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데반의 설교 ③ – 부르시고 보내시는 하나님
행 7:17-34
스데반은 아브라함과 요셉에 이어, 유대인들의 가장 위대한 영웅인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를 통한 교훈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애굽에서 바로 왕에게 심각한 탄압을 받고 있었던 상황을 전하고 있습니다.
❚ 행 7:17-19 /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번성하여 많아졌더니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애굽 왕위에 오르매
그가 우리 족속에게 교활한 방법을 써서 조상들을 괴롭게 하여 그 어린 아이들을 내버려 살지 못하게 하려 할새
이스라엘이 출애굽하기 100여 년 전의 상황에 대하여 묘사하면서 먼저, 이스라엘 백성이 번성하여 많아졌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여러분, 야곱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할 때 인원이 몇 명이었지요?
오늘 본문에는 75명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인원은 한 가족으로 보면 대가족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민족적 입장에서 보면 매우 작은 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70여 명이, 출애굽 할 때는 얼마만한 인원으로 늘었지요? 20세 이상의 남자만 약 60만 명이었습니다.
아마도 전체 인구는 약 200만 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 이주한 지 430년 만에, 무려 약 30,000배로 인구가 증가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그 수가 점점 많아지자 애굽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민족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장 교활한 방법으로 학대하기 시작했습니다.
1) 출산을 막기 위해 사내아이를 낳으면 나일 하수에 버리도록 명령하였습니다.
2)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중노동을 통해 그들의 삶이 곤고해지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17절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때가 가까우매" 이러한 일이 발생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기하급수적인 인구 증가나 애굽 왕의 악한 탄압은 시대적 흐름이 낳은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곧 출애굽을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이루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견지는 우리에게 중요한 진리 한 가지를 깨우쳐 줍니다.
그것은 '세상 역사는 철저히 하나님의 계획하심에 따라 움직인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하기에 세상의 역사가 우연히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할지라도 이는 다 하나님의 계획 아래에 있음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고백합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모든 역사는 하나님의 계획, 특별히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역사하셨지요?
1. 박해로 버려진 모세를 바로의 궁에서 왕자로 키우셨습니다.
❚ 행 7:20-21 /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
버려진 후에 바로의 딸이 그를 데려다가 자기 아들로 기르매
모세가 태어난 시기는 바로의 박해가 절정을 이룰 때였습니다. 석 달 동안은 키웠지만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를 살리기 위해 바구니에 역청을 발라 물에 가라앉지 않도록 하고, 강가로 떠내려 보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애굽 공주를 통해 죽음에서 극적으로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건짐 받은 모세를 통해 애굽의 종살이를 하던 이스라엘민족을 또 건져주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모세는 자기 백성을 고난에서 건져줄 사명을 띠고 죽음에서 건짐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늪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아름다운 사명을 위임 받은 것이 아닐까요?
우리가 찬양하는 것처럼,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그리고 그 사랑 전하기 위해 주께서 택하시고 이 땅에 심으셨네. 또 하나의 열매를 바라시며~" 하나님의 택한 자녀들로서 아직도 죄의 종노릇하는 사람들에게 생명의 자유함을 선포하는, 하나님의 현현이 되게 하기 위함 아닐까요!
우리는 모두 이 시대의 모세입니다.
우리들은 이웃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생명을 전하는,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계심을 누리고 기쁨으로 그 사실을 나누는 또 하나의 모세인 것입니다.
2. 미디안 광야에서 광야생활을 하게 하셨습니다.
40년 동안을 왕궁에서 왕자로 살았지만 모세의 몸 속에는 히브리인의 피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동족에 대한 빚진 자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 행 7:22-23 / 모세가 애굽 사람의 모든 지혜를 배워 그의 말과 하는 일들이 능하더라
나이가 사십이 되매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을 돌볼 생각이 나더니
그러던 어느날 애굽인이 자기 동족을 때리는 일을 목격하고 괴롭히는 애굽인을 쳐 죽였습니다.
❚ 행 7:24-25 / 한 사람이 원통한 일 당함을 보고 보호하여 압제 받는 자를 위하여 원수를 갚아 애굽 사람을 쳐 죽이니라
그는 그의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자기의 손을 통하여 구원해 주시는 것을 깨달으리라고 생각하였으나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더라
다음 날에는 이스라엘 사람들끼라 싸움이 일어납니다.
❚ 행 7:26-28 / 이튿날 이스라엘 사람끼리 싸울 때에 모세가 와서 화해시키려 하여 이르되 너희는 형제인데 어찌 서로 해치느냐 하니
그 동무를 해치는 사람이 모세를 밀어뜨려 이르되 누가 너를 관리와 재판장으로 우리 위에 세웠느냐
네가 어제는 애굽 사람을 죽임과 같이 또 나를 죽이려느냐 하니
모세는 이 싸움을 화해시키려 하였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누가 너를 재판장으로 세웠느냐'며 항의합니다. 그리고 어제 애굽 사람 죽인 일을 사람들에게 떠벌리자, 더 이상 모세는 애굽에서 살지 못하고 미디안으로 도망치게 되었습니다.
❚ 행 7:29 / 모세가 이 말 때문에 도주하여 미디안 땅에서 나그네 되어 거기서 아들 둘을 낳으니라
애굽의 왕자 신분에서 하루 아침에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모세가 애굽 사람을 죽이고 도피한 곳은 시내산이 있는 시내반도의 미디안 광야입니다. 당시 그곳에는 미디안 사람들이 목축을 하며 살고 있었는데, 미디안 사람들은 아브라함의 후처인 그두라의 소생들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민족과는 먼 친척뻘이 되는 민족이었습니다.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장인의 양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는 이제 이전의 화려한 왕궁 생활도, 또 이스라엘을 자기 힘으로 구원해 내려는 꿈도 잊어버렸습니다. 그저 평범한 한 목동으로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첫 아들을 얻고 그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지었는데,
그 뜻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 아들의 이름에도 나타났듯이 모세는 자신도 어쩔 수 없는 인생의 한 나그네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남보다 잘난 것 없는 나그네 인생이라는 사실을 인정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곳 미디안광야에서 4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는 미디안 광야에서 양을 치는 평범한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모세의 40년의 시간은 겸손히 주님의 의지하는 시간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인생 반전을 암시하는 말씀이 나타납니다.
❚ 행 7:30 / 사십 년이 차매 천사가 시내 산 광야 가시나무 떨기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보이거늘
여기에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차매'라는 단어입니다.
왜 '40년이 흘러가매' 라고 하지 않고 '40년이 차매'라고 했을까요?
그러니까 '40년'이란 세월은, 이미 하나님께서 작정해 놓으신 시간이란 뜻입니다.
그건 무슨 일이 있어도 채워져야 하는 시간이란 뜻입니다. 그 다음 역사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40년이라는 시간이 채워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때로, 우리가 아무리 부르짖어 기도해도 응답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때라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때가 이르기까지 꼭 채워져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뜻이겠지요.
모세에게 '40년이 시간이 채워지자' 드디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랜 세월, 응답이 오지 않아 답답한 적 있으시지요?
모세를 기억하시며 소망을 갖기 바랍니다. 분명 그 '때'가 옵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을 만난 장소가 어디지요?
❚ 행 7:31-33 / 모세가 그 광경을 보고 놀랍게 여겨 알아보려고 가까이 가니 주의 소리가 있어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즉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 하신대 모세가 무서워 감히 바라보지 못하더라
미디안광야에 있는 '호렙산'이었습니다.
그곳은 모세가 타향살이의 슬픔을 안고 희망도 없이 양 떼를 몰던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곳에 하나님이 계셨던 것입니다. 애굽의 왕자였던 모세가 양치기로 전락하여 모든 꿈을 포기하고 숨어 지냈던 그 땅도 알고 보니 하나님이 거하시고 계셨던 거룩한 곳이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스데반은 하나님은 오직 성전에만 계신다고 믿고 있던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은 어디에나 계실 수 있는 무소부재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깨우치려고 하고 있습니다. 본래부터 특별히 거룩한 땅이란 없는 것이며,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이라면 그곳이 어디든 거룩한 땅이 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다는 유대인들의 편견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 행 7:34 / 주께서 이르시되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라"라는 말씀은 그 땅이 원래 거룩한 땅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그 땅에 하나님께서 임하셨기 때문에 거룩한 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계시는 곳과 계시지 않는 곳의 구분은 따로 없습니다.
성도들이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곧 하나님께서 계시는 곳입니다. 그리고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어디에나 계신 하나님이 바로 저와 여러분 안에 함께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지금 '나'는 어디에 있습니까? 왕궁에 있나요? 허름한 곳에 있습니까? 가정과 일터에 있습니까?
바로 그곳이, 여러분과 제가 서 있는 그곳이 하나님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과 함께하고 계시는 거룩한 장소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장소에 현현하셔서, 원하시는 사람을 부르십니다. "네 신을 벗으라" 는 말씀은, 지금까지 네가 가지고 있었던 너의 모든 의지를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모세가 '자기 자아의 손'에서 이제는 '하나님의 손'으로 운영해나가도록 하시는 데, 40년이 걸린 셈이지요.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요?
1.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곤고함과 고통을 듣고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곤고할 때, 힘들고 어려울 때 부르짖으십시오! 다른 외부에서 힘들여 무엇인가를 찾지 말고, 인생을 의지하지도 말고, 우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2. 하나님께서는 전적으로 하나님께 의탁하는 겸손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모세가 자신의 손으로 동족을 구원할 것이라는 착각에 머물러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애굽의 왕자로 있으면서 교육, 지식, 기술, 재능을 익히기 위해 최선을 다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왕자를 쓰신 것이 아닙니다. 겸손한 자를 사용하셨습니다. 40년의 기간은, 모세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경건의 훈련을 하신 기간입니다.
우리 안에서 지금도 말씀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계신가요?
'하나님이 누구에게 말씀하고 계신가?'를 아직도 묻고 계십니까? 아닌 거, 아시지요!!!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가?'를 궁금해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바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靈의 음성, 성령의 음성을 따르는 자기 되어야 합니다.
오늘 하루도 여러분 안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들으시며 협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종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2025. 2. 12. 수요 예배 대표기도문 (0) | 2025.02.12 |
---|---|
스데반의 설교 ④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행 7:37-43, 사도행전 시리즈 설교(32) (0) | 2025.02.11 |
감사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시 100:4, 2025. 2. 9. 주일 예배 설교문 (1) | 2025.02.09 |
2025. 특별 새벽 기도회 설교문 ⑤, 주의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셨으니 ...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라, 눅 4:18-19 (0) | 2025.02.08 |
2025. 특별 새벽 기도회 설교문 ④, 그보다 큰일도 하리라, 요 14:12 (0) | 2025.02.07 |