨달아 큰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과 그의 부활하심으로 인해 그들이 스스로 행한 선행이었던 것이지요. 결국 그들의 나눔은 예수님의 사랑에 대한 보답인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는 그 보답함에 거짓을 행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거짓 행동을 한 것입니다.
원래 땅 주인도 아나니아였고, 땅을 판 뒤에 그 값도 아나니아의 것입니다.
그럼에도 자기 것을 받은 은혜대로, 자신의 마음대로 하지 못한 것이지요.
이것은 아나니아가 재물의 주인이 아닌, 재물의 노예가 되어 있었다는 말이 된다.
큰 은혜를 받았다고 하면서도 그 재물의 노예가 된 그 마음을 그대로 둔 것에 대해, 베드로는 크게 꾸짖습니다. 이러한 아나니아의 잘못된 생각, 잘못된 행동은 결국 하나님 앞서 자신을 건져내지 못하였습니다.
❚ 행 5:5-6 /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혼이 떠났다는 말은 그가 죽었다는 말입니다. 아나니아의 죽음에 대해 하나님께서 직접 징계를 하신 것이라는 견해도 있고, 자신이 사도들을 속인 것에 대해 바로 들키게 되자, 너무 놀라서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어떻게 죽었든지 아나니아는 자신의 욕심으로 인한 거짓말 때문에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무서운 형벌은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다음 내용을 보면 아나니아의 거짓을 묵인했던 그의 아내 삽비라, 삽비라 역시 끝내 회개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첫 번째는 동기의 순수성이 있어야 합니다.
나눔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순수함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그 어떤 다른 목적이 들어가서는 아니 됩니다.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참된 나눔일 수가 없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도 않으실 일입니다.
두 번째는 거짓이 없어야 한다.
모든 일에 거짓이 없어야겠지만, 특별히 나눔에는 거짓이 있어서는 아니됩니다. 거짓은 동기의 순수성을 훼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마저 거짓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됩니다. 나눔은 진실함으로 해야 합니다.
이 말은 내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몽땅 나누어야 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그리고 무조건 모든 재산을 다 주는 것이 하나님의 뜻도 아니지요. 아나니아는 전 재산을 다 헌금할 것처럼 말하고는 아까워하여, 하나님을 속인 것이 바로 어리석은 행동이 된 것입니다.
세 번째로 참된 나눔을 위한 이 모든 조건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은혜를 받아야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저 사람을 향한 긍휼함만으로 나의 것을 내어놓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사랑, 그의 고난, 그의 죽음, 그리고 부활, 천국에 대한 약속과 하늘나라로의 승천에 대한 놀라운 은혜를 체험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 은혜로 말미암아 천국을 알게 되고, 천국을 소망할 때, 우리는 순수한 나눔, 거짓 없는 나눔, 아낌없는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믿는 우리들이 교회에서 헌금을 하고, 봉사을 하고, 주변 사람과 나눔을 할 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조건적인 사랑의 마음, 남을 나처럼 존귀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장 우선되어야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 하나님의사랑과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그로인해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자발적인 나눔과 자발적인 사랑과 자발적인 봉사로 삶속에서 자연스레 흐르듯이 나타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를 나누더라도 먼저 하나님의 은혜를 깊이 깨닫고 그로 말미암아 나눔을 실천하는 주님의 자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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