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 6:30-40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에 꼭 필요한 것이 육의 양식입니다. 음식을 먹어야 육체의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먹는 음식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 번 먹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꾸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음식의 에너지가 다 소모되고 나면 또 배가 고프기에 다시금의 충전이 필요한 것입니다. 영원한 충만감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매일 먹는 양식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인 특징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양식은 생존을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동물들의 세계에서 일차적인 관심은 먹이입니다.
종족 번식과 생존을 위한 '먹이 사냥'을 해야 합니다.
둘째, 인간은 매일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하루라도 에너지원이 되는 음식을 먹지 않으면, 제대로 활동하기가 어렵습니다.
또한 내 앞에 아무리 많은 음식이 놓여 있다해도, 내가 먹은 음식만을 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셋째,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땀을 흘리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우리는 땀을 흘려야 먹을 양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런 양식을 '썩을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요 6:27 /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주님께서는 썩을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충고하십니다. 인생의 목표가 우리의 '먹이'가 된다는 것은, 우리가 진정 누구인지를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몸이라는 하나의 물리적 존재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몸이 아니고 마음이 아니라, 이 모든 것들을 초월하는 영원한 본질입니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아 하나님의 생가를 부여 받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성을 이양 받아,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자입니다.
❚ 창 1:26-28 /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백 년 동안 노예 생활을 하다가 모세를 따라 홍해를 건너서 탈출했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가기 위해 40년을 광야에서 보냅니다. 마실 물도 없고 먹을 음식도 없으며 잠잘 데도 없는 곳이 광야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화려한 문명 아래 있지만 역시 광야 생활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다고 불평했을 때, 하나님께서 40년 동안 독특한 양식 '만나'로 이들을 먹이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에게 질문합니다.
❚ 요6:30-31 / 그들이 묻되 그러면 우리가 보고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니이까, 하시는 일이 무엇이니이까 기록된 바 하늘에서 그들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는데 모세가 주어서 먹었습니다. 당신이 메시아라면 우리에게 보일 표적이 무엇입니까? 모세는 만나를 주었는데 당신은 무엇을 주겠습니까?'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 요 6:32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모세가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떡을 준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하늘로부터 참 떡을 주시나니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만나를 준 것이 모세라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말을 듣고 "만나는 모세가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정정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지만, 육체적인 죽음은 맞이하였습니다. 비록 만나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이지만, 사람들이 만나를 먹었다 할지라도 육적인 죽음은 만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생명의 양식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 요 6:33 /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의 떡이 있습니다. 이 양식은 만나와는 달리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러한 떡을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주여 이런 물을 내게도 주사 여기 물 길러 오지 않게 하옵소서"하고 간청한 사마리아 수가 성의 여인의 말과 똑같습니다.
군중들도 "그런 떡을 항상 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 요 6:34-35 /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께서는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만나를 먹어도 죽음을 만나게 되지만 나를 먹으면, 나를 만나고 나를 믿으면 인생에서 놀라운 기적이 시작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영생의 떡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떡은 감상용이 아닙니다. 떡은 사색용이 아닙니다. 떡은 먹어야 합니다. 영생의 떡을 먹는다는 것이 곧 믿는다는 것입니다.
❚ 요 6:36 /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그런데 당시에 사람들은 이 사실을 믿지 못합니다.
그러나 오늘 요한복음 기자는 우리에게 믿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언제 제자들이 실제로 믿기 시작하지요?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사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했다는 사실을 제자들은 두려움 없이 전합니다.
❚ 요 6:37 /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생명의 떡을 먹은 사람들 결코 우리 주님께서 내어 쫓지 않습니다.
영원히 주님의 품 안에서 보호를 받습니다.
사단의 세력은 우는 사자처럼 다니면서 두루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광명의 천사로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무엇으로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을 세상의 떡으로 유혹했던 사단이 지금도 우리를 세상의 떡으로 유혹하여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무엇에 근거하여 보호를 받습니까?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의 능력으로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 요 6:38-39 /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은혜 베푸시며 택한 사람들을 한 영혼도 놓치지 않고 '잃지 않는’'것입니다. 주님은 한 사람도 지나치지 않고 흩어져 있는 택하신 사람들을 모으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을 결코 포기하시지 않습니다. 그것은 부모가 자식을 포기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자식이 탕자와 같은 망나니라 하더라도 부모는 포기하지 않습니다. 자식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를 향한 주님의 마음이 그렇습니다. 포기하지 않는 사랑으로 주님은 마지막 날에 반드시 우리를 일으켜 세우십니다.
❚ 요 6:40 /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하나님의 자녀를 결코 놓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구원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온우주의 아름다움과 광대함 속에도, 예수의 영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개인적인 걱정들을 온전하게 내려놓는 순간, 또는 우리 생각들의 소음이 잠잠해지고, 시간을 초월한 무언가가 고요 속에서 나타났던 순간을 경험해 보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몸이 운전자는 아닙니다. 우리의 몸에 모든 감각과 생각과 소원이 담겨져 있으나, 이것들이 우리 몸의 운전자가 아닙니다.우리 인간은 영혼육으로 이루어져 있지요. 우리의 영혼은 무한하며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영혼은 별들을 넘어 시간을 넘어 우리가 볼 수 있고 만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넘어섭니다. 우리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제한'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패도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인간 경험의 일부이지만 우리의 진정한 자아의 일부는 아닙니다. 우리의 영혼은 이러한 것들을 관찰하고 그것들로부터 배우지만 결코 그것들에 의해 정의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바닷속의 한 방울이 아닙니다. 우리는 한 방울 속에 온 바다입니다. 이는 우리 영혼의 무한함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우주의 작고 무의미한 부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전체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훨씬 훨씬 더 강력한 하나님의 영(靈)의 반영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영을 반영한다(reflect)는 것은 어마어마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 신성의 불꽃이 거하며 모든 생명, 모든 존재의 근원이 함께하고 계시다는 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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