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마음을 품은 이스라엘
호 10:1-8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의 이름도 호세아입니다. 호세아 선지자와 같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요. 호세아 왕 때, 선지자 호세아가 심판에 관한 선포를 하였습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유하고 번영할수록 더 우상을 숭배하고 세상에 빠져 있자, 이것에 관해 하나님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을 향해 묵은 땅을 새롭게 기경하라고 외칩니다. 이것은 마음을 새롭게 하라는 말씀입니다.
호 10:1 /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 그 열매가 많을수록 제단을 많게 하며 그 땅이 번영할수록 주상을 아름답게 하도다
1절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을 가리켜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고 하였지요? 북이스라엘은 멸망하기 얼마 전 여로보암 1세 때에, 건국 이래 최고의 번영을 구가하였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의 영토는 남유다 지역을 제외하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의 모든 영토를 회복한 것은 물론, 경제적으로도 매우 풍요로웠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몰랐던 것은 이러한 풍요가 그들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풍요는 포도원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축복이요 은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축복과 번영이 넘칠 때, 그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부(富)를 가지고 각종 우상의 제단을 많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번영할수록 다른 사람을 압제하며 성적으로 부도덕함에 빠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왜 이와 같은 번영의 때에 우상 숭배에 열을 올리게 된 것일까요? 그것은 그들이 번영의 원천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전쟁의 신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출애굽 과정이나 가나안 정복 전쟁 과정에서 그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시는 분으로 만족하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어려울 때 돕는 분, 산상의 하나님, 광야의 하나님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다가 이제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아닌 자신의 번영과 안일, 세상에서의 성취에 쏠리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에 정착한 후로 번영과 풍요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풍요와 번영만을 말하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이 그들의 취향에 맞는 신이었습니다. 그들은 바알과 아세라를 섬기는 것을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이 멸망한 이유를 두 마음을 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호 10:2 / 그들이 두 마음을 품었으니 이제 벌을 받을 것이라 하나님이 그 제단을 쳐서 깨뜨리시며 그 주상을 허시리라
'두 마음을 품는다' 는 말은 마음이 나뉘어진 것을 말합니다. 두 마음을 품을 때 사람은 순전함을 잃어버리고 온전히 하나님을 따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두 마음을 품은 자와 우상 숭배자를 동일한 부류로 간주하십니다.
호 10:3 / 그들이 이제 이르기를 우리가 여호와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므로 우리에게 왕이 없거니와 왕이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하리요 하리로다
여로보암 2세가 죽은 후, 북이스라엘이 B.C. 722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하기까지 약 30년 동안, 북이스라엘에서는 거듭하여 반역이 일어났고 이로 말미암아 왕은 있었으나 실제로는 없는 것과 같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의 마지막 왕인 호세아 왕 때에, 앗수르 왕 디글랏빌레셀과 살만에셀이 북이스라엘을 침공하였는데, 호세아는 이들의 침략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할 능력이 없었습니다.
북이스라엘이 당하는 이 모두 환란은 결국 그들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위하지 않은 까닭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곤고한 날이 이르러서야,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참된 구원을 베푸시는 분임을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망한 두 번째 이유는, 재물에 푹 빠져 사는 북이스라엘 사람들이 거짓말을 서슴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호 10:4-5 / 그들이 헛된 말을 내며 거짓 맹세로 언약을 세우니 그 재판이 밭이랑에 돋는 독초 같으리로다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이라 그 백성이 슬퍼하며 그것을 기뻐하던 제사장들도 슬퍼하리니 이는 그의 영광이 떠나감이며
위의 말씀은 호세아 당시의 북이스라엘 사회가 얼마나 부패한 사회였는가를 보여줍니다. 북이스라엘의 권세자들은 헛된 말, 거짓 맹세를 할 뿐입니다. 그들은 마치 원 가지 곁에 있는 잡초처럼, 모든 양분을 빨아가고 원 가지를 시들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마리아 주민이 벧아웬의 송아지로 말미암아 두려워할 것" 이라는 말은 '벧아웬의 송아지'가 두려운 존재라는 말이 아니라… '벧아웬 송아지'를 섬김으로 인해 처하게 된 비참한 실상으로 인하여 두려워하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여기 '벧아웬 송아지'란 북이스라엘의 창건자 여로보암 1세가 예루살렘의 성전을 대체하여 벧엘에 세운 금송아지 우상입니다. 본래 '벧아웬'의 본 이름은 '벧엘' 인데, 야곱이 형 에서를 피하여 아람으로 도망하다가 길에서 자던 중에 꿈속에서 하나님을 뵙고 붙인 지명으로 '하나님의 집'이란 뜻입니다. 그 곳 '벧엘'에 여로보암 1세는 금송아지를 세우고 '벧아웬' 즉 '송아지의 집'이라는 의미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이 벧엘에 단을 쌓은 이유는 이스라엘이 남북 왕조로 갈렸을 때, 예루살렘은 남왕조 유다에 속하여 있었기에 북이스라엘은 예루살렘으로 백성들이 예배 드리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북이스라엘은 벧엘이라는 지역에 단을 쌓고 송아지를 세워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백성들의 마음을 붙들어 놨었습니다.
벧엘에 송아지를 세운 결과, 우상을 섬기는 본거지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집이라는 벧엘에 대하여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벧엘, 하나님의 집이 아니라, 벧아웬 즉 살육의 집 ˙ 거짓의 집 ˙ 사악함의 집이라 책망하시는 것입니다.
호 10:6-7 /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사마리아 왕은 물 위에 있는 거품 같이 멸망할 것이며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솔로몬 이후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분열 왕국이 되었지요. 이때 북이스라엘이 열지파의 지지를 받아 북왕조가 성립됩니다. 그리고 남왕조는 유다와 베냐민 두 지파만 남습니다. 유다가 워낙 큰 지파라서 남왕조라는 이름이 유다가 되고, 북왕조는 열 개의 지파가 나라를 세우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는 국호를 가져 갔습니다. 북이스라엘 열 지파중에 가장 큰 지파가 에브라임이기 때문에 가끔 북이스라엘을 에브라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 송아지는 앗수르로 옮겨다가 예물로 야렙 왕에게 드리니 에브라임은 수치를 받을 것이요 이스라엘은 자기들의 계책을 부끄러워할 것이며" 즉 외교, 정치, 이런 것이 다 힘을 쓰지 못하는 현실을 맞이할 것임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의 수도가 사마리아이기 때문에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사마리아라고 지금 부르기도 하는 것입니다.
호 10:8 / 이스라엘의 죄 곧 아웬의 산당은 파괴되어 가시와 찔레가 그 제단 위에 날 것이니 그 때에 그들이 산더러 우리를 가리라 할 것이요 작은 산더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리라
호세아 선지자는 이 아웬의 산당이 파괴되고 그 제단 위에 가시와 찔레가 날 것을 예언합니다. 사람이 자신의 사욕을 따라가고 하나님을 찾지 않는 것이 불신앙이고 죄입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죄의 자리에는 장차 가시와 찔레가 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여 하나님의 금령을 어기고 죄를 범하였을 때 그들의 삶의 터전에서는 이전에 없던 가시와 찔레가 났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들은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찾지 않아도 된다" 하며 풍요의 신, 금송아지 우상을 대신 세우고 왕위를 굳게 하며, 풍요와 번영을 약속하였지만 그들에게는 평안한 날이 없었고 무수한 외침으로 마침내 파멸에 이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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