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더서를 마무리하며
에 9:29-10:3
오늘 드디어 우리는 에스더서의 마지막 말씀을 묵상합니다. 에스더서를 정리하면서 에스더서의 주인공이 누구일까요? 왕후 에스더일까요? 아니면 총리 모르드개일까요? 에스더서의 주인공은 에스더도, 모르드개도 아닙니다. 비록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이름이 주인공처럼 등장하고 있지만, 에스더서의 진짜 주인공은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에스더서에는 ‘하나님의 이름’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이름만 등장해서 그들이 주인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가능케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내 인생의 연극무대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내가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에스더서는 그 점을 분명하게 깨우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보면 왕후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전권을 갖고 부림에 관한 ‘두 번째 편지’를 쓰게 됩니다. 첫 번째 편지는 총리 모르드개에 의해 페르시아 127개 지역에 보내졌습니다(9:20). 그 후 수개월이 지나서 다시 두 번째 편지를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쓰지만, 이 두 번째 편지는 왕후 에스더에 의해서 주도적으로 써집니다.
에 9:29-30 / 아비하일의 딸 왕후 에스더와 유다인 모르드개가 전권으로 글을 쓰고 부림에 대한 이 둘째 편지를 굳게 지키게 하되
화평하고 진실한 말로 편지를 써서 아하수에로의 나라 백이십칠 지방에 있는 유다 모든 사람에게 보내어
이 편지를 통해 부림절을 지키는 이유를 두가지로 말씀하십니다.
에 9:31-32 / 정한 기간에 이 부림일을 지키게 하였으니 이는 유다인 모르드개와 왕후 에스더가 명령한 바와 유다인이 금식하며 부르짖은 것으로 말미암아 자기와 자기 자손을 위하여 정한 바가 있음이더라
에스더의 명령이 이 부림에 대한 일을 견고하게 하였고 그 일이 책에 기록되었더라
물론 에스더가 현실에 안주하며 자신의 안녕만을 위해서 살았다면 그렇게 자기만 영화롭게 살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민족의 위기 앞에서 사흘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라는 믿음으로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이 체험을 통해 모르드개와 에스더는 물론이요 온 유다 백성이 금식하며 기도 할 때에 죽음과 멸망의 날을 생명과 구원의 날로 바꾸어 주시는 은혜를 체험합니다.
에스더 시리즈 설교(11)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부림절(Purim)’은 ‘부르(pur)’라는 단어에서 왔는데, ‘부르’는 ‘제비뽑기 또는 주사위’를 뜻하는 말입니다. 하만이 유다인들을 몰살하기 위해 제비를 뽑은 것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죽음’을 정하는 주사위를 하나님께서 ‘생명’을 정하는 주사위로 바꾸어 주셨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고난을 묵상하고, 부활을 기리는 사순절을 보내고 있는데, 결국 부활절은 우리를 죽음의 날에서 생명의 날로 바꾸어주신 날이기에 부림절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와같이 하나님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자에게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에 10:1-2 /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본토와 바다 섬들로 하여금 조공을 바치게 하였더라
왕의 능력 있는 모든 행적과 모르드개를 높여 존귀하게 한 사적이 메대와 바사 왕들의 일기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에 10:3 / 유다인 모르드개가 아하수에로 왕의 다음이 되고 유다인 중에 크게 존경받고 그의 허다한 형제에게 사랑을 받고 그의 백성의 이익을 도모하며 그의 모든 종족을 안위하였더라
마지막 말씀에서 모르드개가 어떻게 되었는지 다시 한 번 잘 밝혀 줍니다.
그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페르시아 왕의 문지기로 섬긴자이다.(2:5,19) 사촌인 에스더를 잘 양육하고(2:7), 그녀가 왕비가 되는 것을 도왔었다.(2:10) 하만에게 꿇어 절하는 것을 거부했지만 모함을 이기고 유대인의 목숨을 구할 뿐 아니라 왕 다음 서열에 오르는 인물이 되었습니다.(10:3) 그리고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한 몸에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처럼 모르드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위해서 사용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리로 사용하였습니다.
에스더서를 마무리하면서 3가지를 적용해 보려고 합니다.
1. 한 신앙인이 바르게 서는 데에는 하나님의 통로가 되어준 사람이 있습니다.
에스더가 에스더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녀의 곁에 모르드개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에스더는 포로민의 딸이었고, 부모마저 없었습니다. 그러했던 그녀가 귀족의 딸만이 될 수 있었던, 당시 세계 최대의 제국, 페르시아 아하수에로왕의 왕비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하나님께서 은총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이지만, 모르드개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또한 그녀의 신앙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가 처음부터 살고자하면 죽고, 죽고자 하면 사는 ‘필생즉사 필사즉생(必生卽死 必死卽生)’의 담대함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궁궐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모르드개로 말미암아 아하수에로왕에게 나아가면서, 3일 금식도 하고, “죽으면 죽으리라”의 각오도 할 줄 아는 믿음의 사람으로 바뀌어 갔던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과 신앙을 돌아보아도 우리가 지금의 자리에 있게 될 수 있게 된 데에는 누군가의 도움이 있지 않았습니까? 여러분들도 이제는 도움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2. 인생은 전반전보다 후반전이 더 중요합니다.
하만의 전반전은 얼마나 높아 보였습니까? 그는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의 후반전은 달랐습니다. 전반전에는 그의 권력의 자리가 높았다면, 후반전에는 그의 머리가 50규빗(약 22.5m)의 나무장대에 높이 달렸습니다. 에스더의 전반전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후반은 왕후였습니다. 이것은 단지 그녀가 세상적으로 신분이 높아졌다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에 붙들리면, 다른 인생을 살게 됨을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모르드개의 전반전도 그저 대궐 문지기의 신분이었고, 하만에게 몹시도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빅단(빅다나)와 데레스의 역모를 고발하고도 아무런 보상도 받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신비한 손길을 내미시자, 그의 후반전은 승리로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우리의 삶도 동일합니다. 비록 지금 어려움과 부족함, 연약함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를 마침내 승리하게 하시는 분이심을 믿고 나아가기를 기도합니다.
3. 하나님은 시공을 초월해서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에스더 속의 일이 일어난 곳이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이 아닙니다. 이방인의 땅, 페르시아 제국의 수도입니다. 그곳은 여호와 하나님이 유일하신 신으로 인정되는 곳이 아닙니다. 여러 우상숭배가 난무하는 곳입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하나님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에스더서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아도, 에스더서를 읽으면 읽을수록 하나님이 너무도 또렷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삶의 자라리가 어디이든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그곳에 하나님이 계시고, 그곳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사월을 보내고 이제 5월을 맞이하려고 합니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가정과 일터, 섬김의 현장이 모두 하나님께서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우리를 심으신 곳이고,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오늘도 신비한 손길을 내밀어서 오묘하게 역사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우리로 인해 또 다른 사람들이 은총을 누리는 이 시대의 에스더와 모르드개가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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