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욜 2:12-13
우리는 이번 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을 맞이합니다. 사순절은 부활절에 앞선 40일의 기간을 말합니다. 한자로 四(넉 사)자에 旬(열 순)자를 쓰는데, 말 그대로 40일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사순절은 그리스도인들이 40일 동안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오셔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위대한 사역, 특별히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며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교회는 부활절을 앞두고 모양은 다르지만,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하여 40일 동안 절제와 금식과 기도로 부활절을 준비합니다. 사순절은 성회(聖會) 수요일에 시작하여 고난주간의 마지막인 성(聖)토요일에 마칩니다. 그리고 40일 동안에 6번의 주일은 작은 부활절이라 하여 사순절 기간에 포함하지 않습니다.
날짜로만 본다면 성회 수요일부터 부활주일까지는 총 46일인 셈입니다. 여기서 6번의 주일이 빠지니, 40일이 되는 것이지요.
사순절의 시기는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시간이기에, 우리가 부활절을 기쁘게 맞이하기 위하여 회개를 준비해야 합니다. 회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받아들이려고 세상이 주는 달콤함을 과감히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40일일까요?
신약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본격적으로 공생애를 감당하시기 전, 40일 동안 광야에서 금식하시면서 기도하십니다. 그리고 광야에서 마귀에게 세 가지 시험을 받으십니다. 40이 주는 의미는 마귀의 시험과 예수님의 승리라는 분명한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이번 주 수요일부터 사순절을 시작하는데, 사순절을 시작하기 앞서 예수님이 받으셨던 첫 번째 고난이라고 할 수 있는 광야에서의 40일 동안의 금식과 그가 겪으신 시험을 먼저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어떻게 고난을 승리하셨는지를 보면서, 우리의 삶도 날마다 승리하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세상 사람들 앞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나서기 전에 먼저 광야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 마 4:1-2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그렇다면 예수님이 40일 금식하시면서 마귀에 받은 시험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이 기록에서 두 가지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의 광야 생활이 성령의 이끌림에 의한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
둘째는 예수님의 광야 생활이 단순한 고독의 훈련이 아니라 마귀와의 싸움이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메시아 사역을 시작하기 직전에 경험했던 광야의 삶은 그가 앞으로 살아가야 할 삶이 평탄한 것만은 아님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40일 동안의 광야에서의 삶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의와 뜻을 따라 그것을 실천하기 위하여 산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성령의 이끌림에 의해 시작된 것이기에 승리를 미리 약속 받고 하는 '넉넉히 이기는 싸움'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오늘도 예수님이 광야의 40일 동안의 싸움에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어떤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묵묵히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우리의 발걸음을 옮겨 놓을 수 있습니다.
이제 수요일부터 시작하는 사순절 기간 동안, 예수님의 광야에서의 승리를 기억하면서 우리도 당면한 모든 삶 속에서 큰 승전보를 울리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마귀에게 시험 받은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1. 먹고 사는 일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받으신 첫 번째 유혹은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입니다.
사탄은 인간의 가장 첫 번째 에너지 중심인 안전과 생존의 욕구를 건드립니다.
❚ 마 4:3 /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광야의 40일 금식이 끝나갈 무렵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고 요구해왔습니다. 첫 번째 마귀의 시험은 눈앞의 본능적인 욕구를 우선시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 때 눈에 보이는 본능적인 욕구에 자기의 삶을 걸라는 유혹입니다. 사람이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도망칠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환경과 여건과 상황 때문에 내 삶이 이럴 수 밖에 없었다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떡보다 귀한 것이 있는데, 이것은 사명입니다.
여러분! 떡 가진 사람보다도 사명 가진 사람이 훨씬 더 귀한 생애를 살았어요. 오늘 우리도 사명을 붙들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본능적인 욕구를 이기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 마 4:4 /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예수님은 깨어지기 쉬운 인간의 연약함 속으로 들어오셔서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을 전하십니다. 40일 금식하신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예수님은 미처 인간들이 깨닫지 못하였던 삶의 존재 이유를 분명히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유는 먹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이다."
예수님은 먹고 사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분리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을 두고 계신가요? 우리가 단지 먹고 사는 일에만 관심을 둘 때, 하나님의 일에서 관심이 멀어 질 수 밖에 없게 됩니다. 다시 말해, 먹고 사는 일에 집착하는 사람일수록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고,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게 마련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삶의 구조를 바꾸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먹는 일을 부정하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먹고 사는 일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분리시키지 않으셨습니다. 축복의 삶이란 나의 노력에 대한 댓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들이 누리는 축복이라 말씀하십니다.
2. 우리의 존재 목적에 대하여
마귀는 이번에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의 성전꼭대기 위에 예수님을 세운 다음, 거기서 예수님을 시험했습니다.
❚ 마 4:5-6 /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성전의 꼭대기는 상당히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곳입니다.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환호와 박수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곳입니다.
즉 이 시험은 사람들의 환호와 사람들의 존경을 받으라는 유혹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고자 하는 유혹을 거부하셨습니다.
❚ 마 4:7 /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우리가 살다보면 예기치 못한 일들이 발생됩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틈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지금 네가 이렇게 어려운 것도, 지금 내가 이렇게 힘든 것도 하나님이 도와주지 않아서 그렇다." 사탄은 끝없이 우리를 시험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합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이 세상에서 나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으려 할 때, 하나님이 '나'자신은 이 땅에 존재케하신 목적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3. 경배할 대상에 대하여
❚ 마 4:8-9 /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마지막 시험은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의 영광을 보여 주며, "만일 내게 엎드려 절하면 이 모든 권세와 영광을 네게 주겠다"며 유혹해 왔습니다.
사실 누려보고 싶고, 높아지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사탄이 주님을 끌고 높은 데 올라가더니,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바라보게 하면서 "이 권세와 영광을 다 주겠다!" 말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경쟁을 배웁니다. 왜 경쟁을 하지요?
결국은 다른 사람들보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함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 사랑하는 자녀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정하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요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 마 4:10 /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사탄아 물러가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자, 사탄은 떠나갔습니다.
인간이 권력을 향한 욕망만을 지향하는 순간, 사탄의 밥이 되고 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존귀한 존재이므로 다른 누구를 지배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너는 누구를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광야 40일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이란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존재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다시 한번 일깨워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였을 때 처음에는 거절하십니다.
그 이유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외에 그 누구에게도 예속된 삶을 살라 하지 않으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회는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자리에 서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 관계 속에서 서로 사랑과 섬김의 자리에 서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삶이란 인간을 지배하는 세력을 거절하고, 기쁨으로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자리에 서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쟁 상대자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경쟁 상대자는 나 자신입니다. 즉 내 생각은 어제의 생각보다 더 성장했는가? 내 말은 어제 보다 더 온유하고 부드러운가? 더 아름다운 나 자신을 만들기 위해서 주님의 말씀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는 것을 말씀하여 주십니다.
마귀가 다양한 궤계로 예수님을 넘어뜨리려고 시도해보았지만 넘어가지 않자, 더 이상 예수님 곁에 있을 이유가 없음을 알고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마귀가 떠나자 천사들이 나아와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 마 4:11 /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우리 역시 세상의 유혹을 이긴다면 예수님께서 천사들의 섬김을 받으셨듯이, 하나님의 위로와 은혜가 임합니다. 악인들의 꾀와 죄인들의 길과 오만한 자들의 자리를 물리치면 하나님께서 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4. 사순절 광야의 시간은 정화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은 40일 밤낮을 광야에서 지내셨습니다. 사순절의 실천은 예수님의 이런 고독과 침묵, 금식이라는 고난의 상태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에 나오는 '40'이라는 숫자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정화의 기간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광야 40일을 지나가시면서, 거룩함으로 나아가라고 우리를 초대하십니다.
사순절 광야의 초대는 거룩함으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초대, 우리를 부활로 초대하시는 것입니다.
2025년 사순절을 시작하면서 요엘 선지자가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 욜 2:12-13 /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
이번에 맞이할 사순절 기간을 통하여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라보는 시간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마귀에게 시험 받도록 하신 이유는, 예수님의 믿음을 세상에 보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아담 이후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끊임없이 마귀의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을 이겨 나가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메시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사순절을 지나가며, 제자들의 모습이 변화되어 감을 우리는 말씀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고난 받기 전, 그를 따르던 제자들은 자신의 명예에 관심을 두고 세상 권력의 자리에 오르려는 욕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주의 성령이 그 삶을 뚫고 들어오자 제자들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이번 사순절을 통하여, 성령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서 강력하게 역사하실 수 있도록 우리 마음의 왕좌를 내어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이 영(靈)으로 우리 온 마음을 차지하시게 하면, 슬픔읂 사라집니다.
예수님이 내 안에서 역사하시면, 나의 전 존재는 잔치하는 자와 같이 변화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세상을 변화시킨 것처럼, 오늘 우리도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으로 인하여 세상을 기쁘고 아름답게 변화시키는 청지기들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성회 수요일, 재의 수요일, 사 61:1-3, 사순절의 시작, 수요 예배 설교문 (0) | 2025.03.05 |
---|---|
영광의 왕이 누구시냐, 시 24:1-10, 주일 예배 설교문 (0) | 2025.03.02 |
빛이 되시는 예수님, 요 8:12-19, 요한복음 시리즈 설교(42) (0) | 2025.03.01 |
예수 이름의 권세, 눅 4:18-19, 예배 설교문 (0) | 2025.03.01 |
광야의 길, 눅 4:1-13, 은혜로운 전도사님의 설교문 (0) | 2025.02.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