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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초대교회의 특징, 행 5:12-16, 사도행전 시리즈 설교(26)

by tat tvam asi 2025. 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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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교회의 특징

행 5:12-16

 

오늘 본문은 한창 성장일로에 있던 초대교회 공동체를 심각한 위기로 몰아갈 수도 있었던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거짓 봉헌이라는 가슴 아픈 교회의 내적인 시련을 극복한 교회가, 폭발적인 성령의 권능으로 표적과 기사를 통해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그 주변으로까지 확장되어 간 사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권위있는 교회

 

행 5:11 /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아나니아 부부 사건으로 공동체의 순수성을 더욱 견고하게 세운 초대교회가, 이전보다 더 큰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더욱 확장되고 성숙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연단을 극복하고 순결함과 거룩함을 유지하는 교회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으며 성령의 권능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을 교훈 받게 합니다.

 

둘째는, 사도들이 민간에 많은 표적과 기사를 행했는데, 이러한 사도들의 표적과 기사는 예수님이 행하시던 사역과 동일한 것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시작하신 구원역사가 계속해서 이어지도록 예수님의 사역을 그대로 전승 받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교회에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요소를 가지고서는 부흥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비록 고통스러운 시간이지만, 상처를 치유함과 동시에 회복을 통하여 복음이 올바로 선포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2. 합심하는 귄능있는 교회

 

행 5:12 /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말씀드린 것과 같이, 거룩함이 회복되기 시작하자 많은 기적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성도들은 영적인 목마름과 갈증을 가지고 더 함께 모여서 더 같이 예배하기를 사모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고, 믿는 사람들이 마음이 부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 기독교인들이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문제가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솔로몬 행각에 모여 예배를 드리게 되었는데, 솔로몬 행각은 162개의 큰 기둥으로 된 큰 건물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솔로몬 행각에 모여 들었다는 것은 유대교의 핍박을 피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을 보여준 것입니다이는 사도들 뿐 아니라 일반 신도들도 못지않게 당당하였다는 것입니다어디서 나온 용기일까요부활신앙의 용기입니다예수님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처럼 제자들의 마음이 담대하여 진 것입니다솔로몬 행각에 모인 일은 대단한 일입니다왜냐하면 핍박을 피하지 않겠다는 담대한 마음이 그들의 마음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3. 세상에 속하지 않는 교회

 

행 5:13 /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솔로몬 행각에 저들은 당당하게 모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교회 공동체에 합류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세상에서는 명예와 지위 등 그들이 이룬 것에 대해서는 당연히 존경을 해드리며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사회에서의 직급이 곧 교회에서의 직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주인으로 고백하는 사람들, 주님 뜻대로 살겠다고 결단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온다는 것은 세상의 기준과는 다른, 내 삶의 기반을 예수님 중심으로 살겠다는 이 가치 위에 두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기에 교회에 아무리 오라고 해도 다 오는 게 아닙니다. 오는 사람도 있고 안 오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나머지"라고 하였는데, 사도들을 핍박했던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성도들과 상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교회가 성령 충만하니까, 감히 거기 가까이 갈 수가 없었던 겁니다. 하지만 이들이 무섭다고 멀리 도망간 게 아니라 기회를 노리고 있던 것입니다. 기회를 노리느라고 뒤로 물러갔습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초대 교회도 처음에는 믿는 사람들도 있고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열심히 믿고 봉사하고 사역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적당히 믿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적당히 믿는 사람들이 더 큰소리 치고 활동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그때 터진 겁니다. 엄청나게 교회가 성장하고 엄청난 일들이 일어나는 가운데, 대충 믿던 사람들이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보고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자기들과 비슷한 부류, 아니 자기들보다 나은 사람인데 죽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충격이었을까요? 똑같은 죄를 지었는데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대표로 죽은 것입니다. 속으로는 '나도 죽는 게 아닌가? 내가 더 엉터리로 했는데...' 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이것은 교회를 다니는 게 전부가 아니라 제대로 다니고 제대로 믿어야 한다는 것,

예수님을 믿는 척만 하지 말고, 마음으로부터 제대로 믿어야 함을 깨닫게 되는 사건이 된 것이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 두 부류로 확 나뉘었습니다.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 더 나아간 사람들, 또 무서워서 이제 안 되겠다고 하며 밖으로 나간 사람들입니다. '아이고, 큰일 났네. 나 같은 사람은 명함도 내밀지 못할 곳이네. 나도 계속 있다가는 저렇게 죽어 나가겠네...'라고 하면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4. 믿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역사

 

그런데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믿지 않던 사람들에게 주는 충격도 있었지만, 잘 믿는 사람들에게도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행 5:14 /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았다"고 되어 있지요? 즉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처럼 두려운 일이 벌어졌을 때 '어휴 무섭네. 더 믿으면 안 되겠네. 교회에 나가면 안 되겠네...' 하며 떠나는 사람들보다, 믿음으로 더 주님 앞에 나가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결국 모이는 것이 증거입니다. 초대교회 사람들은 열심히 모였습니다. 사도를 중심으로 모이는 교회였습니다. 거기에 생명력이 있었습니다. 초대교회는 마음을 하나로 모았다는 것입니다. 사도의 권능 앞에 모두가 하나 같이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직 한 마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적 권위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백성이 칭송하는 교회"였습니다.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열심히 모이고, 열심히 봉사하다 보니 어떻게 됩니까? 날로 부흥하더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입니다.  

 

행 5:15-16 /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사람들은 병든 자들을 사도들이 다니는 길에 뉘어 놓고, 그 그림자라도 덮이기를 바랐습니다. 

 

여러분, 사도들의 그림자만 덮여도 병이 나을 수 있다고 믿었다는 사실이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베드로 개인을 우상화하는 게 아니라, 그만큼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간절히 바라고 소망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들도 경건과 순수한 복음에의 열정으로 준비되면사도들과 같이 예수님보다 더 큰 사역을 행할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우리에게 사도들과 같은 믿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 요 14:12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요 14:21 /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예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예수님의 권능을 나타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을 적용한다면, 현대교회 성도들이 예전의 성도들보다 예수님의 권능을 나타내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권능이나 성령의 능력이 점점 사라져 가기 때문이 아니라, 예전의 성도들보다 믿음이 적기 때문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십니다.

 

히 13:8 /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그 전능하신 능력에 있어서도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경건과 순수한 복음에의 열정으로 준비된 성도들은 성령의 권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권능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주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만 있다면 오늘도 기사와 표적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이 사실을 기억하고 간절히 주님을 섬기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오늘날 이 땅 가운데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의 크신 사랑과 권능을 나타내는 성도님 되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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