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분이다~
요 1:29-34
오늘 본문에서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을 통해 드디어 예수님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십니다. 요한은 그들이 알지 못하는 한 사람, “내 뒤에 오시는 분”을 소개합니다. 신발 끈을 푸는 것조차도 자신은 감당할 수 없다고 했던 분, 이분이 누구신지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요한은 사람들의 시선을 자신에게서 예수님에게로 돌립니다.
첫 번째 증언,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요 1:29 /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세례 요한이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주목하여 보라! 바로 이 분이다’ 예수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그러면 당시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을까요?
첫째는 대속입니다. 세례 요한은 어린 양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은 죄를 대속하기 위한 희생 제물입니다.
사 53:5 /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특별히 세례 요한이 ‘어린 양’이라고 말할 때 ‘어린 양’은 여러 어린 양 중에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옛적부터 계속 희생되어왔던 수많은 어린 양이 아닙니다. 당시에도 계속 드려졌던 어린 양 중에 하나가 아닙니다. 유일한 ‘어린 양, 세상의 죄를 위한 단 하나뿐인 그 어린 양’입니다. 그리고 유일하신 그 어린 양의 대속을 통하여 우리는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유일하신 그 어린 양이 세상 죄를 지고 대신 죽으심으로 구원이 성취됩니다.
둘째는 선물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은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어린 양입니다. 이삭을 바치러 가는 아브라함은 이렇게 말합니다.
창 22:8 /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죄에 빠진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희생 제물로 하나님이 준비하십니다. 그래서 제물이 선물입니다.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는 선물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허물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어린 양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어서 세례 요한은 자신의 존재와 자신의 사역을 예수님과 비교하면서 예수님의 뛰어나심을 증언합니다. 먼저 존재에 대해서는 이렇게 비교합니다.
요 1:30 /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오는 사람이 있는데 나보다 앞선 것은 그가 나보다 먼저 계심이라 한 것이 이 사람을 가리킴이라
시간적인 선후 관계를 본다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보다 앞섭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났고 먼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해서 먼저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예수님은 세례 요한 뒤에 오신 분이십니다. 요한도 예수님을 가리켜 내 뒤에 오시는 분이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향하여 나보다 앞서신 분이라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복음서를 시작하며 태초부터 계신 분으로 예수님을 소개합니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음으로 사역에 대해서 말씀합니다.
요 1:31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
세례 요한이 하는 일은 물로 세례를 베푸는 일입니다. 그 일을 하는 이유는 오실 분을 이스라엘에 나타내기 위함입니다. 요한은 무대를 꾸며놓고 사람들이 기대하며 주인공을 기다리게 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왔을 때 요한은 주인공을 소개하며 퇴장하는 일입니다. 사람들은 요한이 하는 일, 그가 베푸는 세례를 보며 그를 주목하고 있을 때 요한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주목하라고 말합니다.
두 번째 증언, 세례 요한은 존재와 사역에 있어서 예수님이 우월하시다 증언합니다.
요한도 말하기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자신도 전에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날 연예인들처럼 사람들이 봤을 때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런 외모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고향 사람들도 예수님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목수의 아들이라 여겨 예수님을 배척합니다. 예수님에게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다 말합니다(사53:2).
그럼으로 하나님의 계시가 있기전까지, 예수님이 자신을 드러내시기 전까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알지 못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례 요한이 전에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은 알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의 증언이 확실한 것입니다.
요 1:32 /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요한은 자신이 본 것을 증언합니다. 성령님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예수님께 머무는 것을 본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지 이어지는 말씀에서 알 수 있습니다.
요 1:33 /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보면 그 사람인줄 알라는 것입니다. 전에는 그가 누구인지 몰랐지만, 하나님의 계시에 따라 직접 봄으로써 이제는 그가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분이 어떤 분이십니까? 요한은 예수님에 대해서 이렇게 증언합니다.
요 1:34 /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세례 요한은 말하기를 ‘내가 봤다. 이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이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실 때 일어난 사건에 대하여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늘 문이 열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 막1:11; 눅3:22)
하늘의 음성이 울릴 때 예수님에게 세례를 베풀었기에 옆에 있다가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요, 이 사실을 분명하게 증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여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선물로 받은 자입니다.
그러니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 내 삶에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며 그 안에 머무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심을 온전하게 깨달은 자가 참된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매일 매순간 예수님이 영으로 나와 함께하신다는 기쁨 안에 깊이 침잠하며, 그 기쁨의 삶을 나누며 그분을 향한 믿음으로 충만한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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