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시키시는 하나님
에 9:1-19
마침내 아달월 13일이 되었습니다. 하만이 주도했던 조서대로라면, 이 날 하루 동안 유다인이 죽임 당하고, 재산을 빼앗겨야 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가 주도하여 반포했던 조서 때문에 이 내용이 뒤집혔고, 유다인이 오히려 이날 하루 동안 자신들의 대적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해도 되는 날로 바뀌었습니다.
에 9:1 / 아달월 곧 열두째 달 십삼일은 왕의 어명을 시행하게 된 날이라 유다인의 대적들이 그들을 제거하기를 바랐더니 유다인이 도리어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들을 제거하게 된 그 날에
그런데 처음 하나님은 하만의 악한 계략을 막지 않으셨습니다. 그 악한 계획이 왕의 조서로 현실화되고, 페르시아 전역에 반포되는 과정도 허용하셨습니다. 이런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어디에도 계시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만이 주도한 조서가 반포된 날부터 모르드개가 주도한 조서가 반포된 날까지 대략 70일의 기간은, 유다인의 숨은 대적자들이 누구인지 일일히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유다인을 마음껏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해도 좋다는 처음의 조서를 기반 삼아, 유다인의 대적자들은 호기롭게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고, 그 70일 동안 매우 의기양양하게, 유다인을 위협했을 것입니다.
유다인은 70일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자기 백성의 안위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무심한 하나님처럼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간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 기반을 만드셨습니다. 이윽고 하나님의 심판의 시간, 아달월 13일이 다가왔고, 우리는 그 악을 송두리째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에 9:2-3 / 유다인들이 아하수에로 왕의 각 지방, 각 읍에 모여 자기들을 해하고자 한 자를 죽이려 하니 모든 민족이 그들을 두려워하여 능히 막을 자가 없고
각 지방 모든 지방관과 대신들과 총독들과 왕의 사무를 보는 자들이 모르드개를 두려워하므로 다 유다인을 도우니
모르드게는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자 모든 사람들이 유다인을 돕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르드개를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높여주십니다.
에 9:4-5 / 모르드개가 왕궁에서 존귀하여 점점 창대하매 이 사람 모르드개의 명성이 각 지방에 퍼지더라. 유다인이 칼로 그 모든 대적들을 쳐서 도륙하고 진멸하고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마음대로 행하고
에스더서의 배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과 너무나 많이 닮아 있습니다. 사람의 생명을 함부로 다루는 왕이 있고,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위정자들이 있습니다. 이런 왜곡된 조직과 사회 구조 속에서 우리는 종종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탄식하며 울며 고난 받을 때가 있습니다. 악이 기승을 부리고 있기 때문에, 나의 작은 힘으로는 이런 거대한 악을 넘어설 수 없을 것처럼 느껴져 절망감에 사로잡힐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그들이 기승을 부리는 이 시간은 자신들의 악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70일과 같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과 인내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을 묵과하시는 분이 아님을 알고, 믿어, 그가 일하실 때까지 잠잠히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에 9:6-10 / 유다인이 또 도성 수산에서 오백 명을 죽이고 진멸하고
또 바산다다와 달본과 아스바다와. 보라다와 아달리야와 아리다다와
바마스다와 아리새와 아리대와 왜사다
곧 함므다다의 손자요 유다인의 대적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이와 아울러 하만의 열 아들들의 이름을 일일히 열거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재산에 손을 대지 않았다는 말씀을 통해 우리는 사울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유다인의 조상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고, 어떤 노략물도 취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살려두지 말아야 할 아말렉의 왕 아각을 살려두었고, 양과 소 중에 가장 좋은 것을 살려두었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불순종한 사울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에서 모르드개를 비롯한 유다인은 심판의 도구로서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합니다.
에 9:11-15 / 그 날에 도성 수산에서 도륙한 자의 수효를 왕께 아뢰니
왕이 왕후 에스더에게 이르되 유다인이 도성 수산에서 이미 오백 명을 죽이고 멸하고 또 하만의 열 아들을 죽였으니 왕의 다른 지방에서는 어떠하였겠느냐 이제 그대의 소청이 무엇이냐 곧 허락하겠노라 그대의 요구가 무엇이냐 또한 시행하겠노라 하니
에스더가 이르되 왕이 만일 좋게 여기시면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이 내일도 오늘 조서대로 행하게 하시고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를 나무에 매달게 하소서 하니
왕이 그대로 행하기를 허락하고 조서를 수산에 내리니 하만의 열 아들의 시체가 매달리니라
아달월 십사일에도 수산에 있는 유다인이 모여 또 삼백 명을 수산에서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고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에 9:16 / 왕의 각 지방에 있는 다른 유다인들이 모여 스스로 생명을 보호하여 대적들에게서 벗어나며 자기들을 미워하는 자 칠만 오천 명을 도륙하되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75,000명은 적은 수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수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악을 심판하시면, 그 누구도 막을 자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타협이 없고, 늦추어짐도 없습니다.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루어집니다. 왕의 조서는 대적자들의 목숨을 빼앗고, 그들의 재산을 탈취해도 된다고 했습니다만 유다인들은 조서의 내용과는 달리,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에스더서의 기자가 이를 10절, 15절, 16절에 걸쳐서 세 번이나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그들의 재산에는 손을 대지 아니하였더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역사하신 날을 기억하며 기념합니다.
에 9:17-19 / 아달월 십삼일에 그 일을 행하였고 십사일에 쉬며 그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겼고
수산에 사는 유다인들은 십삼일과 십사일에 모였고 십오일에 쉬며 이 날에 잔치를 베풀어 즐긴지라
그러므로 시골의 유다인 곧 성이 없는 고을고을에 사는 자들이 아달월 십사일을 명절로 삼아 잔치를 베풀고 즐기며 서로 예물을 주더라
세상 사람들의 기준대로라면 물질을 취해도 문제가 없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는 삶을 위해서는 기꺼이 포기하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유다인들은 자신의 대적자들을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빼앗는 세상적인 방법의 복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로 받아들이고 말씀을 이루는 주님의 도구가 되기를 선택했던 것입니다. 한층 더 고차원적인 삶의 차원으로 승화시킨 것입니다.
이처럼 세상의 삶의 모양을 닮지 않으며, 오직 말씀을 이루는 삶을 살아갈 때, 이를 보시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높이사 세상의 뭇사람들이 함부로 할 수 없도록 두렵게 하시고, 존귀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는 나를 말씀을 이루는 도구로 여기고, 삶속에서 이를 성취해 나가기 위해 더 높은 차원의 삶의 수준을 목표로 삼아 한 발, 한 발 걸어가야 합니다. 바로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를 우리의 삶의 자리에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심으셨습니다.
우리는 변화무쌍하고 어떤 부분에서는 예측 불가능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주님 앞에 겸손히 우리의 옷깃을 여미며, 우리가 당면한 현실 속에서 말씀을 이루어 나가는 복된 한 날 되시기를 기원 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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