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함께하는 삶
요 14:16-17
요한복음 14장의 말씀을 가리켜 '다락방 강화'라 말하는데, 강화라는 뜻은 풀어 설명하는 이야기라는 의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성령과 함께하는 삶에 대하여 설명하여 주십니다.
1. 예수님께서 다락방에서 풀어 설명하여 주신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첫 번째 메시지는, 십자가의 길에 대하여 근심하지 말라 말씀하십니다.
요 14:1 /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왜냐하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을 뿐 아니라 우리를 다시 데리러 오실 것이니 근심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요 14:3 /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두 번째,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이 아버지께로 가는 생명의 길이라 알려 주십니다.
요 14:6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세 번째, 예수님께서 아버지 안에 계시고, 아버지께서 예수님 안에 계신 것을 믿는다면 두 가지 기적을 보게 된다 말씀하십니다.
요 14:11 /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그렇다면 두 가지 기적이란 무엇입니까?
①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할 수 있고, 그보다 큰일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 14:12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②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예수님께서 시행하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요 14:14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고, 부활하십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땅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실 때,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실 것이라 약속하십니다.
요 14:16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약속하셨습니다. 원래 보혜사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실 때 우리와 함께 계시기 위하여 '임마누엘'로 오셨습니다. 보혜사란 의미는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헬라어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에서 '위로자'로 번역된 것입니다. '돕기 위해 곁으로 부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이 '위로자' 곧 '거룩한 영'은, 영원히 흐르는 '강'처럼 우리가 거기에 젖줄을 대면, 우리는 더욱 더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느 영혼들이나 다 '그 생명의 강'에서 영적 양식을 공급 받을 수 있게 해놓으셨습니다.
저를 가르친 신약학 교수님은 수십 년동안 성경을 연구하고 수많은 자료들을 접하며 깨달은 것이, 성령은 바로 '영으로 오신 예수'라고 분명하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즉 예수님과 성령을 분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언제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또 두드리면서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하나님의 영은, 우리가 문을 열기만 하면, 우리와 함께하신다고 굳게 약속하셨습니다.
계 3:20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 길은 어쩌면 '홀로 걷는 길'일 때가 있습니다. 곁에 가족들이 있어도 심지어 아내와 남편이 있어도 늘 함께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정말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정작 곁을 보면 아무도 없을 때가 있지요. 인생 길이 힘든 이유가 홀로 이 길을 걷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님을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영이시기에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고 우리와 함께 영원히 계실 수 있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성령과의 동행은 아주 특별한 동행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님과 우리가 영으로 동행하기 때문입니다.
요 14:17 /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과거 제자들이 예수님과의 동행은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 눈으로 동행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령과의 동행은 다릅니다. 성령은 영이시기 때문에 우리 눈으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확인할 수 있겠습니까?
① 시편 말씀을 보면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얼굴을 찾는 다는 것은 간절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시 27:8 /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하실 때에 내가 마음으로 주께 말하되 여호와여 내가 주의 얼굴을 찾으리이다 하였나이다
② 다음으로 성령님과 대화를 하는 것입니다.
시 62:8 /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 (셀라)
이번 한마음 연합예배를 준비하며 주님 앞에 순간순간 기도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모태 신앙이기에 교회 생활 즉 예배, 행사, 그리고 봉사활동 이런 모든 것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이번 한마음 연합예배를 준비하며, 무언가 다른 역사하심이 있을 것이 기대되어 더 많이 주님 앞에 머물고 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기도의 자리로 부르십니다. 나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내면으로 들어가 내 안에 성령님이 함께하고 계심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어떻게 나의 모습을 깨닫게 하시느냐구요?
요 16:8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우리가 기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내 속에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전에 볼 수 없었던 내 자존심과 교만과 나의 에고가 보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순간 예수님 앞에 '나는 부족하오니 나를 도와 주시옵소서...'라고 아룁니다.
그런데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는 순간 하늘 문이 열리는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를 붙들어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깨닫게 됩니다.
요 14:18 /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지금까지는 고아처럼 모든 고민을 혼자 다 끌어 안고 고독하게 살아왔다 할지라도, 이제는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심을 온전하게 깨달았기에, 더 이상 고아가 아닙니다. 이제 오직 기쁨, 감사, 찬양, 승리, 축복, 믿음 등을 주실 것이 믿어지기에 두려움이 떠납니다.
그리고 성령님과 동행할 때 신비로운 연합이 일어납니다.
요 14:20 /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날'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후를 말합니다. 그때 성령님과 접속하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말씀을 나눈 것처럼 우리가 주님과 연합할 때 어떤 역사가 일어납니까?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할 수 있고, 그보다 큰일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 14:12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둘째, 예수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예수님께서 시행하시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요 14:14 /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예수는 수많은 이들의 잘못된 해석으로부터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기 위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로 하여금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heart)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진짜이며 자신들의 정체성 또한 자신의 가슴에서 일어나는 생각대로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가슴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도대체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가슴'이란 잠재의식으로 알려진 곳에서 비롯된 깊은 느낌의 영역입니다. 잠재의식은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의해, 두려움과 의심과 불유쾌한 기억들에 의해, 선과 악이 뒤섞인 혼합물들에 의해 완전히 조건화되고, 이렇게 조건화된 잠재의식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의 행위와 반응은 자동적인 습관이 되다시피 합니다. 이 잠재의식 깊은 곳에서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닌, 진정한 느낌이 일어나는 곳을 '가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가슴'이야말로, 우리가 진실로 누구인지를 알고 진실된 자기 자신을 살기 위해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되는 매우 중요한 핵심입니다.
'가슴'은 광대한 저장고와 같아서, 우리가 표면적인 마음을 통하여 무엇을 쏟아붓든, 다 받아들이고 수용합니다. 우리 개인의 저장고에 있는 아이디어들의 질(質)은, 우리의 행동과 반응의 질을 결정합니다. 우리가 우리의 저장고를 한계 지워진 인간의 믿음들로 채워왔다면, 우리는 우리의 모든 행동들 또한 그렇게 한계 짓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영으로 하여금 영원한 진리로 채우도록 허용한다면, 우리는 대전환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가슴을 우리의 창조 센터로 지으셨습니다. '가슴'은 생각들과 감정들을 물질화된 형상으로 변환시키는 강력한 발전기와도 같습니다. 우리가 가슴으로 원하는 것들은 항상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으며,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것입니다. 이 창조 저수지의 적절하고 바른 활용을 통하여, 아버지가 가진 것은 어떤 것이든 다 우리 자신의 삶 속에 구현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인내를 갖고 추진하고, 우리의 열망이 간절하기만 하다면 말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우주의 완전함을 깨닫고 경험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표면적인 마음을 '비우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창조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과정이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가 '느끼는' 어떤 것이든 가질 수 있도록 창조하셨기에,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고 실감하는 것만큼이나 쉽게, 하나님과의 '완전한 하나 됨' 또한 경험할 수 있습니다.
비결은 우리가 스스로 어디에 관심하고 집중하는지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조절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모두가 다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았기에 하나님의 창조의 힘을 부여받았고, 그런 의미에서 모두가 다 '작은 예수들'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손을 내밀어 우리가 준비되어 있음을 하나님께 말씀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즉각 우리들을 하나님 보호의 날개 아래로 모으십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우리가 가슴으로 원하는 것들은 항상 이루어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우리 마음에 소원 두고 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시 37:4 /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빌 2:13 /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우리 안에 이미 와 계신 권능의 성령님, 그러기에 우리 안에 이미 내재된 신성한 힘을 믿고 그것을 실현하기로 결심하십시오. 그리할 때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미래를 상상하기만 해도, 우리 가슴의 저장고에서는 저절로 감사가 솟아나 흘러넘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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