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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에 9:20-28, 에스더 시리즈 설교(11)

by tat tvam asi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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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9:20-28

 

부림절은 율법서(모세오경)에 기록된 명절은 아니지만, 이스라엘의 중요한 명절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달월 15일은 정월 대보름 경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 정월 대보름 못지않게 유대인들은 부림절을 풍성한 명절로 지켜왔습니다.

 

명절의 의미는 단지 잔치를 벌이고, 즐겁게 놀기만 하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각각의 명절은 그 명절을 지켜야 할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으며, 사람들은 그 절기를 지킴으로써 자신들이 잊지 않고 간직해야 할 것들을 기억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부림절을 지키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만의 계획대로라면 아달월 13일은 유다인들을 몰살시키고, 그 재산을 모두 빼앗는 날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유다인들이 그들을 이유없이 미워하는 사람들을 제거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페르시아 전역에 있는 유다인들에게 편지를 보내서 이렇게 제안했습니다.

 

9:21-22 / 한 규례를 세워 해마다 아달월 십사일과 십오일을 지키라

이 달 이 날에 유다인들이 대적에게서 벗어나서 평안함을 얻어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고 애통이 변하여 길한 날이 되었으니 이 두 날을 지켜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며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 하매

 

만약 하만의 계획대로 되었다면, 아달월 13일은 유다인들이 몰살되는 날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아달월 14일과 15일은 당시 페르시아에 살던 유다인들에게는 제2의 생일이자 새해가 시작되는 설날과도 같은 날이었습니다.

 

부림절은 22절에 기록된 것처럼, 이스라엘이 적들의 위협에서 벗어나 평안을 얻고, 슬픔이 기쁨이 되고, 애통하던 날이 복된 날로 변화된 것을 기념하는 명절입니다. 그래서 이 날은 즐겁게 먹고 마시며, 기쁨의 잔치를 벌이게 됩니다.

 

하지만 부림절은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이 날에는 이웃 간에 서로 음식과 선물을 나누며,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도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념하는 일은, 나만 즐겁고 기분 좋으면 그걸로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소외되고 배제된 사람이 없이 모두가 즐거운 잔치라야 진정한 잔치라고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 감사한 것이 있고,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을 깨달은 사람은 그 감사한 마음이 이웃에게로 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쁨의 절기를 지키는 기본자세입니다. 그럼으로 14일과 15일은 유다인들에게는 생명을 되찾은 날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부림절에는 그들은 혼자서 즐거워하지 않고, 잔치를 열어서 음식을 함께 나누고, 서로 선물을 주어서 의미를 되새기며,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날로 삼았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 날이 공동체의 날이 되고, 민족의 명절이 되었습니다.

 

9:23-25 / 유다인이 자기들이 이미 시작한 대로 또한 모르드개가 보낸 글대로 계속하여 행하였으니

곧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모든 유다인의 대적 하만이 유다인을 진멸하기를 꾀하고 부르 곧 제비를 뽑아 그들을 죽이고 멸하려 하였으나

에스더가 왕 앞에 나아감으로 말미암아 왕이 조서를 내려 하만이 유다인을 해하려던 악한 꾀를 그의 머리에 돌려보내어 하만과 그의 여러 아들을 나무에 달게 하였으므로

 

그런데 유다인이 이런 어려운 환경을 이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 3가지 힘이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모르드게의 믿음의 강권, 둘째는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의 결단,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유다인들의 합심기도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뒤집어 주심으로 말미암아 슬픔의 날이었어야 할 날이 기쁨의 날이 되었고, 초상날이 되었어야 할 날이 잔칫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에스더의 믿음의 결단이 있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본 것처럼 에스더가 민족을 구원한 위대한 여인인 것은 사실이지만, 처음부터 에스더가 위대한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아하수에로 왕에게는 와스디라는 왕후가 있었는데, 술자리 감정이 격해져 와스디 왕후 대신에 에스더가 왕후가 됩니다. 그리고 에스더가 왕후이기는 하였지만, 왕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에스더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실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죽으면 죽으리라는 믿음으로 왕 앞으로 나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민족을 구하는 일을 감당 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에스더를 에스더 되게 한 것은, 그녀의 믿음이었습니다.

 

신약성경 첫 번째 책인 마태복음 1장에 나오는 족보에는 다말, 라합, 룻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 마리아 등 다섯 명의 여인 이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인의 이름은 족보에 기록되지 않았던 고대 이스라엘 사회에서 족보에 여인의 이름이 기록되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들 다섯 여인 중에서 무려 네 여인이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 이방 출신의 여인이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서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이방 출신의 여인이 족보에, 그것도 메시야의 족보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다섯 여인에게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유다인들은 믿음으로 나아가 마침내 죽음을 생명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은 이 날을 기념하여 연약한 사람들을 섬기며, 이웃들과 기쁨을 나누는 과정을 겪으며 이 날을 신앙으로 승화시켜 나갑니다.

 

9:26-28 / 무리가 부르의 이름을 따라 이 두 날을 부림이라 하고 유다인이 이 글의 모든 말과 이 일에 보고 당한 것으로 말미암아

뜻을 정하고 자기들과 자손과 자기들과 화합한 자들이 해마다 그 기록하고 정해 놓은 때 이 두 날을 이어서 지켜 폐하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각 지방, 각 읍, 각 집에서 대대로 이 두 날을 기념하여 지키되 이 부림일을 유다인 중에서 폐하지 않게 하고 그들의 후손들이 계속해서 기념하게 하였더라

 

결국 이 말씀이 에스더서를 기록한 목적입니다. ‘부림절(Purim)’부르(pur)’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부르제비뽑기 또는 주사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만이 유다인들을 몰살하기 위해 제비를 뽑은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죽음을 정하는 주사위를 하나님께서 생명을 정하는 주사위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지난 달,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부활을 기리는 사순절과 부활절을 참으로 뜻 깊게 보냈지요? 어떤 의미에서 부활절은 우리를 죽음의 날에서 생명의 날로 바꾸어주신 날입니다.

만일 6개의 주사위를 던저 동일하게 6이라는 숫자가 나올 확률이 얼마나 될까요?

1/46,656 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가능성이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죽음의 주사위를 생명의 주사위로 바꾸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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