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설교 ①
행 7:1-7
스데반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가 고발 당한 죄목은,
1) 성전을 모독한 죄와 2) 모세의 율법을 훼손한 죄였습니다.
❚ 행 6:14 / 그의 말에 이 나사렛 예수가 이 곳을 헐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전하여 준 규례를 고치겠다 함을 우리가 들었노라 하거늘
당시의 재판장은 대제사장 가야바였습니다. 그가 엄중하게 스데반에게 물었습니다.
❚ 행 7:1 / 대제사장이 이르되 이것이 사실이냐
가야바는 스데반에게 묻습니다. "네가 나사렛 예수가 성전을 헐고 율법을 고친다는 말을 한 것이 사실이냐?"
스데반은 이때도 복음을 전하는 기회로 삼았습니다.
전도란 내가 전하고 싶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전도의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데반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복음을 전하기에 앞서 유대인들이 가장 관심을 두고 있는 아브라함과 이스라엘 역사를 거론합니다.
스데반이 첫 말문을 연 '아브라함'은 유대인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대하여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는 공회의원들 앞에서 아브라함에 관한 이야기를 서두로 꺼내고 있습니다.
❚ 행 7:2 / 스데반이 이르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스데반이 "우리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말문을 열자, 유대인들은 일제히 그를 주목했습니다.
'스데반이 왜 아브라함을 이야기할까?', '스데반이 예수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다니 이상하다'라며 일제히 스데반을 주목합니다.
스데반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전했습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누구입니까?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을 믿는 믿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고 상식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약속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믿음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 살고 있을 때 영광의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셨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스데반 집사는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에 살았던 것을 왜 서두에 언급하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하나님 없이 살았던 때와 하나님 없이 살았던 장소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이 존경하고 받드는 그들의 조상이 하나님 없이 살았을 때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광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본문의 초점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유대인들의 조상으로 삼으시기 위해 어떻게 역사하셨을까요?
1)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주셨습니다
❚ 행 7:2b /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먼저 찾아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브라함은 은혜를 입은 자였습니다.
2) 하나님께서 그에게 말씀을 주셨습니다
❚ 행 7:3 / 이르시되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고대사회에서 고향과 친척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에 이르는 모험과 같은 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고향 친척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살던 고향은 우상의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미드라쉬'에는, 아버지 데라가 우상을 만들어 파는 장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른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환경이 중요하기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우상을 숭배하던 그 땅에서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고향집을 떠난 아브라함은 약속의 땅으로 갑니다. 비록 아브라함은 발 붙일 땅, 약속하신 자식 하나 없었지만, 불평하지 않고 의심 없이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약속의 땅을 향하여 나그네의 삶을 살아갑니다.
아브라함 입장에서 본다면 힘들고 어려운 순례였을 것입니다. 그는 언제라도 과거에 세상에서 즐기던 삶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 그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했기 때문이라고 히브리서 11장은 말씀합니다.
❚ 히 11:15-16 / 그들이 나온 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그는 땅의 부귀영화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더 사모했습니다. 그는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외로울 때나, 고통스러울 때나 더 나은 본향, 하나님 나라를 사랑하고 소망했습니다. 이러한 소망이 그를 세상의 물질주의와 쾌락주의에서 보호하고 극복하게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의 인생을 책임지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확신하였다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옮겨 주셨습니다
❚ 행 7:4 / 아브라함이 갈대아 사람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의 아버지가 죽으매 하나님이 그를 거기서 너희 지금 사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메소포타미아를 떠났습니다. 그러나 가다가 유브라데 강 상류의 하란에서 멈췄습니다. 멈춘 이유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 땅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주저앉아 있는 아브라함에게 다시 나타나셔서 그를 일으키셨습니다.
4)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셨습니다
❚ 행 7:5 / 그러나 여기서 발 붙일 만한 땅도 유업으로 주지 아니하시고 다만 이 땅을 아직 자식도 없는 그와 그의 후손에게 소유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으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땅, 둘째는 자손, 셋째는 모든 민족에게 복의 통로가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5) 하나님께서 그의 후손들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 행 7:6-7 / 하나님이 또 이같이 말씀하시되 그 후손이 다른 땅에서 나그네가 되리니 그 땅 사람들이 종으로 삼아 사백 년 동안을 괴롭게 하리라 하시고
또 이르시되 종 삼는 나라를 내가 심판하리니 그 후에 그들이 나와서 이 곳에서 나를 섬기리라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나그네가 되고 4백 년 간 종살이를 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하나님이 반드시 성취하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갈대아 우르(메소포타미아)에서 하란으로, 하란에서 가나안으로,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애굽에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하시는 순례의 여정 가운데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다 성취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하셨고, 큰 민족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구원자가 되시고 함께 하셨습니다.
스데반 집사의 오늘 설교를 통해서, 그가 공회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1)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 아브라함은 이방인이었고, 성지 밖에 있었던 별 볼일 없는 존재였음을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만의 특권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선민사상, 율법, 성전 - 성전과 하나님을 동일시 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성전을 모독 하는 것을 하나님을 모독한 것이라 여겨, 지금 스데반을 고발하고 나선 것입니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가 이렇게 설교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스데반 집사는 설교를 통해 이스라엘이 가지고 있었던 특권의식 즉 선민사상과 율법과 성전에 대한 유대인들의 편견을 깨뜨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성전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항상 자기 백성을 새로운 모험을 하도록 불러내시고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특정한 장소에 매여 계시고 특정한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그 일을 이루시기 위해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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